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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달에 울려퍼지는 소나타

그로스(growth)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적월소나타
작품등록일 :
2024.01.05 16:04
최근연재일 :
2024.04.08 19:00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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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1,998

작성
24.03.1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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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용서할 수 없는 것 (6)

DUMMY

"그래서... 저와 제 오빠는 이렇게 여행자님께 찾아오게 되었어요."

영상이 끝나고 다시 눈 앞의 시야가 돌아왔을 때 어느새 소영의 이야기는 끝이 나 있었다. 나는 정신을 수습하면서도 조금 의아한 마음에 살짝 신음소리를 내었다.

"음...."

언뜻보면 그저 슬프고 불쌍한 이야기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한가지 신경쓰이는 의문이 있었다.

영상 속에서 그녀의 오빠가 말했던 소영의 '마법'. 분명 그 마법인가 뭔가를 통해 몇번이고 철창을 탈출했다는 소리가 나온 걸로 봐서는 정말로 소영이 마법을 쓸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영아, 그러니까 너...."

실제로 소영에게 그것을 물어보려다 반사적으로 질문을 그만두고 말았다. 소영이 자신이 이상한 능력을 쓸 줄 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네?"

뭔가를 물어볼 듯한 기세로 말을 던졌다가 끊자 소영이 눈을 깜빡거리며 이상하게 바라보자 나는 황급히 손을 저으며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한동안 그 이후에도 몇 가지 대화가 오고갔다. 직접 묻지는 않았지만 소영이가 수상한 눈빛으로 나를 계속 쳐다보는 것이 느껴져서 애써 나는 살짝 고개를 돌리며 무시한 척 이야기를 나누었다.

***

끄르륵 끄륵

몬스터의 괴성이 난무하는 노스피아 외곽 벌판. 가장 약한 몬스터의 레벨조차 200정도인 만큼 엄청난 고난도 지역을 자랑하는 무시무시한 곳이었지만 평소와는 달리 그 울음소리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하나같이 앓는 소리를 내며 픽픽 쓰러지는 스노우 레빗. 단 한명의 인간, 그것도 어린 소녀에게 학살당하는 토끼들을 보자니 마치 현실의 동물원에서 풀을 뜯어먹는 연약한 토끼들이 늑대에게 사냥당하는 모습이 저절로 떠올랐다.

"와, 글라시아 언니는 정말 대단해!"

연신 감탄을 자아내며 팬처럼 열렬히 언니 화이팅 하고 응원하는 소영의 모습을 보자니 나는 한숨을 쉬었다.

뭐라고 할까. 이런 무서운 곳에서 관객이라도 되는 양 신나게 떠드는 저 애가 너무 겁이 없다고나 할까.

아니면 거의 한 달도 넘게 글라시아와 넘게 지냈지만 대놓고 친근하게 이름만 부르기는커녕 존칭을 유지하고 있는 나와는 달리 겨우 하루만에 친해져버린 소영의 모습을 보고 허탈하다고나 할까, 조금 샘이 난다고나 할까.

새벽에 나와 두 남매가 대화를 나누고 나서 겨우 하루 하고 몇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글라시아와 소영은 서로 꽤나 가까워졌다. 방 안에서 하루종일 무슨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렇게 친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글라시아의 사냥과 검은 모자를 쓴 남자의 철저한 엄호 속에 나를 포함한 세 명은 손 하나 까딱하지도 않고 어느새 텔레포트 마법진이 있는 크리스탈 루인 입구까지 올 수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네."

짧게 감상을 말한 글라시아가 자신의 칼에 묻어있는 몬스터들의 검붉은 피들을 흔들어서 털어냈다. 원래는 밝은 붉은 빛의 검날이었지만 지금은 피가 섞여 섬뜩한 검은빛을 띄고 있었다.

"준비됐어?"

"응, 언니!"

마법진 앞에서 글라시아의 무미건조한 질문에 제일먼저 소영이 힘차게 대답했다. 소풍을 가기 위해 버스라도 올라탄 것처럼 싱글벙글하는 소영에게 나는 왠지 힘이 빠져서 힘없는 목소리로 작게 긍정했다.

"네...."

"......."

소년은 침묵을 유지했다. 새로운 도시로 간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라도 난 걸까? 살짝 두려운 낯빛을 하고는 고개를 푹 숙이는 소년의 모습에 글라시아가 다시 한번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무표정의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글라시아의 모습에 역효과라도 난듯 더욱 굳어져버린 소년의 표정. 나는 내 자신이 나서야 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걱정하지 마. 센트럴 시티는 그렇게 무서운 곳이 아니니까."

"저... 정말요?"

"그럼."

진심의 뜻을 보여주기 위해 내가 활짝 웃자 소년도 안심이 됬는지 덩달아 한결 얼굴이 풀어졌다.

"그럼 시작할게."

글라시아가 슬쩍 그 남자를 바라보자 그 남자가 손바닥을 마법진이 있는 땅 아래로 향한 후 뭐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마법진이 밝아지며 그 속에서 눈부신 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여기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동굴 안의 어둠을 집어삼키고 하얀색의 섬광이 시야를 장악해왔다.

그 백색의 형상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마법진의 빛이 절정에 달할 무렵 마침내 파팟하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시야가 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윽...!"

나는 당장이라도 뭔가를 게워낼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는 켁켁거리기 시작했다. 한번 겪어봤던 이동마법이었지만 도저히 익숙하지가 않았다.

"괘... 괜찮으세요?"

여자 안내원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오자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고개를 펴고 억지로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하하, 괜찮아요."

"다행이네요...."

정말 괜찮냐는 듯한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안내원의 시선에 쓴 웃음을 짓다가 멀리서 씩씩한 소리가 들려왔다.

"세인님, 빨리 올라와요! 안 그럼 언니가 두고 간대요!"

"헉!"

어느새 지상으로 가는 긴 계단의 맨 위에서 소리치는 소영의 모습을 보고는 나는 허겁지겁 질주하기 시작했다.

"늦었네."

숨이 목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전력으로 계단을 뛰어올라 지상까지 올라갔을 때 글라시아와 모자를 쓴 남자가 한심하다는 듯이 기다리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쯧쯧, 죄송하다면 다인 줄 아나요."

"저 아저씨가...!"

그 남자가 혀를 차며 비꼬듯이 말하자 나는 바짝 약이 오르기 시작했다.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옆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나를 제지했다.

"다 왔으니 나가자."

"넷, 글라시아님."

언제 무슨 말을 했냐는 듯이 글라시아가 홱 몸을 돌려 철썩같이 리셀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고 나는 살짝 열받은 표정으로 그 정령을 뒤따라 갈 수밖에 없었다.

잠시 동안을 가다가 어느 북적이는 사거리에서 글라시아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네."

"네...."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 나는 힘없이 대답했다. 그렇게 대답하면서 무언가를 깨달은 듯 내 스스로가 새삼스럽게 놀랐다.

생각해보니 정작 무사히 이곳에 돌아왔는데도 불구하고 기쁘지 않았던 것은 이것을 염두해두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째서, 겨우 한 달 밖에 만나지 못했는데.... 잠깐, 한 달이라고? 지금 와서 느끼는 거지만 너무나도 짧게 흘러갔던 시간이었다.

"언니... 그 동안 정말 고마웠어."

소영도 무척 아쉬웠는지 살짝 울먹거리는 소리로 말하자 마냥 차갑기만 했던 글라시아의 시선이 조금은 따스하게 변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럼."

아무런 미련도 없이 후드를 머리 끝까지 눌러쓴 글라시아가 등을 돌려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무표정하고 차가운 그녀다웠지만... 뭔가 너무나도 허무했다.

그저 우연히 만났지만, 목숨까지 걸어가면서 따라다니고... 그리고 배웠던 사이인데 이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도록 보내야만 되는 걸까?

"저기...!"

큰 소리로 외치는 나의 목소리에 글라시아가 뒤로 고개를 돌렸다. 나를 무표정하게 쳐다보고 있었지만 어쩐지 조금은 그녀의 동요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망설이면서도 행여나 들리지 않을까봐 크게 또박또박 외치는 내 목소리에 잠깐 당황한 듯 글라시아가 멈칫거렸다.

그러다가 뭔가를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리는가 싶더니 내 귀에 기계음의 메세지가 들려왔다.

[글라시아님이 친구 신청을 하였습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

"받아."

잠시 얼떨떨해서 멍하니 있다가 희미하게 멀리서 들려온 글라시아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내가 급하게 수락했다.

"네... 넷!"

[친구 신청을 수락하셨습니다.]

"필요하면... 이걸로 말해."

이 말을 끝으로, 그 소녀는 고개를 돌아서서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감사합니다!"

뒤늦게 감사의 말을 전했지만 끝내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더 이상 그 소녀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작가의말

드디어 노스피아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지는 자잘한 내용을 빼면 전체적인 흐름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음에 이어질 '소나기의 추억' 편부터는 조금 내용이 추가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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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5. 비오는 날의 추억 (1) +1 24.03.13 7 0 15쪽
» 4. 용서할 수 없는 것 (6) 24.03.11 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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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4. 용서할 수 없는 것 (4) 24.03.06 7 0 7쪽
26 4. 용서할 수 없는 것 (3) 24.03.04 7 0 16쪽
25 4. 용서할 수 없는 것 (2) 24.03.03 5 0 8쪽
24 4. 용서할 수 없는 것 (1) 24.02.26 6 0 8쪽
23 3. 차가운 만남 (9) 24.02.23 4 0 12쪽
22 3. 차가운 만남 (8) 24.02.21 6 0 9쪽
21 3. 차가운 만남 (7) 24.02.19 5 0 12쪽
20 3. 차가운 만남 (6) 24.02.16 6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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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3. 차가운 만남 (3) 24.02.09 7 0 8쪽
16 3. 차가운 만남 (2) 24.02.07 6 0 7쪽
15 3. 차가운 만남 (1) 24.02.05 6 0 7쪽
14 2. 노스피아 원정대 (6) 24.02.02 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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