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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달에 울려퍼지는 소나타

그로스(growth)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적월소나타
작품등록일 :
2024.01.05 16:04
최근연재일 :
2024.04.08 19:00
연재수 :
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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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수 :
181,998

작성
24.03.2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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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5. 비오는 날의 추억 (5)

DUMMY

“···....”

지금 나는 멍하니 VIP룸 거실에 걸터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오늘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그로스 게임이 정기적인 서버 점검을 하는 날이라고 하는데요. 자세한 소식을 이민준 기자가 보도하겠습니다.]

기껏 게임을 하려고 레인즈시티 라그나로크 빌딩까지 왔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인지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 있다가 습관적으로 캡슐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나는 방송을 듣고나서야 인터넷에 올려져 있던 공지사항을 상기시켰다.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라고 했던가...? 나는 거실 벽에 걸려져 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9시 20분이었다.

나는 무심코 창문을 바라보았다. 나래 누나의 해맑은 미소와는 상반되게도 어두운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했다.

뭐, 평범한 날씨인가.... 이곳 레인즈시티라면 도시 이름 답게도 맑은 날보다는 흐린 날이 훨씬 더 많았으니.

이제 뭘 한담...? 진작에 시작된 점검 때문에 나는 한가한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어제부터 이 사실을 알았지만 특별히 세워놓은 계획 따윈 없었다... 아니, 세우고 싶어도 세울 수가 없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중학교를 다니지 않아서 중학교 친구따윈 없었고 가끔씩 메일을 주고받는 초등학교 친구들은 저 멀리 내가 사는 달동네에 있을뿐더러 지금쯤 수업을 받고 있을게 분명하다.

생각해보니... 다른 또래 아이들은 전부 중학교에서 수업을 받으며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이렇게 게임만 하며 살아도 괜찮은걸까.

‘만약 지금까지도 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나보고 뭐라고 하셨을까...?’

문득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힘들게 폐지를 주워가며 일을 하셨던 할머니를 떠올리자 눈물이 핑 돌았다. 흑, 슬픈 생각을 떠올리고 말았어!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댔다. 이런 우중충한 날씨에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이럴 때일 수록 좀 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져야지!

흐린 날씨에 지지 않겠다고 소파에서 일어나 가볍게 스트레칭도 해보고 그랬지만 곧 어색해져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혼자 방안에만 박혀있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바깥 날씨에 영향을 받아 우울한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그래, 나가자. 일단 나가고 보는 거야."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나는 밖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

점퍼를 입고 라그나로크 빌딩 밖으로 나온 나는 바로 문 앞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막상 나오고 보니 어디로 갈지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딱히 아는 장소들도 별로 없었고 그렇다고 그리 가고 싶은 장소도 없었기에 외출을 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고 말았다.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오랫동안 바깥에 있을 것을 염두해 둬서 일회용 우산까지 샀지만 뻘쭘하게도 포기해야 할 것만 같았다. 기껏 마음을 먹고 나왔는데 괜히 폼만 잡고 돌아가는 꼴이라니... 내 자신이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쯤... 누나는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겠지?"

차라리 학교에서 마음껏 공부를 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는 누나가 오히려 부러울 정도였다. 쬐끔 수업을 듣거나 숙제를 하거나 시험을 보는 것 등등이 귀찮긴 하겠지만 그래도 무언가 할 수 있는... 아니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건지 알고 있었다.

'잠깐... 학교라고...?'

문득 학교라고 하니 누나가 다니는 중학교가 생각났다. 확실히... 우청중학교라고 했던가? 예전에 루비가 자신이 다니는 학교를 소개해 주겠다며 억지로 잡아끄는 바람에 무심코 학교까지 따라와버린 적이 있었다.

뭐, 누나의 자랑으로 들은 바로는 그 학교가 국제도시인 이곳 레인즈시티 중에서도 단 세 곳뿐인 자립형 국제학교라고 하던데.

좋았어! 그곳으로 가자. 눈을 빛내면서 의욕에 찬 나는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향했다.

집을 벗어난 지 몇분도 채 안되서 어깨에 스며드는 차가운 감촉과 함께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가 오려나...? 우산을 쓸까 고민했지만 워낙 하늘에서 가끔씩 떨어지는 가랑비였기에 그 고민을 접어버렸다.

조금은 맞으면서 걸어가는게 훨씬 더 정취있고 기분전환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도시였기에 산성비에 대한 걱정이 아주 조금도 없는 것은 아니였지만.

그러나 곧 나는 그 결정을 후회하고 말았다.

쏴아아

순식간에 하늘에 구멍이 뚫린듯 급속도로 쏟아내리는 물줄기. 시야가 급속도로 흐려지고 귀가 물방울이 땅과 맞닿는 경쾌한 소리로 가득 매워졌다.

모처럼 내리는 것이었기에 반갑지만 내심 막상 오면 꺼리게 되는 손님. 바로 소나기가 시작된 것이었다.

***

후두두두

날카롭게 쏘아대는 빗줄기들을 우산으로 방어하면서 나는 지금 길거리를 걷고 있었다. 이미 예상치 못한 소나기의 급습에 온몸이 비에 흠뻑 젖었지만 말이다.

나는 주변을 조금 신기한 눈빛으로 둘러보았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로 북적였던 거리는 어느새 소나기가 내리자 한산한 거리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꽤 오랜만에 보는 소나기구나....'

언제였더라? 소나기를 맞으며 허겁지겁 집으로 뛰어갔던 때가.... 생각이 날듯 말듯 지나간 기억이 내 머릿속을 괴롭히고 있었다.

무언가 중요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꽤 오래된 일이라서 그런지 잊어버린 모양이다. 그렇게 머리 속으로 어떻게든 떠올리려고 노력하며 발을 움직이고 있는데.

'어?'

바로 보이는 빨간 불의 보행자 신호등 옆. 그러니까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 길을 사이에 두고서 왠지 익숙한 외모가 눈에 띄었다. 노란색 우산에 소소하게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소녀.

우산을 쓰고 있었기에 얼굴까지 자세히는 볼 수 없었지만 이런 우중충한 날씨에서도 타오르는 듯한 적갈색의 화사한 긴 머릿결이 무척이나 예뻐보였다.

어디서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도무지 그 근원을 찾을 수가 없어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을 때 마침 보행자 신호등에 푸른 불이 들어왔다.

그 의문의 인물과 점점 가까워졌고 그럴수록 나의 심정 또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지나치게 된다면 영영 떠올릴 수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정 중앙에서 나와 그 적갈색 머리카락을 지닌 소녀가 만났을 때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너도 레인즈시티로 가는거니?'

기억 속 소녀의 울림. 아...! 그제서야 나는 기억의 정체를 깨달았다. 1년 전 처음 달동네에서 그 소녀를 만났던 시절. 그 때도 소나기가 내리는 날이었던 것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나는 가출을 결심하고 집 밖으로 뛰쳐나왔었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 수 없을 것 같다는 누나의 말에 대판 싸우고 왔던 직후였다.

막연하게 버스 정류장에서 어디든 멀리 도망치고 말겠다는 생각에 누나 몰래 서랍에서 훔친 몇천원의 돈을 손에 쥐고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우연히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처음 만난 그녀 역시 샛노란 우산에 소소하게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서 달동네를 유일하게 거치고 지나가는 버스 하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알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녀와 함께 레인즈시티까지 따라가게 되었다.

처음 셰리를 만난 이후로 며칠간은 정말이지 꿈만 같이 행복하기만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세리와 마음껏 모든 것을 잊고 놀 수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기뻤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고 어느날 해질녘. 세리는 갑작스럽게 사라지고 말았다.

"고마워... 그 동안 즐거웠어."

그녀가 한 마지막 말... 어째서 셰리는 떠나고 만걸까?

단순히 내가 마음에 안들어서 떠난 것 같지는 않았다. 분명 내 스스로 다가가지 못할... 그런 깊고 어두운 이유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럼에도 다시 만나고 싶었다. 하루하루 무의미하게 달동네의 집 방구석에 갇힌 채 연명하던 나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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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6. 순백의 악마 (1) 24.04.01 6 0 14쪽
36 5. 비오는 날의 추억 (7) 24.03.29 5 0 9쪽
35 5. 비오는 날의 추억 (6) 24.03.27 5 0 11쪽
» 5. 비오는 날의 추억 (5) 24.03.25 6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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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5. 비오는 날의 추억 (1) +1 24.03.13 7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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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4. 용서할 수 없는 것 (3) 24.03.04 7 0 16쪽
25 4. 용서할 수 없는 것 (2) 24.03.03 5 0 8쪽
24 4. 용서할 수 없는 것 (1) 24.02.26 6 0 8쪽
23 3. 차가운 만남 (9) 24.02.23 4 0 12쪽
22 3. 차가운 만남 (8) 24.02.21 5 0 9쪽
21 3. 차가운 만남 (7) 24.02.19 5 0 12쪽
20 3. 차가운 만남 (6) 24.02.16 6 0 8쪽
19 3. 차가운 만남 (5) 24.02.14 5 0 7쪽
18 3. 차가운 만남 (4) 24.02.12 6 0 10쪽
17 3. 차가운 만남 (3) 24.02.09 6 0 8쪽
16 3. 차가운 만남 (2) 24.02.07 6 0 7쪽
15 3. 차가운 만남 (1) 24.02.05 6 0 7쪽
14 2. 노스피아 원정대 (6) 24.02.02 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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