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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달에 울려퍼지는 소나타

그로스(growth)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적월소나타
작품등록일 :
2024.01.05 16:04
최근연재일 :
2024.04.08 19:00
연재수 :
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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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수 :
181,998

작성
24.02.0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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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차가운 만남 (3)

DUMMY

영상과 함께 빛이 천천히 사라지면서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어 그저 멍하니 커다란 수정기둥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전에도 겪은 영상과 비슷했다. 이번에는 루커스 대신에 리카라는 소녀가 등장했다.

이전에 드워프 던전에 있었을 때도 그랬지만 신비한 영상을 보여주는 기능을 가진 장치가 왜 하필이면 이런 또 위험천만한 던전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걸까? 누가 무슨 목적으로? 도대체 이러한 영상들이 나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싶은 걸까?

알 수 없는 의문투성이였다. 그렇게 잠시 멍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니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한 발 늦었구나."

영상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해볼 틈도 없이,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차가운 목소리에 놀라서 돌아보니 청발의 한 소녀가 완전무장한 채 내가 들어왔었던 그 통로 앞에 서 있었다.

마치 용을 본따놓은 듯 화려하게 가시마냥 뾰족 튀어나온 어깨걸이와 붉은 무늬로 장식된 검은 바탕의 전신갑주.

누가 한 눈에 봐도 강철 이상의 특수한 무언가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눈에 띄었던 것은 그 소녀의 보기 드문 특이한 외모.

차가운 얼음물같이 찰랑거리는 새파란 머리카락에 정말 사람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창백한 피부와 시린 푸른빛 눈동자는 흡사 설녀라는 설화 속 괴물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눈동자마저 냉정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으려니 나의 몸이 당장이라도 얼어붙을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나는 그녀를 알고 있었다. 대략 1년 전에 처음 그로스를 시작했을 무렵 드워프들이 사는 땅 속 마을에서 그녀와 같이 던전에 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글라시아님...?"

간신히 오들오들 떨리는 입술로 뼈속까지 스며드는 한기에 저항하여 말을 꺼내는데 성공했다.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무표정으로 나를 무심히 바라보던 그 소녀가 반응하듯 갑자기 천천히 다가왔다.

글라시아가 한 발자국씩 다가올수록 이루 말할 수 없는 중압감과 한기를 느끼며 본능적으로 나는 지금 상황이 결코 좋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무거운 금속 부츠의 움직임이 멈추고 주저 앉아 있는 상태에서 올려다봤을 때 그녀는 손만 뻗어도 닿을 거리에서 섬뜩한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마치 내 자신을 하찮은 벌레로 보는 것처럼, 보잘 것 없는 쓰레기로 보는 것처럼, 전혀 힘 없는 약해 빠진 갓난아기로 보는 것처럼.

"... 큭."

그녀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기분 나쁜 시선에 눈살이 찌푸려지긴 했지만 그래도 적의감을 갖지 않아 다행이라면서 마음을 놓고 있으려니.

쐐애액

"...!"

검을 뽑아든 그녀가 나를 향해 번개같이 휘둘렀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 미처 피해야겠다는 반응도 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눈을 반사적으로 질끈 감아버렸다. 살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해버렸다. 의식이 끊어지며 캡슐 속에서 눈을 뜰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살아있었다. 의식이 전혀 흐릿해지지 않고 순간적인 고통도 느껴지지 않은 채, 오히려 전신의 감각이 극도로 민감해져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조심스럽게 서서히 떠보니. 마치 시간이 멈춘듯 내 목 언저리에서 칼이 움직임을 멈춘채 미동을 하지 않는 것이 보였다.

위를 올려다보니 그녀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어느새 입가에 걸린 미소는 사라지고 무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다만, 뭔가 뜻대로 되지 않는 듯 눈만 가느다랗게 뜨고 있었다.

망설이는 걸까? 도저히 그녀의 기분이라던가 속내를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끄으윽!"

칼이 위태롭게 떨리더니 급기야 내 목에 살포시 닿아 얕은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철철쏟아져나오는 피가 목줄기를 타고 끊임없이 내려가는 불쾌한 기분을 받으면서, 나는 그 동안에 쌓인 누적된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빈혈과 함께 정신을 잃고 말았다.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가 감싸는 듯한 느낌. 그리고 고통이 점점 사라지는 느낌. 혹시 이것이 죽음이라는 걸까?

게임 상으로나마 간접적으로 체험해보는 거지만 결코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이제 죽었다는 메세지와 함께 캡슐 안에서 눈을 뜨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점점 한없이 차가웠던 내 몸이 따뜻하게 녹여지는 것 같았다. 응? 죽음이라고 하기엔 가수면에서 깨어나는 시간이 너무 긴데...?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온 힘을 다해 전신에 감각을 집중시켜보았다.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더불어서 가까운데서 느껴지는 따뜻한 감촉도.

손발을 움직일 수 있다는 확신이 든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어두운 천장이 보였다. 고개를 돌려 살짝 오른쪽을 보니 둥근 원형의 얼음벽과 함께 커다란 수정이 눈에 들어왔다.

아... 여전히 나는 그 공간에 있구나.

이번에는 반대쪽을 쳐다보자.

'......!'

바로 눈 앞에 나를 잡아먹을 뻔했던 그 백색 털의 괴물의 얼굴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으아아악!"

신랄한 비명과 함께 반사적으로 놀라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에 반응하듯 저쪽에서 금속 갑옷이 철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서야 깼구나."

무표정한 얼굴로 글라시아가 일어나자 나는 잠시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옆자리에 놓여 있었던 그 괴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목이 잘린 채 덩그라니 얼굴만 부자연스럽게 널부러져 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누군가 죽인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설마...?

"혹시... 저 괴물을 죽였나요?"

"응."

헉...? 역시나 그녀는 강했다. 최소 레벨 280이 넘는 괴물을 해치운 것으로 보아 나와는 전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하긴 예전에도 드워프 던전에서 레벨 200짜리들을 유린하고 다니던 그녀였으니 1년이 지난 지금은 그녀에게 있어서 저런 정도의 몬스터들은 한주먹거리도 되지 않을 것이다.

"어...?"

그제서야 주위가 무언가에 의해 제법 밝아진 것을 느끼고는 그녀의 옆쪽으로 시선을 향하자 자그마한 모닥불 비슷한 것이 보였다.

그 위에는 맛있어보이는 고기가 양쪽 나뭇가지 받침에 걸린 채 꿰어져서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고 있었다.

"저거... 먹을래?"

순간 먹고 싶은 충동이 가득해서 고개를 나도 모르게 끄덕일 뻔했지만 아까 전까지 함부로 마음을 놓았다가 목숨을 빼앗길 뻔한 적이 있었기에 고개를 미친듯이 저으며 사양하고 말았다.

"아... 아뇨. 전 괜찮아요."

꼬르륵 꼬르륵

내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배가 눈치없이 커다랗게 천둥소리를 연신 울려대고 말았다. 당황한 마음에 배를 부여잡으며 식은 땀을 흘리는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변명을 시도하였다.

"아니... 그러니까 이건 말이죠...."

"자, 먹어."

어느새 눈앞에 잘 익은 꼬치를 내미는 그녀. 결국 내 경계심이 가득한 이성은 식욕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

"자... 잘 먹겠습니다."

덥석 꼬치를 잡아서 허겁지겁 고기를 덩이 째로 베어물었다. 단순한 원시적인 방법의 바베큐 치고는 제법 육즙이 풍부하고 맛있었다.

거의 1미터에 가까운 기다란 꼬치에 꽂혀있던 고기들을 다 먹어치운 나는 입맛을 다시며 어느정도 공복이 해결된 만족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더 먹을래?"

"네... 넷!"

경계심이 완전히 풀어진 나는 사양하지도 않고 염치없이 대답했다. 빈 꼬치를 집어들던 그녀가 갑자기 오른손으로 칼을 꺼내고는 얼굴이 놓여 있는 괴물의 사체로 다가가더니.

스스슥

가볍게 머리의 살부분을 베어버리고는 꼬치에 끼우기 시작했다! 우욱. 이제껏 먹고 있었던 것이 바로 저 괴물의 살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속이 요란하게 뒤틀리며 지독한 울렁거림을 호소하고 말았다.

"저... 이제 그만 먹을게요...."

"응?"

"하도 많이 먹었더니 배가 아파서... 잠시 실례좀요."

부리나케 유일한 출입구인 구멍 속으로 들어간 나는 한동안 끔찍한 구토와 복통에 시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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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6. 순백의 악마 (1) 24.04.01 6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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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5. 비오는 날의 추억 (5) 24.03.25 6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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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5. 비오는 날의 추억 (2) 24.03.15 6 0 15쪽
30 5. 비오는 날의 추억 (1) +1 24.03.13 7 0 15쪽
29 4. 용서할 수 없는 것 (6) 24.03.11 6 0 9쪽
28 4. 용서할 수 없는 것 (5) 24.03.08 8 0 9쪽
27 4. 용서할 수 없는 것 (4) 24.03.06 7 0 7쪽
26 4. 용서할 수 없는 것 (3) 24.03.04 7 0 16쪽
25 4. 용서할 수 없는 것 (2) 24.03.03 5 0 8쪽
24 4. 용서할 수 없는 것 (1) 24.02.26 6 0 8쪽
23 3. 차가운 만남 (9) 24.02.23 4 0 12쪽
22 3. 차가운 만남 (8) 24.02.21 5 0 9쪽
21 3. 차가운 만남 (7) 24.02.19 5 0 12쪽
20 3. 차가운 만남 (6) 24.02.16 6 0 8쪽
19 3. 차가운 만남 (5) 24.02.14 5 0 7쪽
18 3. 차가운 만남 (4) 24.02.12 6 0 10쪽
» 3. 차가운 만남 (3) 24.02.09 7 0 8쪽
16 3. 차가운 만남 (2) 24.02.07 6 0 7쪽
15 3. 차가운 만남 (1) 24.02.05 6 0 7쪽
14 2. 노스피아 원정대 (6) 24.02.02 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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