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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눈물의 잔상

미완성교향곡

웹소설 > 작가연재 > 로맨스

완결

홍라온
작품등록일 :
2012.07.25 14:05
최근연재일 :
2012.07.2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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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20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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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미완성교향곡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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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2. Sarah Mclachlan - When she loved me.


굳이 이곳까지 함께 할 필요는 없었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거니와, 솔직히 말해 남의 사정이니 자신이 갈 길을 가버리면 그만이기도 했다. 하지만 괴로운 현실과 마주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그 등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4년 전 그 날. 확실히 끝을 맺지 못한 이야기는 여전히 앙금으로 가슴 한켠을 묵직하게 붙들고 있기 때문에. 그러나 이 소년은 외면해버리고 싶은 시간일 텐데도 도망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련과 마주하기 위해 두 손을 꽉 쥐고 있는 이 등만큼은 떠밀어주자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버렸다.

“어떤 식이라도 좋아. 잘 마무리 짓고 와.”

공항으로 들어서자마자, 그 등을 힘껏 밀었다.

“……돌아가지 말아주세요. 여기로 다시 돌아올 테니까.”

“……다녀와.”

예빈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현은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사람들의 틈을 헤치며 달려가더니, 이내 그 뒷모습마저도 사라졌다. 홀로 남겨진 예빈은 살짝 한숨을 내쉬고 비어있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독일…… 인가.”

묘한 울림으로 가슴이 아려온다. 주위에 들려오는 소음들 대신 귓가에 들려오는 것은 바이올린의 음색과 박수소리. 행복으로 충만하던 기억은 곧 핏빛으로 물들었고, 예빈은 괴로운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격하게 요동치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조심스럽게 다시 눈을 떴다. 이미 4년이나 지난 이야기. 아니, 아직도 4년밖에 되지 않은 이야기.

“후우.”

답답한 마음은 씻을 길이 없지만, 좀 더 많은 산소를 받아들이자 조금은 맑은 정신이 돌아왔다. 굳어있던 몸을 쭈욱 피며 고개를 들자 인파속으로 사라졌던 우현이 다시 돌아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멀리서 예빈을 발견하자 사라질 때처럼 전력질주를 해서 다가왔다.

“다녀왔어요.”

“……어서와.”

그냥 무뚝뚝한 얼굴. 하지만 그 말에 우현은 너무나도 안심이 되어버렸다. 계속해서 긴장상태를 유지해왔고,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 부은 느낌으로 마지막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 무덤덤한 한 마디가 이다지도 가슴을 따스하게 만들어줄까.

우현은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아, 혹시 오늘 바쁜 일 있으셨던 건 아닌가요? 아니지. 그러고 보니 수험생이셨죠?! 핫, 그럼 제가 귀중한 시간을 빼앗아버린 건가요?”

“수험생인 건 사실이지만, 별로 거기 집착하고 있진 않으니 걱정 마. 그렇게 아슬아슬한 상황도 아니고, 어느 쪽이냐면 그래도 여유 있는 편에 속하니까.”

또 땀이 송글송글 맺힌 우현의 이마를 손수건으로 조심스레 닦는다. 그 움직임이 어쩐지 ‘수고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기분 좋게 두근거렸다.

“아, 이 손수건, 제가 빨아드릴게요!”

예빈이 손수건을 다시 집어넣으려고 하자, 우현은 그 손수건을 잡으며 외쳤다. 아까부터 계속 우현의 땀으로 젖어버리고 있는 고운 손수건에게 어쩐지 미안해졌기 때문이었다. 재빨리 손수건을 낚아채가는 우현을 잠시 바라보던 예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렇다면 부탁할게.”

“아, 저. 그리고 오늘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천만에.”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걷기 시작한다.

“답례를 하고 싶은데요.”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뭐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것뿐이니까.”

딱 잘라 말하는 예빈의 말에 잠시 볼을 긁적이던 우현은 예빈의 교복 자켓을 손에 쥐며 말했다.

“답례라는 것은 사실 핑계……예요. 사실은 지금 혼자 있고 싶지 않아요.”

예빈의 그 동그랗고 새카만 눈동자가 우현을 향한다. 우현을 살피는 것처럼 똑바로 우현과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시간 괜찮으시면 조금만 더 시간 내주지 않으실래요? 답례도 겸해서 피아노 연주 해드릴게요. 아, 클래식 같은 것 모르신다고 하셔도 상관없어요. 저도 격식 차리고 뭐 그런 것은 싫어하니까, 저…….”

열심히 예빈을 설득하려는 듯 필사적인 우현의 표정을 보며 예빈은 잠시 말이 없었다. 자신다운 행동은 이 팔을 뿌리치고 이제 각자 갈 길 가자, 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그의 연주가 듣고 싶다는, 지극히 충동적인 생각이 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래, 그러지 뭐.”

“…….”

“네 피아노 듣겠다고.”

우현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아, 감사합니다!”



우현이 안내한 곳은 한 카페 겸 호프집이었다. 당황하는 예빈에게 점장과 아는 사이인데, 그 점장이라는 사람이 수요일은 가게를 열지 않아서 그 날은 우현의 연습실로 사용한다고 했다. 하지만 당황스러운 것은 당황스러운 것이라 멍하니 있는데, 우현은 익숙한 걸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버렸다.

괜한 짓을 한 것 아닌가 후회를 하면서도 일단 따라 들어가 보니, 가게 중심에 피아노 무대가 마련되어 있고 그곳을 중심으로 몇 군데의 불을 켜고 있는 우현이 보였다. 닫혀있던 공간이었기 때문에 환기를 시키는 의미로 창문을 몇 개 열고, 자연스럽게 음료수를 꺼내서 예빈에게 건넸다.

그러더니 우현은 척척 걸어가 가방을 던져놓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여기까지 온 이상 별 수 없다는 생각에 예빈도 그 뒤를 따라가 피아노 옆에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걸터앉아 짐들을 내려놨다. 피아노에 연결된 마이크까지 켜고는, 잠시 손목을 풀던 우현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먼저 제 초대에 응해주신 것에 감사를 표하며, secret garden의 invitation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곧 우현의 손가락이 건반 위에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그 연주에 예빈은 의외라는 듯 놀란 표정이 되었다. 물론 예고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는 학생이니 피아노를 못 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아주 대단한 실력이라고도 기대하지 않았다.

범상치 않은 연주다. 그저 악기의 소리를 낼 뿐인 것이 아닌, 마음에 울리는 ‘연주’를 하고 있다.

예사 실력이 아니었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그동안 배워온 선생님이 그만두시게 되셨어요. 그래서 새로운 선생님으로 나타난 것이 그녀였죠. 지금은 결혼한 사촌형의 소개였어요.”

피아노 실력에 놀라 잠시 멍해진 예빈의 귀로 우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밝게 시작했던 목소리가 아니라 조금은 가라앉아버린 목소리다.

바람에 나부끼는 커튼을 바라보며, 예빈은 우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당시에 그녀가 대학교 3학년이었으니, 저와는 7살 차이가 나죠. 피아노에 딱히 꿈을 갖고 있지 않았던 제가 처음으로 진지하게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만들어 줬어요. 그냥 풋내기의 사랑이었을 지도 모르지만, 전 정말로 좋아했어요. 아니, 사실은 지금도 좋아해요.”

우현 그 자신의 피아노 연주는 배경음악이 되었고, 조곤조곤 말하는 우현의 목소리는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었다.

“저한테 다정했기 때문에 언젠가 제가 조금 더 자라면, 뒤를 돌아봐 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다정함에 깔린 감정이 제 감정과 다른 종류라는 걸 깨닫기 까지.”

어느새 피아노의 곡조는 바뀌어 있었다. 예빈은 눈을 감고 우현의 피아노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녀의 시선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향한다는 걸 알았지만.”

애절한 마음이 음색에 절절이 묻어난다. 어쩐지 동화되어버리고 만 그 감정에 예빈은 무심코 대답하고 말았다.

“……그래.”

“사랑이 아닌 거라고 말했지만 전, 누가 뭐래도 나의 첫 사랑이었다고 생각해요.”

“……응, 그래.”

곧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익숙한 곡조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현의 목소리가 노랫가락을 형성했다.

“When somebody loved me everything was beautiful every hour spent together lives within my heart. (그 누군가가 나를 사랑했을 때 이 세상 모든 것은 아름다웠지. 함께 했던 그 모든 시간들은 나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어.)”

너무 굵진 않은 부드러운 목소리가 어우러져 피아노의 노랫소리는 더욱 애달프게 뜨거운 마음을 대변한다.

마치 그 마음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열려있던 창문 밖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소리와 피아노. 그리고 우현의 노래. 나른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서, 예빈은 천천히 눈을 뜨고 우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And when she was sad I was there to dry her tears and when she was happy so was I when she loved me. (그리고 그녀가 슬퍼할 때 나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고, 그녀가 행복할 땐 나 또한 행복했지, 그녀가 날 사랑할 때는.)”

그래, 너는 사랑을 했구나. 예빈은 그렇게 생각했다. 분명 괴로운 일이 더 많았을 마음을 품고 지금까지 왔구나, 라고. 예빈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Through the summer and the fall we had each other that was all just she and I together like it was meant to be. (여름이 가고 가을이 지나도 우린 서로의 곁에 있었지. 마치 서로 그렇게 마련된 운명이었던 것처럼 그녀와 난 함께였어.)”

한참을 만나지 못한 누군가의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그 시간 속에서, 그가 있어서 행복했다. 그와 함께 할 미래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신의 꿈에 함께 있는 것이 당연했던 사람. 빛나는 박수갈채 속을 손을 잡고 걸어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And when she was lonely I was there to comfort her and I knew that she loved me. (그리고 그녀가 외로워 할 때 난 그녀를 위로했었지. 난 그녀도 날 사랑한단 걸 알 수 있었어.)”

분명 그의 잘못이 아니었는데도 그는 나에게 용서를 구했다. 자신에겐 그럴 자격이 없다며, 자신은 이제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고도 덩달아 미래를 포기하려 했었다.

“So the years went by I stayed the same but she began to drift away I was left alone still I waited for the day when she'd say 'I will always love you'. (시간이 지나도 내 사랑은 변하지 않았지. 하지만 그녀는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고, 난 홀로 남겨졌어. 그래도 난 아직도 믿고 있을래. 너를 영원히 사랑하겠다며 내게 돌아올 그녀를.)”

예빈은 그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렇게도 작은 자신.

“Lonely and forgotten never thought she'd look my way she smiled at me and held me just like she use to do like she loved me when she loved me. (이젠 상상도 할 수 없게 되겠지. 홀로 외로이 버려진 내게 그녀가 돌아와 내게 미소지어줄 거란 것은. 그리고 예전에 나를 사랑해주던 때처럼 날 안아줄 거란 것은 모두 헛된 꿈이 되겠지.)”

슬며시 눈을 뜨니 불안하던 우현의 목소리가 결국 울먹임과 뒤엉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눈에서 흐르고 있을 눈물은 뒤에서 보이지 않았지만,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단 것은 느낄 수 있었다.

“when somebody loved me everything was beautiful every hour spent together lives within my heart when she loved me. (그 누군가가 나를 사랑했을 때 이 세상 모든 것은 아름다웠지. 함께 했던 그 모든 시간들은 나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어.)”

몇 번인가 반복되는 그 후렴구가 완전히 잦아들 때까지, 예빈은 그저 아무 말 없이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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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읽어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


#1. 음악


저에게 음악은 항상 '한'이었습니다.


음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지 못했기에 참..

힘겹게 가슴에 묻어야만 했던 것이 음악이었고.


사실 돈이 안 드는 방법을 찾다보니 발견한 것이 '글'이었죠;

그게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만;


그래서 글 속에서라도 대리만족을 느껴보고 싶었다, 랄까요.


또 한편으로는 '천재'가 될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한 저이기에,

저에겐 동경의 영역인 '하늘의 재능'을 가진 주인공들에게서..


마찬가지로 대리만족을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


#2. 지극히 나다운 글


이 글은 그야말로 지극히 저다운 글일 겁니다.

제 스타일이 가장 많이 녹아들어가 있는 구성이고,

주인공이고, 이야기입니다.


아직 미완성인 청소년들인 주인공들을 내세워,

그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잡아내는 것.


그 특징을 내세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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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미완성교향곡 - (11) +7 10.09.12 909 9 16쪽
10 미완성교향곡 - (10) +4 10.09.05 919 7 12쪽
9 미완성교향곡 - (9) +6 10.09.01 1,094 8 16쪽
8 미완성교향곡 - (8) +4 10.08.31 1,074 9 13쪽
7 미완성교향곡 - (7) +4 10.08.29 1,042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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