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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본의 서재

세계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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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본
작품등록일 :
2020.01.20 21:43
최근연재일 :
2021.06.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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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7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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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Zero Memory(1)

DUMMY

여전히 마음을 정리하지 못한 이터널이 돌아오자 통화를 마친 유마는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이터널 군, 오셨습니까?”

유마의 목소리는 마치 이터널의 마음과도 같았다. 밝게 인사했음에도 목소리는 어두움이 깔려 있었고, 영 못마땅한 느낌이 만연했다.


내려놓은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유마, 그는 미묘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연구 중이셨습니까?”

이터널은 그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녹차 맛 단백질 샘플이 보이자 조심스럽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우웁!”

그저 때깔 좋은 형태일 뿐, 평소와 다름없이 맛이 없었다. 거짓없는 소리에 유마는 그를 바라보았다.


“어떤가요?”

유마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 그게···”

이터널은 샘플을 억지로 삼켰지만, 표정만은 억지로 바꿀 수 없었다.


“역시 맛없죠?”

유마의 직구에 예의를 지키기 위해 최대한 돌려 말하려던 이터널의 입은 닫혔다.


“아마, 그렇게 쉽게 되는 건 아닐 겁니다.”

“그래도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이터널은 정중한 대답과 함께 소파에 몸을 기대며 눈을 붙였다.



“이터널 군.”

공교롭게도 잠에 빠지기 직전, 유마의 외침이 머리를 세게 때렸다.


“예.”

이터널은 급히 눈을 떴다.


“피곤하신가요?”

“괜찮습니다.”

이터널은 벌겋게 충혈된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파악이 되지 않았지만, 최소한 조금씩 몰려오던 피로는 깨끗하게 사라졌다.


“그럼, 우리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예, 무슨 일입니까?”

한참 만에 정신을 찾은 이터널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유마를 바라보았다. 유마는 평소 흐트러짐 없는 그의 어벙한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다음에 이야기해야겠군요.”

“아닙니다.”

이터널은 흥건해진 입가를 닦으며 몸을 일으켰다. 싸움과 추적으로 인해 온몸이 쑤셨고,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미 한 번 흐트러진 모습은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시영 군에게 연락이 왔었어요. 훌륭하게 약속을 지킨 그에게 정보를 줘야 했죠.”

“녀석은 받지 않을 겁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이터널 군이 어떻게 알고 있죠?”

“그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이터널의 말에 유마는 지그시 미소를 지었다.


“그것 포함해서 이터널 군이 이번 사건, 즉, 마석 사건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들었습니다.”

이터널은 뒤로 젖힌 고개를 살짝 저었다.


“이 몸은 한 게 없습니다. 시영과 제미니가 해결하려고 노력한 덕분입니다.”

“그럼, 이터널 군이 괴인과 싸웠다는 이야기는 거짓말인가요?”

이터널은 입을 다물었다.


“그 이터널이 거짓말을 하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면 시영 군이 거짓말을 하는 건가요?”

“괴인과 싸운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었을 거라는 결과를 도출할 수는 없습니다.”

“글쎄요. 시영 군의 말로는 이터널 군이 목숨을 걸고 싸운 덕분에 문제를 빨리 해결할 수 있었다고 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미니가 더 힘써왔기에 이 몸이 싸운 사실은 미약합니다. 괴인을 쓰러뜨린 건 더더욱 아닙니다. 한 번은 시영, 다른 한 번은 포우가 구해줬습니다.”

“포우?”

유마는 굉장한 이름에 눈을 크게 떴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이 몸은···”

“그래서 이터널 군의 말은, 이터널 시스템의 최후의 1인임에도 부끄럽고, 차마 이 부분은 절 위해서라도 고생했다는 소시를 들으면 안 된다는 건가요?”

순간적으로 이터널은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유마는 그의 생각을 정확히 짚었기 때문이었다. 보통 적당히 느낌이 비슷하거나, 어느 정도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유마는 마음을 직접 보고 말하는 것처럼 정확히 말해버렸다.


“죽은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이 몸은 약해지면 안 됩니다.”

“이터널 군, 냉정하게 생각해보죠. 이터널 시스템은 D-Zero 이후, 그 어떤 조정도 가해지지 않았습니다. 즉,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죠.”

“알고 있습니다.”

“이터널 군은 그런 시스템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위협에 기꺼이 몸을 바쳤습니다. 그런 이터널 군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가요?”

“하지만 성과가 있어야 합니다.”

“소인 군, 소민 양, 거인 군 때문입니까?”

유마는 다시 한 번 그의 마음을 정확히 짚었다. 이터널은 이번에는 놀라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역시, 교수님은 그냥 넘어갈 수 없군요.”

“말했잖습니까? 전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터널은 지겹게도 들었던 그 말이 여전히 믿기지 않았지만, 연속해서 마음을 정확하게 읽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걸 계산하니 마냥 재미없는 농담은 아니라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왜 다들 제 말을 믿어주지 않을까요. 시영 군은 흔쾌히 믿어줬는데.”

“교수님, 시영의 마음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었습니까?”

이터널은 시영이라는 말에 유마를 깊게 주시했다.


“질문이 조금 어렵네요. 솔직하게 느낀 바로는 시영 군의 행동에 거짓은 없었습니다.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믿었죠. 조금은 무서울 정도로···”

이터널은 마음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지금 유마가 그를 걱정하고 있다는 감은 있었다.


“시영이라면 분명 순수하게 믿었을 겁니다.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이터널 군도 절 믿어주잖아요.”

“녀석처럼 여과 없이 모든 걸 믿지는 않습니다. 지금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존경하는 교수님이라고 해도 말에는 어느 정도 거짓이 섞여 있을 겁니다.”

이터널의 눈은 유마에 대한 영원한 존경심만이 가득했다. 유마는 그 마음을 읽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습니다. 저도 사람인데 거짓말은 하죠. 어떻게 거짓말을 안 할 수 있나요. 하지만 악의적인 거짓말은 지양하는 편입니다.”

이터널은 그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던 겁니까.”

“우선 감사드립니다.”

유마는 이터널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이터널은 당혹스러움에 뇌가 떨리는 느낌이었다.


“왜, 왜 그러십니까.”

창백해진 이터널, 정작 유마는 별 개의치 않았다.


“고맙습니다, 이터널 군.”

유마는 고개를 숙였지만, 엄연히 이터널에게는 최고 상사이자 스승님이다. 스승이 제자에게 할 행동으로는 도를 심하게 넘어버린 모습이었다.


“시영 군이 그러더군요. 이터널 군은 좋은 사람 같지만 뭔가 슬퍼 보였다고. 소인 군의 가족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도와주길 바라고 있더군요.”

“시영이란 사람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지 않지만, 이건 녀석이 참견할 일은 아닙니다!”

이터널은 화를 냈고, 유마는 고개를 저었다.


“시영 군은 D-Zero의 진실을 대신해 이터널 군을 도와주길 부탁했습니다.”

“정말입니까?”

“악의적인 거짓말도 지양하지만, 그렇다고 쓸데없이 거짓말도 하지 않습니다.”

유마의 목소리에 흔들림은 없었다. 정작 이터널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려갔다.


“시영 군은 진심으로 부탁했는데, 이터널 군은 고집만 부릴 겁니까?”

“녀석은 왜···”

이터널은 그저 이 사실을 믿지 못했다. 사실상 시영은 스스로가 한 모든 업적을 기부한 것과 다름없었다. 그와 소인 가족의 문제는 유마로서도 어쩔 수 없는 문제였고, 책임을 질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단지 이터널이 스스로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이터널 군, 당신이 미소 짓길 바란다는 이유였습니다.”

“고작 그런 이유입니까?”

이터널의 물음에도 유마는 부탁받은 대로 말했을 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시영의 입장에는 미소가 정보보다 더 중요했다. 유마는 그것과는 반대되는 생각이었다. 적어도 그가 D-Zero의 진실을 알고 싶었다면, 그것을 위해 사건을 해결해야 했다. 이게 유마의 입장이자 변함없는 생각이다.


하지만 시영은 망설임 없이 D-Zero의 진실보다도 소인과 소민의 미소, 더 나아가서 이터널의 미소를 위했다. 유마도 그에 못지않게 다른 사람을 잘 배려했지만, 그럼에도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이런 마음을 가진 유마가, 미소보다는 정보를 더 우선하는 유마가 시영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말로 그가 D-Zero의 진실과 관련해 말할 수 있는 사실이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시영이 듣는다면 실망할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유마는 한편으로는 그가 그런 부탁을 했기에 고마워했다.


“그래서 전 기적을 바랍니다.”

그 고마움 때문에라도 유마는 이터널의 말에 반박했다.


“이 몸이 미소를 짓는 게 기적이라는 겁니까?”

“아니요.”

“그럼 무슨 기적입니까?”

“6개월 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저와 이터널 군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적이죠.”

그것은 어쩌면 언젠가 다가올 부메랑과도 같았다. 유마에게도, 이터널에게도 피할 수 있을 장소는 없었다.



“하지만, 기적이라고 하기에는···”

“어쩌면 시영 군 덕분에 명분이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무슨 명분입니까?”

“이터널 시스템의 부활입니다.”

“부활?”

이터널은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죠. 뭐, 기적적으로 발견한 덕분이지만, 시영 군의 부탁도 있고, 명분도 충분하니, 정말 기적 같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죠.”

유마는 기적이란 단어로 농담했지만, 정작 이터널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그 모습에 유마는 승혁을 생각했다. 그라면 적어도 빈말로라도 웃어줬을지도 몰랐다.


“뭘 발견한 겁니까.”

“이터널 군은 누군가 녹차 맛 단백질 블록이 맛이 없다는 문의를 보낸 걸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맛을 좋게 해보려고 안 해본 게 없습니다. 정말 힘들었죠.”

유마는 그때를 생각하자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저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무엇입니까.”

“단백질 블록이 맛이 없는 이유이자, 이터널 시스템이 부활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이유입니다.”

유마의 상기된 표정에 이터널은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단백질 블록은 원래 D-Zero 같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오래 먹을 수 있도록 만든 음식입니다. 오래 보관할 수는 있데, 맛은 없죠.”

“이제야 인정하시다니.”

“어쩔 수 없죠. 때로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유마는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어쨌든 맛이 없는 이유가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성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걸 이터널 시스템에 적용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나요?”

“···안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걸 생각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터널은 입을 다물었다.


“이터널 군이 괴인과 싸운 이유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습니까? 아마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이터널이 되려던 이유가 무엇이었죠?”

이터널은 입을 열 수 없었다.


“불가능을 생각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D-Zero 때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해서 발버둥 치지 않은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맞습니다.”

이터널은 코로 한숨을 뱉었다.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6개월 전, 잃어버린 우리가 바란 진정한 목표를···”

“교수님.”

이터널은 긴장을 삼키며 유마를 바라보았다.


“우선 기적을 바라며 이터널 시스템을 조정하는 것부터 시작이군요. 6개월 만에 잡아보는데, 오랜만이라 긴장되네요.”

“성심성의껏 도와드리겠습니다.”

이터널은 정중하게 예의를 갖췄다. 자신감이야말로, 이터널이 존경하는 유마의 장점이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 힘, 그라면 가능했고, 이번에도 현실로 만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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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복수자의 눈(1) 20.08.08 42 0 12쪽
44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마술사(3) 20.08.07 26 0 16쪽
43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마술사(2) 20.08.06 26 0 12쪽
42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마술사(1) 20.08.06 25 0 13쪽
41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뮤즈(3) 20.08.04 29 0 14쪽
40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뮤즈(2) 20.08.03 34 0 18쪽
39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뮤즈(1) 20.08.02 33 0 13쪽
38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오싹한 동영상(3) 20.08.02 32 0 12쪽
37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오싹한 동영상(2) 20.08.01 40 0 15쪽
36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오싹한 동영상(1) 20.07.31 32 0 12쪽
35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Zero Memory(3) 20.07.29 44 0 16쪽
34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Zero Memory(2) 20.07.28 33 0 12쪽
»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Zero Memory(1) 20.07.27 32 0 12쪽
32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진실은 가까운 곳에 있다.(2) 20.07.27 36 0 14쪽
31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진실은 가까운 곳에 있다.(1) 20.07.26 41 0 13쪽
30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철의 기억(2) 20.07.26 28 0 14쪽
29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철의 기억(1) 20.07.25 35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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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블러드리아(2) 20.07.23 33 0 14쪽
26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블러드리아(1) 20.07.22 34 0 14쪽
25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힘(3) 20.07.22 32 0 12쪽
24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힘(2) 20.07.21 36 0 12쪽
23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힘(1) 20.07.21 31 0 12쪽
22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Game Over(2) 20.07.19 38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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