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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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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최근연재일 :
2024.04.07 19:32
연재수 :
20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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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2.02.23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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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글자
24쪽

153. 두 번째 시즌의 마무리 (5)

DUMMY

[크리호비아크, 앞으로 길게 보내는 패스. 델샤드가 머리로 끊어내고, 다시 머리로 받아내는 크리호비아크. 바네가에게 전달, 그러나 블랜차드가 앞으로 나오면서 차단.]


“좋았어!”


[이어서 딩월이 잡지만, 뺏깁니다. 뒤로 물러나면서 정비하는 세비야. 재차 전진 시도. 볼을 잡고 브리튼을 떨쳐내려는 크리호비아크. 앞으로 패스하지만, 어느새 밑까지 내려온 딩월의 인터셉트.]


“우리 팀 잘하잖아?”


“세비야 상대로도 중앙 싸움이 되는데?”


“이제 5분밖에 안 지났어, 이 사람들아. 벌써 들떠버리면 어떡해!”


[델샤드, 비톨로의 볼을 뺏습니다! 찍어 차는 직선 패스! 부팔이 받으러 달려가지만, 간발의 차로 먼저 걷어내는 트레물리나!]


“으아아! 조금만 더 빨랐으면 완전히 열린 거였는데!”


“항상 그렇게 말하면서 제일 들떠있는 건 자네라니까, 조지.”


“······그러게.”


해리 윌슨의 핀잔에 맥도넬은 머쓱하게 대꾸했다.


유로파 리그 결승전, 그에 걸맞게 웅장함이 느껴지는 경기장의 관중들, 시작부터 치열하게 벌어지는 볼 다툼.


도저히 흥분을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스로인으로 이어지는 로스 카운티의 공격. 세비야의 헤더. 브리튼이 볼을 낚아채며 중앙으로 전달. 블랜차드의 전진 패스. 딩월이 받지만, 돌아서지 못합니다! 옆으로 돌리는 볼!]


“아오, 저 답답한 녀석!”


[백패스 하는 잭 마틴. 리 월리스, 캐리에게 주며 앞으로 달립니다! 캐리, 안으로 드리블. 살짝 띄워 올리며 미드필더와 수비 사이의 절묘한 공간으로!]


“오오!”


[딩월이 등진 상태로 가슴 트래핑! 부팔이 있는 쪽으로 횡패스!]


[아, 패스가 짧은데요!]


“야, 이 자식아!”


[가로채는 트레물리나! 곧바로 세비야의 역습! 바네가가 이어받아 치고 나갑니다!]


“안 돼! 저놈은 위험하단 말이야!”


[바로 따라붙는 블랜차드! 어깨를 붙이며 다리를 뻗지만! 바네가, 뺏기지 않습니다! 그대로 돌파하는 에베르 바네가!]


“으악!”


[휘청거리면서 찔러주는 스루패스! 길목을 잡고 있던 브리튼이 간신히 차단하면서 위기를 넘깁니다!]


“나, 나이스 브리튼!”


[저지하지는 못했지만, 블랜차드 덕에 바네가가 몸의 균형을 잃으면서 패스가 살짝 무뎌졌어요.]


“휴우, 다행이야······.”


“와, 근데 봤어? 속도가 붙었다곤 해도 블랜차드가 막아서는데 그걸 기어이 뚫어버리네. 진짜 무서운 놈이잖아?”


“그래도 저 괴물 같은 선수를 나름대로 잘 방어해내고 있는 것 같아.”


[올라온 트레물리나의 패스를 받는 바네가. 부드러운 드리블로 블랜차드를 떨쳐냅니다! 중거리 슈웃!]


[골문 위로 살짝 뜨긴 했지만, 위협적인 움직임이었어요.]


“······적어도 결정적인 장면까지는 못 가게 만들고 있으니까. 하하······.”


그들이 왜 유로파 리그 정상에 군림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안정적인 진형을 갖추면서도 기회를 포착하는 순간 나이프로 버터를 가르듯 단번에 들어오는 매끄러운 공격.


이건 바네가라는 독보적인 플레이메이커의 존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비톨로, 안으로 파고드는 드리블. 외곽 슛! 브라운 키퍼 정면입니다! 이로써 유효 슈팅을 먼저 가져가는 세비야.]


그 외 선수들의 클래스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


나폴리처럼 특정 포지션에 취약점을 보이는 팀도 아니다.


로스 카운티 역시 전방 압박을 가하며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적당히 내려앉아 수비에 더 신경 쓰려는 모습.


서로 격렬하게 치고받는 난타전보다는 리드하는 챔피언과 가드를 바짝 올리고 버티는 도전자의 그림이 펼쳐지는 중이었다.


[세비야, 계속 두드립니다. 비톨로, 뒤로 침투하는 트레물리나를 봅니다. 틈새로 패스 시도! 델샤드가 간파하고 발을 뻗어 커트합니다!]


중요한 건 가드가 풀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펀치를 연거푸 허용하며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만 있었다면 펍 안에 눌러앉은 이 관중들의 흥분은 진작 식어버렸겠으나.


[브라운 키퍼가 멀리 차고. 딩월이 높이 떠서 공중볼 경합에 승리합니다. 올라온 월리스가 받아 터치라인을 타고 달립니다! 안으로 좁히는 드리블 시도! 태클에 막혀서 넘어집니다!]


“주심, 파울!”


[뒤따라오던 캐리가 세컨드 볼을 잡고!]


“아니, 아니야! 그대로 진행해!”


[반대편으로 크게 전환하는 패스! 부팔에게 도달! 부팔, 이번엔 트레물리나를 제치면서 들어갑니다!]


“이거야!”


[짧게 잭 마틴을 향한 크로스! 카히수가 골라인 바깥으로 걷어냅니다!]


“아아! 기회였는데!”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단단하게 버티는 가드 너머로 챔피언의 턱에 꽂을 묵직한 주먹. 그 한 방을 노리는 매서운 도전자의 투지를.


“하지만 신기하단 말이야.”


풀러가 말했다.


“세비야를 상대로도 좋은 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다니. 난 거의 반코트 게임이 될 거라 예상했거든.”


“그 수많은 이변을 봐오고도 아직 우리 팀을 못 믿는 거야?”


“아니, 아니! 믿지! 로스 카운티가 우릴 놀라게 만든 적이 한두 번은 아니긴 한데······ 쟤네는 챔피언이잖아. 급이 다른 팀이라고, 조지.”


“사실 나도 자네 말에 동의하긴 해.”


맥도넬이 말했다.


“이 팀이 대단한 행보를 쭉 보여 오긴 했어도,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건가 싶어. 또 뭔가가 있는 건 확실한데······.”


산 파올로의 기적 당시 맥도넬은 눈앞의 결과에 감격하기 바빴고, 그 결과를 향한 과정을 알게 되고 나서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경기 후 전술 분석 칼럼을 찾아보는 건 이제 그의 취미가 되었다.


그럼에도 모르겠다.


술집을 운영하는 일개 팬이 이탈리안의 생각을 바로 읽을 수 있을 리가.


그나마 눈에 띄는 건 알렉산더 캐리의 활약이 기대 이상이라는 정도였다.


“나도 축구 전술이라는 거에 관해서는 까막눈이지만······.”


그때 매튜 허긴스가 끼어들었다.


“아까 전부터 한 가지가 계속 신경 쓰이는걸.”


“응? 뭐가?”


“라인업이 나왔을 때 분명 4-4-2라고들 했잖아.”


“그랬지.”


“근데 모르겠어. 정말로 4-4-2가 맞아?”


“어? 무슨······.”


“저걸 보라고. 잘 구분이 안 되지 않아?”


그 말에 사람들은 일제히 중계 화면으로 고개를 돌려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한참을 보던 맥도넬은 멍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그러네?”


*******


“저 감독이 우리를 완전히 놀려 먹었어.”


프리먼이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킥오프 전부터 궁금증을 일으켰던 선발 라인업.


초반에 세비야가 계속 공격을 주도하는 양상이었기에 알아채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안 보이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건 4-4-2지만, 마냥 4-4-2라 부를 수도 없는 시스템.


캐리의 움직임이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통상적인 좌측 미드필더라면 윙의 역할도 겸하면서 해당 구역의 공격 작업을 책임져야 하지 않은가?


그러나 볼을 가졌을 때 그의 위치는 후방 3선. 수비할 때만 코케의 오버래핑 견제를 위해 측면을 설 뿐이다.


캐리가 사용하지 않는 좌측면의 공간은 월리스가 도맡아서 활발하게 오르내리는 중이었다.


중앙 미드필더로 잘 적응해서 뛰던 선수를 왜 하필 중요한 결승전에 사이드로 돌려놓은 건지. 감독의 괴짜 기질이 발동해버린 건가 싶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는 여전히 로스 카운티의 레지스타, 제일 잘하는 역할을 수행 중이었다.


다들 이탈리안의 가벼운 장난질에 놀아난 것이다.


핵심은 그다음이다.


장난질이라곤 했지만, 고작 그런 이유만으로 저런 진형을 내세울 인물이 아닐 테니까.


틀림없이 저 속에 노림수가 있다.


오우 -


방금도 캐리의 과감한 전진 패스가 윗선의 딩월까지 부드럽게 연결되면서 중거리 슛 찬스를 이끌어냈다.


딩월치고는 꽤 날카롭게 날아가 골대 옆을 빗나간 아쉬운 장면이었다.


“일단 정리하면 수비 시엔 4-4-2, 공격 시엔 4-3-3으로 바뀌는 변칙적인 포메이션인가?”


그러나 정통 4-3-3이라 볼 수도 없는 것이 위치상 좌측 구역을 담당해야 할 잭 마틴은 전방에서 수비진의 틈새를 파고들 기회만 노리고 있다.


월리스가 아예 윙처럼 올라가니 델샤드는 밸런스를 맞추려는 듯 오버래핑을 자제하면서 최후방은 흡사 백스리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가만 보면 캐리도 온전한 중앙 미드필더라기엔 뭔가 어중간하다.


마치 측면과 중앙의 경계선에 걸쳐놓은 느낌. 그것마저도 좀 더 좌측에 기울어져 있는 모습이다.


“수비할 때는 풀백의 오버래핑을 견제하다 보니 위치상 그렇게 되었다 봐도 무방할 테지만······.”


그걸 염두에 둔다 해도 지나치게 노골적이었다.


왜 캐리를 저기에 두는 것일까?


“······.”


물론 여유롭게 분석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전반적인 주도권을 쥐고 있는 팀이 세비야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저들이 볼을 가지는 시간이 더 많으니 대부분은 4-4-2 형태의 로스 카운티를 관찰할 수밖에.


다행히 오늘 수비진의 컨디션은 최고조인지 상대가 연달아 골문을 두드려 대는데도 박스 안에 들어오는 공격을 거의 다 막아내고 있었다.


미리 자리를 선점하여 비달의 크로스를 클리어해 내는 폰투스 얀손.


이어서 한 치의 양보도 용납하지 않는 양 팀의 공중볼 다툼.


음비아가 딩월을 제압하며 헤더를 따냈고, 다음으로 바네가와 블랜차드가 동시에 경합한다.


블랜차드가 먼저 머리에 맞췄지만, 터치라인 쪽으로 흘러가는 볼.


다른 두 선수가 세컨드 볼을 잡기 위해 달렸고, 슬라이딩 태클까지 하면서 몸을 내던진 월리스보다 한발 앞선 코케가 승리하며 길게 치고 나간다.


순식간에 로스 카운티의 측면이 뻥 뚫리며 낮게 깔린 땅볼 크로스가 문전으로 들어갔고, 비톨로가 그에 맞춰 쇄도하며 힘껏 다리를 휘두른다.


“좋아, 막았어!”


숨죽인 채 지켜보던 프리먼은 몸을 날리며 슛을 막아낸 얀손의 멋진 수비에 기뻐하며 소리쳤다.


몸을 맞고 나온 볼은 브리튼에게 흘러갔고, 재빨리 앞으로 보낸 패스가 블랜차드에게 연결된다.


주저함이 없는 원터치 패스.


캐리가 볼을 받아 앞으로 드리블하며 나아간다.


“아니?”


프리먼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왼발에서 출발한 볼이 세비야 수비진을 관통하면서 바나나처럼 크게 휘어졌기 때문이었다.


황급하게 복귀하려는 센터백들을 전부 지나치며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더니 그대로 반대쪽에서 전속력으로 내달리던 부팔의 발 앞까지 깔끔하게 도착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과거 북아일랜드의 베컴이라 불렸던 사나이의 환상적인 전개.


부팔이 오른발로 받으며 나아갔지만, 바짝 쫓아오는 콜로지에자크를 지나치게 의식했는지 박스 안에 들어서서 볼을 멈추고 왼쪽으로 접다가 슛의 힘이 약해지면서 기회는 허무하게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프리먼은 조금 전에 나왔던 패스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골이 들어갔다면 올해 유로파 리그에 남을 명장면이 될 수도 있었다.


캐리가 저 정도였나?


그의 킥력이 스코티시 리그 내에선 상위권에 속한다지만, 설마 세비야를 상대로도 통할 줄은 아무도 몰랐을 텐데.


문득 그 패스가 나오기 전의 상황이 머릿속에서 재현되었다.


“······잠깐만.”


프리먼은 뭔가를 발견한 듯 눈을 크게 뜨며 필드를 지켜보았다.


아까 전과 비슷한 구도로 블랜차드의 원터치 패스가 매끄럽게 빠지면서 다시 한번 캐리에게 들어간다.


이번엔 직선으로 송곳처럼 찔러 들어가는 볼, 카히수가 몸을 던지며 터치라인 밖으로 걷어내지 못했다면 잭 마틴의 단독 찬스가 열렸을 것이다.


저 정도로 예리한 패스를 넣으면서 위협을 가하는데, 이상하리만큼 세비야는 캐리를 계속 놓치고 있었다.


“이건······.”


프리먼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 이런······ 이런 거였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관전하면서 혼란스러웠던 의문들이 드디어 풀리는 순간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프리먼은 턱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짧게 내저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상대 팀 감독도 눈치챘을 것이다. 깨달았어도 수습할 수 있는지는 봐야 하겠지만.


전반전 동안에 완벽히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


“이거는······ 감독이 에메리라도 꽤나 고민 좀 되겠는데?”


*******


“······.”


에메리는 심기 불편한 얼굴로 필드 상황을 지켜보았다.


로스 카운티의 수상쩍던 라인업, 대담하기 짝이 없던 포메이션, 당최 속셈을 알 수 없었던 선수 배치.


블랜차드와 딩월을 동시 활용하여 바네가를 마킹하는 건 그저 표면에 드러난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의도를 마침내 파악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골치 아픈 문제였다.


와아아 -


세비야 쪽을 향한 함성이 아니었다.


비달의 패스미스가 나오면서 넘어간 턴. 오늘 보여준 몇 번의 퍼포먼스 덕인지 캐리가 볼만 잡아도 관중들은 열광하고 있다.


“상대 풀백 놓치지 마!”


다급히 외쳤지만, 캐리와 딩월이 주고받는 원투패스에 현혹된 세비야 선수들은 어느새 오버래핑해 올라간 월리스에게 직선으로 찔러주는 로빙 패스를 허용하고 만다.


빠르게 볼을 몰고 올라가는 월리스.


박스에 근접하여 크게 꺾인 대각선 패스를 건네주고, 같은 결을 따라 달리던 딩월이 받아서 대포알 같은 중거리 슛을 시도한다.


뻥 -


정말 대포처럼 곡사로 쏘는 바람에 골대를 한참 벗어나버렸지만, 여유롭게 웃을 수가 없었다.


“······침착하자.”


에메리는 길게 숨을 들이 내쉬며 정리에 들어갔다.


현재 로스 카운티에서 거슬리는 요인을 하나 꼽자면 단연 알렉산더 캐리.


그럼 세비야는 우선적으로 캐리를 막아야 한다.


로스 카운티가 4-4-2 구조라는 가정하에, 저 측면 미드필더를 담당해야 하는 건 풀백인 코케다. 하지만 여기서 골치가 아파진다.


캐리가 올라오지 않기 때문에 과도하게 전진해서 붙어야만 한다. 그럴 경우 코케는 세비야의 우측 공간을 비우게 된다.


무엇보다 실상 중앙 3선이나 다름없는 대상을 풀백으로 막는 꼴이니 비효율적이다. 그러므로 제외.


코케로는 막을 수 없으니 처음에 예상해두었던 4-3-3의 구조를 기준으로 잡는 방법밖에 없다.


그렇게 봤을 때 캐리는 같은 위치의 음비아가 마크하면 된다.


문제는 이다음부터다.

세비야 03.jpg

음비아가 캐리 쪽에 붙으면 딩월이 자유로워진다.


저 꺼벙한 공격수에게 위험한 중거리 슛을 내줬던 이유, 음비아가 캐리를 막으러 어정쩡한 움직임을 보이다가 발생한 거다.


센터백 중 하나를 전진시켜서 딩월에게 붙이면?


수비진의 틈새가 크게 벌어지며 잭 마틴의 침투 공간이 넓어진다. 거기에 부팔까지 가세할 우려도 크다.


“저래서 톰슨을 안 쓴 거군······.”


좀 더 안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에 능한 부팔을 오른쪽에 배치하면 로스 카운티는 언제라도 투 스트라이커 체제로 돌변할 수 있으니까.


그럼 비달이 캐리를 마크하면?


와이드한 플레이에 능숙한 선수를 중앙에 붙여야 하는 거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지만, 그렇게 해서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다.


본래 비달이 책임져야 할 월리스가 노마크 상태로 되어버리니까.


극단적으로 대응해서 비달이 캐리를 잡고, 코케까지 올라가서 월리스를 잡는다면? 맨 처음 상황과 똑같다. 세비야의 우측 공간이 비워지겠지.


그러면 로스 카운티는 잭 마틴이 카히수를 달고 저쪽으로 빠지면서 딩월의 전방 침투를 조성할 수도 있고, 딩월이 직접 측면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


마크 체계에 끔찍한 혼선이 생겨난다.


코케가 공간을 지키고, 음비아가 딩월을, 비달이 월리스를 맡으면 캐리는 방해할 사람이 없으므로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유로파 리그 챔피언을 상대로 저 금발의 7번이 활개 치고 다니는 결정적 원인.


프로 레벨에서 노마크가 무슨 의미인지 에메리도 잘 알고 있었다. 킥력이 장점인 선수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


연쇄적으로 덮쳐오는 딜레마.


어떤 경우의 수를 둬도 세비야는 로스 카운티에게 주요 공간을 하나 내주는 불안정한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 선택을 빨리 내리지 못하면 캐리의 왼발이 계속해서 세비야의 심장부를 노려온다.


체크메이트.


이 혼돈을 하나로 정리할 단어가 불현듯 머릿속에 떠올랐다.


“······당했군.”


제대로 한 방 먹었다.


겉으로 보기엔 아직 세비야가 주도권을 쥐고 밀어붙이는 형세였지만, 스타디온 나로도비에 모인 5만여 명도 느끼기 시작했을 것이다.


묘하게 흐르는 기류를.


총책임자가 선택을 곧장 내리지 못하니 전장에 나가 있는 선수들도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흔들리는 팀과 기세가 오르는 팀의 경기력이 점차 두드러지고 있었다.


음비아의 패스 길목에 뛰어든 브리튼의 인터셉트. 부팔이 받아서 전진하다가 딩월에게 횡패스를 짧게 건네주고, 딩월이 줄 곳을 찾다가 뒤로 패스한다.


여전히 마크가 붙지 않은 캐리. 가볍게 찍어 올린 그의 로빙 패스가 앞으로 나아가며 세비야 수비진의 키를 넘긴다.


브리튼이 볼을 차단했던 시점부터 기습적으로 전진해 올라가던 블랜차드를 겨냥한 볼이었다.


나폴리전, 산 파올로의 기적을 만들었던 그 역전 골 당시처럼 가슴으로 받아내며 돌아서는 블랜차드.


그 장면이 연상되는 동작에 화들짝 놀랐는지 볼을 땅에 떨어뜨리며 치고 나가는 블랜차드의 다리를 걸어버리는 콜로지에자크.


주심이 휘슬을 불며 다가와 망설임 없이 카드를 꺼내 든다.


경고 한 장에 위험 지역에서 프리킥 파울까지.


우와아 -


이어지는 캐리의 직접 프리킥이 세르히오 리코의 정면으로 향했지만, 팔을 뻗어 쳐내지 않았다면 머리 뒤로 넘어가 그물을 흔들 뻔했다.


“이대로 두어선 안 돼.”


에메리는 미간을 짚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임시방편으로 비달이 캐리를 잡고, 음비아가 딩월에게 붙는다. 코케를 올려서 월리스를 전담시킨다.


트레물리나의 공격 가담을 포기하고 내려앉게 해서 후방에 백스리를 만들어놓으면 잭 마틴과 부팔을 견제함과 동시에 딩월의 동선도 제한시킬 수 있다.


이러면 앞서 문제 되었던 요소를 다 제거하는 게 가능하다.


블랜차드를 제어할 수 없다는 것만 빼면.


“젠장, 저쪽이 결점으로 작용할 줄은······.”


꼬여있는 전선을 순서대로 잘라냈다 해도 폭탄 해체가 불가능했다.


왜냐고? 블랜차드와 바네가가 얽혀있는 곳은 전선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마지막으로 반드시 풀어내야 하는 곳인데 해체할 수단이 없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에메리 앞에 놓인 시한폭탄의 정체는 바로 에베르 바네가.


이건 애당초 그를 노리고 짜온 전략이었다.


세비야의 키 플레이어이자 유로파 리그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그런 그의 단점은 느린 발과 취약한 몸싸움.


물론 3선에서 뛴 경험은 풍부하기에 수비 능력 자체는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유리한 국면에서 가하는 전방 압박에서나 해당되는 말일뿐.


지금 같이 체계가 뒤죽박죽되어버린 난장판 속에서 대인마크가 미숙한 선수는 곧 허점이 된다.


바네가를 누가 견제해 오느냐의 관점으로만 생각했지, 반대로 바네가가 누군가를 견제해야 한다는 관점으로 보는 건 미처 짚어내지 못한 거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수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 그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올려놓았는데. 그 배려가 되레 세비야의 목을 옥죄는 상황이라니.


제임스 블랜차드. 끈질긴 정신력으로 볼프스부르크의 케빈 더브라위너를 고전케 했던 인물이지만, 그 이전에 가장 껄끄러운 로스 카운티의 공격 자원이기도 하다.


186cm의 장신을 활용한 몸싸움과 간결한 볼 처리,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움직임이 뛰어난 그의 특징은 바네가의 약점과 정확히 상반된다.


두 선수가 엮인 것부터 미스 매치인 셈이다.


캐리가 좌측에 치우쳐 있는 것도 그 미스 매치를 끌어내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바네가와 캐리의 구도가 절대 성사될 수 없게.


에메리는 소리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승기를 확신하여 웃었던 초반과 달리 어이가 없어서 나오는 헛웃음이었다.


바네가를 막는 게 아니라, 바네가의 단점을 역으로 이용해 온다고?


그간 세비야를 상대해왔던 유로파 리그의 어떤 팀도 차마 하지 못했던 발상이 아닌가.


오오 -


세비야 측 스탠드의 함성.


측면으로 빠지며 올리는 데 성공한 바네가의 얼리 크로스를 머리에 맞춘 바카의 헤더 슛.


오우 -


땅에 바운드되면서 골문 하단으로 빨려 들어가는 줄 알았으나 브라운 키퍼가 반사적으로 쳐내면서 로스 카운티 측 스탠드 또한 들썩인다.


“저것만 들어갔다면 일이 풀릴 수 있었는데······.”


에메리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리드하고 있는 팀은 분명 세비야건만, 정작 이쪽을 향한 함성은 실로 얼마 만에 들어보는 건지.


이 분위기를 다시 가져오려면 골이 필요하다. 골을 넣으려면 로스 카운티가 헤집어 놓은 시스템의 안정화가 우선.


“호르헤!”


판단을 마친 그는 코너킥을 준비하는 틈에 코케의 이름을 부르며 손짓했고, 서둘러 조정에 들어갔다.


전술 노트에 시선을 고정한 채 경청하던 코케는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며 에메리를 쳐다보았다.


“에베르까지 아래로 내리라고요?”


“어쩔 수 없어. 급한 대로 이렇게 대처할 수밖에. 남은 시간 동안 에베르는 후방 3선으로 뛰는 거야, 알겠지? 수비할 때는 알레시만 캐리를 쫓아가게 해. 나머지는 압박하지 말고 뒤로 물러서. 블랜차드가 올라올 땐 그제고시가 붙어주는 거 잊지 말고······.”


지시를 마친 에메리는 팔짱 자세로 꼿꼿이 서서 경기를 주시했다.


바네가의 코너킥 볼이 문전으로 날아들었고, 쇄도하는 바카와 얀손의 머리를 넘어 뒤쪽에 떨어졌다.


높이 떠오른 델샤드의 클리어, 아크 서클 부근에서 대기하던 비톨로와 부팔의 사이로 빠져 흘러나간다.


두 선수가 세컨드 볼을 잡기 위해 달렸고, 치열한 속도전 끝에 발을 먼저 내민 부팔이 비톨로를 추월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와아아 -


우측 터치라인을 아슬아슬하게 타며 중앙선을 훌쩍 넘어서는 부팔. 가로막아서는 트레물리나의 옆으로 스치는 볼을 찔러 넣는다.


“마크 확실히 해!”


에메리가 외쳤지만, 트레물리나는 이를 악물고 달리며 자신의 뒤로 돌아들어간 딩월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마찬가지로 전력으로 복귀한 콜로지에자크가 비스듬히 등지고 있는 딩월의 왼팔을 휘어잡으며 바짝 붙는다.


하지만 그는 몇 분 전에 옐로카드를 받은 상태.


퇴장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움츠러들며 순간 잡고 있던 왼팔을 놓쳤고, 딩월은 자신의 옆으로 지나가는 부팔에게 볼을 밀어주었다.


리턴패스를 받은 부팔이 드리블하며 세비야의 박스 안까지 진입한다.


“막아!”


여기서 실점하면 기껏 수정한 작전들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만다.


에메리는 카메라맨 한 명이 자신을 클로즈업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격하게 부르짖었다.


감독의 절실함이 통했는지 무리하게 한 번 더 제쳐내려는 부팔을 회심의 슬라이딩 태클로 저지하는 카히수.


그러나 안심하기엔 일렀다.


카히수의 태클로 튕겨 나오는 볼. 그걸 잡은 건 애석하게도 세비야 쪽 선수가 아니었다.


이번에도 마크가 붙어있지 않은 알렉산더 캐리였다.


패스를 보내는 그의 오른발. 부팔과 딩월에게 온 신경이 쏠려있던 선수들의 고개가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거기엔 잭 마틴이 혼자 서 있었다.


사태를 깨닫고 달려가려 했을 땐 이미 그의 디딤발이 볼 옆에 놓인 후였다.


철썩 -


“······.”


에메리는 리코가 우측 하단으로 깔아 찬 슛을 막지 못한 걸 확인하자마자 눈을 감아버렸다.


“좋아.”


그리고 다시 눈을 떴다.


“전반전은 나의 패배를 인정해야겠군.”


체스와 축구의 거대한 차이점은 후반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체크메이트가 되어도 새로운 말을 교체하여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


저 이탈리안이 원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아마도 바네가를 이 판에서 빼버리는 거겠지만,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에메리는 상대 팀 벤치 쪽, 터치라인에 나와서 똑같이 팔짱 자세로 서 있는 델 레오네를 곁눈질로 슬쩍 쳐다보았다.


“이런 식으로 나오겠다면······ 어디 한 번 해봅시다.”


작가의말

좀 더 빨리 찾아뵙고 싶었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네요..

이어지는 내용인데 더 빨리 올리지 못해서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언제나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_ _)

이번에도 재미있는 글이 됐으면 좋겠네요.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짱짱가 님

모아두상 님

foir 님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 _)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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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199. 대립 +5 24.01.25 787 33 26쪽
198 198. 대면 +5 24.01.14 839 35 25쪽
197 197. 팀의 완성도 +8 24.01.04 813 43 24쪽
196 196. 신뢰의 결실 +5 23.12.23 867 38 28쪽
195 195. 한 마리의 송골매 +5 23.12.10 853 40 23쪽
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63 42 25쪽
193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924 43 25쪽
192 192. 캡틴 잭 +3 23.11.10 877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936 35 28쪽
190 190. 계몽의 시대 (3) +3 23.10.20 960 44 23쪽
189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69 39 26쪽
188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1,011 42 26쪽
187 187. 새로운 국면 (5) +7 23.09.15 1,064 45 22쪽
186 186. 새로운 국면 (4) +6 23.09.03 1,092 42 25쪽
185 185. 새로운 국면 (3) +8 23.08.19 1,174 45 22쪽
184 184. 새로운 국면 (2) +8 23.08.04 1,223 40 26쪽
183 183. 새로운 국면 +7 23.07.13 1,299 56 22쪽
182 182. 지상 최고의 팀 (4) +8 23.06.28 1,276 50 29쪽
181 181. 지상 최고의 팀 (3) +5 23.06.16 1,167 39 24쪽
180 180. 지상 최고의 팀 (2) +6 23.05.27 1,281 50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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