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아리본의 서재

세계의 환상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아리본
작품등록일 :
2020.01.20 21:43
최근연재일 :
2021.06.22 22:00
연재수 :
253 회
조회수 :
7,823
추천수 :
12
글자수 :
1,725,853

작성
20.07.21 22:00
조회
31
추천
0
글자
12쪽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힘(1)

DUMMY

전화를 마친 시영은 스마트폰을 6장의 스크롤이 있는 책상 옆에 살포시 올려두었다.


‘역시, 병원에 있는 사람들이랑 똑같아.’

시영은 소민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편안한 꿈을 꾸는 것처럼 숨소리를 내며 눈을 감고 있었다. 소인이 이따금 그녀를 건들었지만,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고요한 모습이었다.


“시영이 형.”

“그래, 소인아.”

“어제 병원에서 의식 불명 사건의 피해자들을 봤다고 했죠?”

소인은 쉽게 소민에게서 시선을 옮기지 못했다.


“맞아, 봤었어.”

시영은 한숨을 내뱉었다.


“뭐 알아낸 거라도 있어요?”

조심스럽게 시영을 바라보는 소인. 시영은 그의 떨리는 눈빛을 마주할 수 없었다.


“아직은···”

시영의 시선은 소민을 향했다.


“그렇군요.”

소인은 천천히 긴장을 삼켰다.


“정말 소민이가 의식 불명이라니···”

소인은 믿을 수 없었다. 그녀가 의식 불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오늘 아침이었다. 어젯밤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았고, 상처도 없던 것처럼 치료되었다.


그렇게 아침이 되어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소민의 모습에 조금은 의심했었다. 그저 잠든 이유가 피곤해서 그러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소인의 생각대로 소민은 의식 불명에 빠져버렸다. 항상 불안한 예상은 빗나간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시영에게 그녀가 의식 불명이 아니라는 확답을 듣고 싶었지만, 돌아오는 건 매정한 진실의 부정이었다.


“왜인지는 아직 모르죠?”

소인은 받아들여야만 했다.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시영을 원망하는 일은 없었다.


“확실하지 않은 건 여러 개 알아냈어. 그래도 걱정하지 마. 단, 한 가지만 확실해지면 돼.”

“그 한 가지가 뭐죠?”

“그건 소인이, 너야.”

시영의 대답에 소인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의식 불명 사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을지 스스로도 궁금했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시영의 표정에서부터 자신에게 커다란 희망을 기대한다는 게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대체 그가 알아낸 진실이 무엇인지는 소인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넌지시 물어봤음에도 시영은 스승님이 오면 말하겠다는 대답만 남기고, 책상에 있는 6장의 금빛 테두리 스크롤과 제로 메모리 스크롤, 그리고 해방기를 바라보며 뭔가를 적어댔다.


그렇게 10분 정도가 지나고, 소인의 집에 해성과 노바가 방문했다. 소인은 내심 어제 청소를 해놓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소인은 해성과 노바에게 마실 걸 대접했다. 곁들일 과자가 없는 건 아쉬웠다. 다만, 애초에 해성이 오는 것도 시영이 갑자기 결정한 일이었고, 그동안 소민을 쫓느라 과자 같은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문득, 소인은 다브에서 산 빵이 떠올랐다. 소민과 먹으려고 샀지만, 하나도 먹지 못하고 그대로 남아있었다. 마음만 전해진다면 과자가 아니라도 괜찮다는 생각에 당장 가져왔다.


그렇게 노바가 빵을 먹기 시작하자 시영이 입을 열었다.


“소인아.”

“네, 시영이 형.”

“스크롤 말이야. 어떤 힘이 있는 거야?”

“스크롤이요?”

시작부터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소인은 의외의 질문에 잠시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스크롤 자체가 가진 힘은 무언가를 흡수하거나 복사하는 거예요. 그냥 스크롤은 물체의 성분을 흡수하는 것, 메모리 스크롤은 사람의 기억을 복사하는 거라고 알고 있어요.”

“다른 기능은 없니?”

“저거 말고는 없을 거예요.”

“그렇구나, 그러면 기억이 힘이라고 봐도 괜찮은 건가?”

“음, 그렇게 이해하셔도 될 것 같아요.”

시영은 소인이 체인 메모리 스크롤을 사용해 제미니의 힘을 해방한 것을 떠올리며 수첩에 소인의 말을 정리해서 적었다.


“그래서 소인이가 스크롤이 필요했구나.”

시영이 금빛 테두리의 스크롤 중 노란색을 흔들었다.


“아, 네···”

소인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힘이 필요한 건 맞았고, 시영에게 잘못을 저지른 것도 그때부터였다. 시영의 질문의 핵심을 파악한 소인은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전 힘이 필요했어요.”

소인은 그렇게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사실을 알렸다.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거절당했다는 그 이야기, 해성은 소인에게 직접 들었고, 시영은 이미 여러 사람에게 들어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힘을 가진 경찰이 거절하니 저 혼자서 해결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거든요. 오히려 이런 상황이 되니까, 내 일, 아니, 우리의 일에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면 민폐라는 죄송스러움까지 들었어요.”

소인은 여전히 눈을 뜨지 않는 소민을 바라보았다.


“소민이가 사람들을 괴인으로 만든 건 분명한 사실이에요. 이미 이것만으로 민폐잖아요. 그래서 저라도 민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어요.”

소인은 떨리는 눈빛으로 시영과 해성, 그리고 빵을 삼킨 노바를 바라보았다.


“시영이 형의 물건을 빼앗은 건 정말 죄송해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힘이었고, 다른 이유는 해방기 소지자인 형의 힘의 원천 중 하나라도 빼앗으면 제 일에 간섭 못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내가 간섭하지 않길 바란 것도 혼자서 해결하길 바라서 그랬던 거야?”

“네··· 누군가 우리의 일에 간섭하지 않길 바랐거든요.”

소인은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어떤 이유를 들어도 잘못된 행동이라는 건 절대 변하지 않았다.


“제가 힘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무조건 제가 잘못된 생각이었죠. 애초에 시영이 형의 물건을 빼앗는다는 전제부터가 이미 민폐를 끼쳐버린 거잖아요.”

소인은 점차 시영을 바라보지 못했다. 해성과 노바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시영이 형은 제게 다가왔어요. 하지만 형이 다가오면, 아무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던 저의, 아니 우리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소인은 떨리는 목소리를 억누르며 말했다. 시영과 그의 주변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고마웠고, 한편으로는 죄송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시영은 소인에게 우유를 한 잔 건넸다. 소인은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것을 단숨에 비웠다. 묵었던 마음이 새하얀 우유와 함께 깨끗하게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맞아요. 정작 그때 저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힘이 없었어요. 그리고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죠. 너무나도···”

소인은 입을 닦으며 소민을 바라보았다. 해성과 노바는 소인을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다.


“그래서 내가 왔어. 걱정하지 마, 반드시 너희들의 미소를 되찾아 줄 거니까.”

소인은 간절한 눈빛으로 시영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반면, 미동 없는 소민은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자, 그러면···”

시영은 수첩을 꺼내 자신이 맞춘 퍼즐, 즉, 추리를 읊기 시작했다.


“일단, 소인이가 지금까지 소민이가 만든 괴인을 쓰러뜨렸고, 유일하게 괴인의 약점을 알고 있었지?”

“시영이 형, 저만 알고 있던 건, 아니에요. 포우도 알고 있었거든요.”

“포우?”

시영은 소인이 자신 있게 외친 [포우]라는 이름 두 글자 동공이 흔들렸다.


“포우가 알고 있었다고?”

시영은 수첩을 뒤적거렸다. 하지만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는 의식 불명 사건에 관련된 포우의 활약은 없었다.


“새벽에 절 구해줬거든요. 포우는 불꽃을 두른 주먹으로 괴인을 간단하게 쓰러뜨렸어요. 괴인의 약점은 복부였는데, 포우도 알고 있었나 봐요.”

“새벽이라고?”

시영은 새벽이라는 말에 잠깐 혼란이 왔다.


“포우에 대해 조금만 알려줄 수 있니?”

이미 D-Zero와 관련되었다는 이유로 포우를 내심 궁금해하고 있던 시영이었다. 이번 사건에 포우가 관련되었다는 사실을 그냥 넘어갈 이유는 없었다.


소인은 포우가 천사와는 다른 존재라는 것, 붉은 눈을 가졌다는 것, 결정적으로 그 이후로 소인이 아는 ‘붉은 눈’을 가진 포우의 이야기가 며칠 동안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까지 알렸다.


그의 이야기를 정리한 시영은 다행스럽게도 자신의 추리에 방해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말을 이어가려 했다.


한편으로는 포우가 상관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점이 아쉬웠지만, 당장은 상관이 없는 게 더 이득이었다. 추리라는 건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기존의 예상이 완벽하게 반박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몇몇 사람들은 지금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의식 불명에 빠져 있어.”

시영은 품속에서 문서를 두 개 꺼냈다. 그렇게 한 개는 해성, 다른 한 개는 소인에게 건넸다.


내용물은 방금 일어난 싸움의 여파로 일부가 훼손된 문서와 진료차트표였다. 다행스럽게도 가장 중요한 내용이 훼손되지는 않았다.


“두 분은 제가 드린 문서를 읽어보시겠어요? 스승님께 드린 문서는 의식 불명 사건의 피해자고, 소인이에게 준 건 괴인 사건의 피해자들이에요.”

“시영이 형, 이런 건 언제 만드셨어요?”

소인은 조심스럽게 페이지를 넘겼다.


“내가 만든 건 아냐.”

“그럼 누가···”

“이번 사건을 해결하고 싶은 모두의 수고 덕분에 만든 문서지. 나는 그냥 그분들의 고생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고.”

“그렇군요.”

소인은 괴인으로 변한 사람들을 한 명씩 자세히 살폈다.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자 페이지를 넘기기 힘들어했다.


“소인아, 그중에서 아는 사람 있니?”

“죄송해요. 잘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음, 혹시 괴인을 쓰러뜨리자마자 다른 곳으로 간 거야?”

“네, 소민이를 쫓아가려면 어떻게든 빨리 움직여야 했어요.”

소인은 최근 고생을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소인아, 네가 괴인을 직접 쓰러뜨려야 할 이유는 있었어?”

“네?”

갑작스러운 질문에 소인은 눈을 깜빡거렸다.


“지금까지 네 말로는 넌 힘이 없었잖아. 단지 너희의 일이라는 이유로 힘도 없는 네가 나서기에는 위험하지 않았어?”

“소민이가 사람들을 괴인으로 만드는 걸 두고 볼 수 없었어요. 솔직히 아무리 가족이 하는 일이라고 해도 절대 좋은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가 괴인을 쓰러뜨려서 괴인이 일으키는 피해라도 없앨 생각이었어요.”

“진심이야?”

“네, 전 이게 최선이었으니까요.”

소인은 문서를 꽉 쥐며 눈을 감았다. 그도 모르게 눈에서 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괜찮아.”

노바가 소인에게 다가갔다.


“고, 고마워.”

소인은 미소를 지었다. 노바는 자그마한 두 손으로 소인의 손을 잡고 세게 흔들었다. 시영은 두 사람이 잡은 손을 바라보며 지그시 미소를 지었다. 해성도 마찬가지로 두 사람을 보며 엄지를 올렸다.


“그럼, 왜 그 창연이라는 기사를 공격한 거야?”

이번 질문은 시영도 조심스러웠다. 그동안 막힘없이 대답했던 소인의 말문도 자연스럽게 무거워졌다.


몇 번을 생각해도 마석의 영향으로 호전성이 높아진 소민이 지나가던 창연에게 시비를 걸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그것은 엄연히 소민이 잘못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가족이 다쳐서 돌아왔다. 기사에게 갖는 분노는 이게 전부였다. 소민이 잘못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필요 이상으로 화가 치밀어올랐다. 소인조차 스스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분노였다.


“소중한 사람이 그 녀석의 손에 쓰러졌어요. 그것···뿐이에요.”

한참을 생각한 소인의 대답은 비록 짧았지만, 그 속에 담긴 마음은 길고도 깊었다. 시영과 해성은 그 말에 담긴 뜻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가족으로서 화가 나는 건 이해해.”

시영은 소인과 눈을 마주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세계의 환상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9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도움(3) 20.08.16 31 0 14쪽
48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도움(2) 20.08.14 28 0 14쪽
47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도움(1) 20.08.12 29 0 16쪽
46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복수자의 눈(2) 20.08.10 36 0 13쪽
45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복수자의 눈(1) 20.08.08 43 0 12쪽
44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마술사(3) 20.08.07 26 0 16쪽
43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마술사(2) 20.08.06 27 0 12쪽
42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마술사(1) 20.08.06 26 0 13쪽
41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뮤즈(3) 20.08.04 30 0 14쪽
40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뮤즈(2) 20.08.03 35 0 18쪽
39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뮤즈(1) 20.08.02 33 0 13쪽
38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오싹한 동영상(3) 20.08.02 33 0 12쪽
37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오싹한 동영상(2) 20.08.01 41 0 15쪽
36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오싹한 동영상(1) 20.07.31 32 0 12쪽
35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Zero Memory(3) 20.07.29 44 0 16쪽
34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Zero Memory(2) 20.07.28 33 0 12쪽
33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Zero Memory(1) 20.07.27 32 0 12쪽
32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진실은 가까운 곳에 있다.(2) 20.07.27 37 0 14쪽
31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진실은 가까운 곳에 있다.(1) 20.07.26 42 0 13쪽
30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철의 기억(2) 20.07.26 29 0 14쪽
29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철의 기억(1) 20.07.25 36 0 13쪽
28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제미니 20.07.24 31 0 14쪽
27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블러드리아(2) 20.07.23 33 0 14쪽
26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블러드리아(1) 20.07.22 35 0 14쪽
25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힘(3) 20.07.22 33 0 12쪽
24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힘(2) 20.07.21 37 0 12쪽
»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힘(1) 20.07.21 32 0 12쪽
22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Game Over(2) 20.07.19 39 0 15쪽
21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Game Over(1) 20.07.19 26 0 12쪽
20 Episode 01. 묶인 천사-귀신 소동(2) 20.07.19 31 0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