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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글자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와 두루미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틀린글자
작품등록일 :
2015.03.14 00:15
최근연재일 :
2016.02.23 00:32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99,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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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2
글자수 :
751,747

작성
15.10.12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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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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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20쪽

월묘

영혼을 갈아넣었습니다.




DUMMY

공호는 더 볼 것 없이 몸을 움직였다. 단도를 찔러 나온 폭음이 동굴을 울렸다. 동굴이 울리며 돌 부스러기가 부스스 떨어져 내린다. 손이 저릿한 것이 막힌 게 틀림없어 왼손을 가로로 저었다.

까앙!

놈이 두 단도를 교차하며 공호의 공격을 완벽히 막았다. 놈이 공호의 실력을 감당할 수 있다는 듯 한쪽 눈썹을 씰룩였다.

"감각에 잡히지 않아.."

월묘는 침을 삼켰다. 레벨이 오르며 공호의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육감스텟이 늘어난 만큼 자신감이 있었고, 조금만 더 성장하면 공호의 움직임이 확실히 느껴지리라 짐작했었다.


오만이었다.


공호의 한계를 벗어난 움직임은 그런 잡념을 쉽사리 무너뜨린다. 공호는 월묘의 앞에서 모든 것을 다 하지 않았던 거다. 무리한 움직임은 월묘에게 피해가 갈 수 있으니까.

저 상태에서 축복이라도 부여한다면 어떨까. 그리고 또 생각한다. 아까는 축복을 받았음에도 어째서 저리 빠르지 못한 걸까.

그때 월묘의 뇌리에 전달되는 적의 정보. 50레벨을 넘은 월묘에게도 몬스터의 등급이 보이기 시작했다.

C-2

'잠깐만.. 오빠가 죽을 뻔했다는 흑연호의 등급이 D-86 이랬으니까..'

월묘는 몽골이 송연해 짐을 느꼈다. 척추가 부르르 떨려오는 듯한 공포가 다가왔다. 전에 느꼈던 공호의 강함 따위는 단번에 사그라들었다.

"아니야, 오빠. 쟤는 아니야. 그냥 도망가자. 많이 다칠 거야."

공호는 월묘의 말을 기각했다. 월묘를 데리고 있는 이상, 공호도 안전한 쪽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이 묘하다.

녀석은 암시했다. 동굴 벽면을 치는 것으로 도망가는 순간, 동굴을 무너뜨리겠다는 암시. 극도로 위험하다. 월묘야 무너지는 동굴에서 구할 수는 있겠지만, 저 녀석이 방해하려 드는 순간 일은 복잡해진다.

게다가 월묘의 축복도 끝난 상태. 적어도 십 분은 있어야 달의 축복을 쓸 힘이 조금 돌아올 뿐이다. 그마저도 효력은 보장 못 하지만.

장수가 일기토를 벌인 이상, 회피란 없다. 이기거나 지거나. 그 둘 중 하나의 결과가 나온다. 1 과 6 밖에 존재하지 않는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정공법으로 간다.

휘릭, 공호는 단도를 사선으로 그어 내렸다. 다시 그 추진력을 이용해 반대쪽 손으로 한 번 더 그어내렸다. 그런다음 부드럽게 흘러들어가 단도를 일직선으로 올렸다.

동굴에 바람 찢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녀석은 그 모든 동작을 막아내고 뒤로 빠지며 비웃었다.

"우습군. 개나 소나 다 흑미호하겠어."

놈이 치고 들어왔다. 공호는 놈의 단도를 몸을 비틀어 피하고, 손을 쭈욱 뻗었다. 녀석은 급격히 단도를 올려 손을 그어버리려 했고 공호는 원을 그리며 다시 놈의 목을 노렸다.

휙.

허초. 먹이를 주기 위한 가짜 공격. 놈의 단도가 공호의 볼을 긋고 지나간다. 급격히 고개를 뒤로 빼지 않았더라면 안면이 깔끔하게 잘린 뻔 했다. 붉은 피가 주룩 흘러내린다.

베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공호의 상처가 아물어가기 시작했다. 과연 S급 개척자의 회복능력.

공호는 아까와 같은 녀석의 목을 찔러넣었다. 휙, 재빨리 방어하고 단도를 찔러 넣는 그. 이번에는 공호의 어깨가 뜯겨 나갔다.

"게다가 멍청하기까지."

자잘한 도발에도 공호의 눈은 어슴푸레한 안개가 낀 호수 같기만 하다. 미동도, 시야도 아무것도 없다. 차갑고 정지해 있다. 그렇다고 죽어버린 것은 아닌 그 눈빛.

그 눈빛이 공기를 얼릴 것만 같이 더욱 차가워진다.

"이것도 막을 수 있나 보자."

이제까지 상처를 입은 것은 공호다. 실력 면에서 그만큼 차이가 난다는 뜻. 이 자잘한 차이가 목을 떨구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이 자잘한 차이는 목을 떨구게 되어 있다.

놈이 공격을 들어온다. 일순간 쭈욱 늘어난 녀석의 몸. 너무나 빨라 엿가락처럼 늘어나 보인 녀석의 몸이 다가온다.

깡, 부딪히는 단도. 놈은 단도를 역수를 쥐어 공호의 목 뒤쪽으로 끌어당겼다. 반대쪽 단도로는 공호의 눈을 향해 밀어 넣었다.

놈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공호는 약했고 예상대로 승리를 거머쥐고 자유를 얻으리라는 환희가 반겨왔다.


미안한 착각이었다.


무언가 움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퍽, 하는 순간 공호의 눈과 놈의 눈이 마주한다. 놈은 동공을 크게 튀었다. 미약한 떨림도 없는 여전한 그 눈빛.

"컥!"

우드득. 놈의 두 손이 한 바퀴 돌아가며 꺾인다. 어느 순간, 공호의 손이 목을 잡고 있다. 잡힐 때까지 눈치도 못 챈 공호의 속도. 아등바등, 목이 잡힌 채로 올려진 몸뚱어리 덕에 발이 땅에 닿지 못하였다. 놈은 식은땀을 흘렸다.

월묘는 비명을 질렀다.

'뭐야.. 이젠 아예 사라졌다 나타나잖아.'

감각이 놓친 정도가 아니라, 어디 있는지조차 짐작하지 못하는 움직임. 한 층 더 빨라진 움직임에 월묘는 경악했다.

'이때까지 보여준 것들은 모두...'

몬스터 학살을 위한 운동에 불과했으리라.

파앗, 공호가 놈의 목을 잡고 움직였다. 발밑 얇게 얼음을 깔고, 얼음을 조종해 하늘을 난다. 남이 보기엔 그저 맨몸으로 하늘을 나는 격. 발 밑 얼음은 강력한 추진력을 쏟아낸다. 촤아악, 세상이 찢어져 보일 정도로 극강의 속도로 공호는 나아갔다.

"커.. 어억! 자, 잠깐!"

퍼엉.

순식간에 동굴 앞 폭포를 뚫고 나온다. 빛이 들어오며 세상이 밝아진다. 싸아아. 큰 충격에 역류한 폭포물이 빗줄기가 되어 섬천의 부대들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뭐야!"

"저기 뭔가 지나갔는데?"

섬천은 갑자기 튀어나온 공호를 의식했다. 오른손으로 누군가의 목을 잡고 끌고 가는 것이 심상치가 않았다.

"안에 뭔가 있긴 있었나 봅니다."

공호는 쏘아져 나가며 놈의 목을 잡고 바닥에 밀어 넣었다. 콰드드득! 놈의 얼굴이 땅에 뭉개지며 폭음이 울린다. 깊숙하게 바닥에 박은 체 목을 잡고 끌어버린다. 공호가 지나간 자리에 땅이 지진 난 것처럼 두 동강 난다.

쾅!

공호는 그대로 놈을 앞세워 산에 부딪혔다.

우드드득!

산이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반으로 갈린다.

"커어어억!"

공호는 차가운 분노를 강렬하게 뿜었다. 공호는 동굴 안에서 그에게 음의 마나를 사용하지도 않았고, 무리할 정도로 전력으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꼬리를 꺼내지도 않았고, 칭호의 효과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저 차갑게 기다렸다.


그것들을 썼으면, 동굴이 무너질 소지가 다분했다. 월묘가 위험해질지도 모른다. 조금이라도 가족의 위험 가능성이 있으면, 조용히 피해간다. 하여, 녀석의 실력을 철저하게 확인했고, 놈이 어떤 놈인지 판단한 순간에서야 공호는 움직였다.

그는 월묘를 건드렸다. 위협한 순간 좋게 끝내줄 생각은 내다 버렸다. 음의 마나를 쓰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이거다.

음의 마나를 사용하면 그가 너무도 쉽게 죽어버릴 수 있으니까.

그게 전부다.

콰드드득!

산을 넷 봉우리나 더 반으로 갈라버린 후에나 공호는 움직임을 멈췄다. 여기는 본래 일행과 멀리 떨어진 장소. 치이익, 막강한 마찰력에 놈의 안면에서 연기가 정신없이 올라왔다. 안면은 아예 녹아 주변에 흘러내렸다.

공호의 손에 푸른 연기가 감돈다. 은은한 푸른 빛을 내며 연기는 검으로 변해간다. 푹, 놈의 허리에 꽂았다. 놈의 손이 움찔거린다.

공호는 안전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슬쩍 뒤를 살폈다. 산 다섯 봉우리가 일직선으로 갈라진 광경은 볼만하였다.

"안 죽은 거 알아."

울려 퍼지는 공호의 말. 그 말에 놈은 몸을 툭툭 털며 일어섰다. 놈의 옷 따윈 녹아 사라진 지 오래다. 옷이 문제가 아니라, 안면이 흉측하게 녹아내려 있다. 이목구비가 전부 없어졌다. 군데군데 녹아 내려붙은 살이 땅바닥에 치덕치덕 떨어진다. 내장이 쪼로륵 흘러내려 땅에 질질 끈다.

치직, 치지지직.

고기 굽는 소리를 내며 그의 몸이 본래대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마치 그림자처럼 꾸물대며 일어선 검은 액체들이 그의 몸에 달라붙어 순식간에 복구한다. 치료가 아닌 재생이다. 마치 컴퓨터 파일 복원하듯 살이 송골송골 돋아난다.

"히야.. 어쩐지 왜 얼음 안 뽑아내나 했네. 여우의 특기는 얼음인데 말이야."

찰나의 순간 만에 완벽히 몸을 복구한 사내. 그가 귀를 탁탁 턴다. 검은 돌 부스러기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아프잖아. 내가 회복에 특화된 몬스터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

공호는 단도를 휘둘렀다. 알 수 없는 빛이 그의 왼쪽 목를 거쳐 간다. 세포조차 인지 못하는 무서운 쾌속. 베고 나서 몇 초를 지나서야 목이 툭 하고 떨어져 내린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가 마치 육지에 올라온 활어처럼 퍼덕거렸다. 놈의 목에 검은색 액체가 돋아난다. 다시 일 초가 지나지 않아 놈의 두상은 재생한다.

그가 입을 쫙 벌리며 말하였다. 인간이라기엔 비정상적으로 벌어진 입은 괴이한 침을 뚝뚝 흘린다.

"내가 죽을 리가 없잖아... 어느 부위든 1초면 복구 되거든... "

공호가 손을 뻗었다. 콰득, 말하는 그대로 그가 급속냉각되어 버린다.

쩌적. 쩌저저적.

얼음 덩어리가 금이 간다. 다이아몬드와도 비교 불가한 강도의 얼음이 깨진다. 그의 손이 얼음을 깨고 나온다. 그 하나의 균열을 따라 얼음은 갈라진다.

"말했잖아? 무적이라고. 얼려도 소용없어. 이제 본편으로 가자고."

무적. 적수가 없다라... 얼마나 오만방자한 말인가.

공호는 볼 것도 없이 뒤로 돌았다. 일은 이미 끝났다. 본편? 전투에 본편이 어디 있을까. 적대한 순간 피가 터져나가는 게 전투다. 이미 한참 전, 동굴에 있었을 때부터 공호는 본편이었다.

등을 보이는 공호의 모욕적 행동에 분노한 그는 입을 쫙 벌리고 다가왔다.

"전투에서 등을 보이면!"

공호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동물적인 감각이 그를 스쳐 지나간다. 그는 그때 알아차렸다. 분명 동굴 밖으로 나왔으나, 햇볕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을. 이 일대 전체가 그림자가 졌다는 것을. 그는 멍하니 고개를 올린다.

"저게 뭐야..."

이 일대. 즉, 이 산맥. 추정 넓이 1000만 평. 추정 거리 500km.

섬천과 진이 하늘을 올려본다. 우린각들도, 우린각을 죽이던 대원들도 하늘을 올려본다. 진이 동굴에서 데려온 월묘도 하늘을 올려다본다.

"장난 아닙니다.."

"장난 아니네잉.."

"와, 장난 아니다.."

"저게 단장의 형님.."

두마 산맥 마을, 촌장도 허리를 펴며 하늘을 올려보았다.

"저게... 뭐다냐."

이 산맥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커다란 얼음의 손, 산을 으스려뜨리는 거대한 얼음 덩어리. 아이스 핸드.

콰드드드득!

태산만 한 주먹이 저 하늘의 끝자락에서, 오직 하나의 몬스터를 향해 초음속을 넘어선 속도로 떨어져 내린다. 아득히 높이서 떨어지는 얼음 주먹이 땅에 닿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

놈은 다급히 뛰며 말하였다.

"도망가면 네가 어쩔건데... 미친!"

그의 발이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얼음을 떨쳐 버려도, 공호는 잠깐도 지나지 않아 다시 얼려버린다.

화륵, 엄청난 마찰력에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아이스 핸드에 불이 치솟는다. 얼음의 한기를 못 이겨, 얼음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대기가 불타오른다. 마치 거인이 내리는 손처럼 거대한 아이스 핸드의 손 끝에 불이 치솟는다.

콰아아.

구름에 하나의 구멍이 생긴다. 거대한 손이 심판을 내린다. 시리디시린 공호의 얼음이 아주 조금씩 녹는다.

"허, 하.. 이, 이 일대에는 마을이 있는데?"

"상관없어."

"저게 떨어져 내리면 이 일대 전체가 가루가 되어 버리는 건 알고 있을 텐데.. 하하. 안 그래?"

투벅투벅, 걸어나가는 공호. 그의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마치 마을이란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그의 눈에 소년은 느끼기보다 훨씬 더 악독한 놈이었다. 그의 투명한 각막에 조각같이 무표정한 공호의 얼굴이 투영한다.

"응? 살려야지? 안 그래? 하하.. 마을 사람들 살려야 할 거 아냐?"

여전히 무표정한 공호의 표정을 보며 그는 말했다.

"너, 미쳤구나. 그래, 넌 미친 거였어. 조용히 비틀어진 가장 미친놈이었어!"

망연자실한 그는 몸을 마주 움직여 탈출을 시도하며 괴상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공호는 대꾸 없이 걸었다. 소년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소년이 보는 세상은 다른 세상이었다. 구름과 산의 절경이 어루러진 숲.

그러나 소년의 뒤 쪽은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하늘에서 내려꽂히는 얼음 덩어리에 의해 붉게 달아오른 홍련. 죽음을 앞두기 미쳐가는 몬스터 한 명의 비명.

마침내 공호가 걷고 걸어서 그와 거리가 상당히 벌어졌을 때 놈은 외쳤다.

"넌 미치고 미쳐서 언젠가는 완벽히 미쳐버릴 거야아아!"

단말마의 비명이 울려 퍼진다.

콰앙!

깎여가는 지각. 충돌로 인한 마찰열로 인해 팽창한 대기가 울부짖었다. 마치 대폭발처럼 모든 것은 폭사하고 비틀어진다. 먼지와 파편은 하늘 높이 치솟고 천천히 내려 떨어진다.

정확히 공호가 서 있는 자리 앞까지 땅이 파인다. 치솟는 열은 공호를 제외하고 주변을 녹여버린다.

"아아아악!"

그의 살이 떨어져 녹아 공기 중으로 퍼져나간다. 피는 흐르기도 전에 기화해 버리고, 몸은 완전히 짓뭉개져 육편이 된다. 그의 몸이 원자 단위로 갈가리 찢긴다.

심지어 아이스 핸드 그 자체까지 완전히 녹아 마나로 돌아간다. 거대한 버섯구름이 구름 사이를 헤집고 올라간다. 지글지글 끓는 땅. 한 편의 지옥도.

공호는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저 이런 게 떠올랐다.

아, 이게 내가 한 거구나. 이 작은 내가 운석충돌같이 지옥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내었구나.

여러 말이 뇌리에서 맴돈다.

미쳤다. 그 말을 타인에게 너무 자주 들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혼돈이 온다. 내가 정말 미친 걸까. 아니면 내가 미쳤다는 그들이 미친 걸까. 그것도 아니면 전부 다 미쳐버린 것일까. 만약 내가 미쳤다면 이제껏 미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친 그것들은 무엇인가.

더 큰 혼란이 겹쳐온다. 애초에 미쳤다는 게 뭐지?

그림자가 말했다. 미치고 미쳐서 언젠가는 완벽히 미쳐버릴 거라고.

퐁.

저 하늘 멀리 은치가 날아온다. 버섯구름을 뚫고 겁도 없이 이 불구덩이를 헤쳐온다.

은치가 공호의 어깨에 앉으며 소리쳤다.

"까아악! 천이 전하래. 마을, 사람들. 월묘가 대피하래서 먼저 간다고!"

제법 말이 확 트기 시작한 은치다. 은치의 말을 든 공호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직 미치지 않았다.

생각하고 있었다. 월묘라면 그리할 것을. 마을 사람들을 살리라고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중요한 것을 간과했다.


-레벨이 3상승하셨습니다.


우웅.

아이스 핸드가 떨어지기 직전, 공호가 급속냉각시켜 빼 놨던 물건이 천천히 내려온다. 그의 심장. 월묘의 눈을 고쳐줄 영약.

"제발.. 고쳐지길."

공호는 영약을 향해 강렬히 눈빛을 불태웠다.


#


"박쥐 나부랭이가 함부로 나설 일은 아니었는데."

푸르른 숲, 날 좋은 오후 묠드는 차를 즐기며 한마디 읊조렸다. 한가로이 나무뿌리에 기대 차를 한 모금 넘긴다. 언제 먹어도 시큼하고 끈적한 기운이 목구멍으로 질척하게 내려간다.

빼곡한 나뭇잎 틈을 비집고 일직선으로 내리쬐는 따사로운 햇볕. 슬쩍 분 숲 바람에 나뭇잎에 들썩거린다.

"우후후. 언제까지고 그림자를 고집하겠다면 거짓말이겠죠. 선조들이 어리석었던 겁니다. 멍청한 레스토들은 이제 저희 밤의 귀족이 신화 속 종족인 줄 알고 있습니다. 우리 군주께서도 그것만은 막으라 하더군요. 적어도 묻힌 존재가 되진 말라고."

검은 안개가 나무 그림자 사이로 피어난다. 묠드가 기댄 반대편에서 그가 망토를 펄럭이며 나타난다.

"선조의 판단을 아쉽잖게 보는 네놈들도 뻔하다. 역사는 과거를 증명하며 동시에 미래를 증명한다. 과거를 볼 줄 모르는 놈들에겐 미래도 없을 거다."

통, 묠드의 차에 나뭇잎 하나가 떨어진다.

"형님도 나이를 드셨군요. 말씀하시는 게 윗 늙은이들과 닮아가는 걸 보니."

"아직 갈 때 안됐다."

"갈 때는 무슨 갈 때 말인가요. 반영구적으로 사실 분이. 아, 그거 알고 계신지요. 여우 우리에서 여우 몇 마리가 흑미호와 같이 뛰쳐나온 거 말입니다."

"그녀가 흑미호가 되었을 때부터 이미 계획에 변수가 생겼다. 그녀 스스로 벌인 일이니 언젠가 알아서 하겠지."

"우리를 탈출한 여우들은 상당히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곳은 애초에 그런 용도로 창조된 공간이니까요."

"폴시아는 어쩔 수 없는 그녀의 선택이었을 게다. 그곳 시민 하나하나가 이곳에선 괴물이 될 수도 있으니까. 제어가 안 될 때는 어느정도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제어부터 하는 것이 먼저니."

"그건 그렇다 쳐도, 그가 그곳에서 나올 줄은 몰랐었죠."

"두루미 그 양반도 참... 어쩔 수 없는 레스토다."

"그런데... 누가 두루미 아니랄까 봐 장난 아니게 아리따웠습니다. 확, 하마터면 피를 빨 뻔 했죠."

"짝이 있는 새는 독수리도 못 건드는 거다. 행여 눈길로라도 표시도 내지 않는 게 좋을 거다. 후에 뼈도 못추려."

그는 나뭇잎 한 장을 손 위에 올려놓았다.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처럼 빛조차 삼켜버리는 그의 손. 굶주린 그림자가 나뭇잎을 깊은 무저갱 아래로 이끌어 내린다. 콰득 콰득, 그의 손 위에서 나뭇잎은 깊은 바다에 빠져드는 것처럼 천천히 어디론가 가라앉았다.

"우후후. 그땐 아직 멀었지만요. 지금쯤 제 티끌을 상대하며 고생 좀 하고 있을 겁니다. 어쩌면 못 이길지도 모르지요."

녀석은 역시나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그의 몸이 깊은 그림자 아래로 가라 앉았다. 그의 빈 자리엔 검은 그림자를 머금은 나뭇잎만이 슬쩍 소용돌이 쳤다.

묠드는 차를 마지막까지 쭈욱 들이켰다.


글쎄, 그게 아닐지도?


#


월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걸 먹으면 다시 세상을 볼 수 있는 건가.'

공호가 준 붉은 영약. 월묘를 둘러싸고 공호와 진, 섬천과 파블로드까지 괜히 긴장하며 둘러앉아 있다. 저 영약이 진짜일까. 각막이 존재하지 않는 눈을 고친다는 것은, 창조의 영역에 가깝다. 현 아스페티아 최고의 마법사라도 단독으로는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공간이 수축한 것처럼 쫄깃하게 긴장하고 있을 때, 드디어 월묘가 영약을 입에 가져 대기 시작하였다.

아삭, 영약을 한 입 베어 무는 월묘. 마치 눈가에 찜질팩을 올려놓은 것처럼 뜨끈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슬며시 겁도 났지만, 월묘는 입술을 꼭 깨물며 간절히 빌었다. 오빠들의 노력이 헛되이 날아가지 말아 달라고.

월묘는 한 번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성장한 공호와 섬천을 본 적이 없다.

싸아아.

점잖은 빛이 월묘의 눈을 때리기 시작한다. 조금은 어지럽고, 신비하다. 두려움이 앞선다. 세상의 빛이 나에게만 모여드는 것 같았다.

눈이 간지럽고 동시에 너무 뜨거워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마침내 변화가 멈추고 모두 숨을 멎는다.

월묘는 실로 꿰맨듯한 눈꺼풀을 힘들게 올렸다. 이제 그만 눈을 떠 버리고 만다. 월묘와 공호의 눈이 딱 들이 맞는다.

순간, 코 끝이 찡했다. 소녀는 그만 울먹이는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말았다.

"안녕."


작가의말

월묘 편이 끝났습니다.

얼마간 쉬며 전체적인 퇴고를 하고 EG 편으로 만나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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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EG +3 16.01.19 501 6 16쪽
98 EG +1 16.01.19 439 5 10쪽
97 EG +1 16.01.18 505 5 16쪽
96 EG +1 16.01.16 581 5 11쪽
» 월묘 +2 15.10.12 478 7 20쪽
94 월묘 15.10.11 499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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