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붉은 달에 울려퍼지는 소나타

그로스(growth)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적월소나타
작품등록일 :
2024.01.05 16:04
최근연재일 :
2024.04.08 19:00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462
추천수 :
0
글자수 :
181,998

작성
24.03.04 19:00
조회
6
추천
0
글자
16쪽

4. 용서할 수 없는 것 (3)

DUMMY

"글라시아님... 글라시아님...!"

검은 모자를 쓴 남자가 느닷없이 양 손으로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소녀의 어깨를 흔들었다. 겨우 잠든지 1시간 정도. 잠이 깊게 채 들기도 전에 깨서 그런지 푸른 머릿결의 소녀가 반쯤 얼굴을 찌푸렸다.

"아음... 왜 갑자기 깨워?"

"저기... 추적마법에 따르면 세인의 지금 위치가 슬래이브 광장에 있는 걸로 되어 있어서 무례를 무릅쓰고 깨웠습니다."

"슬래이브 광장?"

"네, 추적마법이 틀리지 않는다면요."

"... 바보 멍청이 같으니라고."

"네?"

모자를 쓴 남자에게 희미하게 들릴 정도로 혼잣말로 중얼거린 소녀가 벌떡 일어나서 배낭을 주섬거리기 시작했다.

"물건들 챙기고 준비해. 큰 싸움이 될 거야."

"넷! 알겠습니다."

"아무한테나 시비를 걸지 말아야 할텐데...."

소녀가 짧은 한숨을 쉬자 그 남자가 걱정 말라는 듯 밝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괜찮겠죠. 설마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싸움을 벌일 정도로 무모할 리가...."

"... 넌 걔를 아직도 잘 모르는구나."

작은 마법 배낭을 맨 소녀의 가느다란 손에는 어느새 붉은 검집이 들려 있었다.

***

"10제라."

갑자기 제시한 터무니없는 액수에 모두가 놀라서 그 사람에게로 시선을 집중했다.

"저 사람은...!"

"그 유명한 바로크 도적단의 수장이 왜 여기에...!"

순식간에 목소리의 정체를 알아차린 관중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 분위기는? 저 사람이 그렇게나 유명한 건가? 나도 어수선해진 인파를 보고 어리둥절해하였다.

"저기... 그러니까... 저... 저분께서 10제라를 제시하셨습니다. 더 이상... 금액을 거실 분이 있으신지요?"

사회자로 서 있던 그 콧수염의 중년조차 잔뜩 긴장한 듯 말까지 더듬으며 간신히 경매를 진행하고 있었다.

"......."

한동안 치열하게 금액을 불렀던 모두가 얼어붙은 듯 조용했다. 감히 어느 누구도 차마 그 인물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나 보다.

혹시나 눈치없이 누가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하기라도 할까봐 중년 사회자가 급하게 마무리를 짓는 말을 꺼냈다.

"그렇다면... 이 상품은 저쪽에 계신 분께 낙찰이 되는 걸로 하겠습니다!"

거액을 제시한 인물이 조용히 무대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내리까는 무거운 목소리만큼이나 커다란 체구이며 선명한 붉은 색의 섬뜩한 날이 선 코트 등, 인상이 범상치가 않았다.

모두가 숨을 죽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천천히 무대 위까지 올라온 거구의 남자는 가녀린 여자아이의 턱을 잡고 이리저리 살피더니 나지막하게 뱉었다.

"어리지만 꽤나 얼굴이 반반한 년이군. 약속대로 내가 사도록 하지."

그 남자가 짤랑거리는 작은 주머니를 꺼내더니 집어 던지다시피 바닥에 내팽겨쳤다. 사회자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는 그제서야 흡족해하는 듯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느릿느릿 무대를 내려갔다.

관중들은 물론이고 사회자조차 한동안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린 듯 경매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 그리고 다음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번에 열 다섯 번째로 소개할 상품은...."

열 다섯 번째라고...? 끝도 없이 노예를 사고 파는 행위가 계속된다는 생각에 화가 다시 치밀기 시작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지만 차마 그 남자가 절대 소란을 일으키지 말라고 당부했던 말이 떠올라서 어떻게든 꾸욱 참고 있었는데 매우 가까운 곳에서 어떤 작게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크크... 대장님. 이번엔 무슨 일로 저런 계집애를 데려왔는지요?"

"재밌는 실험을 해볼까 하고 말이다."

"재미있는 실험이라면? 흐흐흐."

"괴물들과 같이 가둬놓고 얼마나 버티는가라던지, 하루 종일 거꾸로 매달고 음식을 계속 먹이는 그런 놀잇감으로 써볼 생각이다. 뭐, 그래도 살아남는다면 너희들에게 위안을 달래줄 선물로...."

"그만 둬!"

결국 참지 못한 내가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 바람에 옆에 있던 그들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사람들까지도 시선을 나에게로 집중했다.

"호오, 겁도 없이 내 앞에서 소리를 지르다니. 아직도 내가 누군지 모르나보군."

"노예를 사고 파는 것도 모자라서 그런 놀잇감으로 쓴다니... 그런 건 너무하잖아!"

"... 아직도 여기서 이런 덜떨어진 생각을 가진 애송이가 있다니."

그 남자가 코웃음을 치며 말하자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비웃는 듯한 웃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이에겐 주먹이 최고지."

휘휙!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매섭게 공기를 가르며 커다란 주먹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전혀 예상치 못하게 날아온 공격이었지만 그나마 속도가 제법 느린 탓에 간신히 몸을 굴려서 피할 수 있었다.

의외라는 듯 조금은 그 남자의 눈동자가 커졌다.

"호? 그래도 보기보다 얍삽빠른 면은 있나보군."

"끄아악!"

"사람 살려!"

내가 피했던 자리의 뒤로 사람들이 권풍에 마치 풍선처럼 허공을 날아가며 비명을 질렀다. 그저 주먹에 스친 바람일 뿐인데 이 정도라니...! 입을 쩍 벌릴 만한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

만약 정통으로 맞는다면...? 끔찍한 생각에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나는 어떻게든 그 남자를 노려보며 피할 생각만을 하였다.

한동안 그 참혹한 상황을 멍하니 바라보던 사람들이 그제서야 소리를 꽥꽥 지르면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비교적 멀리 있던 관중들과 사회자도 대충 무슨 상황이 일어났는지 눈치챈 것처럼 허둥지둥 대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피할 수 있을까?"

스스슥

내 주변에서 머리 쪽으로 무언가 표창같은 날카로운 것들이 날아오자 상체를 숙여 피했다. 간신히 회피한 내가 몸을 세우며 일으키려고 할 때 무언가가 머리 위로 걸렸다.

당황하여 자세히 보니 단단하면서도 실같이 매우 얇은 것들이 촘촘하게 그물을 이루어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 이게 뭐지!"

어떻게든 움직이려고 해보았지만 워낙 팽팽하게 당겨져 있어서 결코 쉽지가 않았다. 그제서야 방금 전에 표창을 던진 것이 생각난 내가 중얼거렸다.

"아, 함정이었어!"

"이제서야 깨달아봤자 소용없다."

고개를 부자연스럽게 들어 그 남자를 바라보니 어느새 그의 양손에는 각각 작은 단검이 한개씩 있었다. 이제서야 사람들이 어렴풋이 바로크 도적단이라고 웅성거린 것이 기억나는 것 같았다.

"곧 후회하며 내 손에 죽을테니."

검날을 세우며 자세를 취한 그 남자가 빠른 속도로 나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뻔히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지만 촘촘히 나있는 실들 때문에 구르기는커녕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거의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다가와서 단검을 내지르자 꼼짝없이 죽었구나 싶어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말았는데.

"... 네 놈은 또 뭐지?"

"공격을 그만 두는 게 좋을 거야."

이 목소리는? 너무나도 익숙한 여린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눈을 번쩍 뜨자 바로 눈 앞에 나와 키가 비슷한 한 푸른 머리의 소녀가 검을 들고 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다치기 전에."

글라시아가 쥐고 있던 붉은 검신이 시퍼렇게 빛났다.

"애송이 주제에 굉장히 건방지군."

그 남자가 글라시아와 맞댄 단검을 빼면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소녀의 등 뒤에 있었기 때문에 볼 수는 없어도 대충 그녀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저 뒤에 있는 녀석의 친구라도 되는 거냐?"

대답은 곧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잠시 짧은 시간동안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조금 차가운 말소리가 앞에서 들려왔다.

"아니."

"......!"

나는 왠지 뒷통수를 돌덩이로 얻어맞은 기분이 들어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았다. 결국 이제껏 죽을 고생을 하면서 그녀를 미행하고, 대련을 하고 또한 부상당한 그녀를 지키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는데 돌아온 것은 차가운 무관심뿐이었다니!

그런 것을 보고 배신감과 비슷한 감정을 느껴서 화가 나기 보다는 오히려 뭔가 헛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씁쓸하면서도 허탈한... 그런 기분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그런 웃음이 입가에서 삐죽 튀어나오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긴장감으로 간신히 그것을 억눌렀다.

"모르는 사람이라고?"

그 남자가 뒤에 서있던 내 모습을 스윽 훑어보더니 슬쩍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저 녀석의 표정을 보면 자기가 배신당한 것 같아 충격을 먹은 듯한데?"

"그건 네 착각이고."

그 남자의 손가락이 나를 향해 가리켰지만 소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꾸했다.

"저 애를 죽일 때까지 지켜보기라도 해줄까?"

쿠쿵! 소녀의 무자비한 말에 내 가슴이 철컹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마치 기억을 싹 지워진 것처럼... 이전에 처음 소녀와 내가 만났던 순간처럼 그녀가 너무나도 싸늘하고 차갑게 느껴졌다.

"뭐, 저 녀석은 상관없겠지. 우선 네년을 죽인 후에 차차 공포를 맛보게 하면 되니까 말이다."

"이제야 말이 통하네."

아까보다 한층 목소리에 생기가 돌아온 그녀가 머리를 덮고 있던 후드를 재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의 막연한 생김새가 겉으로 드러나자마자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 유저는...!"

"맙소사, 설마... 진짜 그 사람은 아니겠지?"

"페이스 레이젤의 그 유명한 여검사!"

"위... 위험해!"

멀찍이서 거리를 두고 지켜보던 관중들이 그제서야 슬금슬금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젠 더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 아얘 광장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었다.

순식간에 그녀의 목숨도 내던질만한 열성팬같아 보이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이 도망가버리고 말았다.

"... 단순한 애송이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보군."

남자의 말에서 이제껏 보지 못한 미약한 떨림이 느껴졌다. 그로서는 최대한 억누른 거라고 했을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누가 들어도 눈치챌 것만 같았다. 아, 저 사람 떨고 있구나... 하고 말이다.

"떨고 있네."

소녀도 그것을 눈치챘는지 흥미롭다는 목소리로 말하며 조금씩 다가갔다. 여전히 무미건조한 음색이었지만 나는 어쩐지 그 애의 목소리에서 여유로움이 담겨 있는 것을 느꼈다.

뒷모습의 푸른 머릿결이 찰랑거리는 것이 오늘따라 유난히 생생하게 보였다.

"...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내가 니깟 애송이 년 하나 때문에 떨 것이라고 생각하나?"

"··· 너무 그 길드를 믿고 있는 거 아니야? "

"... 건방지군."

길드라고? 어떤 길드를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내가 현재 속해있는 페이스와는 규모나 인지도 측면에서 비교도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긴 길드라는 거 자체가 페이스라는 제한적인 조건이 달려 있는 모임과는 달리 개방적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인원수가 압도적으로 더 많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잠깐, 그러고 보니. 문득 내 머리 속에 얼핏 웅성거림으로 들었던 단어가 하나 생각났다. 글라시아도 확실히 레이젤인가 뭔가 하는 페이스에 속해있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게임을 시작한 지 겨우 2주일도 채 안되었을 뿐만 아니라 도서관 일에 치중하느라 워낙 세상 물정에 어두웠던 나였기 때문에 레이젤이라는 페이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때 사람들의 반응으로 미루어볼 때 내가 속해 있는 곳과 같이 어쭙잖은 페이스는 결코 아닐 것이다.

"지금 싸울래?"

"......."

소녀가 슬쩍 칼을 휘두르는 시늉을 하자 반사적으로 남자의 발이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그 남자의 표정이 급격하게 일그러지면서 잡아먹을 듯이 내 앞의 소녀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오히려 무기를 꺼내들기는커녕 손에 쥐고 있던 두 단검을 다시 허리 춤의 양 검집에 집어넣고 말았다.

"이 굴욕은 절대로 잊지 않겠다, 애송이."

그 말과 함께 남자가 손짓을 하자 사샤삭 근처에 숨어있던 인영들이 나타나더니 촘촘히 그물처럼 이루고 있던 철선 같은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가자."

뒤돌아서서 완전히 등을 돌리고는 몇몇 뒤따르는 부하들과 함께 검은 복장의 도적단 수장은 천천히 광장에서 사라졌다.

"......."

당장이라도 싸움이 터질듯한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저 험악한 중년의 남자가 마치 꽁무니를 빼듯이 도망치는 모습을 바라보자니 나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글라시아가 강하면 누구든지 상대해도 이길 것 같은 압도적인 포스를 풍기던 남자가 저렇게 겁을 먹고 물러서는 걸까?

"이제 돌아가자."

"넵, 글라시아님"

글라시아의 힘 없는 목소리에도 힘차게 대답한 그 남자가 곧바로 그녀의 옆으로 재빠르게 다가갔다. 물론 나는 잠시 충격에 얼떨떨해져서 전혀 들을 수가 없었지만.

"세인, 너 뭐하는거야?"

"... 아앗, 죄송합니다. 그만 정신이 팔려서...."

거의 눈앞까지 다가온 글라시아의 목소리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내가 급하게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여전히 무표정이었지만 아까 들려온 목소리에 가시가 돋친 듯한 느낌이 들어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그럼... 뒤따라와."

휴, 다행이다! 혹시나 예전처럼 다짜고짜 공격해오지는 않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다행히도 그런 참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안심하기도 잠시, 나는 조금 멀리 옆에서 파르르 떨고 있는 한 소녀를 보며 의아해졌다.

"글라시아님! 저 아이는 어떻게 하고요?"

"그냥 내버려 둬."

"......."

말문이 막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그녀에게 반기를 들 생각은 꿈에도 할 수 없으니까.

"이름이 뭐니?"

작고 연약한 체구의 소녀에게 다가가서 묻자 그 아이는 조금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소... 소영이요."

"소영이라... 정말 예쁜 이름이구나."

오랫만에 칭찬을 받은 건지, 소녀의 볼이 발그레 상기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조금은 불쌍한 마음이 들어 데려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끝내 떨쳐내고 힘겹게 말했다.

"미안해. 구해주지 못해서."

"아뇨, 벌써 저희를 구해주셨는걸요. 지금쯤 저 분이 아니었으면 전 끔찍한 놀이감이 됐을 거에요."

한창 애틋한 말이 오고갈 때 차가운 한 마디가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자꾸 꾸물적대면 버리고 갈 거야."

"아... 네넷!"

부리나케 글라시아를 향해 달려가면서도 나는 잠시동안 소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과연 그녀의 말에 따른 것이 잘한 일일까에 대한, 그런 의문이 들었다.

거의 텅 비어있어서 쓸쓸하고 초라해 보이는 광장을 지나 음산한 길거리를 되돌아오면서 나는 글라시아의 뒷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어쩐지 터벅터벅 걸어가는 모습이 무거워보였다. 한편으로는 기분 탓인지 자그마한 어깨가 가끔씩 떨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설마... 저 애도 사실은 그 남자와 싸우는 게 두려웠던 게 아닐까?'

어쩌면 남자가 갑자기 싸움을 회피한 것도 글라시아 특유의 차가움과 무표정한 얼굴에 압도당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저기 있잖아요, 글... 글라시아님."

"음...?"

"혹시 그 남자랑 싸우기를 원하지 않았나요?"

왠지 직접 싸우기를 무서워했냐고 묻는다면 대놓고 겁먹었냐는 모욕적인 말로 오해할 것 같아 살짝 돌려 말한 나였지만 글라시아는 망설이지도 않고 대답했다.

"응."

헉! 진짜로 그랬다니! 너무나도 솔직하게 대답한 글라시아를 보며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그녀가 정말로 오해할까봐 조마조마했던 것이다.

내 눈이 겁에 질런 눈빛으로 글라시아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의외로 둔한 탓인지 전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다행히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오르락내리락하는 내 마음 속과는 달리 전혀 감정의 동요조차 보이지 않던 글라시아. 글라시아는 한번 작게 하품을 하더니 이어서 말을 덧붙였다.

"너무 졸렸거든."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그로스(growth)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중단 안내 24.05.03 6 0 -
공지 작품설정(1권) 24.01.05 19 0 -
공지 작품 공지 +2 24.01.05 12 0 -
40 6. 순백의 악마 (4) 24.04.08 3 0 7쪽
39 6. 순백의 악마 (3) 24.04.05 3 0 16쪽
38 6. 순백의 악마 (2) 24.04.03 5 0 8쪽
37 6. 순백의 악마 (1) 24.04.01 6 0 14쪽
36 5. 비오는 날의 추억 (7) 24.03.29 5 0 9쪽
35 5. 비오는 날의 추억 (6) 24.03.27 5 0 11쪽
34 5. 비오는 날의 추억 (5) 24.03.25 5 0 9쪽
33 5. 비오는 날의 추억 (4) 24.03.22 6 0 11쪽
32 5. 비오는 날의 추억 (3) 24.03.20 5 0 10쪽
31 5. 비오는 날의 추억 (2) 24.03.15 5 0 15쪽
30 5. 비오는 날의 추억 (1) +1 24.03.13 7 0 15쪽
29 4. 용서할 수 없는 것 (6) 24.03.11 6 0 9쪽
28 4. 용서할 수 없는 것 (5) 24.03.08 8 0 9쪽
27 4. 용서할 수 없는 것 (4) 24.03.06 6 0 7쪽
» 4. 용서할 수 없는 것 (3) 24.03.04 7 0 16쪽
25 4. 용서할 수 없는 것 (2) 24.03.03 5 0 8쪽
24 4. 용서할 수 없는 것 (1) 24.02.26 5 0 8쪽
23 3. 차가운 만남 (9) 24.02.23 4 0 12쪽
22 3. 차가운 만남 (8) 24.02.21 5 0 9쪽
21 3. 차가운 만남 (7) 24.02.19 5 0 12쪽
20 3. 차가운 만남 (6) 24.02.16 5 0 8쪽
19 3. 차가운 만남 (5) 24.02.14 5 0 7쪽
18 3. 차가운 만남 (4) 24.02.12 6 0 10쪽
17 3. 차가운 만남 (3) 24.02.09 6 0 8쪽
16 3. 차가운 만남 (2) 24.02.07 6 0 7쪽
15 3. 차가운 만남 (1) 24.02.05 6 0 7쪽
14 2. 노스피아 원정대 (6) 24.02.02 7 0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