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능력은 어디까지인가(2)
아무도 없는 조용한 숲속.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다른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다. 아무도 없다.
“여기서 니가 쓰고 싶은 스킬 다 써봐.”
“네. 주인님. 뒤로 물러나세요.”
다크빌런은 뒤로 돌아 자신의 칼을 뽑아 든다. 뒷모습에서 비장함이 느껴진다.
“우오오오!”
기합을 넣는다.
그리고 나무가 우거진 숲에 대고 외친다.
“스톰데몰리션!!”
다크빌런의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숲속 여기저기로 퍼져 나간다.
푸드드득
그 소리에 여기저기에 앉아 놀던 새들이 부리나케 날아가 버린다. 다크빌런이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 큰 목소리로 외친다.
“스톰!!데몰리션!!!”
다시 한번 메아리가 퍼져나간다. 메아리가 한 차례 퍼져나가고 난 뒤 적막이 감돈다.
“잉? 또 안 나가네.”
멋쩍은지 머리를 긁적이는 다크빌런.
“다크샤워!! 썬더어택!! 이것도 안 되면···. 썬더볼트!! 헉 헉 헉”
칼을 휘두르며 연신 외쳐댄다. 숲이 흔들릴 정도로 우렁차게 소리는 질렀지만 아무 스킬도 나가지 않는다.
“주인님 아무 기술도 안 나가요. 스킬 초기화됐나 봐요.”
역시 예상대로 스킬은 쓸 수 없다.
당연하지. 여기는 현실 세계니까.
스킬은 포기하고.
그럼 이제 스탯을 확인해보자.
가장 궁금한 것은 게임에서의 능력치가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반영되는지다. 인간의 무력을 최대 100이라고 했을 때 다크빌런이 그 14.55배인 1455가 맞는 것인지. 아니면 능력 상한을 다시 책정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자 그럼. 여기에 있는 바위를 들어봐.”
“에이 주인님 이정도야 껌이죠.”
다크빌런은 현민의 몸 크기만 한 바위를 두 손으로 번쩍 들어 올린다. 100㎏은 족히 나가 보이는 바위. 아무리 힘이 좋아도 이렇게 손쉽게 들다니. 어디까지 힘을 쓸 수 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저걸 들어봐.”
“영차!”
“저것도!”
다양한 크기의 바위를 들어본 결과 다크빌런은 대략 300kg 정도까지는 들어 올릴 수 있었다. 그 이상은 들어올리지 못했다. 들기 쉽게 손잡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제멋대로 생긴 바위인 것을 감안하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은 확실하다.
다만.
생각했던 것처럼 인간의 몇 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힘은 아니다. 인간의 능력치 상한을 100이라고 했을 때 다크빌런은 150정도인 것 같다.
‘그 다음은...’
이제 그다음으로 확인해 볼 것은 민첩. 민첩을 확인해볼 방법이 뭐가 있을까. 주변을 둘러본다. 온통 큰 나무만 있다.
“다크빌런. 이 나무 위로 올라가는 건 힘들겠지?”
“에이. 주인님 왜 이러세요. 그 정도야 껌이죠. 잘 봐요.”
다크빌런은 그 무거운 갑옷을 입은 채로 펄쩍 뛰어 나무 한 개에 올라탄다. 그리고 계속 뛰면서 두 나무 사이를 지그재그로 올라간다. 무협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다. 와이어도 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실제로 있다니.
심지어,
갑옷의 무게만 해도 15㎏은 나갈 텐데. 이정도면 민첩도 현실의 인간들보다 훨씬 뛰어날 것이다. 물론 그것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와아.”
게임에서나 가능한 행동을 실제로 보게 되니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다크빌런은 쑥스러웠는지 얼굴이 빨개진다.
“이정도야 뭐···. 히히”
다크빌런의 능력치는 대체로 그대로인 듯하다. 그대로가 아니어도 괜찮다. 인간보다 뛰어나기만 하면 된다.
‘스킬은 왜 안 나갈까?’
아마 이곳이 현실 세계이기 때문에 스킬이 안 나가는 것 같다. 피지컬은 그대로이지만 마법이나 스킬은 이곳에서 사용할 수 없겠지. 아무렴 어때.
“흐흐흐흐흐흐”
갑자기 현민이 혼자 웃기 시작했다.
“다크빌런. 너 여기에서도 랭킹 1위 되겠다. 야.”
이정도 능력치면 인간 중에는 최고일 테지. 아무리 삼국지에 날고 기는 장수들이 많았어도 다크빌런에게는 안될 거다.
‘역시 내가 스탯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찍었다니까.’
[다크빌런]
레벨 355
직업 전사
힘 1455/1500
민첩 1325/1500
체력 950/1500
에너지 450/1500
지능 12/1500
지능이 낮은 게 조금 걸린다. 지능은 초기 스탯에서 하나도 찍지 않았다. 뭐 그거야 현민이 항상 옆에 있으면 될 터. 스스로를 자찬하며 다크빌런에게 다가간다.
“이제 그만 해도 돼. 주막으로 가자!”
“네? 우리 사냥하러 가는 거 아니에요?”
“사냥은 무슨···. 레벨 올리는 데는 퀘스트가 최고지.”
다크빌런의 등을 탁 친다.
“오오. 퀘스트 짱 좋아! 근데 어디에 가서 받는 거예요?”
“어디긴 어디야. 주막이지.”
다시 주막으로 향한다.
* * *
가게 문을 열자마자 바로 주인에게로 다가간다. 그리고 현상금 종이가 붙은 벽을 가리킨다.
“주인아줌마. 저기에 붙은 현상금 종이 여분은 없어요?”
“있긴 있는데요. 설마 진짜로 잡으러 가게요?”
현민의 요청에 주인의 눈이 동그래진다.
“네 심심해서요. 한번 해보려고요.”
“아이고. 손님 그러다 큰일 납니다. 보니까 칼도 잘 못쓰실 거 같은데 어쩌시려구···.”
주인이 현민을 위아래로 훑어본다. 무시당하는 것 같아 그녀의 시선이 불쾌하다. 불쾌한 시선에서 벗어나려는 듯 몸을 틀며 옆으로 비켜선다.
“저 말고. 얘가 할 거예요.”
뒤에 있던 다크빌런을 가리킨다. 다크빌런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현민을 보고 있다. 현민이 고개를 끄덕인다. 다크빌런이 알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연다.
“나는 타이탄월드 랭킹 1위 다크빌런이다!!!”
다크빌런은 주막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음식을 먹던 손님들이 인상을 쓰며 다크빌런을 노려본다.
“뭐야. 저 미친놈은. 무식하게 힘만 세게 생겨가기고.”
사람들이 욕을 퍼붓는다. 하지만 현민과 다크빌런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주인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다크빌런을 훑어본다.
“뭐 이분이라면 믿음직하긴 하지만. 아무리 무예가 뛰어나도 그놈들이 숫자가 얼마나 많은데···.”
“걱정하지 마시고 남는 종이 있으면 줘요.”
“알겠어요. 여기 있습니다.”
주인은 마지못해 산적 두목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종이를 건넨다.
“자! 이걸로 퀘스트도 받았겠다. 이제 출발해볼까!”
현민과 다크빌런은 기분 좋게 주막을 빠져나간다.
* * *
현민과 다크빌런이 마을 어귀를 걷고 있다.
주머니에 넣어둔 현상금 종이 꺼낸다. 이곳은 중국. 한자를 쓰고 있는데도 현민이 집중해서 보면 한글로 바뀌어 보인다. 또한, 한국어로 말하지만, 상대방은 알아듣는다.
“주인님. 배고파요.”
“뭐 또?”
다크빌런이 배를 만진다. 뱃속에 거지라도 들은 게 틀림없다.
“지금은 안 돼”
“아. 왜요?”
“우리 퀘스트 깨러 가고 있잖아.”
“아 맞다 우리 퀘스트 중이었지. 그런데 누굴 잡으면 돼요? 델바라쿠스입니까?”
다크빌런은 자꾸 이곳이 타이탄월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아. 여기 타이탄월드 아니라니까.”
“아 맞다. 히히히. 그럼 무슨 퀘스트를 깨야 하는 거예요?”
“산적 퇴치.”
“산적 퇴치요? 하하하하하. 제 레벨이 몇인데 그런 쪼렙들이나 하는 퀘스트를 해요.”
다크빌런이 건방을 떤다. 현민이 한숨을 푹 쉰다.
“너 배고프다며. 그럼 돈을 벌어야 뭘 사 먹지.”
“산적 퇴치를 하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겁니까!!! 주인님. 어서 잡으러 갑시다. 거기가 어딥니꽈?!!”
다크빌런이 포효하며 의욕을 불태운다. 현민은 바로 옆에서 소리를 지르는 다크빌런 때문에 귀청이 떨어질 것 같다.
“으···. 일단 목소리 좀 낮춰. 너 때문에 귀먹겠다.”
“죄송해요. 주인님.”
다크빌런이 풀이 죽은 채 현민을 따라간다. 현민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이 부근에 주로 출몰한다고 하던데.”
주막 주인이 그려준 지도. 지도대로라면 이 부근에 산적들이 자주 출몰할 것이다.
“음...”
현민은 다시 주변을 둘러본다. 작은 마을이다. 쓰러져가는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마을. 한눈에 봐도 가난한 마을이다.
꺄아악
그때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다크빌런 가자!”
“네. 주인님.”
현민과 다크빌런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간다.
* * *
“사. 살려 주세요.”
삐쩍 마른 남자가 바닥에 엎드린 채 빌고 있다. 남자는 얼마나 맞았는지 온몸이 피범벅이 되어있다. 그 옆에는 역시 삐쩍 마른 여인이 아이를 안고 울고 있다.
“뭐? 살려줘? 살 가치가 없는 놈을 우리가 왜 살려줘.”
“오늘까지 준비해 놓으라고 했어? 안 했어?”
딱 봐도 산적처럼 생긴 두 놈이 엎드려 있는 남자를 발로 밟는다. 그들의 더러운 발아래 밟힌 남자는 저항할 기운도 없어 보인다.
“으윽. 가족들 모두 삼 일째 굶고 있습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남편이 무기력하게 밟히는 모습을 보며 옆에 있는 부인이 애원한다. 하지만 산적 놈들은 봐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봐주면 산적이 아니지.
“우리가 언제 봐주는 거 봤어? 킥킥킥”
“돈을 갖고 와. 돈을!! 아니면 곡식이라도 가지고 와!”
산적 한 놈이 허공에 칼을 휘두르며 소리친다.
“야. 이제 재미없다. 빨리 이놈 죽이고. 여자랑 애만 데리고 가서 팔자.”
산적 중 한 놈이 칼을 높이 든다.
“야 이 산적 새퀴들아!!!!”
그때 누군가가 소리친다.
저 멀리 현민이 웃으며 달려온다.
드디어 산적들을 만나 반갑다.
하지만
산적들의 시선을 끈 것은 현민이 아니다.
옆에 있는 거구의 다크빌런이다.
“우오오. 내 경험치들!!”
다크빌런이 클레이모어를 들고 빠르게 달려온다. 그 모습을 보고 산적들이 공격 자세를 취하며 비웃는다.
“뭐야. 저 애송이들은.”
“야. 그래도 한 놈은 힘 좀 쓰겠다. 조심하자구.”
“뭘 조심 씩이나 해. 저런 놈은 내가 한 방에 처리할게. 잘 봐!”
산적 한 놈이 달려오는 다크빌런을 향해 칼을 휘두른다.
쾅
다크빌런은 자신의 클레이모어로 산적의 칼을 그대로 받아친다. 산적의 칼이 저 멀리 허공으로 날아간다.
“앗. 내 칼···.”
다크빌런이 앞차기를 시전 한다.
“커헉.”
다크빌런의 발에 맞은 산적은 그대로 5미터를 날아가 바닥에 꽂힌다.
“일루와. 내 경험치!”
다크빌런이 클레이모어를 높이 들고 산적의 목을 치려고 한다. 거대한 클레이모어의 날이 반짝인다. 그 모습을 본 산적은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해버린다.
“죽이면 안 돼!”
현민이 소리친다.
“왜요. 주인님. 퀘스트 깨야죠.”
“아니야 죽이면 안 돼. 죽이면 퀘스트 실패야.”
“그렇군요. 알겠어요.”
“그리고 저 뒤에 있는 놈도 잡아.”
현민이 지시하자 다크빌런이 또 다른 산적에게 달려간다.
“우오오! 일로 와!!”
그때까지 동료가 당하는 걸 넋 놓고 보고 있던 놈이 당황하기 시작한다. 다크빌런은 빠르게 다가간다.
“꼬. 꼼짝마. 다가오면 죽어 아니, 죽여 버릴 거야.”
역시 악당은 한결같다.
산적은 옆에 있는 부인에게서 아이를 뺏는다.
그리고 아이의 목에 칼을 들이댄다.
“으아앙. 엄마.”
아이는 두려움에 울음을 터뜨린다. 다크빌런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멈칫한다.
“주인님. 어쩌죠? NPC 아이가 인질로 잡혔어요.”
짜증이 확 치밀어 오른다.
“이런 젠장! 저런 새끼들은 게임이나 현실이나 뭐 이리 다 한결같냐.”
잡혀있는 아이가 다칠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내 새끼 건들지 마!!!”
그때 엎드려 있던 삐쩍 마른 남자가 산적에게 달려들며 칼을 빼앗으려고 한다.
“에잇. 이 약골이.”
산적은 칼을 뺏으려는 남자를 뿌리친다. 삼 일이나 굶은 탓인지 가볍게 뿌리쳐진다.
푸욱!
칼날이 남자의 몸속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남자의 주변으로 선홍색 피가 흩뿌려진다.
“헉.”
눈앞에서 사람이 칼에 찔리는 것은 처음 봤다.
눈이 커지고 심장이 세게 뛰기 시작한다.
“여보!!!”
그 잠깐의 순간에 다크빌런이 몸을 날려 산적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팔꿈치를 휘둘러 산적의 안면을 강타한다.
퍼억
산적은 몇 미터를 날아 바닥에 뒹군다. 안고 있던 아이가 떨어지자 다크빌런이 재빨리 잡아낸다. 역시 민첩성이 높다.
“괘. 괜찮아요?”
현민과 다크빌런이 칼에 찔린 사내에게 달려갔다.
“...”
그에게선 아무 대답이 없다. 오랜 굶주림으로 기력이 없었는지 이미 숨이 끊어져 가고 있었다. 그의 부인과 아이가 울부짖는 소리만 온 마을에 울려 퍼진다.
- 작가의말
산적은 한결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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