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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달에 울려퍼지는 소나타

그로스(grow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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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월소나타
작품등록일 :
2024.01.05 16:04
최근연재일 :
2024.04.08 19:00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484
추천수 :
0
글자수 :
181,998

작성
24.03.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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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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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4. 용서할 수 없는 것 (5)

DUMMY

"오빠, 나 배고파!"

낡은 집 안. 이제 겨우 아기의 티를 벗어난 듯한 어린 소녀가 방 안에서 소년에게 떼를 쓰고 있었다. 방의 구석에는 군데군데 시퍼런 곰팡이가 껴있었고 무언가 썩은 퀴퀴한 냄새가 진동할 것만 같았다.

"조금만 참아."

"나 정말 배고프단 말야, 어제도 오늘도 하나도 못먹었잖아!"

"참으라니까!"

소년으로서는 이 말 밖에 해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여동생보다 나이가 기껏해야 두 살 위 많아 보이는 정도?. 그도 역시 어린 소년이었다.

"엄마는 어디가신거야? 글고 아빠는?"

"내가 어떻게 알아. 조용히 해."

소년은 무심히 말하면서도 마음에 걸렸는지 고개를 푹 떨구었다.

"치, 맨날 모른다고만 하고!"

소녀가 한껏 볼도 부풀려 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소년이 받아주지 않자 소녀도 더이상 말을 꺼내지 않고 낡은 천으로 만든 시트에 조용히 누웠다.

소년은 곁눈질로 소녀가 완전히 잠들때까지 기다렸다.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소녀가 눈을 감고는 조용히 숨소리만 내기 시작했을 때 소년은 소녀가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마법등을 끈 후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바깥은 어둡고 자욱하게 안개가 껴있었다. 바로 한치 앞의 시야도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소년은 마치 훤히 보는 듯이 자연스럽게 거리를 걸었다.

한참을 걷다가 어느 근사한 빵집 가게 앞에 다다르자 소년이 멀리서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오늘은 안개 때문에 빵을 훔쳐도 걸리지 않을 거야."

그저 배고픈 소녀에게 무언가를 먹일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던 것일까? 소년은 슬쩍 미소를 짓고는 천천히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앞으로 일어날 일은 전혀 생각치도 못한 채.


"또 잡았다, 이 녀석들!"

철썩철썩

한 중년의 인물이 대낮에 커다란 마찰 소리가 날 정도로 두 아이를 심하게 채찍으로 후려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콧수염을 기른 중년의 인물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낯익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바로 음산한 광장에서 노예들을 팔고 있을 때 사회자로 섰던 인물과 많이 닮았다.

불룩한 배와 통통한 얼굴이 인상적인 그에 반해 두 아이는 매우 비쩍 말랐고 얼굴이며 몸이 매우 연약하게 보였다.

얼굴만 본다면 바로 이전의 영상에서 봤던 소년과 소녀를 살짝 떠올릴 법했지만 그와 다르게 땅딸막했던 키는 어느 정도 몰라볼 정도로 훌쩍 자라 있었다.

"죄... 죄송해요. 한번만 요... 용서해주세요!"

소년이 덜덜 떨면서 무릎을 꿇고 빌었지만 중년은 아랑곳하지 않고 채찍으로 연신 상체를 마구잡이로 갈겼다.

"미안하다고 빌면 다냐? 벌써 도망친게 몇번째인데! 네 녀석들같은 마녀 자식 놈들에게는 절대 탈출할 생각조차 못하게 두들겨 패는 게 약이지."

"으악! 잘못했어요!"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맞으면서도 연신 잘못했다고 절실하게 말하는 소년. 하지만 그와 다르게 소녀는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

"뭐냐? 네 년은 잘못하지 않았다는 거냐? 왜 말이 없어? 엉?"

인정사정없이 채찍 세례가 소녀의 온 몸을 구석구석 강타했지만 여전히 그녀는 입을 꾹 다물었다. 가끔씩 얼굴을 향한 눈먼 채찍에 입술까지 불어 터졌지만 피가 줄줄 새어나오는 와중에도 소녀는 눈 하나 깜짝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미친듯이 휘두르다가 뒤늦게 입술이 터졌다는 사실을 확인한 듯, 중년은 채찍질을 멈추며 소녀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독한 년! 노예로 팔아야 하니까 이 정도로 끝난 줄 알아라!"

철문이 닫히고 허름하고 좁은 감옥 안에 소녀와 소년만이 남게 되었다. 소년은 문이 닫히자마자 너무나도 억울했는지 하소연하듯 소녀에게 말을 퍼붓기 시작했다.

"왜 우리가 이곳에 갇혀야 돼? 우린 아무런 잘못도 없잖아! 우리 엄마 아빠가 마녀랑 나쁜 마법사라고 왜 우리까지 노예가 되어야 하는 건데?"

"......."

소녀가 문을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할 생각을 않자 소년이 화가 났는지 소녀의 멱살을 붙잡고 울부짖었다.

"뭐라고 말 좀 해봐! 옛날에는 잘만 나한테 투정 부렸잖아! 왜 갑자기 말을 안하는 건데? 몇 년 전에 배고프다고 졸랐던 것처럼 어디 한번 말해보란 말야!"

"......."

그래도 전혀 말할 생각을 않자 소년이 소녀의 뺨을 짝 소리가 나게 세게 손으로 쳤다. 볼이 보기 흉하게 퉁퉁 부어올랐지만 지그시 입술을 꽉 깨문채 단지 소년을 노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되자 오히려 마음이 심란해진 쪽은 소년인 것만 같았다.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눈빛을 고치고서 애절한 마음으로 소녀의 두손을 꼬옥 잡은 채 사정하듯이 말했다.

"너라면 그 이상한 능력으로 다시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잖아! 그러니까 다시 탈출해보자, 응?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할 거야. 그리고 나중에 이 녀석들에게 복수할 수 있을 거라고!"

"그래봤자 달라질 건 없어...."

두 손을 뿌리친 소녀가 팔짱을 끼고 얼굴을 쭈그린 다리 속에 파묻은 채 힘없이 대답했다. 마치 모든 행복이 사라지고 이전에 있었던 모든 생기가 없어진 듯한 그런 목소리.

어쩌면 소년이 제일 화가 나는 것은 그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어째서 그런건데? 너라면 충분히 이제 그 녀석들을 죽일 수 있잖아! 그 이상한 마법인가 뭔가로 녀석들을 해치운다면!"

"마법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어. 오빤 아직도 그걸 몰라...."

의미심장한 말에 소년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소녀를 쳐다보았지만 계속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채 무언을 지킬 뿐이었다.


어느 날 밤, 다시 이전에 봤었던 낡고 허름한 집에서 소년과 소녀가 나란히 시트 위에 앉아 있었다. 둘 다 감옥에서 줄로 묶인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고 소녀의 눈빛에서는 더이상 절망적인 감정이 남아있지 않아 보였다.

"오빠."

"응? 왜, 소영아?"

"우리... 이곳에서 나가자."

"여길... 나간다고?"

소년에게서 망설이는 듯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밖으로 나가 떠도는 생활을 하는 것이 두려웠던 게 분명했다.

"바깥으로 나간다면 또다시 그 나쁜 놈들에게 잡힐 지도 몰라. 게다가... 어디에서나 우리 같은 마녀의 자식을 받아줄 사람들은 아무도 없을 거야."

"아니, 있을 거야."

확신에 찬 듯한 어조로 소녀가 확고하게 말하자 소년이 이젠 불안한 어조로 애원하기 시작했다.

"소영아, 잘 생각해 봐. 우린 지금 자유의 몸이야. 비록 숨어서 생활을 하고 있긴 하지만 노예 생활보다는 백 배는 더 낫잖아. 음식이야 다시 훔치면서 끼니를 떼우면 돼. 걸리지만 않으면 어쩌면 당분간은 먹고 살 수 있을 지도 모르잖아. 그런데 다시 나쁜놈들에게 걸릴 지도 모르는 위험한 방랑 생활을 하겠다고?"

"아니. 그건 아니야."

그저 농담으로 그런 소리를 한 줄 알고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는지 소년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러나 이어지는 소녀의 말에 더욱 질색이 되고 말았다.

"우리, 그 분을 따라서 센트럴 시티에 가자."

"뭐... 뭐라고...?"

소년의 눈동자가 유난히 크게 흔들렸다.

"잘 생각해 봐. 우린 지금 아무것도 없어. 그런데 센트럴 시티에 무작정 가겠다고? 그곳은 낯선 도시야. 거기에 가면 우린 굶어 죽을 거라고!"

"그럴 지도 모르지."

"......."

조금은 거센 변명을 예상했는지 소녀의 김 새는 말에 소년의 눈동자가 한껏 풀렸다. 그 대신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쳐다보다가 소녀는 시선을 돌리며 헤픈 웃음을 지었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이대로 사는 것을 원치 않아.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

"소영아... 너 그게 정말로 잘 될 거라고...."

"알아, 결코 쉽지 않을 거라는 것도.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어."

"......."

너무나도 확고하게 소녀가 말하자 소년의 말문이 잠시 멈췄다. 어쩌면 단 한번도 소년은 기존에 있던 이 곳을 벗어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을 지도 모른다.

"그래, 알았어...."

크게 심호흡을 한번 소년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해보자."

"오빠... 정말 고마워."

소녀가 와락 안겨오자 소년이 잠깐 당황한 얼굴빛을 띄다가 이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받아주었다.

방 안에는 가끔씩 깜빡거리는 낡은 마법 전등이 남매를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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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3. 차가운 만남 (9) 24.02.23 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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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3. 차가운 만남 (6) 24.02.16 6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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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3. 차가운 만남 (3) 24.02.09 7 0 8쪽
16 3. 차가운 만남 (2) 24.02.07 7 0 7쪽
15 3. 차가운 만남 (1) 24.02.05 6 0 7쪽
14 2. 노스피아 원정대 (6) 24.02.02 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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