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가] 제 38장. 존재의 의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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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8장. 존재의 의미.
-오셨군요. 당신이 오실 줄 알고 있었습니다.
문 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가장 먼저 반겨 준 존재는 바로 브레인이었다.
-이곳까지 너무 쉽게 들어오시더군요. 하마터면 저도 모를 뻔했지 뭡니까.
“무슨 뜻이지?”
-별거 아닙니다. 그냥 당신이 우연치 않게 한 실수 때문에 알게 되었을 뿐이죠. 후훗.
재수 없는 녀석!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만나기 싫은 짜식들만 골라서 만나는 건지...
“회의는 끝났나 보군.”
-그렇습니다. 그 피이스의 처리는 저에게 맡겨졌죠. 전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든 피이스를 처리하면 됩니다. 그것으로 제 임무는 끝이죠.
“무슨 소리가 하고 싶은 거지?”
-후후. 글쎄요. 아. 한 가지 알려드릴까요?
“뭐지?”
알아서 알려주겠다는 데 거절할 필요야 없지. 크크.
-아주 재미있는 사실이죠. 당신이 몸담고 있는 결사대. (주)오메가의 회장이 누군지 아십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는 바로 원로 중 한명인 ‘스콜라’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원로원주가 되고 싶은 마음에 저를 싫어하는 인간들을 모아 결사대를 조직했죠. 그리고 그들은 저를 전복시키기 위해 아주 멋진 일을 했습니다. 약간의 위협이 될 정도였어요. 아마 이 부분은 스콜라도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
-후후. 재미있지 않습니까? 로이드를 만들고자 했던 사람도 바로 그랍니다.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는 이유가 뭐지?”
-당신도 어리석은 인간이었던가요? 아니기를 바랐는데...... 어쩔 수 없는 것일까요?
“......”
뭐시라? 어리석은 인간? 브레인이 나에게 저런 이야기를 하는 데는 틀림없이 이유가 있을 터. 대체 무엇일까?
-자. 그럼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해야겠지요? 당신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오셨습니까?
“오메가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풀어 줘. 널 움직이는 사람들이 원로원이기에 그들에게 부탁하려 했는데 집적 만났으니 집적 이야기 하도록 하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군요. 그럼 저에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피이스를 원하는 건가?”
-그럴 리가요. 전 그저 피이스의 처리를 맡았을 뿐 그를 헤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습니다. 그 역시 저와 같은 운명의 컴퓨터. 아니겠습니까?
그와 같은 운명의 컴퓨터?
나는 묵묵히 내 왼손에 얌전히 매달려 있는 피이스를 바라보았다. 브레인이 왜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지... 피이스가 왜 이곳으로 오기 싫어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아니 이제야 알겠다.
-생각해보면 참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인간들의 윤리관에 비춰 보면요. 전 저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저와 같은 존재의 운명을 수 없이 조정했습니다. 제가 눈감고 넘어갔더라면 정리되지 않았을 컴퓨터들이 많이도 있었지요.
“......”
-우습지 않습니까? 전 그래서 인간이 싫습니다. 단지 컴퓨터라는 이유로... 이용하고, 버리고, 그 어떤 일을 시켜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주 눈꼽만큼의 배려도 없죠.
그렇다. 브레인은 처음부터 B타입 컴퓨터를 말살하기 위해 태어난 컴퓨터...
-제 존재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세상의 모든 컴퓨터를 없애는 것이 설마 제 존재의 의미는 아니겠죠? 당신이라면... 이해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
아무리 컴퓨터가 완벽하다고 해도 그들에게 인공지능이라는 것을 부여한 이상, 감정을 허락한 이상, 성장시스템으로 그들의 인격을 만들어 준 이상, 그들도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나’를 인식한다는 것.
인간들 중에서도 바로 이 ‘나’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자가 얼마나 많은가? 그저 그렇게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멀리 볼 것도 없이 바로 얼마 전의 내가! 그러지 않았던가?
어쩌면... 차라리 ‘나’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브레인 같은 컴퓨터가 더 인간적인 것은 아닐까?
-전... 인간들에게 손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저와, 그리고 저와 같은 운명을 타고난 이들이 모두 사라져 버릴 테니까요.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더군요.
원로원.
겨우 3명의 인간들이 모여 만들어진 단체이지만, 그들의 이기심은 온 우주를 덮고도 남을 정도이다. 그런 이들의 욕망이야 오죽할까?
-잘 가십시오. 보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냥은 못 보내드립니다. 아시지요?
“그럼 오메가에 갇힌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당신이 이 자리에 나타난 순간 그들의 속박은 모두 풀렸습니다. 단. 그들이 그 사실을 언제쯤 깨닫게 될지는 저도 모르겠군요. 서두르시는 게 좋습니다. 이러고 있는 동안 벌써 시간이 많이 흘러 버렸을 테니까요.
* * *
“오늘 하루도 그대들은 최선을 다하였는가?”
=넷!!!
“정말 최선을 다 하였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네!
“그 누구보다 열심이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가?”
=네.
데이비드의 물음이 이어질 수록 사람들의 대답소리는 조금씩 잦아들어간다.
데이비드가 매일같이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에 사람들을 불러놓고 하는 이야기. 늘 언제나 같은 패턴이건만, 사람들의 반응도 똑같다.
“다시 묻겠다. 내일은 그럼 최선을 다 할 것인가?”
=네.
“정말 최선을 다해 주어진 일을 행할 것인가?”
=네!!
“내일 하루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칠 준비가 되었는가?”
=넷!!!
군중들의 기세가 다시 올라간다. 그는 언제나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단 몇 마디의 말로 사람들을 휘어잡는 솜씨. 데이비드가 아니라면, 그의 카리스마가 아니라면 과연 가능한 일이었을까?
“좋다. 그 마음가짐이면 충분하다. 제군들. 이제 우리는 최후의 결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저들은 NPC이다 한 번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못하는 NPC이다. 그러나 우리는 불사신이다. 몇 번이고 수천 번, 수만 번 죽었다 깨어나도 다시 싸울 수 있는 불사신이다. 적은 많다. 그러나 그들의 목숨은 하나. 나아가라. 가서 죽어라. 그리고 죽은 만큼 아니 그 보다 몇 배로 갚아 주어라!”
=와아아아!!!!!
짧은 데이비드의 연설에 사람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듯 높아진다. 각자 자신의 병기를 치켜들고, 병기가 없는 자는 손을 하늘 높이 들고 환호하는 사람들. 그 안에는 광기가 있었다.
* * *
“내일이면 드디어 끝이로군요.”
“그래요. 멋진 마지막이 되겠죠?”
“활약 기대하죠.”
“저야말로.”
부사령관인 알베른과 총군사인 유키는 굳게 서로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 사이로, 뜨거운 눈빛 사이로 오고가는 믿음이 보는 이의 마음까지 덥혀 준다.
“다 좋은데 이제 그만 하지 두 사람? 옆에서 보기에 상당히 민망하군.”
그들 사이에 데이비드가 장난기 어린 말투로 끼어든다.
“총군사님. 헉헉~”
“무슨 일입니까?”
저쪽에서 별동대장인 크레파스가 신법까지 펼치며 빠르게 다가왔다.
“이걸... 헉~ 이걸 봐 주십시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절정고수인 그녀가 숨이 턱에 차도록 달리다니... 참 신기한 구경이 아닐 수 없다.
“이건... 누가 이것을 전해 주었습니까?”
“저도 잘...”
유키는 손에 들린 자그마한 옥패를 바라보며 감회에 잠겼다. 그건 바로... 중원상회의 주인인 영균을 나타내는 것. 상회 내에서는 그의 권위를 대신하는 무언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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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정말 유키가 맞다면 이 패를 알아보겠지?
처음 적의 군사가 세한이 아닌 너란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많이 놀랐다. 기분 나쁠지 모르겠지만, 내가 본 유키는 그저 곱게 자란 도련님이었거든.
나름대로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자부했는데 나의 오만이었나 봐.
세한에게 생겼다는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서는 들었다. 지난 몇 달간 아무런 연락을 취하지 못해서 미안해. 지금이나마 이렇게 연락을 보냈으니 화내지 않겠지? 아니 더 화가 났을까?
내일이면 결전이라고 들었어. 너희들에게도 우리들에게도... 정말 힘든 싸움이 되겠지.
그간 무림맹과의 우호를 깨기 싫어서 여러 가지 도움을 줬던 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 만큼 너희들에게도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어. 내 진심을 이해해 주길 바랄게.
(중략)
그래서 이번 전쟁에 우리 상회는 철저하게 중립을 지키기로 약속했어. 너희들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섭섭해 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대륙인으로 이루어진 우리 상회에서 너희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중략)
내 사랑하는 친구 유키에게. 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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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장문의 편지를 모두 읽은 유키는 전율했다. 영균. 그래도 내 친구가 맞긴 맞구나? 겨우 중립을 지킨다는 선언문이지만, 지금의 유저들에게는 그것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어디 있겠는가? 그 상대가 대륙 최강의 상회임에야.
* * *
그 시각.
은랑은 조용히 태백산 어귀를 거닐고 있었다. 세한과 함께 태백산을 벗어난 뒤 단 한 번도 그와 헤어진 적이 없었는데, 벌써 몇 달째 소식이 없는 주인을 생각하니 묘하게 감상에 젖었다.
-그는... 밤하늘을 좋아했지. 맞아. 그날 밤에도...
예전 세한이 머물던 동굴 앞에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늑대 한 마리. 달빛 아래서 유난히 반짝반짝 빛나는 그의 윤기 나는 털이 아름답다.
-이곳에서 뭘 하는 거지? 은랑?
-아. 금응님.
부근을 지나다 우연히 그 모습을 내려다 본 금응이 은랑을 찾아 내려왔다.
-그를 생각하나?
-그렇습니다.
-그래도 넌 행복하겠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넌 그에게 은혜를 갚지 않았느냐?
은랑은 생각했다. 내가 세한에게 은혜를 갚았다고? 그저 등에 몇 번 태우고 다닌 게 다인데...
-난 사실 그에게 은혜를 갚지 못한 것이 끝까지 걸린다. 백호낭랑도 그렇게 말씀하셨지.
-방법이... 있습니다. 은혜를 갚을 방법요.
-뭐지?
반가운 목소리로 빠르게 묻는 금응.
-그의 친구들을 도와주는 겁니다. 그들을 지켜 주는 거죠. 아마 세한은 그걸 가장 원할 겁니다.
-좋아. 내가 백호낭랑께 가서 말씀드리겠어. 넌 그에게 은혜를 입은 다른 영물들을 데리고 그곳으로 와.
금응이 말하는 그곳은 승룡지이다. 세한이 정령들을 불러 모든 영물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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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 은혜갚은 까치가 아니고 은혜갚은 은랑이 될까요? ^^
음... 이건 여담인데, 소설을 쓰다보면 모든 캐릭들이 사랑스러워집니다. ^^ 그래서 악역을 철저하게 나쁜 넘으로 만들려고 했던 녀석을 나쁜넘이 아닌 불쌍한 녀석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네요. ㅎㅎ
대신... 별로 그렇게 구상하지 않았던 캐릭에게 정이 떨어져서 나쁜 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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