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아리본의 서재

세계의 환상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아리본
작품등록일 :
2020.01.20 21:43
최근연재일 :
2021.06.22 22:00
연재수 :
253 회
조회수 :
7,803
추천수 :
12
글자수 :
1,725,853

작성
20.07.19 22:20
조회
25
추천
0
글자
12쪽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Game Over(1)

DUMMY

적은 쓰러지고, 소인은 승리했다. 하지만 기쁘지 않았다. 점심이 되었음에도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았다. 음식을 주문하려 화면을 전환했지만, 먹고 싶은 음식도 없었다.


소인은 모니터 앞에 놓인 6장의 금빛 테두리 메모리 스크롤을 바라보았다. 한숨을 쉬며 그것들을 만지작거렸지만, 어제처럼 희망이 차오르는 느낌은 더더욱 없었다.


스마트폰에서는 진동이 울리며 게임을 같이 하자는 친구들의 연락이 왔다. 하지만 소인은 스마트폰을 엎어두는 것으로 응수하며 그들에게서 되찾아온 메모리 스크롤을 다시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평소 피시방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특히 오늘 같은 주말에는 보통 오전에 자리가 다 차버리지만, 평일 오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지금 소인의 기분으로는 차라리 이런 쾌적한 환경이 더 나았다. 희망을 잃어버린 지금은 소란스러운 환경보다는 조용한 환경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미 잡아놓은 매칭은 시끄럽게 울어댔고, 소인은 게임 시작 버튼을 눌렀다.


게임이 시작되고, 어떤 게임이든 곧잘 잘하는 소인은 어렵지 않게 이기고 있었다. 그렇게 손쉽게 상대를 쓰러뜨리며 승기를 굳히고 있을 때였다.


“찾았다.”

시영이 미소 지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정작 소인은 그를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모니터 속 화면에만 집중했다.


시영은 자연스럽게 소인의 옆자리로 앉아 컴퓨터를 켰다. 시영은 소인과 그의 화면을 번갈아 보았지만, 소인은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오랜만이네.’

시영도 게임을 시작했다. 육성 게임이었는데, 그의 캐릭터는 마왕과의 전투를 앞두고 있었다.


“트릭스터 크로니클?”

소인은 오랜만에 들어보는 게임 배경음에 시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거 알아?”

“알죠, 1년 전에 유행했던 게임이잖아요.”

“지금은 아무도 안 하나 보네?”

“그거 말고도 할 게 얼마나 많은데요.”

소인은 다시 자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그의 캐릭터는 적에게 공격을 받고 있었지만, 능숙한 실력으로 오히려 상대를 쓰러뜨려 버렸다.


너무나도 압도적인 실력 차이에 상대는 기권을 선언했다. 소인은 기쁘지도 않은 한숨을 쉬며 기지개를 폈다.


그 좋아하는 게임도 재미가 없었다. 이젠 뭔가를 할 의욕마저 사라졌다.


소인은 고개를 돌려 시영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트릭스터 클로니클, 소인도 꽤 재미있게 했던 게임이었다. 리포트(저장) 기능이 있는 이 게임에서 시영의 리포트는 6개월 전이 마지막이었다.


그가 알기로 트릭스터 크로니클의 마지막 업데이트는 7개월 전이었기에 시영이 오랜만에 접속했음에도 새로 추가된 시스템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영의 캐릭터와 장비, 공략일지는 확인한 소인은 그가 매우 착실하게 게임을 즐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주요 임무는 물론이고, 굳이 할 필요 없는 보조 임무까지도 대부분 해결되어 있었고, 그가 해결하지 못한 임무들은 추가로 돈을 내고 사야 하는 것들이었다.


오랜만에 해서 익숙하지 않은 것인지, 시영의 캐릭터는 마지막 임무인 마왕과의 결전을 시작했지만, 시작부터 고전을 면치 못했다. 소인의 기억에서도 마지막 보스인 마왕은 확실히 어려운 적이었다.


착실하게 했던 6개월 전에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이도마저 상당했다. 다만, 시영의 캐릭터는 다른 캐릭터들보다 마왕을 상대하기 쉬운 편에 속했다.


결국, 시영의 캐릭터는 마왕을 쓰러뜨리는 데 실패했다. 모니터에는 Game Over라는 커다란 문장이 우울한 배경음과 함께 나타났다. 시영은 몇 번이고 다시 도전했지만, 근본적으로 그가 오랜만에 하는 게임에서 전혀 감을 잡지 못했기에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시작하자마자 마왕이 불을 쏘면, 방패로 막지 말고 오른쪽으로 피해요.”

소인은 입을 열었고, 시영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오른쪽? 왼쪽으로는 피하면 안 되는 거야?”

“지형 구조상 오른쪽이 조금 더 나아요. 왼쪽은 장애물이 많으니까요.”

“아, 그렇네.”

시영은 소인의 말을 듣고 다시 도전했다. 시작하자마자 마왕이 내뿜은 불을 오른쪽으로 피하자 지금까지와는 다른 패턴이 나왔다. 마왕은 불을 뿜은 곳으로 곧장 달려들었고, 시영은 침착하게 캐릭터를 조종해 그 움직임을 피했다.


“마왕한테 스턴이 1.5초 정도 걸릴 거예요. 지금 최대한 딜 많이 넣으세요.”

소인의 조언에 시영은 1.5초 동안 최대한 많은 공격을 퍼부었고, 결과적으로 마왕의 체력은 30%가 줄어들었다.


“다음 공격을 피하려면 오른쪽으로 두 번, 왼쪽으로 세 번 피해야 해요. 그리고 주먹질을 할 텐데, 그거 전부 방패로 막은 다음에 궁극기 쓰면 깰 수 있어요.”

“오, 그래?”

시영은 흥미로워하며, 소인의 말대로 오른쪽으로 두 번, 왼쪽으로 세 번 움직여 공격을 피했다. 그러자 마왕은 주먹질을 시작했고, 시영은 타이밍에 맞춰 마왕이 내지르는 주먹을 방패로 막아냈다.


트릭스터 크로니클은 방패 사용에 있어 정확한 타이밍을 요구했지만, 시영은 방패 사용에 익숙했기에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모든 공격을 막은 시영은 궁극기의 커맨드를 입력했다. 무지개의 빛이 시영의 캐릭터에서 발사되어 마왕의 몸을 꿰뚫었다.


“에!”

마침내 게임은 클리어됐고, 시영은 미소와 함께 소인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마찬가지로 기뻐하고 있던 소인은 큰 소리가 날 정도로 손바닥을 휘둘러 그의 손바닥에 세게 맞부딪쳤다.


하지만 그 기쁨도 오래가지 않았다. 소인은 어색하게 고개를 돌리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자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소인아, 너 진짜 게임 잘하네?”

시영이 소인에게 말을 걸었다. 소인은 그가 눈치가 없는 건지, 분위기에 심취한 건지 잘 구분되지 않았다.


“여긴 어떻게 찾았어요?”

“누나한테 물어봤는데, 소인이, 네가 게임을 그렇게 좋아한다고 그러더라고. 혹시 피시방에 있지 않을까 싶어서 찾아왔는데, 예상보다 빨리 찾았어.”

“누나요?”

소인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소인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게임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모를 리는 없었다. 하지만 시영의 누나가 누구인지 그로서는 전혀 짐작가는 사람이 없었다.


“그게··· 누구죠?”

“박세정, 너희 담임 선생님.”

“세정 선생님?”

소인은 시영의 말을 듣자 피식거렸다.


“그걸 제가 어떻게 믿죠? 어떻게 저만 보면···”

“왜 너만 보면 거짓말하냐고?”

시영의 말에 소인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왜 너한테 거짓말해?”

“그건···”

소인은 할 말이 없었다. 시영이 지금 거짓말한다는 증거는 없었다. 세정이 그의 누나라는 것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세정은 소인을 걱정하고 있었고, 시영이 그녀의 가족이라면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시영은 소인에게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다. 애초부터 거짓말을 하기 위해 접근했다면 분명 티가 났을 테지만, 지금도 그에게서는 거짓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시영의 표정에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기에, 지금 감정은 그저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어떻게 봐도 시영이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진실을 말하는 사실이 더 가능성 있었다.


“그건?”

“모르겠어요. 그냥 그런 것 같아요.”

“서운한데.”

소인은 많은 이유로 시영에게 미안함을 느꼈고, 그렇기에 그가 자기 일에 신경 쓰지 않았으면 했다.


“죄송합니다.”

소인은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가는 거야?”

시영도 급하게 컴퓨터를 쓰고 의자를 집어넣었다. 공교롭게도 리포트를 적지 못했기에 마왕을 쓰러뜨린 일은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소인아, 이야기 좀 하자.”

“할 이야기 없어요.”

소인은 정면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필요해서 그래.”

“시영이 형, 형이 조사하는 의식 불명 사건은 저와 관련이 없어요.”

“소인아, 네 도움이 필요해, 너만이 이 사건을 해결할 유일한 열쇠야.”

“아, 진짜!”

소인은 집요하게 다가오는 시영에게 짜증을 내었다.


“왜 그러시는데요? 저는 정말 의식 불명 사건에 대해 잘 모른다고요!”

“널 도와주고 싶어서 그래.”

소인에게는 지금 가장 필요한 말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더 이상 필요 없는 말과도 다름없었다.


이미 시영에게는 폐를 많이 끼쳤다. 고속을 비롯한 사람들과 만나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가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행동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민폐 이전에 쓸데없는 행동과도 같았다.


여전히 짜증을 내며 험하게 구는데도, 시영은 동요하지 않았다. 소인은 계속해서 참견하는 그가 미안했기에 짜증을 낼 수밖에 없었다.


“필요 없어요!”

“소인아···”

“자꾸 그렇게 귀찮게 하는데, 남은 스크롤마저 뺏기고 싶어서 다가오는 거예요?”

“소인아, 그런 말 하지 마. 네가 스크롤을 뺏은 것도 용서할 수 있어.”

“뭐라고요?”

소인은 마음이 세차게 요동쳤다.


“미, 미르 코퍼레이션 앞에서 맞은 것 때문에 다가오는 거예요? 왜 자꾸 괜찮다는데 다가오는 거죠? 아니면 악감정이라도 품고 덤비려는 거예요?”

“그 일에 대해서도 나는 괜찮아. 악감정은 없어.”

“괜찮다고요?”

소인은 어이가 없었다. 더군다나 시영의 말이 진심임을 알았기에 이미 머리로는 그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 괜찮다고요? 미쳤어요?”

“아니, 안 미쳤어. 당시에 조금 화는 났지만, 지금은 괜찮아.”

“···괜찮아요? 그럼 절 설득시키려면, 쓰러뜨려 봐요.”

소인은 이판사판으로 칼등처럼 날카로운 말을 내뱉었고, 시영은 날이 선 느낌에 당황스러워했다.


“쓰러뜨려 보라고요.”

“소인아, 우리가 왜 싸워야 하니.”

“그 정도 용기도 없이 절 찾아온 거예요?”

“꼭 싸우는 게 용기는 아니잖아.”

“거, 겁먹은 거죠? 그러니까 못 덤비는 거잖아요? 제 말 틀려요?”

“소인아···”

계속되는 무례한 발언에도 시영은 소인을 걱정하는 마음만은 변치 않았다. 소인은 계속해서 그 마음을 느꼈기에 시영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날 설득시키려면, 지금 당장 덤벼요.”

스스로 생각해도 건방의 끝을 달리는 도발이었다. 그저 안타까워하는 시영과 미안했기에 이럴 수밖에 없는 소인은 서로 침묵할 수밖에 없었고, 멈춰버린 침묵 사이로 소인의 검지만이 얄밉게 움직였다.


“정말 우리가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시영은 고개를 저었다.


“시영이 형, 형이 해방기 소지자인 이상 언젠가 한 번은 싸워야 했을 거예요.”

“해방기?”

시영은 품속에서 해방기를 꺼냈다. 마찬가지로 소인도 해방기를 꺼냈다.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정말 싸워야만 할까?”

“자, 자신 없으면 이대로 물러나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소인은 긴장을 삼키며 긴장하지 않은 척 해방기를 움켜쥐었다.


“어쩔 수 없네.”

시영은 싸우고 싶지 않았음에도 이대로라면 말이 통하지 않았기에 싸울 자세를 잡아야만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세계의 환상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9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도움(3) 20.08.16 30 0 14쪽
48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도움(2) 20.08.14 27 0 14쪽
47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도움(1) 20.08.12 28 0 16쪽
46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복수자의 눈(2) 20.08.10 36 0 13쪽
45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복수자의 눈(1) 20.08.08 42 0 12쪽
44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마술사(3) 20.08.07 26 0 16쪽
43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마술사(2) 20.08.06 27 0 12쪽
42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마술사(1) 20.08.06 25 0 13쪽
41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뮤즈(3) 20.08.04 29 0 14쪽
40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뮤즈(2) 20.08.03 34 0 18쪽
39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뮤즈(1) 20.08.02 33 0 13쪽
38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오싹한 동영상(3) 20.08.02 32 0 12쪽
37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오싹한 동영상(2) 20.08.01 41 0 15쪽
36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오싹한 동영상(1) 20.07.31 32 0 12쪽
35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Zero Memory(3) 20.07.29 44 0 16쪽
34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Zero Memory(2) 20.07.28 33 0 12쪽
33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Zero Memory(1) 20.07.27 32 0 12쪽
32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진실은 가까운 곳에 있다.(2) 20.07.27 36 0 14쪽
31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진실은 가까운 곳에 있다.(1) 20.07.26 41 0 13쪽
30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철의 기억(2) 20.07.26 28 0 14쪽
29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철의 기억(1) 20.07.25 35 0 13쪽
28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제미니 20.07.24 31 0 14쪽
27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블러드리아(2) 20.07.23 33 0 14쪽
26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블러드리아(1) 20.07.22 34 0 14쪽
25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힘(3) 20.07.22 32 0 12쪽
24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힘(2) 20.07.21 36 0 12쪽
23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힘(1) 20.07.21 31 0 12쪽
22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Game Over(2) 20.07.19 38 0 15쪽
»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Game Over(1) 20.07.19 26 0 12쪽
20 Episode 01. 묶인 천사-귀신 소동(2) 20.07.19 30 0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