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붉은 눈물의 잔상

미완성교향곡

웹소설 > 작가연재 > 로맨스

완결

홍라온
작품등록일 :
2012.07.25 14:05
최근연재일 :
2012.07.25 14:05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32,344
추천수 :
277
글자수 :
193,464

작성
10.08.29 21:03
조회
1,042
추천
5
글자
13쪽

미완성교향곡 - (7)

Attached Image




DUMMY

#7. Evanescence(에반에센스) - Lacrimosa(넘쳐흐르는 눈물)

- Mozart Requiem KV626 – Lacrimosa(모차르트 레퀴엠)인용곡


대답을 할 수 없는 존재에게 끊임없이 대답을 바라고 있었다.

언제나 수업이 끝나면 쏜살같이 사라지기 바빴던 학교. 당연히 뺄 수 없는 레슨이 있던 날 외엔 발걸음 할 일도 없었던 학교 내에 마련된 연습실. 피아노 한 대, 그리고 오직 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 안에 들어가 눈앞에 펼쳐진 악보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게 애타게 대답을 갈구해도, 악보 위의 선율은 아무런 대답도 돌려주지 않았다.

깊은 한숨을 내쉰 우현의 시선에 자신의 핸드폰이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손에 쥐고 확인을 해보지만, 역시나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언제나 연락을 하던 것은 우현 쪽이었고, 그랬던 우현이 한동안 축제 준비로 바쁘다고 전하자 아쉬워하는 기색도 없이 순순히 알겠다고만 대답하던 예빈이었다.

[Out on your own. Cold and alone again. Can this be what you really wanted, baby? (당신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말았어요. 또 다시 쓸쓸한 혼자가 되어버렸죠. 바로 이게 당신이 원했던 것인가요?)]

어쩔 수 없이 쓴 웃음이 입가에 걸리고, 다시 악보로 시선을 돌렸다.

익숙한 촉감. 건반 위에 손을 올리고, 종이 위에 새겨진 선율을 실제적인 소리로 옮기기 시작했다.



“오늘은 일찍 왔구나. 그 ‘피아노 소년’과는 안 만난 거니?”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집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예빈은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다가 다시 움직이며 부엌 쪽을 바라보니, 단정하고도 우아한 40대 초반의 여성이 있었다.

“요새 축제 준비 기간이라 바쁘다고 해서 안 만나. 생각보다 귀국 빨랐네?”

클래식 음악 평론가이자 기자로 활동 중인 예빈의 어머니는 언제나 해외를 오가기 때문에,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다. 마찬가지로 수입 악기를 취급하는 회사를 경영하는 예빈의 아버지 또한 언제나 해외를 오가기 때문에, 역시나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다.

“일정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오늘 하나뿐인 우리 딸 정기 검진 날이기도 하니 맞춰서 귀국했지. 어때? 이 정도면 엄마도 꽤 괜찮은 엄마이지 않아?”

부엌 식탁에서 마시고 있던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소녀 같은 발랄함으로 다가왔다.

언제나 밝고 명랑한 어머니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무뚝뚝한 아버지. 안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균형을 이루는 부부였다. 어렸을 때는, 아니, 4년 전까지만 해도 예빈은 어머니의 성격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는 말을 듣곤 했다.

지금은 ‘아버지의 복사판’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지, 뭐.”

“얘는. 그럼 아니란 거니?”

살짝 토라진 표정으로 교복을 벗는 예빈의 방 침대에 걸터앉는다. 그러다가 곧 금세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으로 바뀌며 물었다.

“있지, 그래서 그 ‘피아노 소년’은 언제 소개시켜 줄 거야? 응? 나 있을 동안에 한번 식사라도 초대하는 게 어떨까?”

교복 대신 편안한 티로 갈아입으며, 옷장 장롱에 있는 거울을 통해 뒤쪽의 어머니를 바라봤다. 척 보기에도 호기심으로 반짝거리고 있는 눈빛에 약하게 한숨을 내쉰 예빈은 뒤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 내가 왜 그 녀석을 우리 집에 소개씩이나 시켜줘야 하는 건데?”

“그야 당연히 엄마가 궁금하니까 그렇지. 귀가 까탈스럽기로 유명했던 천하의 차예빈이 칭찬을 할 정도인데, 어떤 아이일 지 궁금하지 않겠어?”

그 말에 예빈은 어깨를 으쓱했다.

“칭찬한 기억은 없는데. ‘그럭저럭 괜찮은 연주를 한다’고 했을 뿐.”

“바로 그거야. 너 언제나 다른 사람의 연주는 기껏 해봐야 ‘나쁘지 않다’ 정도잖아. 네가 정말로 ‘좋다’고 말한 연주가는 손에 꼽힐 정도라는 것 스스로도 알고 있지 않아? 그런 네가 무려 ‘괜찮은 연주를 하는 녀석’이라고 말하는데, 당연히 궁금해지지.”

마음에 들진 않지만,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예빈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 모습에 재미있다는 듯 빙긋 웃던 어머니의 표정이 갑자기 흐려졌다.

“무엇보다 우리 딸이 다시 ‘음악’을 듣게 해 준 고마운 소년이야.”

어머니는 예빈의 눈썹이 꿈틀거린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애써 미소 짓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게 더욱 처연한 느낌이 들게 만들어버리는 얼굴로, 예빈의 왼손을 양손으로 감쌌다.

이 손에서 밖에 태어나지 않던 음이 있었다.

“예빈아. 대학 말인데…….”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빈은 어머니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 휙, 어머니에게 잡혀있던 왼손을 뺀다.

“변함없어. 그대로 독일어를 전공하고, 번역 관련 일을 하고 싶어. 독일어 특기생으로 합격할 자신도 있고. 내신도 나쁘지 않으니, 담임선생님도 무리는 없을 거라 하셨어.”

어머니의 얼굴이 흐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예빈은 그렇게 밀쳐냈다. 약속이라도 한 듯 가라앉아버린 분위기에 예빈이 속으로 당황하는 순간, 어머니는 벌떡 일어나며 예빈을 꽈악 끌어안았다.

“우리 딸이 그러고 싶다면 엄마는 다 좋아~ 병원 갈 거지? 엄마 먼저 나가서 차 시동 걸어놓고 있을게. 준비하면 나와.”

이건 필사적으로 밝게 보이려하는 것이란 걸 알면서도, 예빈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빈의 방을 나가는 그 뒷모습을 보며 또다시 한숨이 이어졌다.

어머니나 아버지, 혹은 주위에서 그녀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최소한이라도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길 바란다는 것. 그 무뚝뚝한 아버지가 자신의 일을 넌지시 추천해보기도 했다는 것.

미세하게 덜덜덜 떨리고 있는 왼팔. 예빈은 입술을 꽈악 깨물며 오른팔로 왼팔을 눌렀다. 하지만 그 경련은 한참동안 멈추지 않았다. 곧 예빈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떨어지고 말았다. 흐느낌조차 없는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려, 땅바닥에 툭 떨어졌다.

음악과 관련된 일이라니, 그런 피 말리는 짓은 할 수 없다.

겨우 왼팔의 경련이 진정되자, 예빈은 무너지듯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던 예빈은 곧 심호흡을 하며 벌떡 일어났다. 재빨리 눈물 자국을 지우고, 나갈 준비를 마친다.

그리고 방을 나설 때는 무표정하지만 반듯한 예빈의 평소 모습, 그대로였다.



하교를 하고 집에 돌아오던 예빈은 대문 앞에 서있는 자신의 어머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의아해하면서 좀 더 다가가자, 그녀가 우편물을 들고 서서 굳은 얼굴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순간, 기분 나쁜 예감이 온 몸을 훑었다.

눈썹을 치켜뜬 예빈은 성큼성큼 걸어가 어머니의 손에서 우편물을 빼앗았고, 화들짝 놀란 그녀의 어머니가 당황하는 것을 무시하며 편지 봉투를 확인했다.

독일에서 날아온 편지. 발신인에 적혀있는 익숙한 이름. 예빈은 이를 악 물고 분노를 삼켜야만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예빈의 어머니가 안절부절 못했고, 그러는 와중에 예빈은 그 편지 봉투를 가차 없이 산산조각으로 찢어버렸다.

[Blame it on me. Set your guilt free. Nothing can hold you back now. (나를 탓하고 당신의 죄로부터 자유로워지세요. 그 어떤 것도 당신을 붙잡을 수가 없으니.)]

그렇게 갈기갈기 찢어도, 결국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온 몸을 휘감았다. 그 분노에 온 몸이 떨리고 있었다.

예리하고도 푸른 분노가 예빈의 눈에 감돌았다. 여전한 그 반응에 예빈의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한동안 그 분노를 애써 진정시키던 예빈이 고개를 돌렸다.

“엄마, 신경 쓰지 마. 나도 신경 안 써.”

“예빈아.”

“엄마, 나 아무렇지도 않아. 들어가자.”

그렇게 대문을 열었고, 그 안으로 들어간 예빈은 자신의 방으로 직행했다. 방문을 닫고 단절된 공간에 들어서자, 악으로 버티고 있던 몸은 그대로 주르륵 주저앉아버렸다. 그 터져버릴 것 같은 감정 속에서 예빈은 이를 악 물고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을 듯 그러쥐며, 굳게 눈을 감아버렸다.

[Now that you're gone, I feel like myself again. Grieving the things I can't repair and willing. (이제 당신은 가고 난 다시 내 자신을 느껴요. 이렇게 무너지는 가슴을 어찌 할 방도도, 그럴 의지도 없는 걸요.)]

누구의 그릇이 작았던가. 누구의 죄이던가.

눈을 닫았으나, 그 닫힌 눈 사이로 결국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행여나 소리가 새어나갈까, 입을 틀어막고 흐느낌마저도 꾸역꾸역 삼켜버렸다.

[To let you blame it on me and set your guilt free. I don't want to hold you back now love. (나에게 모든 죄를 씌우고 당신은 모든 죄에서 벗어나세요. 이제 사랑을 붙잡고 싶지 않아요.)]

얼마나 울었을까. 어느 새 어둑해진 주위를 바라보며, 탈진에 가까운 상태가 된 예빈을 정신 차리게 만든 것은 핸드폰의 문자 메시지 도착 알림음이었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핸드폰에 손을 뻗고, 내용을 확인했다.

[I can't change who I am. Not this time, I wont lie to keep you near me. And in this short life, there's no time to waste on giving up. My love wasn't enough. (난 내 자신을 바꿀 수가 없어요. 이번에는 아니에요, 당신을 내 곁에 있게 하기 위해 거짓말 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이 짧은 생에 포기만 하면서 낭비할 시간은 없어요. 그저 나의 사랑이 부족했던 거죠.)]

사실 예빈의 핸드폰은 전화도, 문자도 올 일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시계 용도고 혹시나 모를 때 연락을 하기 위해 갖고 다닐 뿐이었다. 그런 예빈의 핸드폰이 바빠지기 시작한 것은 우현을 만나고 부터였다.

역시나 우현에게서 온 문자였다. 자신은 방금 저녁을 먹었는데, 식사를 했냐는 내용의 문자. 예상대로 별 내용 없는 그 문자에 예빈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이 실없는 문자가 한없이 깊은 절망으로 들어가려던 예빈을 끌어냈다. 아, 저녁 시간이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우습게도 배가 고프다는 감각을 느끼고 말았다. 그래, 이 육신은 살아있었다. 살아남기 위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And you can blame it on me. Just set your guilt free, honey. I don't want to hold you back now love. (그러니 당신은 나를 탓해요. 그렇게 자유로워지세요, 나의 사랑. 이제 다시는 당신을 붙잡고 싶지 않아요.)]

예빈은 우현의 문자에 답을 하기 시작했다.


-------------------------------------------------------


이 곡은 소개에 써놓은 대로 모차르트 레퀴엠을 기본으로..

에반에센스라는 락밴드에서 새롭게 만든 곡입니다. ^^


사실 에반에센스의 이 앨범을 계속 듣고 다니다가..

저희 학교 음대 정기연주회 가서 레퀴엠을 들었을 때의 전율이란!


가사 해석은 상당히 의역입니다;

애매한 부분은 일단 소설 내용에 맞게 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

매#마다 클래식곡과 노래곡을 번갈아가며 사용을 하고 있었는데..

이 곡은 그 2가지 모두에 해당되는 #으로 삼았습니다~


※ 흔적을 남겨주신 분들을 언제나 격하게 애정합니다 *-_-*


앤드류님, 감사합니다~ ^^*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철LovE님, 현재 제 모든 작품에 흔적을 남겨주시다니 영광입니다~


silverwolf님, 오늘도 감사합니다~

으음, 미완성교향곡 같은 경우는 좀 여유있게 가는 편이라;

분량이 좀 짧을까요? ;ㅅ; 앞으로 참고를 해두겠습니다!!


샵님, 오오, 잘 어울렸다니 다행이네요~ ^^*

그 음악 찾는데 글 쓰는 것의 몇 배가 걸리니까요(...)




▶작가모임 로맨스화원 바로가기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미완성교향곡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2 미완성교향곡 - (32完) +5 12.07.25 824 12 14쪽
31 미완성교향곡 - (31) +6 12.06.18 679 11 13쪽
30 미완성교향곡 - (30) +4 12.06.16 506 10 9쪽
29 미완성교향곡 - (29) +4 12.06.11 519 8 14쪽
28 미완성교향곡 - (28) +2 12.06.07 576 11 14쪽
27 미완성교향곡 - (27) +3 12.06.02 615 9 12쪽
26 미완성교향곡 - (26) +3 12.05.27 518 8 12쪽
25 미완성교향곡 - (25) +3 12.01.23 567 9 13쪽
24 미완성교향곡 - (24) +3 12.01.08 560 12 11쪽
23 미완성교향곡 - (23) +5 11.09.11 665 11 19쪽
22 미완성교향곡 - (22) +4 11.06.25 775 10 10쪽
21 미완성교향곡 - (21) +6 11.04.04 717 10 19쪽
20 미완성교향곡 - (20) +5 11.03.29 795 8 10쪽
19 미완성교향곡 - (19) +3 11.02.02 806 8 20쪽
18 미완성교향곡 - (18) +6 10.12.11 776 8 11쪽
17 미완성교향곡 - (17) +6 10.10.24 901 8 11쪽
16 미완성교향곡 - (16) +4 10.10.20 872 5 10쪽
15 미완성교향곡 - (15) +4 10.10.10 921 7 17쪽
14 미완성교향곡 - (14) +4 10.10.03 802 7 18쪽
13 미완성교향곡 - (13) +5 10.09.23 879 11 19쪽
12 미완성교향곡 - (12) +6 10.09.19 873 8 18쪽
11 미완성교향곡 - (11) +7 10.09.12 910 9 16쪽
10 미완성교향곡 - (10) +4 10.09.05 920 7 12쪽
9 미완성교향곡 - (9) +6 10.09.01 1,094 8 16쪽
8 미완성교향곡 - (8) +4 10.08.31 1,075 9 13쪽
» 미완성교향곡 - (7) +4 10.08.29 1,043 5 13쪽
6 미완성교향곡 - (6) +5 10.08.26 1,121 7 13쪽
5 미완성교향곡 - (5) +4 10.08.25 1,146 6 9쪽
4 미완성교향곡 - (4) +6 10.08.24 1,298 6 11쪽
3 미완성교향곡 - (3) +6 10.08.23 1,461 9 7쪽
2 미완성교향곡 - (2) +6 10.08.20 1,858 5 14쪽
1 미완성교향곡 - (1) +4 10.08.20 5,275 15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