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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눈물의 잔상

미완성교향곡

웹소설 > 작가연재 > 로맨스

완결

홍라온
작품등록일 :
2012.07.25 14:05
최근연재일 :
2012.07.2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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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24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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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교향곡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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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17. 자우림 - 청춘예찬


한참만에야 진정된 예빈에게 우현은 밀크티를 내밀었다. 그 컵을 멍하니 받아든 예빈은 컵의 온기를 느끼다 넋이 나간 얼굴로 조심스레 한 모금을 마셨다.

“난 내가 그렇게 착하다고는 생각 안 해. 난 나밖에 모르고, 내 감정만이 중요해. 그런 내가, 내 심장이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해. 왜? 용서할 수 없다고 내 심장이 외치는데, 왜 용서를 해야 해? 왜 그래야 하는데?”

예빈의 눈동자가 우현을 향했다.

[눈물이 가만히 내 입술을 적시네. 고독이 조용히 내 어깨를 감싸네.]

“이해받지 못한다고 해도 좋아. 내가 나쁘다고 욕해도 좋아. 그런 것쯤 얼마든지 받아들여 주겠어. 나도 내가 옹졸하다는 것쯤 알고 있고, 나도 내가 나쁘다는 것쯤 알고 있으니까.”

그저 예빈의 안에 잠재된 광기를 누르는 것이, 과거의 연인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였다.

마주 볼 생각도 없다.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와의 시간을 과거 속에 묻어버리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예빈은 자신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다니엘을 추락시키고 싶어질 테니까.

“너도 내가 틀렸다고 생각해?”

우현은 잠시 수많은 감정을 삼키다, 한참만에야 미소를 보였다.

“사람이 사람에게 틀렸다고 말할 자격은 없어요. 그리고 누나, 난 누나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떠나지 않을 거니까요.”

[하늘은 가슴 시리도록 높고 푸르고 젊은 나는 젊은 날을 고뇌하네.]

아마도 예빈은 우현에게서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았다.

예빈이 아무리 틀렸더라도, 나쁘더라도, 손가락질을 받아도, 끝까지 예빈의 곁에 있어주겠다는 말. 우현의 상냥함에 기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참 못났다는 생각이 들어, 예빈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입술이 힘겹게 미소 짓는 것과 동시에 예빈의 눈동자에서는 소리 없이 눈물이 흘렀다.

“나는 참 못된 것 같아. 널 계속 이용하고 있거든.”

“괜찮아요. 얼마든지 이용해요. 언제든지 이용당해 줄 테니까.”

그 말에 예빈은 작게 키득거렸다.

다니엘과 재회하고도 웃을 수가 있다는 사실에, 예빈은 스스로도 놀랍다 생각했다. 마치 우현의 존재 자체가 진정제인 것만 같았다. 온몸의 한기를 몰아낼 수 있는 유일한 온기. 그 따스함을 더욱 느끼고 싶었다.

[침묵이 가만히 내 입술을 적시네. 어둠이 조용히 내 어깨를 감싸네.]

예빈이 우현에게 손을 뻗을 때까지도, 우현은 그 다음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예빈의 팔이 다가와 우현의 목을 감는 것과 동시에 예빈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을 슬로우 모션으로 지켜보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때, 입술에 느껴지는 말랑거리는 느낌.

눈을 감고 있는 예빈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우현은 눈을 감을 생각조차 못했다.

“널 갖고 싶다고 한다면.”

천천히 입술을 떼며, 눈을 내리깔고 있는 그대로 예빈이 입술을 열었다. 우현의 시선이 예빈의 입술에 집중되고, 예빈의 말을 들었으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로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세상은 눈이 부시도록 넓고 환하고 젊은 나는 내 젊음을 절망하네.]

예빈의 시선이 우현의 눈동자를 직시했고, 그 도발적인 눈동자 앞에 우현이 경직되는 것을 보며 예빈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넌 역시 거절할까?”

“……!”

예빈은 우현이 당황하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우현의 목에 감고 있는 팔을 푸르지 않았다. 우현에게 밀착된 몸에서 그가 얼마나 긴장한 데다 놀라는 중인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숨을 쉴 생각조차 못하고, 심장만 거세게 뛰고 있다.

한동안 우현의 대답을 기다리던 예빈은, 한참만에야 우현에게서 떨어지며 말했다.

“역시 거절이구나.”

고개를 돌리며 우현에게서 떨어지던 예빈은 갑자기 자신의 팔을 붙드는 강한 힘에 놀라 다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잔뜩 경직된 모습이지만, 우현이 드디어 정신을 차린 듯 예빈을 강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라라라라라 일월의 태양처럼 무기력한 내 청춘이여.]

“누나, 설마 다른 데서도 이런 적 있어요?”

“…….”

그 말에 순간 기분이 상하는 예빈이었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사실 외국 생활이 길었던 예빈에게 자신도, 우현도 충분히 독립적인 존재로서 서로 사랑을 나눌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적 정서로는 아직 어린 우현을 생각하여 한 발 물러서긴 했지만, 예빈의 유혹은 진심이었다.

예빈의 찌푸린 얼굴에 우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라라라라라 닿을 수 없는 먼 곳의 별을 늘 나는 갈망한다.]

“누나, 혹시라도 다른 곳에서는 절대 이런 짓 하지 말아요.”

“……왜?”

예빈은 어쩐지 자존심이 상하기 시작했다. 우현이 유혹에 넘어오지 않은 것도 그러했고, 우현이 예빈을 마치 가벼운 여자처럼 여기고 있는 듯한 것에도 그러했다.

“당연하잖아요.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남자는 없으니까.”

“……넌 넘어오지 않았잖아.”

“…….”

“나한테 마음이 있는 녀석에게도 안 통했는데 뭐.”

예빈은 툴툴거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 잔뜩 부어있는 예빈의 얼굴을 바라보며, 우현은 진심으로 깊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마음이 있으니까 넘어가지 않은 거라구요.”

[먼 밤하늘로 천사는 날아오르네. 라라라 순결한 별들이 죄도 없이 지네.]

“지금 난 그저 학생일 뿐이고, 누나를 책임 질 수 없으니까.”

“…….”

“지금도 필사적으로 인내심을 발휘하는 중인데 자꾸 그렇게 퉁퉁 부어만 있으면 상처 받아요, 저.”

예빈은 말을 잃고, 우현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갈 곳을 잃은 외로운 고래와 같이 나의 두 눈은 공허를 보네.]

“안 그래도 전 혈기왕성한 나이라구요. 자꾸 그렇게 자극시키면 곤란해요.”

본능마저도 누르고 있는 우현의 애정에 예빈은 진심으로 감동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누나한테 필요한 건 그저 따스한 온기일 뿐이잖아요. 지친 마음이 원하는 온기 때문에 얼렁뚱땅 거사를 치를 생각은 없어요.”

우현은 예빈의 팔을 잡아당겨, 다시 자신의 품에 끌어안았다. 우현의 품에 폭 안기는 예빈의 부드러운 몸에 순간 이성이 흔들리긴 했지만, 다시 이성의 끈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걱정 말아요. 온기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나눠줄 테니까.”

예빈은 키득거렸다. 정말 우현이 곁에 없었다면 어땠을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내 마음은 언제부터 눈치 채고 있던 거예요?”

우현은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예빈에게 사실 머리에 종소리가 디잉 울릴 정도로 놀랐다. 예빈에게 항상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정식으로 고백한 적도 없는 마음이었다.

“넌 내가 천하의 둔녀라 생각하는 거야?”

예빈의 웃음소리에 어쩐지 얼굴이 달아오르는 기분이다. 어쩐지 뒷통수를 맞은 것도 같은데, 어디다 하소연도 할 수가 없다.

“뭐, 어쩔 수 없지, 아쉽지만. 또 다시 네가 먼저 다가와 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물론 언제 또 먼저 덮칠지 모르니까 알아서 조심해.”

“……!”

[먼 밤하늘로 천사는 날아오르네. 라라라 순결한 별들이 죄도 없이 지네. 갈 곳을 잃은 외로운 고래와 같이 나의 두 눈은 공허를 보네.]

다음에도 본능 대신 이성이 승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현은 어쩐지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뿌듯함과 행복감이 온 몸을 감싸 안기 시작했다.

예빈의 마음 역시 자신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날 안아줄 수 없다면, 대신에 피아노라도 들려줘.”

“그거라면 얼마든지.”

우현은 웃으면서 예빈에게서 떨어지더니, 거실 한편에 있는 피아노로 다가갔다. 그런 우현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주저앉은 예빈은, 다리를 끌어안고 무릎에 턱을 기대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바이올린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네 피아노 소리라도 들려줘.’

입술을 깨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예빈의 귓가에 맴도는 환청. 빛나는 무대 위에서, 혹은 함께 연습하면서 항상 들었던 다니엘의 바이올린 소리가 자꾸만 들려온다. 고장 난 플레이어처럼, 아무리 정지 버튼을 눌러보아도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다.

[라라라라라 일월의 태양처럼 무기력한 내 청춘이여.]

“자, 그럼 시작할게요.”

“응.”

예빈이 다리에 볼을 기대며 고개를 돌렸지만, 우현은 피식 웃으며 연주를 시작할 뿐이었다. 우현의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잠들 수 있도록, 일부러 감미로운 곡을 선택하여 건반 위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피아노 소리에 잡음처럼 섞여 들리는 바이올린 소리에 예빈은 또 입술을 깨물며, 다리를 끌어안고 있는 팔에 힘을 주었다. 손끝을 타고 경련이 시작되고 있었다.

‘바보 같으니.’

[라라라라라 닿을 수 없는 먼 곳의 별을 늘 나는 갈망한다.]

예빈이 천천히 눈을 뜨는 순간,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이 흘러내려 입술을 적셨고, 예빈은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모르는 척 받아주었어도 괜찮았잖아.’

한편으로는 야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쁘다. 그 상반된 감정 속에서 예빈만 속이 타는 것 같았다. 천하의 차예빈이 서우현에게 이리도 끌려 다니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스스로도 스스로가 신기한데 말이다.

[눈물이 가만히 내 입술을 적시네.]

“바보 멍청이 서우현.”

우현의 피아노 소리가 결국 바이올린 소리를 덮어버릴 즈음, 예빈은 우현에게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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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힛; 이번은 약간 아슬아슬 편입니다(<-)


자우림을 좋아하는 지라,

이미지 곡으로 등장한 것이 상당히 늦은 감이 있죠 ^^;


#1을 원래부터 좋아했고,

그 곡을 리메이크 해서 재탄생 시킨 이 청춘예찬도..

무척이나 좋아하는 곡입니다.


자우림의 감성은 언제나 '절절'하달까요.

그들이 왜 보랏빛 비가 내리는 숲, 인지..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합니다. ^^ [웃음]


※ 흔적을 남겨주신 분들을 언제나 격하게 애정합니다 *-_-*


silverwolf님,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열심히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orz

아직 스스로도 완전히 결정을 못 내렸지만요;ㅁ;


카이리시스님, 어라?; 링크 걸어두었는데요!

다른 분 블로그이긴 하지만;;(...)

오늘 분량은 제 블로그에 평소처럼 걸어두었습니다^^


앤드류님, 그러게 말입니다;ㅁ;

그래도 이번엔 좀 빨리 데리고 왔습니다! ^^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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