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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눈물의 잔상

미완성교향곡

웹소설 > 작가연재 > 로맨스

완결

홍라온
작품등록일 :
2012.07.25 14:05
최근연재일 :
2012.07.25 14:05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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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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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3,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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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2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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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교향곡 -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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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22. Johann Pachelbel(파헬벨) - Cannon in D minor(캐논)


떠나오는 발걸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다.

도망치듯 떠났던 곳을 향해 제 발로 다시 들어선다는 것은 각오 위에서도 또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다. 또한 붙잡고 싶은 마음을 애써 묻는 대신에 예빈이 공항에서 떠나던 날은 기어이 모습을 보여주지 않던 우현의 존재가 가슴에 걸렸다. 공항에서 예빈이 떠나는 모습을 보면 붙잡게 되고 말거라면서, 배웅은 하지 않겠다던 말대로 우현은 나타나지 않았다.

서운하다던가, 그런 좁은 마음은 아니다.

오히려 우현의 얼굴을 보면 떠나기 힘든 것은 예빈쪽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다잡은 마음이, 그 결심이 통째로 흔들렸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저 단순히 한번이라도 더 만나고 싶었을 뿐이다. 떠나게 되는 자신보다 남게 되는 우현이 더 힘들 것을 알면서도, 그저 한번이라도 더 얼굴을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가볍지만은 않았던 발걸음을 옮겨, 독일에 도착하자 독일을 거점으로 일하는 예빈의 아버지가 나와 계셨다. 쉽지 않았던 예빈의 결심을 알고 있는 듯, 긴 말 대신 예빈을 꼬옥 끌어안아 주셨다. 말보다도 위대한 그 온기가 무척 큰 위로가 되었음을 인정한다.

한달 정도는 짐을 정리하고, 주변 지리를 익히고,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냈다. 예빈의 도착 소식을 듣고 찾아온 어머니와 함께 간만에 온 가족의 단란한 시간을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각자 자신의 일이 있었기 때문에, 항상 예빈을 챙겨주지는 못했다. 예빈 또한 그런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예빈 자신도 이곳에 목적을 이루기 위해 왔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빨리 돌아가고 싶다. 예빈을 기다리고 있을 우현의 품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기 때문에, 가만히 멈춰만 있을 수는 없었다.

도망쳤던 과거의 시간과 마주해야 했다.

예빈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예빈이 다니던 모교였다. 다니엘과도 함께 다니던 학교에 연락을 했고, 당시 예빈의 담당 교사이기도 하던 선생님과 연락이 되어 긴 시간 만에 만나게 된 것이다.

“이사벨라.”

감성이 무척 풍부하시던 선생님은 예빈이 사고를 당한 이후 자신의 일처럼 진심으로 슬퍼하고 안타까워 하셨다. 갑자기 떠났던 예빈이 다시 연락을 하자 놀라셨지만, 예빈을 만나자 그 포근한 품에 안으며 재회를 기뻐하셨다.

“널 다시 만나게 되어 기쁘단다. 많은 학생들을 만나왔지만, 널 생각할 때마다 항상 가슴이 아팠지. 하지만 이제는 널 떠올릴 때마다 웃을 수 있겠구나. 운명과 당당히 맞서 이겨내는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예빈이 다시 바이올린을 잡았고, 재기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던 그녀는 예빈과 다시 만나는 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했다. 진심으로 감격하는 얼굴을 마주하며, 예빈도 그 때 그 시절처럼 활짝 웃었다. 밝고 순수했던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가, 무뚝뚝한 얼굴 대신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예빈의 어머니보다도 나이가 많았던 그녀를 예빈은 어머니처럼 따랐더랬다.

그 시간과 추억들은 가슴 아픈 기억에 휩쓸려 잊고 있었던 진정 소중한 행복의 조각이다.

“제대로 인사를 드렸으면 좋았는데. 그 때의 전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나 하나를 건사하기가 힘들어서, 주위에서 걱정해주는 사람들을 마주하지 못했죠. 많이 늦어버리고 말았지만, 도망쳤던 시간들과 마주하기 위해 이곳에 왔어요.”

따스한 홍차와 함께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에게 레슨을 받고는 시시콜콜 이야기를 떠들던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절망스러웠던 시간들. 상처에 짓눌려 숨을 쉬는 것조차 한계에 몰리던 시간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도 작은 그릇이었는지, 지금은 반성하고 있다고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그런 시간 속에서 만나게 된 우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자신의 고집보다도 대단하던 고집. 막무가내에 변덕스럽고, 이기적이기까지 한 자신을 모두 받아내 주었던 것에 얼마나 감동했는지. 다시 바이올린을 잡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쁘고 슬프고도 행복했던지. 그 길을 함께 해준 우현의 존재에 구원을 받았고, 결국 이렇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노라고.

“그를 사랑하는 거구나, 이사벨라.”

흐뭇한 미소와 함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수줍게 얼굴을 물들이면서도, 예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을 떠나고 과거의 시간과 마주하면서, 새삼 우현을 향한 자신의 마음이 점점 분명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우현을 전혀 모르는 과거의 사람에게 우현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에게 우현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사랑하고 있어요. 스스로도 놀랄 만큼.”

예빈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의 얼굴이 순간 흐려졌다. 그 표정의 의미를 놓치지 않은 예빈은 조금 무거워진 마음으로 덧붙였다.

“과거의 제가 대니를 사랑했던 것이 거짓은 아니에요. 오히려 그 마음이 독이 되어 그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래도 감사하고 있어요. 대니와 함께 하면서 전 분명 행복했었고, 그 시간들을 후회하고 있진 않아요. 그 모든 시간들을 지나 지금 여기 서있는 제가 사랑하게 된 것은 다른 사람이지만, 그건 대니를 원망해서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죠.”

아직은 당장 다니엘에게 연락해서 만나자고 할 용기는 없었다. 하지만 차근차근 과거의 시간들을 정리하다 보면, 분명 그에게 닿게 될 것이다. 그 때는 피하지 않고 마주할 것이다. 애증이 되어버린 시간과 관계를 정리하고, 100%의 차예빈이 되어 서우현에게로 돌아가야 하니까.

“대니를 사랑하던 저를 기억하고 있는 선생님께는 조금 위화감이 느껴질 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지금 제가 얼마나 행복한지 알아주셨으면 해요. 과거를 마주할 용기를 준 그 사랑에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알아주셨으면 해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이지만, 전 대니를 만나 그에게 제대로 작별을 고하려고 해요. 대니를 용서하고, 대니에게 용서받으려고 해요.”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 될 거라 믿었던 마음이었다. 그 마음에 거짓은 없었다고 자부한다.

단지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그 시간과 마음은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렸을 뿐이다. 서로에게 상처가 되어버린 관계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곪아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그 상처를 제대로 치료해야만 하는 때라고 생각한다.

“이사벨라, 바이올린을 들려주겠니?”

“물론이죠.”

예빈은 기쁘게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악기를 정성스럽게 세팅하고, 자세를 잡은 뒤에 활이 미끌어 지면서 연주되는 곡은 파헬벨의 캐논이었다. 클래식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무난하게 알고 있는 곡으로, 수많은 변주곡을 낳은 기본 멜로디. 단조로운 것 같으면서도 다채로운 음색이 아름답게 흘렀다.

반복되는 멜로디는 긴 시간을 돌아 다시 이곳에 돌아온 예빈의 마음을 대변했다. 또한 슬픈 기억이었지만 이제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예빈의 의지 또한 녹아들어 있었다.

바이올린을 다시 잡는 것이 무척 힘겨웠을 예빈의 노정을 생각하게 하는 그 음악에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미소 지었다. 한 때 잠시나마 예빈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지 않는 편이 나았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바이올린 때문에 아파하는 예빈과 다니엘을 바라보면서 그녀 또한 많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지금 예빈이 들려주는 캐논은 희망을 담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의지 앞에 예빈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쳐주길 잘했다며 스스로가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을 대신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지. 재능이 넘치던 예빈이었기에 자유롭지 않은 감각에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오기까지, 얼마나 힘겨웠을까. 그 많은 시간을 어찌 몇 마디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내 생에 최고의 캐논이구나. 내가 죽는 날까지 이보다 더 감동적인 캐논은 없을 거야. 이사벨라, 정말로 네가 자랑스럽구나.”

그녀를 마주 끌어안으며 예빈은 마음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곳에 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 시간과 마주볼 수 있게 만들어준 우현의 존재가 크나큰 축복이었음을 느끼며, 돌아가거든 그에게 모든 마음을 담아 감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예빈의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나갈 우현을 향한 무한한 감사와 그리움을 담아, 0.1g의 오차도 없이 전부 전해줄 것이다.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까지 담는다면, 기나긴 기다림을 인내해 준 우현에게 조금이나 보상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런 마음도 우현의 상냥함에 기댄 어리광일 지도 모르겠지만.

우현의 마음이 변할 거라는 두려움은 생각보다 느껴지지 않았다.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예빈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신기할 정도로 당연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지금 이순간도 예빈 자신과 같은 마음으로 순간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고.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하나라, 여전히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이었다.

겁쟁이 차예빈이 서우현을 만나 이렇게도 담대해졌다.

‘너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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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훗- 지르고 보자 정신으로 질렀던 슈스케..
1차는 합격이고 2차 예선을 보러 갑니다만.

사고를 친 기분입니다...?

전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질렀는데..
밴드 멤버들이 떨어지면 죽는다, 에서 시작해서..
명색이 보컬인데 떨어지면 난감하지 않겠음..?;
..이라는 제 말에 '그걸 이제 알았음? 님은 죽었음 ㅋ'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Lv.45 꿈을이룬너
    작성일
    11.06.25 21:15
    No. 1

    엇 슈스케 나가세요??? ㅋㅋ 잘 되시기를 ...
    군대에서 1.2 다보고 나왔는데 집에는 케이블이 안나와서 못 보겠지만..ㅠㅠㅠㅠ
    그나저나 ㅠㅠ 다음 편 언제 나올까욤?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9 앤드류
    작성일
    11.06.25 22:14
    No. 2

    우와~ 슈스케 제 친구도 1차는 합격했다네요.

    잘 읽고 갑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silverwo..
    작성일
    11.06.29 08:35
    No. 3

    정말 간만에 올라온 글이네요^^

    그리고 슈스케 1차 합격도 축하 하구요...

    잘 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6 sard
    작성일
    12.01.23 19:22
    No. 4

    감사히 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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