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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눈물의 잔상

미완성교향곡

웹소설 > 작가연재 > 로맨스

완결

홍라온
작품등록일 :
2012.07.25 14:05
최근연재일 :
2012.07.2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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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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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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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16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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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교향곡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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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30. 라흐마니노프(Sergei Vasilyevich Rachmaninoff) – 피아노 협주곡 2번(Piano Concertos No.2 C minor)


허리까지 닿는 긴 생머리는 일견 답답해 보일 수도 있었지만, 예빈의 작은 체구와 청순해 보이는 외모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었다. 가벼운 화장을 하고, 고급스러운 원피스를 걸친 채 거울을 마주하고 있는 예빈의 얼굴에는 화사한 생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의 이 날을 얼마나 고대하고 있었던가.

얼굴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예빈이었지만, 점점 자연스럽게 감정이 표출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잘 웃고, 화가 나면 화도 잘 내고, 게다가 잘 울기도 한다. 아마 우현이 보면 조금은 놀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예빈은 또 작게 웃었다.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거려서, 깊게 심호흡을 한 예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여 구겨지기라도 할까 싶어 애지중지하던 초대권을 챙기고, 거울을 보며 다시 한 번 옷매무새를 다듬은 다음 집을 나섰다.

서둘러 귀국하고 이제야 겨우 시차 적응을 끝낸 시점에서의 첫 외출. 오랜 만에 밟는 고국 땅에 대한 만감이 교차할 법도 했건만, 예빈에게는 별로 감흥이 없었다. 그저 어서 도착하기만을 바라고 있던 곳에 도착을 하자, 예빈은 벅차오르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하고 주위를 둘러보며 가슴에 손을 얹었다.

드디어 100%의 차예빈이 되어, 서우현을 만나러 왔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관통하는 짜릿함을 음미하고 있던 예빈에게 갑자기 한 청년이 다가왔다. 멀리서 계속 예빈을 쳐다보고 있던 그는 뿔테 안경을 고쳐 쓰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차예빈 씨?”

“……그런데요.”

고개를 갸웃하는 예빈을 바라보며, 청년, 정후는 잠시 이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예빈의 손에 들려있는 초대권에 시선이 닿자, 묘한 시선으로 예빈을 응시하다가 작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우현이 친구 김정후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정후의 말에 예빈은 활짝 웃으며 손을 마주 잡았다. 가볍게 악수로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정후의 안내로 함께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팸플릿을 챙겨들고 자리에 앉게 된 예빈은 팸플릿에 인쇄된 우현의 사진을 보며 미소 지었다.

기억하고 있던 모습 그대로인 것 같으면서도, 앳된 모습 대신 어른이 된 것 같았다. 그의 지난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몰려왔지만, 그래도 그를 다시 만날 기쁨에 웃고 있는 예빈의 옆모습을 힐끗 바라 본 정후는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기사 잘 봤어요.”

“……네?”

“해외 기사라 우현이 녀석을 포함해서 대부분 모르고 있지만, 콘서트가 끝나거든 연인을 만나러 가겠다던 기사요.”

“아.”

정후의 말에 예빈은 잠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직접 듣지 못해 뭐라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던데. 하지만 긴장의 끈은 놓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서우현 저 녀석, 본인만 깨닫지 못하고 있지, 생각보다 더 대단한 녀석이니까.”

팸플릿을 바라보는 듯 했던 정후는 씨익 웃으며 예빈에게 고개를 돌렸다.

“제 유일한 라이벌이거든요. 뭐, 이번에는 저 녀석이 솔리스트 자리 꿰찼지만, 다음번에는 저도 지지 않을 겁니다.”

정후의 개구진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던 예빈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래도 우현이 멋진 친구를 사귄 모양이었다.

“오늘 무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오늘의 서우현을 보면, 아마 다시는 곁을 떠날 생각 같은 건 할 수 없을 걸요?”

“……떠날 생각 없어요, 다시는.”

은근슬쩍 떠본 말에 예빈은 다부진 얼굴로 대답했다.

이 이상은 정후가 나설 부분이 아니었기에 그대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고, 그 사이에 무대의 막이 오르기 시작했다.

박수 소리와 함께 우현과 지휘자가 등장했고, 예빈의 눈동자가 반짝 빛나며 우현의 모습에 고정되었다. 사진만으로도 가슴이 뛰었지만, 실물을 보니 더욱 심장이 터질 듯이 요동친다.

우현이 피아노 앞에 앉자, 예빈은 저도 모르게 양손을 부여잡고 마치 기도하듯 우현을 바라봤다. 숨이 막힐 것만 같은 긴장감을 뚫고 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했고, 음 하나하나 흠뻑 젖어들게 만드는 흡인력으로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한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라흐마니노프가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실패를 딛고 재기하여 세상에 발표한, 걸작 중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절망을 비틀어 짜내는 듯 한 피아노 음이 우현의 손가락 끝에서 탄생하고 있었다.

끝없는 고뇌를 말하는 것처럼, 그 답답함에 몸부림을 치는 것만 같은 연주였다.

우현의 모습을 뜯어보던 예빈도 어느 새 그 음악에 푹 빠져들기 시작했다.

지켜보는 이들 마저 긴장하게 만들며, 오케스트라와 우현, 그리고 지휘자가 만들어 내는 하모니가 이곳을 지배한다. 그 지배하에 들어선 이들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그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온 몸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듯 한 감각이었다. 지금 우현이 무아지경이 되어 쏟아내고 있는 이 감정들이 예빈의 모든 감각을 일깨우고 있었다. 언젠가 들었던 베토벤의 열정보다도, 그 때보다 더욱 농익은 열정을 쏟아내고 있는 우현의 모습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무대 위의 우현이 너무나 멋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나 가슴이 아렸다.

우현에게 너무나 많은 짐을 지게 만들었던 것은 이기적인 자신이었다. 그런데도 우현은 덤덤하게 그 짐을 받아 들었고, 한 번도 그것을 탓하지 않았다. 그렇게도 넓고도 넓은 우현의 그릇에는 이렇게도 아름다운 것들이 가득 차있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 지 그 감각조차 잊어 버리고, 그저 이 찬란한 음악에 마음을 빼앗겼던 예빈의 눈에서는 언제부터인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과연 정후의 예언대로 였다.

예빈은 평생 오늘의 이 연주를 잊지 못할 것이다.

눈을 깜빡이자 또 다시 볼을 타고 눈물이 흘렀고, 그와 동시에 휘몰아치던 연주가 끝났다.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연주를 끝낸 우현은 거친 호흡을 내뱉었고, 곧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연주의 여운을 메꾸었다.

사람들과 함께 예빈도 정신없이 박수를 치고 있었고, 관객들을 바라보던 우현도 활짝 웃었다. 공연이 무사히 끝났다는 뿌듯함에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한 번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우현을 향해, 모두 다시 한 번 큰 박수를 보냈다.

밝게 웃으며 객석을 바라보던 우현의 시선이 어딘가에서 뚝, 멈췄다.

온 몸이 경직된 것처럼 굳어버린 우현은 정말 기절할 것처럼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몇 번이고 눈을 깜빡였다.

객석에 자리 잡고 있을 가족들이나 친구들을 살피려던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곳. 정후와 함께 앉아 미소 지으며 박수를 보내고 있는 사람. 이곳에 있을 리가 없다고, 혹시나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인가 싶어 몇 번이고 눈을 깜빡거려 보았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열광적인 박수 소리가 진정이 되어갈 무렵, 모두들 기겁을 할 사태가 벌어졌다.

무언가에 놀란 듯 경직되어 있던 솔리스트가 갑자기 무대에서 뛰어 내린 것이다. 헉,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들 눈을 휘둥그레 뜨는 가운데, 우현은 그대로 달려갔다. 대체 뭐냐면서 모두의 고개가 돌아갔고, 한 여인의 앞에 멈춰선 우현의 모습에 모두들 웅성웅성 거렸다.

옆에 있던 정후가 절래 절래 고개를 흔들다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도 예빈과 우현에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꿈인지 생시인지, 아니, 서로를 알아보는 심장의 두근거림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리웠다. 애타게 그리웠다.

“100%의 차예빈으로 드디어 서우현에게 돌아왔어.”

눈물이 흐르면서도 말갛게 웃는 예빈을 바라보며, 우현은 대답 대신 행동을 보였다.

예빈의 팔을 끌어당겨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자신의 품에 들어오는 예빈의 허리를 끌어안는 것과 동시에 예빈의 입술을 빼앗았다. 멈칫 하던 예빈도 우현의 목을 끌어안았고, 더욱 깊어지는 두 연인의 키스에 어느 순간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무슨 상황인가 하던 사람들이 이 영화 같은 장면에 박수를 보냈던 것이다.

긴 이별의 시간들을 메꾸겠다는 것처럼 서로를 갈구하는 키스는 한동안 길게 이어졌고, 한참만에야 정신을 차린 그들은 연주회를 망치고 말았다는 생각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불안한 얼굴로 무대를 바라본 우현은 연주회 분위기를 망친 해프닝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는 지휘자님과 동료들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고개를 숙이면서 감사 인사를 건넨 우현은 사람들의 갈채를 받으며, 그 언젠가의 기억에서처럼. 예빈을 덥석 들어 끌어안고는, 냅다 달려서는 밖으로 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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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공부도 아니고 딴짓거리를 하다가..
...양심의 가책을 느껴 부랴부랴 쓴 편입니다; *-_-*

옥탑방 왕세자 내맘대로 결말 만들기.. 놀이에 심취하여..
그리고 다른 분들이 만들어 주신 결말에도 달리다 보니..
막상 제 글은 뒷전(...)이 되고 말았..... [쿨럭]

그런데 요새..
어째 요상하게 막판이 되니 선작이 자꾸 스물스물 올라가네요?;
이제 곧 완결인데...?;;; 라는 물음표가 둥둥입니다^^;
아, 혹시 그래서 올라가는 건가요, 혹시? -_-?;;;

아무튼 이번 편은 너무나 유명한 곡으로 보내 드립니다~ ^^
오늘도 뉘신지 모르는 분(...)의 링크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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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56 sard
    작성일
    12.06.16 15:50
    No. 1

    만났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4 Stellar별
    작성일
    12.06.16 17:30
    No. 2

    우왕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드디어ㅠㅠㅠㅠ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I미르I
    작성일
    12.06.17 03:17
    No. 3

    ㅎㅎ 드디어 만났군요 ^^
    이제 그만 괴롭히기로 하신 건가요, 작가님?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 앤지
    작성일
    12.06.17 17:23
    No. 4

    앗! 드디어 만났네요!! ㅎㅎ 이젠 고생 그만 시키고 해피앤딩 해주실꺼죠?
    아참...우현이가 예빈이를 일으켜 세우고 키스하는 장면에서...난 왜 일으켜 세우지? 했더니...기립박수가 아니었네요..ㅎㅎ 기왕이면 기립박수 치게 만들었으면 일으켜 세울필요도 없이 그냥 폴싹 안길텐데...^^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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