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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달에 울려퍼지는 소나타

그로스(growth)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적월소나타
작품등록일 :
2024.01.05 16:04
최근연재일 :
2024.04.08 19:00
연재수 :
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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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1,998

작성
24.01.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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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 노스피아 원정대 (5)

DUMMY

이곳은 센트럴시티 대성당에 위치한 텔레포트 룸. 방이라고는 해도 거의 왠만한 집터보다 넓은 광장 수준의 크기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수백명의 인원들이 저마다 바삐 움직이고 있었지만 전혀 비좁아 보인다던가 불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야, 어디 좋은 사냥감 없냐?"

"음... 글쎄?"

"쳇, 오늘도 헛다리인가...."

중앙에 위치한 텔레포트 마법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세 사람이 비밀스럽게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하얀 여행자용 로브를 걸치고서 보따리를 맨 그들. 겉으로 보기엔 그저 평범한 옷차림의 상인들로 보였지만 그들의 얼굴에 나타나 있는 인상만큼은 어딘가 모르게 좋지 않은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젠장!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 중 한 인물이 씩씩거리며 괜히 맨 바닥을 발로 차며 발길질을 해댔다. 기껏 제국의 관리들을 속여서 평범한 행상으로 위장하고 잠입했는데 빈손으로 다시 물러나야 하는 꼴이라니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나 보다.

"뭐, 우리가 이런 일을 겪은 게 한 두번도 아니고... 진정해라. 그렇게까지 화낼 일은...!"

그 중 가장 덩치가 큰 대장격으로 보이는 인물의 시야에 한 소년이 들어왔다. 무슨 거짓말을 해도 믿을 것 같은 그런 순진해보이는 얼굴과 싸움도 별로 잘 못할 것 같은 비교적 마른 체형,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년이 들고 있는 제법 묵직한 가방과 어깨춤에 찬 검은 검집까지.

게다가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으로 보아 일행도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최고의 조건을 만족하는 사냥감!

"흐흐흐, 발견했다."

"발견했다니... 설마?"

"그래. 순진한 먹잇감이 될 꼬마 녀석을 말이다."

그의 입가에는 잔인한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

"어떡하면 좋지......."

나는 지금 당황함을 감추지 못한 채로 같은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방금 전에 느닷없이 중앙에서 안내원이 외치는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자 원정대 여러분, 이제부터는 각자 팀을 만들어서 움직여야 합니다. 4인 1개조를 이루셨다면 중앙에 있는 저를 비롯한 직원들에게 보고해주세요."

웬 이런 곳에서 초등학교 시절에나 해보았던 짝짓기 놀이를 한담...? 조금 자기 자신이 유치한 행동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워지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굳이 이런 것까지 해야되나 싶어 의아해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원정대를 통제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라니 어쩔 수 없는 법. 그렇다고 전혀 모르는 주위 사람들에게 말을 걸자니 꺼려지기도 하였던 것이다.

조심스럽게 텔레포트 룸 안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살펴보고 있으니까 하나같이 인상이 험하거나 살벌한 무기라던가 그런 심상치 않은 모습을 자랑하는 인물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선뜻 그런 사람들에게 용기를 내어 말을 걸기가 힘들었다. 더군다나 이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두세 명의 일행들과 같이 온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혼자 있는 사람을 찾기가 그리 쉽지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살짝 머리가 팽팽 돌면서 현기증이 날 것만 같을 때 옆에서 자신을 부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죄송한데요."

"네?"

누군가가 먼저 말을 걸어올 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던 나는 화들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 명. 파티를 이루기엔 딱 한 명이 부족한 인원이었다. 문득 혹시 나에게 파티 제안을 하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막연한 머리 속의 희망을 부정하고 말았다.

그럴 리가 없잖아... 이 수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 같이 평범하고 어리숙한 아이를 보기 좋게 선택했을 리가....

"혹시 파티가 아무도 없으시다면 같이 파티 하실래요?"

"......!"

그러나 자신이 가망 없이 한 생각이 현실이 되자 어리둥절해서 눈을 크게 떴다. 이제껏 게임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이 저절로 떠올랐다.

처음 엉뚱한 얼음 감옥에서 시작한 기억부터 시작해서 드워프의 노예로 고생한 일, 비 오는 날 도서관에 들어왔을 때 미처 아르바이트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관장님께 물기를 털지 않았다고 된통 혼났던 일 등.

생각해보면 온갖 불행한 일들투성이였다. 그렇듯, 운이 최악이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소소하지만 이런 행운이 찾아오다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위아래로 눈을 움직이며 그들의 인상을 살펴보았다. 하얀 모자가 달린 로브를 전신에 걸쳐 쓰고 등에는 보따리를 싸고 있는, 아주 평범하다고 말할 수 있을 법한 그런 상인의 모습이었다.

"저흰 에르 제국을 떠돌아다니며 행상을 하고 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제국의 주최 하에 원정대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오게 됐죠."

아니나 다를까, 자신을 행상으로 소개한 그중 제일 덩치가 큰 인물이 나머지 둘을 대변해서 말했다.

제국에서 떠돌이 상인이라면 꽤 흔한 직업에 속했다. 어떤 관리의 통계에 의하면 가게를 차려서 물건을 내는 붙박이 상인보다 행상이 오히려 더 많은 수를 차지한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었다.

물론, 제국에 떠돌아다니는 모든 상인을 세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그 소문이 신뢰성이 있는 말인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의심해볼 필요가 있겠지만.

어쨌든 충분히 납득이 갔던 나는 중간중간에 그렇군요라는 소리를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거 말고는 별 다른 반응을 보일 게 없었다.

"그... 그렇다면 파티에 껴도 되나요?"

"네, 얼마든지요."

"감사합니다! 헤헤헤."

나는 기쁨의 감정을 참지 못하고 바보같이 웃어버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펄쩍 뛸 것만 같은 내 몸을 간신히 억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순수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이때의 나는 제대로 보지 못했다. 잠시 그들의 입가에 살짝 싸늘한 미소가 동시에 걸렸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말이다.

"혹시... 이름이 뭔가요?"

"아... 저는 김세인이라고 합니다."

"그렇군요. 어쩐지 검은 머리에 눈매를 보니 한국인이 아닌가 싶었는데...."

그 덩치 큰 남자가 웃으며 차례대로 자신부터 시작해서 나머지 두명까지 간단한 소개를 해주었다.

"에, 그러니까... 왼쪽에 계신 분이 토그 님이고 오른쪽에 계신 분이 라푸스님, 그리고 저와 지금 대화를 나누는 본인 분이 차로스 님이군요."

내가 하나하나 쳐다보며 이름을 언급하자 그들이 그 순서대로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게 있다면 어쩐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이긴 한데... 지금은 이상하게도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자, 이제 파티도 모으고 했으니 텔레포트로 이동하기 위해 줄을 서볼까요?"

대략적인 소개가 끝나자마자 차로스는 시간 낭비를 원치 않는다는 듯 곧바로 나와 그의 동료들에게 재촉했다.

맨 먼저 가든 나중에 가든 그리 큰 차이는 없을텐데 뭐 그리 서둘러서 가는가 싶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반대할만한 이유도 없었던 나는 무언으로 긍정의 뜻을 대신했다.

텔레포트 마법진 앞에 늘어진 줄은 별로 길지 않았다. 그 대신에 그 마법진 주위를 나머지 사람들이 멀리서 크게 에워싸고 있었다.

호기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이들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위험하지 않을까 하고 조마조마해하는 이들도 꽤 많았다.

내 심정을 굳이 둘 중에 선택하자면... 당연히 전자에 속할 것이다. 별로 위험해보이지도 않았을뿐더러 무엇보다도 여기는 어디까지나 게임 속이었으니까.

나는 거의 모든 유저들의 시선과 마찬가지로 저 앞의 텔레포트 마법진에 막 들어가고 있는 한 파티를 여유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텔레포트라는 것은 그냥 단순히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순간이동되는 것에 불과했다. 그저 가만히 있다가 마법이 시작되는 순간 딱하고 순식간에 주변 풍경이 바뀌는 그런 거라고나할까.

어떤 안내원이 그 파티의 일원들에게 뭐라고 떠들어대는 모습이 보였지만 주위 사람들이 웅성웅성대는 소리에 잘 들리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 파티원들 모두가 쾌할한 웃음을 짓는 것을 보니 별거 아닌 말이었나 보다. 이윽고 안내원이 황급히 빠지고 나서 주변에 확성 마법을 쓴 듯한 여성의 커다란 목소리가 모두의 귓가를 울려댔다.

"지금부터 텔레포트를 할 예정이니 다른 분들께서는 뒤로 물러나주시기 바랍니다."

바닥에 새겨진 복잡한 마법진이 빛나면서 점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져갔고 방이 온통 하얀빛으로 가득찰만큼 빛이 강해지다가 팟하면서 갑자기 마법진에 서있던 사람들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에이, 뭐야. 별거 없잖아.'

그래도 내심 무언가 대단한 마법을 기대했던 나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몇번의 빛이 뿜었다가 사라지고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어 마법진에 서자 한 안내원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멀리 있을 때는 몰랐지만, 신기하게도 검은 머리에 마치 장식품처럼 달려있는 토끼 귀가 눈에 띄었다.

'장식인가...?'

그 귀를 제외한다면 겉모습은 완전히 영락없는 인간에 가까웠기에 그렇게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으려니 마치 그것을 부정하려는 것처럼 토끼 귀가 쫑긋하고 움직였다.

"헉... 진짜 귀였어??"

"네? 무슨 말씀이시죠?"

나도 모르게 생각이 말로 직접 튀어나오자 여자 안내원이 의아한 표정... 이라기 보단 거의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다시피 하고 있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하하...."

토끼 특유의 붉고 날카로운 그녀의 눈매에 압도된 나는 식은 땀을 흘리며 쓴 웃음을 지어보일 수밖에 없었다.

"흠흠. 그럼 주의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 텔레포트를 하시는 분이라면 후유증으로 심한 멀미나 구토를 유발시킬 수도 있으니 도착지에 위치한 안내원에게 말씀해주세요. 즉시 회복 포션을 드리겠습니다."

회복 포션이란 체력 포션이나 마나 포션과는 다른 고급 포션의 일종으로 병이나 특수한 상태 이상에 걸렸을 때 그것의 증상을 없애주는 포션으로 상당히 고가에 해당하는 물건이었다.

역시 제국에서 직접 주최하는 원정대는 다르다며 놀라워하고 있으니까 어느새 안내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이전에도 수없이 들었던 안내 목소리가 어두운 하얀 대리석 방을 가득 채웠다.

마법진에 빛이 흘러나오고 주변이 순식간에 불투명한 빛으로 휩싸이기 시작했다. 점점 내 안의 무언가 역겨운게 자꾸 목을 타고 올라오는 느낌.

그제서야 방금 전에 말했던 안내원의 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속이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을 정도로 울렁거리며 메스꺼워졌다.

점점 강해지던 빛에 의해 내 시야가 순간 온통 하얀 색으로 마비되고 말았을 때 파팟하며 커다란 소리와 함께 나의 몸이 급속도로 어딘가 방향으로 강제로 쏠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어? 강제로 몸이 붕뜨면서 비행을 받는 듯한 느낌과 동시에 눈 앞이 번쩍하고 새까맣게 된 뒤 점점 어둠이 걷히고 나자.

눈 앞에 푸른 빛의 절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그것에 감탄할 새도 없이 힘이 스르륵 빠지면서 무릎이 저절로 꿇어졌다.

그리고... 이곳 크리스탈 루인에서 처음으로 내가 했던 일은 속에서 멀건 액체를 입으로 개워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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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6. 순백의 악마 (3) 24.04.05 4 0 16쪽
38 6. 순백의 악마 (2) 24.04.03 5 0 8쪽
37 6. 순백의 악마 (1) 24.04.01 6 0 14쪽
36 5. 비오는 날의 추억 (7) 24.03.29 5 0 9쪽
35 5. 비오는 날의 추억 (6) 24.03.27 5 0 11쪽
34 5. 비오는 날의 추억 (5) 24.03.25 6 0 9쪽
33 5. 비오는 날의 추억 (4) 24.03.22 6 0 11쪽
32 5. 비오는 날의 추억 (3) 24.03.20 6 0 10쪽
31 5. 비오는 날의 추억 (2) 24.03.15 6 0 15쪽
30 5. 비오는 날의 추억 (1) +1 24.03.13 7 0 15쪽
29 4. 용서할 수 없는 것 (6) 24.03.11 6 0 9쪽
28 4. 용서할 수 없는 것 (5) 24.03.08 8 0 9쪽
27 4. 용서할 수 없는 것 (4) 24.03.06 7 0 7쪽
26 4. 용서할 수 없는 것 (3) 24.03.04 7 0 16쪽
25 4. 용서할 수 없는 것 (2) 24.03.03 5 0 8쪽
24 4. 용서할 수 없는 것 (1) 24.02.26 6 0 8쪽
23 3. 차가운 만남 (9) 24.02.23 4 0 12쪽
22 3. 차가운 만남 (8) 24.02.21 5 0 9쪽
21 3. 차가운 만남 (7) 24.02.19 5 0 12쪽
20 3. 차가운 만남 (6) 24.02.16 6 0 8쪽
19 3. 차가운 만남 (5) 24.02.14 5 0 7쪽
18 3. 차가운 만남 (4) 24.02.12 7 0 10쪽
17 3. 차가운 만남 (3) 24.02.09 7 0 8쪽
16 3. 차가운 만남 (2) 24.02.07 6 0 7쪽
15 3. 차가운 만남 (1) 24.02.05 6 0 7쪽
14 2. 노스피아 원정대 (6) 24.02.02 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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