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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달에 울려퍼지는 소나타

그로스(growth)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적월소나타
작품등록일 :
2024.01.05 16:04
최근연재일 :
2024.04.08 19:00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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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0
글자수 :
181,998

작성
24.02.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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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3. 차가운 만남 (5)

DUMMY

정신을 차리자마자 느꼈던 것은 따뜻한 온기였다. 온 몸에 사무쳤던 한기는 사라지고 그 대신 모든 것을 녹여버릴 듯한 은은한 열기가 전신을 감싸는 듯했다.

서서히 눈을 떠보니 막연한 푸른 색의 아름다운 광경이 어른거렸고 그것은... 어쩐지 눈에 익은 듯한 모습이었다.

시야가 점점 뚜렷해지면서 나는 원래의 장소로 돌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 그녀를 만났던 장소로....

틀림없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내가 들었던 칼이 박힌 듯한 소리는 내 몸이 아니라 바닥에 꽂힌 소리였나 보다. 만약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 이후 모든 것이 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수면 상태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이곳 세계라면 게임 속에서 꿈을 꿀 수 있는 것도 불가능 한 것은 아니었을테니 말이다.

"크윽!"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듯, 뒤이어 밀려온 온 몸의 고통이 각성하듯 일어났다. 누워있던 상태에서 고개를 숙여 내 몸을 바라보니 걸레작이 된 방어구 대신 전신에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마치 죽어서 부활한 미이라처럼 미숙하게 대충 크게 몸을 따라 칭칭 둘러서 감은 모습. 다행히도 질식사시킬 생각은 없었는지 얼굴만큼은 붕대가 감겨져 있지 않았다.

나는 손과 발을 꼼지락거리며 움직여 보았다. 손가락도 마디별로 감겨 있어서 생각보다 꼼꼼했지만 느슨하게 감겨서 움직이는데 그리 불편함은 없었다.

이제 제법 고통에 익숙해지자 나는 밝은 빛에 시선을 멀리 돌려 중앙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나무조각 더미에 불이 붙여져 주위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다만, 그 불꽃의 색깔이 조금 이상했다. 붉은 빛이 아니라 불을 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한기를 느끼게 만들 법한 푸른 색의 빛깔.

그래도 그 불이 가져다주는 따뜻한 열기에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어느 정도 안심이 되어 고개를 반대로 돌려보니.

"컥?"

바로 눈 앞에 미소녀가 나를 향해 옆으로 누운 채로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제서야 불규칙적으로 들렸던 미묘한 숨소리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거의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화들짝 놀라서 반사적으로 뒤로 움찔거리며 물러났다. 아무리 게임 속이라지만 설마 여자아이와 나란히 자고 있는 상황이 발생할 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얼굴이 화끈거리며 달아오르고, 머리 속이 새하얘졌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어린 시절조차 집에서도 누나와 같이 자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흥분한 내 자신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며 멍하니 글라시아를 쳐다보는데. 어...? 얼굴이 이상하게도 낯이 익는다. 누군가와 상당히 닮은 것 같은데... 누구더라...?

이제껏 기억을 되살려보며 곰곰히 생각해 보려고 할 때 그 소녀의 청색 눈이 번쩍 떠졌다.

"먼저 깨어 있었던 거야?"

조금 멀어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의 거리에서 내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조금도 동요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무서울정도로 변함없는 무표정과 어떠한 감정도 담겨있지 않는 시선에 동요한 쪽은 오히려 나였다.

"네... 넷...."

"몸은 좀 나아졌어?"

"덕분에 나아졌어요. 가...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숙여가면서까지 그 소녀의 호의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래도 지금은 적의를 갖지 않는 것 같아 조금 마음이 놓이려고 하니 난데없이 그녀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어?"

"에...? 그러니까 그건요...."

차마 바른대로 말을 못하겠어. 글라시아가 잠든 모습이 너무 예... 예뻐서 그랬다고. 정신을 잃기 직전까지만 해도 칼을 들이댔던 그녀에게 그런 말을 할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의아함이 가득 담긴 눈길을 고개를 돌리며 뿌리쳤다. 애써 무시하면서 몸을 일으키고는 중얼거리듯이 말을 내뱉었다.

"그냥... 어째서 저를 죽이지 않았나 싶어서요...."

더이상 물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 대신 챙하면서 내 앞에 무언가가 툭 던져졌다.

"집어."

난데없는 단호한 명령에 놀라서 아래를 쳐다보니 왠 낡은 검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다시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자 어느새 일어나서 하얀 검집을 든 채 서있는 그녀였다.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으니 예고도 없이 그 소녀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검집을 휘둘렀다.

"어엇!"

반사적으로 몸을 굴려서 겨우 일격을 피한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낡은 검을 주우면서 반동으로 일어났다.

챙!

한 순간의 여유도 용납할 틈이 없이 겨우 무의식적으로 들어올린 검과 검집이 강하게 맞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며 내가 충격으로 스르륵 미끄러졌다.

제길! 너무 빠르잖아! 제대로 싸우기는커녕 반응조차 하기도 힘들었다. 고작 다가온다 싶으면 검을 들어 방어하는 그런 정도랄까.

헥헥.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다. 그저 피하기만 할 뿐인데도 체력 소모가 극심했다. 이게 바로 레벨 10과 고레벨의 차이라는 걸까.

저절로 검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공격할 수밖에 없어! 어떻게든 타격을 입혀서 저 애의 움직임을 멈추는 수밖에!

치칭!

꽤나 지친 상태에서 간신히 검을 세워 횡으로 가르는 공격을 막았으나 곧바로 이어지는 소녀의 발차기가 나의 중심을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아앗!"

다행히도 얼음판 위에 검을 꽂아 지탱하여 넘어지는 상황을 모면한 나에게 그녀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죽인다는 생각으로... 덤비는게 좋을 거야."

오한이 들 정도로 차가웠지만... 달콤한 말이 나의 본능을 자극했다. 검을 빼서 두 손으로 꽉 잡은 후 자세를 잡았다. 버팀목을 잃은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악을 써서 버텼다.

이미 저 여자애가 얼마나 강한 상대인지에 대한 이성적인 인식은 저멀리 떠나가버린지 오래였다. 그저 반드시 쓰러뜨리겠다는 의지만을 머리 속에 가득 담은 채.

남아있는 본능이 내 정신을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온 몸을 부추겨서 앞으로 나아갔다. 남은 힘을 검을 쥐고 있는 두 손에 전부 실어서 휘둘렀다.

그녀를 정말로 두동강 내버리겠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휘둘렀지만.

채챙.

너무나도 쉽게 막혔다. 내 양손으로 공격한 혼신의 일격이 겨우 그녀가 가볍게 휘두른 검집 하나에 튕겨버린 것이다.

온 힘을 쏟아부었던 터라 미처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힘없이 밀려나는 나에게 반격이 날아왔다.

톡!

무기를 사용한 공격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일격이었지만 믿을 수 없게도, 검집을 배에 정통으로 맞은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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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4. 용서할 수 없는 것 (2) 24.03.03 5 0 8쪽
24 4. 용서할 수 없는 것 (1) 24.02.26 6 0 8쪽
23 3. 차가운 만남 (9) 24.02.23 5 0 12쪽
22 3. 차가운 만남 (8) 24.02.21 6 0 9쪽
21 3. 차가운 만남 (7) 24.02.19 6 0 12쪽
20 3. 차가운 만남 (6) 24.02.16 6 0 8쪽
» 3. 차가운 만남 (5) 24.02.14 6 0 7쪽
18 3. 차가운 만남 (4) 24.02.12 7 0 10쪽
17 3. 차가운 만남 (3) 24.02.09 7 0 8쪽
16 3. 차가운 만남 (2) 24.02.07 6 0 7쪽
15 3. 차가운 만남 (1) 24.02.05 6 0 7쪽
14 2. 노스피아 원정대 (6) 24.02.02 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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