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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달에 울려퍼지는 소나타

그로스(grow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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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월소나타
작품등록일 :
2024.01.05 16:04
최근연재일 :
2024.04.08 19:00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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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수 :
181,998

작성
24.03.2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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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 비오는 날의 추억 (6)

DUMMY

삐익

"어?"

차 경적소리에 그제서야 나는 주마등처럼 흘러간 기억 속에서 깨어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보행자 신호등은 빨간불이었고 나는 거의 도로 한복판에 서있었던 것이다.

"이 새끼가 정신이 나간거야, 뭐야? 빨리 안 비켜?"

바로 앞에 서 있던 흰색 승용차에 타고 있던 한 아저씨가 운전석 창문으로 얼굴을 내민 채 나에게 윽박을 질렀다.

"죄... 죄송합니닷!"

그제서야 식은 땀을 흘린 나는 순간적인 스피드를 발휘해 재빨리 위험을 무릅쓰고 횡단보도를 전속력으로 건너고 말았다.

"휴, 위험하다. 위험해."

나는 내 몸이 멀쩡하게 붙어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도 차가 그리 많이 지나가지 않았기에 교통사고는 면할 수 있었다.

'이제 여기서 큰 길을 따라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으면 우청중학교가 나오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길을 걷고 있었는데... 뭔가 위화감이 들었다. 왠지 방금전에 지나갔던 길을 다시 지나가는 듯한 느낌은 뭐지?

'어, 이 길이 아닌데... 설마...?'

그제서야 나는 주변을 살펴보고는 횡단보도를 거꾸로 건너서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그때, 우산을 쓴 그 소녀를 보려고 몸을 돌렸었지...?

그땐 워낙 정신이 없었기에 어디가 왔던 방향인지 제대로 분간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문득 저기 저 너머 시선에 노란색 우산을 든 아까 그 소녀가 천천히 길을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오랫동안 녹슬었던 것 같은 가슴이 쿵쾅쿵쾅하고 뛰기 시작했다. 혹시나 그녀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의 발걸음이 저절로 그 소녀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거리가 점점 좁혀지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나의 심장의 고동소리 역시 빠르게 요동쳤다. 무려 1년만에... 그것도 영원히 만날 수 없었을 것만 같았던 소녀와의 만남.

그녀 덕분에 평범한 삶을 되찾게 된 나는 헤아릴 수 없는 빚을 진 셈이었다. 마른 침을 꿀꺽 삼켜가며 오랫만에 만난 그녀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있을지 저절로 상상이 되었다.

드디어 손을 뻗으면 닿을만큼 나와 그 소녀의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먼저 앞에 있던 소녀의 걸음이 멈추더니 고개를 홱 돌리는 것이 아닌가! 갑작스러운 행동에 어찌나 놀랐는지 심장이 멈춰버린 듯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놀람도 잠시. 내 눈앞에는 생소한 얼굴의 아줌마가 무슨 볼일이 있냐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 누구니?"

"엥?"

순간 당황해서 뒤로 넘어질 뻔했다. 머리와 우산은 틀림없이 똑같은 모양이었는데 얼굴은 전혀 어린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폭삭 삭은 느낌을 여실히 보여주었던 것이다.

"죄... 죄송합니닷!"

이전에 했던 말을 되풀이하며 고개를 크게 숙였다 재끼고는 창피함에 얼굴을 붉게 물들인채 나는 쏜살같이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말았다.

쏴아아아

여전히 소나기가 지상에 쏟아져 내리는 와중에 나는 겨우 우청중학교에 도착하고 말았다. 가뜩이나 갑작스러운 비에 젖은 상태에서 달리기까지 하니 이미 내 꼴은 물에 빠진 생쥐에 가까웠다.

현재 시각은 10시 20분. 지금쯤이면 아마 이곳 학생들은 교실에서 한창 수업을 받고 있을 것이었다.

'그립네... 6개월 만인가.'

루비에게 붙들려서 이곳에 왔을 때와 별다르게 변한 모습은 없는 것 같았다. 넓은 운동장이며 정문을 중심으로 북쪽과 서쪽, 동쪽에 위치한 건물 세 채. 그리고 북쪽 건물에 위치한 우산과 해가 붙어있는 모양의 동상까지...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이크!"

무심코 예전처럼 운동장을 가로질러 건너려던 나는 신발에 전해지는 불쾌한 감촉을 느끼고서야 다시 운동장에서 벗어났다.

이미 소나기로 인해 운동장은 온통 질퍽질퍽한 진흙투성이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돌아서 가야겠네....'

운동장의 가장자리를 이어주는 보도를 따라 나는 천천히 서쪽으로 걸어갔다. 워낙 비가 쏟아지니 학교 실외에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하긴, 소나기가 내릴 때 누가 이런 볼 것도 없는 학교 따위를 오겠나 싶지만.

보도 옆에는 꽤 다양한 식물들이 심어져 있었다. 이전에는 그냥 운동장 한가운데를 지나간 탓인지 잘 볼 수 없었지만 작은 나무들을 비롯하여 여러 이름 모를 알록달록한 꽃들도 보였다.

'어?'

마침 그것들을 감상하려다 건물과 화단 사이에 위치한 샛길을 발견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곳으로 데려다 줄 듯한 신비한 느낌.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천천히 그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갔다. 화단의 식물들이 점점 무성해지는가 싶더니 건물의 모퉁이를 돌아가자.

"아...!"

나는 감탄을 자아내고 말았다. 숲 속의 연못... 이라고 한다면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까? 나무들이 마치 숲처럼 무성한 가운데 한가운데에는 인공 연못이 위치해 있었다.

학교에 이런 아름다운 곳이 있었다니! 오히려 방해만 되었던 소나기가 한껏 이곳의 고요한 정취를 북돋아주는 것만 같았다.

윽... 다리가. 하필이면 이럴 때 쥐가 나다니! 아까전에 갑자기 달렸던 탓인지 허벅지가 욱신거렸다.

더이상 서있기 힘들겠다 싶어 어딘가 앉을 장소를 찾으려는데.

'있다...!'

딱 연못을 구경하기 좋은 장소에 나무와 덩굴로 만들어진 피신처가 있었다. 다행이다 싶어 가까이 가보니 놀랍게도 그곳에는 한 흑발의 여성이 앉아있었다.

검은 스커트에 회색 털로 만든 스웨터 차림을 보니 어쩐지 교사같아 보였다. 어느새 허벅지의 고통도 잊은 채 나는 천천히 다가가 그녀의 옆에 앉았다.

"저기... 혹시 여기 학교의 교사신가요?"

"......! 아... 네. 맞아요."

갑자기 난데없이 뒤에서 말을 걸자 흠칫 놀란 그녀가 고개를 돌리고 눈을 크게 뜨더니 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조금은 안심이 되었는지 살짝 눈썹을 늘어뜨리며 대답했다.

나는 주위를 슥 둘러보며 감탄을 하고는 중얼거렸다.

"이런 데가 있었다니... 미처 몰랐네요. 처음 와보는 건데...."

"사실은 저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안지 얼마되지 않았어요."

그녀는 맞장구를 치며 한껏 살며시 웃음을 지었다. 생각보다 교사임에도 불구하고 많이 얼굴이 어려보였다. 정말로 입고 있는 옷을 떠나서 객관적으로 본다면 많이 나이를 쳐봐야 고등학생이나 스무살 정도일까나?

"정말로... 교사신거 맞죠...?"

"네, 3학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왠지 저런 동안으로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생각을 하니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마치 동갑내기 교사와도 같은 모습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러다가도 3학년이라는 말에 문득 나는 누나를 떠올렸다. 어 잠깐... 그럼 누나도 3학년인데... 혹시?

"김다인이라고... 아시나요?"

이름만으로는 모를 수도 있겠다 싶어서 나는 평소 누나의 모습을 아는대로 설명했다.

"갈색의 부스스한 머리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조금 엄격하면서도 신경질을 잘 내는 편인데요...."

"으음? 김다인이라고 하면 제 반 학생이라 잘 알긴 한데... 전혀 다르게 생긴 것 같은데...."

어라? 이상하다. 확실히 누나가 여기 3학년생인게 맞는데... 혹시 동명이인이 있을까 싶어 물어보았지만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저희 학교에 김다인은 딱 한명 뿐이에요. 그 애밖에 없는데.... 모두에게 상냥하고 갈색의 곱상한 긴 생머리에 안경을 쓰지 않아 초롱초롱한 눈이 예쁜 소녀에요."

"에에?"

뭔가 누나의 이미지와는 전혀 반대이다 싶을 정도로 괴리가 있는 소녀의 인상을 언급하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 다른 사람하고 착각하고 계신 거겠지? 초등학교 때도 선생님이 학생의 이름을 헷갈려하는 상황은 드물긴 해도 간혹가다 있는 일이었으니까.

난처해진 나는 주제를 다른 쪽으로 돌릴 필요성을 느껴서 누나에게 들은 대로 학교에 대해 아무거나 아는 사실을 꺼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 그러고 보니 말인데요. 여기 중학교가 자율형 국제학교라고 들었는데...."

"맞아요. 그래서 이곳 중학교에 들어오는 아이들을 보면 꽤 머리가 좋더라고요. 굳이 가르쳐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깨우치는 아이들도 많고요."

그 이후로 꽤 오랜 시간동안 나와 그녀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 자율형 국제학교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여러 주제를 거쳐 결국엔 삶의 이야기까지 번지게 되었다.

"헤에, 그러니까 세인은 어쩔 수 없이 중학교에 진학을 하지 못하고 게임에서 성공하기로 마음을 먹은 거군요."

"네... 게임에서 성공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지만, 뭐 대충은요."

"아쉽네요. 세인 같이 의욕이 넘치고 노력을 열심히 하는 아이라면 분명 학교에서 공부도 잘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에, 제가 공부를요? 에이, 그럴리가요."

나는 손사래까지 쳐가며 그것을 부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초등학교 때도 반에서 지극히 평범하게도 중간 정도에 들어갔을뿐더러 무엇보다도 지금 내 나이로 따진다면 중학교 2학년이 되었어야 했다.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올라온 이들보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한들 더 공부를 잘 할 리가 없지 않는가!

"후후, 하지만 내 직감에 따르면 그런걸요?"

그 선생님은 입가에 여유로운 웃음을 띄면서까지 자신있어하는 눈치였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렇게 생각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띠리리링

그때 마침 학교의 벨소리가 울리자 그녀가 자신의 팔에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보더니 새삼스레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앗? 벌써 끝마칠 시간이라니... 이제 조회 때문에 가봐야 할 거 같네요."

"어... 그런가요?"

나는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기껏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다시 혼자서 가만히 있어야 한다니....

"그럼... 가볼게요."

옆에 세워놓았던 회색 빛깔의 우산을 펼쳐 쓰고서 그녀는 피신처 바깥으로 나갔다. 워낙 갑작스러워서 뭐라고 인사를 해야 할지 몰라 난처해하고 있을 때 그녀가 생각난 듯 빗속에서 나를 향해 돌아보더니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 참... 학교에서 공부를 다시 시작해보는 거... 한번 집에 가서 진지하게 생각해보세요."

"공부라...."

그녀가 가고 나서 한동안 나는 소나기 속에 갇힌 맑은 연못을 감상하며 같은 말을 기계처럼 반복하여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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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3. 차가운 만남 (7) 24.02.19 5 0 12쪽
20 3. 차가운 만남 (6) 24.02.16 6 0 8쪽
19 3. 차가운 만남 (5) 24.02.14 5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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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3. 차가운 만남 (2) 24.02.07 6 0 7쪽
15 3. 차가운 만남 (1) 24.02.05 6 0 7쪽
14 2. 노스피아 원정대 (6) 24.02.02 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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