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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달에 울려퍼지는 소나타

그로스(growth)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적월소나타
작품등록일 :
2024.01.05 16:04
최근연재일 :
2024.04.08 19:00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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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0
글자수 :
181,998

작성
24.02.0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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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3. 차가운 만남 (2)

DUMMY

한 소녀가 열심히 바닥을 빗질하고 있었다. 커다란 복도, 하얀색 바탕의 대리석으로 된 벽에 제법 고풍스러운 문양들이 가득 메워져 있는 복도는 다섯 사람이 나란히 걸어도 충분한 넓이를 자랑하고 있었다.

"야, 이제 그만해도 되니까 좀 쉬었다가 저녁준비나 도와라."

"네에! 아주머니 여기만 다 쓸고요."

다리가 부들부들 거리는 것이 눈에 훤한데도 다른 하녀 아주머니의 말에 소녀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금발의 윤기나는 머리카락을 길게 포니테일로 묶은 소녀의 모습은 낮은 신분의 하녀 치고는 분에 넘칠 정도로 아름다웠다.

"리카? 리카 있어?"

"네엣! 주인님!"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리카라고 불린 소녀는 당장 빗질을 멈추고는 한 걸음에 달려갔다.

"뭐 필요하신게 있나요?"

"에... 그건 아니고."

리카의 눈 앞에 있던 오렌지색 머리카락의 주인님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무언가를 주저하는듯 입술을 열었다 떼었다를 두어번 반복하더니 결심했는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얘기할 게 있어서 그런데 좀 있다 밤에 내 방에 와줄래?"

"아아, 그럴게요!"

리카는 밝고 명랑하게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며 주인님은 씁쓸한 미소를 짓다가 뒤로 돌아섰다.

저벅저벅

그날 밤, 리카는 살짝 비틀거리는 몸으로 주인님의 침실 문 앞에 서있었다. 아마도 저녁 설거지가 꽤 고단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눈만큼은 주인님을 홀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잔뜩 기대됬는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자세를 가다듬고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똑똑하고 가볍게 노크를 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으음?"

조금 의아하다는 얼굴로 리카는 다시 노크를 해보았다. 또 반응이 없었다.

"이상하네... 주인님이 이 시간에 주무고 계실 리가 없을텐데."

혼잣말로 작게 중얼거린 후 뭔가 끔찍한 생각이 들었는지 리카가 잠깐 경직된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설마 주... 주인님이 무슨 일이 생기신건...?"

번쩍 정신을 차린 듯 리카가 다급하게 문을 열어젖혔다. 방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무척이나 조용했다. 리카의 시선이 갖가지 가구와 신성한 십자가가 새겨진 장식들을 지나 곧바로 어딘가를 향했다.

"......!"

침대에는 아무도 없었다. 방금 전까지도 주인님이 있었다고 말해주듯 이불이 젖혀진 상태였다. 리카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주... 주인님!!!"

떨리는 목소리로 리카가 외쳤지만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리카의 전신이 파들파들 가엾게 떨리고 있었다.

휘이잉. 요상한 휘파람같은 소리가 들려오자 리카의 눈길이 창문 쪽으로 향했다. 활짝 열린 창문의 양쪽 날개가 작게 요동치고 있었다.

"주인님이... 사라지셨어...!"

망연자실한듯 중얼거리는 리카의 눈에 투명한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거친 바람에 리카의 머리가 꼴사납게 휘날렸지만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저 창문을 바라보며 눈물을 적실 뿐이었다.

끝내 리카의 몸이 힘없이 철퍼덕 주저앉아버렸다. 창가로 비쳐오는 달빛에 반사되어 빛나는 물방울들이 그칠줄 모르고 하염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바람이 갑자기 강하게 불자 탁자 위에 있던 종이 하나가 부드럽게 기류를 타고 날다가 사뿐하게 바닥에 내려앉았다. 리카의 눈이 자신의 바로 옆에 놓인 종이에 꽃혔다.

무언가를 깨달은 듯 흠칫하다가 천천히 종이를 집어들었다. 바들바들 경련하는 리카의 손에는 제법 삐뚤삐뚤한 글씨가 담긴 종이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


미안해.......

사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떠나려고 했어. 하지만 너에게만큼은 꼭 전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며칠 전에 어떤 수상한 인물을 만났어.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감추고 있어서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당히 강한 압박감을 주는 남자였어.

목소리는 아주 무겁고 차가웠지만 뭐랄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속에 믿음을 주는 듯한 그런 이상한 느낌을 받았어. 뭔가 목소리만 들어본다면 꽤 잘생긴 미남같아 보이는데 말이야.

끄응... 중요한 편지를 쓰고 있는데 내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걸까? 아무튼 그 남자가 나에게 제안을 했어. 그리고 나는 그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

... 라고 설명한다면 넌 '주인님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에요!!!' 하면서 노발대발 화를 내겠지?

하지만...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인 것 같다. 걱정하지 마. 그리고 이건 부탁인데... 나를 대신해서... ... 줄 수 있겠니?


군데군데 잉크가 얼룩진 자국이 보였다. 어렵지 않게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리카의 겨우 그친 눈물이 다시 폭발해버렸다.

이젠 오열하듯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한참을 통곡하다가 리카의 눈이 간신히 편지의 마지막 부분으로 향했다.


... 더 이상 쓸 수 없... 같아... 왜 자꾸... 나오는지 모르겠어. 잠시 떠나는 것뿐인데... 제국의 평화를 위해 나 혼자 조금 불편한 ...인데.

마지막으로 말없이 떠난 나를 용서해줘... 아니 절대 용서하지 말아줘. 불평은 내가 돌아오고 나서 귀가 따갑도록 실컷 들을테니까.


"흐흑... 주인님... 어째서 절 버리고 가신 건가요! 어째서 절 버리고 흐아아앙...!"

리카는 한동안 종이를 가슴에 끌어안고는 몇번이고 계속 주인님을 외치며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어댔다.

***

다음날 깊은 밤, 리카는 성문 앞에 서서 가만히 도시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커다란 배낭을 등에 짋어진 한 소년이 나오자 리카는 기다렸다는 듯이 불러세웠다.

"이리스님을... 찾으러 가실 건가요... 루커스님?"

"... 리카 씨."

루커스라 불린 소년은 약간 애처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미안해요... 내가 조금 더 주의 깊게 이리스님을 살펴주었더라면."

"아니에요."

리카는 고개를 저으며 루커스의 두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저는 루커스님이 성녀님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끼고 보필하신다는 것을 잘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루커스님이라면... 꼭 성녀님을 찾을 거라고 믿어요."

"고마워요, 리카 씨."

"돌아.... 오실거죠?"

리카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부끄럽게 묻자 루커스는 활짝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동안... 몸 건강히 지내시길."

그 말과 함께 루커스가 등을 돌려 앞으로 걸어나가자, 리카의 눈가에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루커스를 자신이 사랑하는 만큼 루커스 또한 이리스님을 너무나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를 도저히 말릴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리카는 루커스가 떠나는 모습을 쳐다보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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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3. 차가운 만남 (8) 24.02.21 6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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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3. 차가운 만남 (6) 24.02.16 6 0 8쪽
19 3. 차가운 만남 (5) 24.02.14 6 0 7쪽
18 3. 차가운 만남 (4) 24.02.12 7 0 10쪽
17 3. 차가운 만남 (3) 24.02.09 7 0 8쪽
» 3. 차가운 만남 (2) 24.02.07 7 0 7쪽
15 3. 차가운 만남 (1) 24.02.05 6 0 7쪽
14 2. 노스피아 원정대 (6) 24.02.02 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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