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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눈물의 잔상

미완성교향곡

웹소설 > 작가연재 > 로맨스

완결

홍라온
작품등록일 :
2012.07.25 14:05
최근연재일 :
2012.07.25 14:0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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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08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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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교향곡 -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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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24. Henryk Wieniawski(비에냐프스키) - Polonaise Brillante No.1 D major Op.04 (화려한 폴로네이즈)


애써 기억해내려 하지 않았던 추억의 시간 속.

떠올리려는 시도만으로도 가슴이 아려오던 기억을 한 발자국 물러서서 돌아보니, 그것은 무척이나 따스하고도 소중했던 시간이었다. 가족들과의 따스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떠올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입가에 미소가 걸리게 되는.

그 다채롭고도 따스하던 바이올린 음색은 너무나도 행복으로 넘쳐났고, 또한 재능이 한가득 담겨있었다. 마치 듣는 사람들의 귀를 통해 마음마저 사로잡는 마법과도 같았던 그의 음악을 어쩌면, 그 자신보다도 더 사랑했었는지 모른다.

“정말 혼자서 괜찮겠니?”

단정한 원피스 차림을 하고 거울에 서있는 예빈을 보며, 그녀의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차라리 함께 가자고 말했지만, 기어코 혼자서 가겠다는 의지를 관철시키는 예빈의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하지만 이대로 보내자니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어 계속 예빈의 주위를 맴돌면서 몇 번이고 묻고 있는 것이다.

‘괜찮니?’, 라고 말이다.

거울을 통해 뒤쪽에 있는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예빈은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듯 곱게 미소 지었다.

괜찮냐, 고 묻는다면 솔직히 대답은 ‘글쎄’, 일 것 같다.

지금은 그저 앞만 봐야할 것 같다. 주위를 살피며 자신을 되돌아보면, 영원히 멈춰 서게 될 지도 모른다. 독일에 오고도 한참이 지난 이제야 결심을 하게 되었는데, 다시 주저앉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만으로 애써 자신을 다잡고 있을 뿐.

“그저 음악회에 다녀오는 것뿐이잖아.”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도 되뇌인다.

그저 음악회일 뿐이다.

비록 그 음악회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다니엘 하인리히’라는 것만 빼면.

예빈이 감쌌던 그가 바이올린을 그만두겠다고 하던 이후, 그의 연주를 들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에 대한 기사조차도 접하지 않으려고 했던 예빈이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발작을 일으키던 예빈이 다니엘의 연주회를 홀로 보러가겠다고 나섰으니, 모두들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다니엘을 직접 만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음악회에 다녀오겠다는 것만으로도 저렇게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니, 새삼 자신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있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나약했던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냥 알고 싶어.”

예빈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모습을 점검하고, 뒤를 돌아 그녀의 어머니 장미희 여사를 마주했다.

“내가 지켜낸 음악이 어떤 것인지.”

예빈은 가방을 챙기면서 말을 이었다.

“직접 확인하고 싶어.”

입을 다물면서도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남은 듯 한 어머니를 보며, 예빈은 단호하게 덧붙였다.

“미안, 엄마. 혼자 갈게. 그래야만 할 것 같아.”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결국 긴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하려던 말 대신에 자신의 딸을 품에 안는 것을 택했다. 주저앉아 있던 자신의 여린 딸이 이렇게도 훌륭하게 홀로 서기를 하고자 한다. 항상 품에만 안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조금 쓸쓸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잘 다녀오렴.”

“응, 다녀올게.”

예빈은 그렇게 홀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콘서트홀에 도착할 때까지는 그저 앞을 향해 걸었다. 절대로 멈춰 서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니엘의 사진으로 채워진 포스터가 길게 이어져있는 길을 걸어, 드디어 콘서트홀에 도착했다.

젊고 재능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더구나 영화배우 못지않은 외모로 여성 팬들도 다수 보유하고 있는 다니엘 하인리히의 음악회인 만큼, 젊은 여성들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의 사이를 팸플릿을 들고 지나쳤다.

자신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며, 긴장이 되었다. 하지만 예빈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 심호흡을 하며 자신에게 되뇌었다. 지금 여기에서 도망가면 안된다고 말이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음악회를 찾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치면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스스로의 피부로 직접 느끼고 싶었다.

자신이 지켜낸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

활기차게 모여드는 사람들의 밝은 얼굴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었지만, 예빈은 자신의 귀로,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게 되길 원했다.

심장의 박동이 자꾸 빨라지지만, 예빈은 주먹을 꽉 쥐며 도망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약한 자신’과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이제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 되어서야 겨우 음악회는 시작되었고, 피아니스트와 함께 등장한 다니엘은 서로 간단하게 음을 조율했다.

빛나는 무대 위에 서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예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예빈이 사고로 손가락을 다치지 않았다면, 아마 예빈도 저 자리에서 있었을 것이다.

아주 잠시 마음이 부질없는 소망으로 흔들렸다. 언제나 ‘만약에’로 시작되는 소망은 쓸데없이 가슴을 무겁게 만들곤 한다. 예빈은 상념을 떨치며 눈앞의 무대에 집중했다. 음악이 시작되기 전 긴장감이 절정에 달한 가운데 피아노가 연주의 시작을 알렸고, 곧 미끌어 지듯 울려 퍼지는 바이올린 소리가 홀을 가득 메우고 시작했다.

다니엘 하인리히는 유서 깊은 가문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음악에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구김 없이 자라난 그의 삶을 대변하듯, 그의 음악은 밝고 화려했다. 삶의 어두운 부분보다 밝은 부분을 더 많이 보고 자라난 그는, 무대의 빛 가운데 존재했고, 상대적으로 예빈은 현재 어두운 객석에 앉아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에 전처럼 악에 바쳐 어두운 마음에 지배당하지 않았다. 그저 마음이 더할 나위 없이 평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가 겨우 그 짐을 내려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 때 예빈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자 했던 그가, 예빈이 죽음의 위협에서도 지키고자 했던 그의 음악이 지금 빛 가운데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었다.

훤칠한 키에 밝은 금발, 그리고 푸른빛이 감도는 눈동자. 하늘이 내린 재능을 몸에 두른 그의 손끝에서 탄생하고 있는 음악은 마치 공기 속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음을 탄생시키는 가운데, 객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눈과 귀는 물론이고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는 진정으로 선택받은 바이올리니스트였고, 역시나 수많은 팬을 거느린 클래식계의 스타다웠다.

비에냐프스키의 화려한 폴로네이즈.

화사한 느낌의 다니엘 하인리히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곡이었다.

피아노의 음색과 어우러지며 아름답게 들려오는 음악 소리.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예빈은 점점 온 몸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서로 춤을 추는 것처럼 주고 받고, 함께 움직이는 것을 느끼며 예빈은 눈을 감았다.

이곳에 오기 까지, 그리고 연주가 시작되기 전까지 느껴지던 긴장감 대신 저기 깊숙한 곳에서부터 뜨거운 감동이 샘솟기 시작했다.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그리고 예빈 스스로도 어찌 할 수 없었던 마음속의 응어리가 천천히 녹아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며, 연주되던 음악은 서서히 절정을 향해 달려갔다. 예빈의 모든 감각도 그에 따라 함께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이윽고 피아노 소리와 바이올린 소리가 동시에 멎자, 사람들은 모두 열렬한 박수로 화답했다. 그것은 모두가 만족할 만한 연주였고, 그렇기에 연주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박수를 보내는 것이었다.

어느 새 예빈의 눈동자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사람들 속에서 예빈도 박수를 보냈다. 음악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다니엘과 한 시대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런 미련도 없이.

예빈이 지켜낸 음악은 이렇게도 아름다웠다. 그 자신이 녹아들어 있는 그의 바이올린은 이렇게도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비록 한 때 예빈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것 같았지만, 결국에는 예빈 자신이 한 단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계기를 주었다.

분노도, 시샘도 없이. 그를 용서할 수 없었던 마음의 칼날이 이제야 무뎌지며, 예빈의 마음 속에 응어리로 남아있던 감정이 녹아내렸다. 예빈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독이 되어 예빈을 괴롭히던 그 마음이 사라졌다.

그의 연주를 듣고 이렇게 박수를 보낼 수 있게 될 정도로. 그의 빛나는 길을 진심으로 축복할 수 있을 정도로.

추억 속에서보다 더욱 훌륭했던 연주 앞에 예빈은 스스로가 대견스러웠다. 이런 아름다운 음악을 지켜낸 것이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그를 지켜낸 자신에게도 후회 없이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다니엘을 바라보며, 예빈은 저 먼 땅에 있을 우현을 떠올렸다. 이 감동을 당장이라도 달려가 우현에게 전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를 향한 감사와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 지 모르겠을 정도로, 이 마음에 한 가득 그를 향한 마음이 가득하다는 것을 그가 알지 모르겠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언제나 예빈의 마음을 든든하게 만들어주는 그가 있었기에, 예빈은 자신이 지켜낸 아름다운 음악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우현이 없었다면 절대로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예빈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내 마음 속에서는 네가 점점 더 커져가고 있어.’

긴장감 대신 행복함이 한 가득 피어오른다.

“이제 얼마 안남은 것 같아.”

예빈은 작게 중얼거렸다. 다음 곡이 시작되려 하기에, 사람들이 모두 조용히 무대에 집중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예빈의 시선 역시 다시 다니엘에게 집중되었다. 어깨에 들어가 있던 힘을 빼고, 예빈은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그의 연주를 감상했다.

이제 정말 그와 마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긴 시간을 돌고 돌아, 과거의 시간을 마주하고, 제대로 끝을 맺을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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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오랜만에 왔습니다^^;
시놉도, 이미지 곡도 이미 정해져 있었고..
앞부분은 한참 전에 쓰기 시작했으나..
왜 이제야 완성이 된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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