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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달에 울려퍼지는 소나타

그로스(grow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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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월소나타
작품등록일 :
2024.01.05 16:04
최근연재일 :
2024.04.08 19:00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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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수 :
181,998

작성
24.04.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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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6. 순백의 악마 (2)

DUMMY

하프 텐 거리. 센트리온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거리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인파들이 모이는 거리 중 하나로 주로 페이스의 본거지와 마법 상점들이 밀집된 장소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위치하여 언제나 사람이 끊임없이 북적이는 엔젤릭 캐스트라는 곳은 바로 페이스 레이젤 멤버들의 아지트이기도 했다.

핑크빛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아름다운 돌로 만들어진 꽤 커다란 신전, 그리고 그 주위를 아기자기한 천사가 장식되어진 하얀색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울타리.

거기다가 섬세한 문양이며 갖가지 룬이 새겨져 마치 천국의 문을 연상케 하는 커다란 게이트는 전체적으로 누가 봐도 천사가 사는 아늑한 낙원 정도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 블링블링하고 화사한 입구 앞에 어느 망토를 쓴 작은 인물이 들어가려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멈춰, 여긴 레이젤 페이스 및 그 인원들이 허가한 인물 말고는 들어갈 수 없다."

"또 죽고 싶어?"

"헉!"

망토를 쓴 인물의 말 한마디로 누구인지 알아본 듯 양쪽에 지키던 가드 모두가 당황한 얼굴로 급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환영합니다, 글라시아 프로즌워드님."

"돌아오셔서 영광입니다, 글라시아님."

이윽고 두 명의 극진한 환대를 받으며 망토 속 소녀는 천천히 문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여전하네. 모습을 감추고서 문지기를 협박하는 성질머리는."

"......."

비꼬는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망토를 걸친 소녀가 옆을 바라봤다. 새하얗고 삐죽삐죽 솟구친 머리에 노란 눈, 그리고 화려한 턱시도의 복장에 자신보다 훨씬 훤칠한 키.

"레어 스테이크."

"어이 이봐, 난 덜 익은 고기가 아니라고."

레어 스테이크라 불린 인물이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관심 없다는 듯 글라시아는 고개를 홱 돌리고는 무시하고 걸어갔다.

핑크빛 신전과 바깥쪽 울타리 사이에는 꽤 넓은 정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복숭아며 핑크빛 바나나, 핑크빛 사과 말고도 이름을 알 수 없는 온갖 분홍색 과일들이 주렁주렁 나무에 열려 있었다.

심지어는 그 열매가 열리는 나뭇잎의 색깔조차 벗꽃처럼 옅은 핑크빛을 띄고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레드 퀸보다도 더 집요한 집착을 지닌 누군가가 살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을 들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런 핑크빛 세상을 가로지르면서도 아무런 감흥 없이 오직 앞만 보고 걸어가던 글라시아는 신전의 문 앞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기다리고 있었어."

"너가?"

"아니 주인님이."

"그렇겠지."

무미건조한 어조를 계속 유지하며 글라시아는 잠시 자신의 눈 앞에 서 있는 상아빛 머리의 소녀를 노려보았다. 비켜달라는 무언의 신호인 것 같았다.

그 뜻을 알아차렸는지 그 소녀는 웃으며 검지 손가락을 흔들었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비켜줄 수 없어."

"...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의 뜻이야."

말을 끊어하는 글라시아에 맞서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똑같이 짧게 말하는 그 소녀를 보고 글라시아의 눈빛이 한층 더 사나워졌다.

"말장난 할 시간 없으니 어서 비켜."

"싫은데?"

"죽인다."

"얼마든지."

글라시아가 푸른 검신의 칼을 뽑아들고 자세를 취하려던 찰나에 문이 열리고 말았다.

"글라시아, 레이나 너희들 또 싸우는 것이냐? 얼른 그만두지 못할까."

"주인님."

레이나라고 불린 소녀가 살짝 물러나 머리를 숙여 공손과 사과의 뜻을 전하는 반면 글라시아는 고개도 숙이지 않은 채 끄떡도 하지 않았다.

"허허, 여전한 녀석 같으니라고."

실내에 있는 핑크빛 머리의 트윈테일 꼬마 소녀에게서 노인이 낼 법한 실없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래... 여행은 잘 갔다왔느냐?"

글라시아는 고개를 살짝 까딱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다소 건방지게 보이는 탓에 레이나가 불쾌한 시선으로 노려봤지만 그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럼 그 크리스탈도 찾았고?"

"응."

이번엔 조그만 목소리로 글라시아가 대답했다. 마스터와 페이스 일원의 관계인데도 불구하고 존칭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그 분홍머리 소녀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 별로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늦었어."

늦었다는 말에 꽤 놀랐는지 살짝 꼬마 소녀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먼저 그 크리스탈을 사용했다는 말이냐?"

"그런 것 같아."

"그 먼저 선수를 챈 사람을 봤느냐?"

"아니, 못 봤어."

글라시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시선을 조금 아래로 향했다. 망토 속의 시선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차린 듯 핑크빛 머리의 꼬마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거짓말에 익숙치 못한 것은 여전하구나. 사실은 그게 누군지 알고 있지 않느냐?"

귀신같이 얕은 속마음을 파악한 꼬마의 말에 글라시아는 살짝 한숨을 쉬고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 하지만 말해주고 싶진 않아."

하늘과도 같은 주인 천사님에게 알 필요가 없으니 묻지 말라는 듯한 그녀의 어조에 참다 못한 레이나가 벌떡 몸을일으키며 소리를 질렀다.

"감히 주인님에게 반말도 하는 것도 모자라서 이번엔 건방지게 먼저 못을 박아두겠다는 거야?"

자신의 말에도 전혀 꿈쩍도 하지 않는 글라시아를 보고 레이나가 화가 난 얼굴로 노란 마법봉을 들어 그녀에게 향하려고 할 때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이나, 그만해라. 딱히 내가 저 아이에게 누군지 대답을 요구하지도 않지 않았느냐?"

"알겠습니다... 주인님. 죄송합니다."

레이나는 이내 겨눈 마법봉을 내리고는 분노한 얼굴빛을 풀며 상체를 숙였다. 그렇게 레이나를 달래서 진정시키고는 꼬마가 글라시아를 쳐다보며 물었다.

"어째서지?"

"......"

잠시 동안 머뭇거리고 대답을 하지 않다가 겨우 글라시아가 입을 열었다.

"잘 모르겠어. 하지만 왠지 말해주고 싶진 않아."

꼬마는 그녀의 말이 끝난 후에도 뻔뻔하게 자기가 내키는 대로 말하는 글라시아를 자세히 관찰하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알겠다는 듯 회심의 웃음소리를 살짝 내었다.

"흐흥, 이제보니 너에게 있어 그 사람이 소중한가 보구나."

"... 아니야, 그냥 모르는 사람인데 그저."

글라시아는 뒤에 뭐라고 더 말하려다 입술을 우물거리기만 할뿐 소리를 내진 않았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더 이상 캐봤자 알 수 없을 것 같다고 판단했는지 꼬마가 체념하듯이 말했다.

"알겠다. 들어가서 편히 쉬거라."

글라시아가 꾸벅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한 후 조용히 꼬마 주인을 지나 실내로 사라졌다. 안에 있었던 꼬마는 글라시아가 안으로 들어간 후에 천천히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에 맞춰 문이 스르륵 소리를 내며 저절로 부드럽게 닫혔다. 그제서야 레이나가 상체를 피고는 조심스럽게 하소연하듯이 말을 꺼냈다.

"레이젤님 어째서 저 아이에게 그렇게나 관대한 것입니까? 처음에 먼저 자진하셔서 그 아이를 받아준 것도 그렇고... 저렇게 반말로 주인님을 대하는데 별 말도 없으시고...."

"레이나, 그건 말이다."

레이젤이라 불린 꼬마는 고개를 천천히 돌리며 바깥에 자신의 머리색깔과 똑같은 핑크빛으로 물든 과수원을 감상하듯 쳐다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난 저렇게 겉과 속이 다른 아이를 싫어하지 않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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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6. 순백의 악마 (4) 24.04.08 3 0 7쪽
39 6. 순백의 악마 (3) 24.04.05 4 0 16쪽
» 6. 순백의 악마 (2) 24.04.03 6 0 8쪽
37 6. 순백의 악마 (1) 24.04.01 6 0 14쪽
36 5. 비오는 날의 추억 (7) 24.03.29 6 0 9쪽
35 5. 비오는 날의 추억 (6) 24.03.27 5 0 11쪽
34 5. 비오는 날의 추억 (5) 24.03.25 6 0 9쪽
33 5. 비오는 날의 추억 (4) 24.03.22 6 0 11쪽
32 5. 비오는 날의 추억 (3) 24.03.20 6 0 10쪽
31 5. 비오는 날의 추억 (2) 24.03.15 6 0 15쪽
30 5. 비오는 날의 추억 (1) +1 24.03.13 7 0 15쪽
29 4. 용서할 수 없는 것 (6) 24.03.11 7 0 9쪽
28 4. 용서할 수 없는 것 (5) 24.03.08 8 0 9쪽
27 4. 용서할 수 없는 것 (4) 24.03.06 7 0 7쪽
26 4. 용서할 수 없는 것 (3) 24.03.04 7 0 16쪽
25 4. 용서할 수 없는 것 (2) 24.03.03 5 0 8쪽
24 4. 용서할 수 없는 것 (1) 24.02.26 6 0 8쪽
23 3. 차가운 만남 (9) 24.02.23 4 0 12쪽
22 3. 차가운 만남 (8) 24.02.21 6 0 9쪽
21 3. 차가운 만남 (7) 24.02.19 5 0 12쪽
20 3. 차가운 만남 (6) 24.02.16 6 0 8쪽
19 3. 차가운 만남 (5) 24.02.14 5 0 7쪽
18 3. 차가운 만남 (4) 24.02.12 7 0 10쪽
17 3. 차가운 만남 (3) 24.02.09 7 0 8쪽
16 3. 차가운 만남 (2) 24.02.07 6 0 7쪽
15 3. 차가운 만남 (1) 24.02.05 6 0 7쪽
14 2. 노스피아 원정대 (6) 24.02.02 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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