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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눈물의 잔상

미완성교향곡

웹소설 > 작가연재 > 로맨스

완결

홍라온
작품등록일 :
2012.07.25 14:05
최근연재일 :
2012.07.25 14:0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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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05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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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교향곡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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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10. Franz Liszt(프란츠 리스트) - Etude No.3 La campanella(라 캄파넬라).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 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우현에게만 해당되던 모양이다. 세상의 시간은 거침없이 흐르고 있었고, 순간과도, 영원과도 같은 시간 속에서 미아가 된 우현을 깨운 것은 기억에 남아있는 여인의 목소리였다.

“어머, 여기서 뭐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뒤였다. 예빈의 어머니가 외출을 끝내고 돌아온 듯, 문 앞에 앉아있던 우현을 보며 묻고 있었다.

정지해버렸던 사고의 흐름이 돌아오며, 우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희미하게 웃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같이 들어가자.”

하지만 그녀의 제안에 우현은 닫힌 문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닫혀있는 것은 현관문이 아니라, 마음의 문이거든요. 그냥 전해주세요. 기다린다고.”

몇 번을 더 권했지만, 우현은 계속 고개를 저었다.

“마음 같아선 그냥 쭉 기다리고 싶지만, 늦었으니 곧 돌아갈 거예요. 괜찮습니다. 이 문은 예빈 누나가 열어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요.”

어쩔 수 없이 우현을 문 앞에 세워두고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안으로 들어와 예빈에게 뭐라고 하려던 그녀는 불조차 켜져 있지 않은 가운데, 소파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예빈의 모습을 보자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밖에 서있는 우현도 그렇지만, 안에 있는 예빈도 심각했다.

불이 켜졌음에도 예빈은 어둠 속에 있었다.

분명 두 사람을 배웅할 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의 분위기는 문제가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묻고 싶지만 지금의 예빈에겐 그 어떤 것도 물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저 이렇게 말하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기다린다’고 전해달라더라. 선택은 네가 좋을 대로 하렴.”

우현을 등 뒤로 하고 들어와, 미동도 없이 소파에 앉아있는 동안 어둠이 내려앉았다. 어머니가 남기고 간 말에 역시나 우현이 아직도 문 앞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련스럽게 거기 그러고 있지 말고, 돌아가라고 말해야 하나, 문득 생각했다. 너는 나쁘지 않다고, 다만 내가 약한 것뿐이라고. 그러니 죄책감도, 미련도 없이 뒤돌아 떠나라고 말해야 하나, 멍하니 생각했다.

하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넋이 나간 사람처럼 가만히 있기를 또 한참.

투둑, 투둑.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예빈은 고개를 돌렸다. 창문을 타고 빗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결코 적지 않은 양의 비가 쉽사리 그치지 않을 듯 내리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일어나 현관문 쪽을 바라보니,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뒷모습은 비를 피할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았다.

아직 밤은 쌀쌀하다. 거기다 비까지 오는데, 저러다 감기에 걸릴 것은 뻔했다. 하지만 예빈은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만 넘기면 다시 이 ‘마음’을 누를 수 있을 지도 몰랐다. 우현이 깨워버린 이 ‘마음’을 잠재울 수 있게 될 지도 모른다.

예빈은 애써 창문에서 등을 돌렸다. 지금만 지나면, 우현이 나타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쏴아아. 빗소리가 점점 거세어지고 있었다.

그 빗줄기를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던 등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렇게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왜…… 내 앞에 나타난 거야.”

우현만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예빈은 음악 같은 것 모른다고 생각하며 살 수 있었다. 원하던 대로 독일어를 전공해서…….

생각의 흐름이 끊겼다. 예빈은 입술을 꾹 깨물면서,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거짓말이다. 모두 거짓말이다. 뭐가 음악 같은 것 모른다는 건가. 아직도 이렇게 미련이 철철 넘치고 있으면서. 힘껏 붙잡을 수 없게 되자, 먼저 등을 돌린 것은 예빈 쪽이었다. 그렇게 등을 돌리고 차라리 모두 포기할 수 있었으면, 그랬으면 차라리 이렇게 하루하루 절망을 등에 업고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마치 예빈을 탓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괜히 우현의 탓을 하는 것은 그만두라고, 다그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예빈은 천천히 다시 등을 돌려 창가로 다가갔다. 여전히 그곳에 보이는 등. 예빈은 아버지 방으로 들어가 적당한 옷을 찾은 뒤에, 수건과 우산을 두 개 챙긴 뒤에 현관문을 열었다. 우산 하나를 들고 정원을 가로질러, 우현의 앞에 다가왔다.

예빈의 등장에 놀란 우현은 벌떡 일어섰고, 빗줄기에 이미 온 몸이 젖어버린 우현에게 다짜고짜 우산을 내밀었다. 우현이 그 우산을 받아쓰자, 한숨을 내쉬며 수건으로 머리와 얼굴을 닦아주었다. 차갑게 식어서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고 있으면서, 어쩜 이렇게도 고집스럽게 꼼짝을 안하고 있었을까.

예빈은 혀를 끌끌 차면서,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옷을 우현에게 걸쳐주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으려고?”

예빈이 해주는 대로 잠자코 있던 우현은 아무 말 없이 예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 시선에 먼저 시선을 돌린 것은 예빈 쪽이었다. 이 시끄러울 정도의 빗소리가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 어색함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있으니까.

“여기서 계속 생각했어요. 왜 우리가 만나게 된 걸까, 라고. 그러다 문득 이상한 점이 있었어요. 처음에 만났을 때 누나, 제가 ‘1학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죠? 보통 다른 학교 명찰 색만 보고 몇 학년 인지 알 수가 있었을까? 라고 말이죠.”

“…….”

흠칫. 예빈의 눈이 크게 떠졌다. 놀라서 우현을 바라보는데, 우현은 덤덤하게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사실 누나네 학교에서 이 집까지 오는데, 굳이 저희 학교 쪽을 지나갈 이유는 없어요. 오히려 돌아가는 길을 굳이 택했던 이유가 뭘까, 라고.”

예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우현은 ‘정답’을 찾아냈다.

“차라리 포기하면 편했을 텐데, 포기할 수 없었던 거죠? 사실은 음악을 계속 하고 싶었던 거죠?”

“아니야!”

예빈은 인정할 수 없었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이 마음은 흘러넘치다 못해 터져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후에 어떻게 될지, 예빈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이 입안이 바싹 마르는 듯한 느낌은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았다.

“왜 자신의 마음조차 외면해요? 누나, 정말로 포기했다면, 아무렇지도 않아야 해요. 두렵다고 했죠? 음악과 관련되는 것이 무섭다고 했죠? 왜 두려워요? 정말로 포기했다면 두려울 게 뭐가 있어요? 안 그래요?”

“아니야! 아니야!”

결국 예빈은 손에 들고 있던 우산조차 놓아버리고, 비를 온 몸으로 맞으면서도 손으로 귀를 막아버렸다. 우현의 말을 거부하던 예빈이 결국 또 다시 우현에게서 등을 돌렸지만, 이번엔 우현이 그렇게 도망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우현도 예빈이 건넨 우산을 놓아버리고, 대신 예빈의 팔을 잡아당겨 자신과 마주보게 했다.

“내가 두려워요? 왜 두려운데요? 누나가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깨닫게 만드니까 두려운 거잖아요? 안 그래요?”

“이거 놔!”

찰싹.

예빈의 손에 결국 우현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리고 오히려 당황한 예빈이 자신의 손과 우현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하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고개가 돌아간 상태로 우현은 아무 말이 없었고, 입을 달싹 거리던 예빈이 먼저 말을 꺼냈다.

“네가 뭔데. 네가 뭘 알아. 잡을 수가 없게 되었어. 네 말대로 완전히 포기하지도 못했어. 그런데? 그래서 어쩌라고? 더 이상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바라보며, 내 가슴은 어디까지 망가져야 하니?”

빗물과 예빈의 눈물이 섞였다.

시야를 가리는 빗물 사이로, 파르르 떨리는 예빈의 속눈썹이 보였다. 가늘게 떨리고 있는 작은 어깨가 안타까워, 우현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 놔주면 당장은 이 작은 어깨가 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해결책이 되진 않을 것이다.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은 비단 예빈의 가슴만이 아니었다. 우현도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안타깝게도 아련했지만, 지금 예빈을 놓아주면 끊임없이 제대로 도망치지도 못할 도망을 치느라 예빈은 계속 힘들어질 것이다.

“전에 누나가 내 등을 밀어줬죠? 이번엔 내가 누나 등 밀어줄게요.”

우현은 웃었다. 이제부터 더욱 씩씩해져야 한다는 예감 속에, 우현은 예빈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짜증이 나면 짜증을 부려도 좋아요. 다 받아줄게요. 때리고 싶으면 때려요. 까짓 그것도 다 받아줄게요. 울고 싶으면 울어요. 소리치고 싶으면 소리치고. 여기서, 누나 옆에서 다 받아줄게요. 그러니까 누나, 괴로워도 한 발자국 나와요.”

바보 같은 아이다. 바보 같이 착하고, 바보 같이 정도 많고, 바보 같이 필사적이다.

하지만 예빈은 더욱 바보였다. 그리고 겁쟁이였다. 상처에 몸부림치면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던 이 껍질. 예빈은 이 껍질을 깨고 나갈 용기 따위 이미 오래 전에 잃어버렸는데. 이 바보 같은 아이는 그런 예빈을 대신하여 그 껍질을 깨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다.

“바보구나. 그게 가능했다면, 내 4년이 이렇진 않았을 거야.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난 더 겁쟁이니까. 날 위해 필사적이 되어주어서 고맙지만, 미안해. 난 너무 지쳤어. 이 모든 미련과 집착을 끊어내는 것에 집중할 거야. 돌아가, 너의 자리로. 난 나의 자리로 돌아갈 거야.”

망가져버린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기엔,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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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인 파가니니에게서 영감을 받고..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겠다던 리스트의..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를 리스트 버전으로 만든 곡입니다.


본래는 종소리, 라는 뜻입니다만.

음악을 들어보면 어쩐지 빗소리를 닮았다 느끼는건..

저 뿐일까요? ^^;


비가 오는 날에 잘 듣는 곡이 몇 곡 있는데..

그 중 한 곡이 이 라 캄파넬라입니다~


제 길이 아니라 판단하여 교사의 길을 걷진 않았지만..

사범대 출신이다 보니 4학년 때 교생실습을 다녀왔었지요.

힘들어, 적성에 안맞아.. 라고 생각했고,

한달의 교생실습이 끝나는 순간, 3일을 내리 앓아 누웠습니다만.

그래도 좋은 추억 중의 하나입니다.


대부분의 친구들과는 점차 자연스럽게 끊어지고 말았습니다만.

지금까지도 한 번씩 연락을 주고 받는 친구가 있습니다.


벌써 고등학생이 되어, 진로 고민도 하고,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기도 하고..


아직도 절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친구가 남겨준 연락에,

두근거림과 행복을 느꼈습니다. ^^ [웃음]


※ 흔적을 남겨주신 분들을 언제나 격하게 애정합니다 *-_-*


silverwolf님,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

첫타셨군요~ 앞으로도 발자국 잘 부탁드립니다~


오봉산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오, 그런 가요? 부족하지만 기대에 응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_+


카이리시스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기대에 응할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만;ㅁ;

열심히 달려봐야겠죠? ^^*


앤드류님,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

적어도 일주일에 한편 이상은 올라가도록 하겠습니다~


철LovE님, 으음.. 비가와서 더 어울리는 음악2탄, 입니다만.

읽고 계실 때 날씨가 어떨 런지 모르겠네요. ^^

또 태풍이 온다고는 합니다만;

저도 MP3나 컴퓨터로만 음악을 들었는데..

부쩍 좋은 오디오를 갖고 싶어집니다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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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미완성교향곡 - (29) +4 12.06.11 518 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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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미완성교향곡 - (27) +3 12.06.02 615 9 12쪽
26 미완성교향곡 - (26) +3 12.05.27 518 8 12쪽
25 미완성교향곡 - (25) +3 12.01.23 566 9 13쪽
24 미완성교향곡 - (24) +3 12.01.08 560 12 11쪽
23 미완성교향곡 - (23) +5 11.09.11 665 11 19쪽
22 미완성교향곡 - (22) +4 11.06.25 774 10 10쪽
21 미완성교향곡 - (21) +6 11.04.04 716 10 19쪽
20 미완성교향곡 - (20) +5 11.03.29 795 8 10쪽
19 미완성교향곡 - (19) +3 11.02.02 806 8 20쪽
18 미완성교향곡 - (18) +6 10.12.11 776 8 11쪽
17 미완성교향곡 - (17) +6 10.10.24 900 8 11쪽
16 미완성교향곡 - (16) +4 10.10.20 871 5 10쪽
15 미완성교향곡 - (15) +4 10.10.10 921 7 17쪽
14 미완성교향곡 - (14) +4 10.10.03 802 7 18쪽
13 미완성교향곡 - (13) +5 10.09.23 879 11 19쪽
12 미완성교향곡 - (12) +6 10.09.19 873 8 18쪽
11 미완성교향곡 - (11) +7 10.09.12 909 9 16쪽
» 미완성교향곡 - (10) +4 10.09.05 920 7 12쪽
9 미완성교향곡 - (9) +6 10.09.01 1,094 8 16쪽
8 미완성교향곡 - (8) +4 10.08.31 1,074 9 13쪽
7 미완성교향곡 - (7) +4 10.08.29 1,042 5 13쪽
6 미완성교향곡 - (6) +5 10.08.26 1,121 7 13쪽
5 미완성교향곡 - (5) +4 10.08.25 1,146 6 9쪽
4 미완성교향곡 - (4) +6 10.08.24 1,297 6 11쪽
3 미완성교향곡 - (3) +6 10.08.23 1,460 9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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