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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달에 울려퍼지는 소나타

그로스(growth)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적월소나타
작품등록일 :
2024.01.05 16:04
최근연재일 :
2024.04.08 19:00
연재수 :
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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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수 :
181,998

작성
24.03.03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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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4. 용서할 수 없는 것 (2)

DUMMY

노스피아. 모험가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혹한의 도시. 모두가 그곳에 가는 것을 한번씩은 꿈꾸곤 하지만 실제로는 결코 가기가 쉽지 않은 도시이기도 하다.

노스피아를 때로는 눈꽃의 도시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워낙 북쪽에 있는 탓에 1년 내내 눈이 와서 눈을 활용한 조형물이나 예술품이 곳곳에 눈길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다름 아닌 도시의 이름을 딴 눈으로 만든 꽃밭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로 여기가 루이스 아르비트가 만든 설화의 미궁이라는 곳입니다."

"와아, 저 꽃들 좀 봐...."

"이거 스샷으로 찍자."

그렇기 때문에 안내원을 대동한 노스피아 관광도 상당히 유행하는 편이었다. 물론, 장거리 텔레포트를 하는데다 크리스탈 루인 입구에서 노스피아까지 호위를 위해 실력이 뛰어난 용병을 고용하는 탓에 대체로 가격이 무척이나 비싸다는 점을 염두해두어야겠지만 말이다.

"자, 이제 구경을 하셨으면 이쪽으로 모이세요."

안내원의 말에 수많은 인파가 우르르 한 여성이 서 있는 곳으로 일제히 달려왔다. 정원에 있던 사람들 거의 모두가 관광객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런 점을 고려해도 노스피아는 충분히 관광이 성행할 만큼 아름답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인파가 입구를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살짝 한숨을 쉬었다. 워낙 이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서 인파에 채인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으니까 무리도 아니다.

정말이지, 북쪽 끝 위험한 지역에 위치한 도시라서 한적할 거라고 착각했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곳 스노우 플레이크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물결은 엄청났다.

"... 이래서 그 남자가 여기로 가는 건 별로 좋지 않다고 말한 거구나...."

말 그대로 지금 나는 구경을 하러 다니는 중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회복 마법으로 치유를 한 후, 글라시아가 잠을 자는 동안 신전에 가만히 누워있기도 뭐해서 그 남자에게 저녁까지 돌아오기로 약속을 하고 나온 것이다.

혹시나 길을 잃을까봐 그 대신 한가지 희생을 감수하게 되었지만. 추적 마법이 걸린 종이를 주머니에서 꺼내보며 자신이 마치 감시당하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에 불편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

어느새 길을 정신없이 걷다 보니 조각상은 온데간데없고 인파가 눈에 띄게 뜸해졌다. 조금 허름한 생김새를 한 집들이 빼곡히 양 옆으로 들어선 모습이 보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화려하고 우아한 건축물들이 가득하고 삐까번쩍한 장식품들을 파는 가게들로 넘쳐났는데 지금은 다소 초라해보이는 작은 가게들이 과일이나 감자 등의 생필품을 팔고 있었다.

다른 거리로 들어선 걸까? 그래도 인파에 치이지 않아 한결 기분이 나아진 나는 조금 호기심을 갖고 거리를 계속 나아갔다.

가면 갈수록 비좁다는 불편함이 없어지는 대신 왠지 모르게 오싹한 느낌이 점점 더해지는 것 같았다. 줄었다고는 해도 처음에는 그래도 꽤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정말로 텅 비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인파가 뜸해졌다.

게다가 조금은 떠들썩하고 활기찼던 사람들에 비해 지금 보이는 사람들은 어딘가 모르게 조용하고 비밀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옷차림도 고급스럽기 짝이 없었던 이전의 관광객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허름하고 낡아빠졌다.

이제야 말로 북쪽 끝 위험한 지역에 위치한 도시의 진풍경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흘끗 사람들을 보다가 그제서야 나는 어째서 오싹한 느낌이 드는지 깨닫고 말았다.

길거리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 그 어두운 눈초리가 전부 나를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낯선 이방인을 경계하는 눈빛도 아니고 새로 온 여행자를 환영하는 눈빛은 더욱 아닌 것 같은... 음흉하고 뭔가 나를 호시탐탐 노리는 듯한 그런 시선이었다.

그러한 시선들을 알아차리고 나자 갑자기 없어졌던 불편한 느낌이 몇 배가 되어 쿡쿡 나를 쑤시기 시작했다. 차라리 인파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게 나을까 싶을 정도로 강렬하게.

'진정하자, 그냥 느낌일 뿐이야.'

어떻게든 그런 기분을 떨쳐내려고 앞만 보면서 애를 쓸 때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가 나의 팔목을 덥석 잡았다.

"얘야, 길을 잃었니? 이 할미가 도와줄까?"

검은 옷차림에 검은 망토를 두른 늙은 여성. 그야말로 사악한 마녀가 저절로 생각나게 하는 모습에 나는 덜컥 겁을 먹고 말았다.

"아.. 아뇨! 괘... 괜찮아요. 이만...!"

그곳에 있던 마을 주민들이 일제히 전부 사악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서 다가오자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속력으로 뒤도 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리다가 그제서야 문득 뒤늦게 떠오르는 생각.

'어? 내가 어느 방향으로 뛰었더라...?'

그래도 저 멀리서 무슨 시끄러운 음성 확대 마법의 소리가 들려오는 걸로 봐서 제대로 맞는 방향을 찾았는가 싶었다.

"... 이 상품을 보세요. 나이도 어린데다 바느질과 음식을 만드는 가사 솜씨도 훌륭합니다!"

점점 가까워지면서 소리가 뚜렷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서야 번화가로 겨우 빠져나왔는가 싶었는데.

"어...?"

웬 사람들이 모여있는 낯선 광장으로 와버렸다. 인파가 꽤 되는 것은 맞지만 도저히 번화가로 보이지는 않는다고나 할까.

낡고 허름한 건물들이며 주위에 상점이나 술집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약간 음산한 느낌을 주는 곳. 한눈에 봐도 이전에 봤던 스노우 플레이크 거리와는 전혀 다르게 보일 정도였다.

게다가 아까 들렸던 음성도 다시 생각해보니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나이가 어린 상품이라니? 무슨 물건이 바느질하고 음식을 할 수 있다고?

호기심이 들어 좀 더 광장의 중심부로 가까이 가보니 한 사람이 무대에서 열심히 무언가 연설을 하고 있었다.

"이 아이는 적어도 다른 상품들과는 다릅니다. 일도 잘하고... 무엇보다도 말을 너무나도 잘 듣죠. 충분히 평균의 2배 정도의 값어치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검은 정장의 옷차림에 어떤 콧수염이 간사하게 나 있는 중년의 인물의 옆에 한 연약한 소녀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북쪽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다 헤진 누더기옷을 입은 탓에 소매부분이 다 닳아 없어진 채 거의 앙상한 뼈만 남은 팔과 다리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게다가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게 두 손과 목 부분을 밧줄로 이어서 묶어놓은 상태. 흔히 옛날에 있었던 노예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를 정도로 비참한 모습이었다.

"이걸 사실 분이 있으면 손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경매 가격은 2제라 부터로 하겠습니다."

그 말에 주변에 곳곳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몇몇 낡은 무대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이 손을 살며시 들었다.

이제야 무슨 상황인지 파악한 나는 충격적인 장면에 멍하니 입을 쩍 벌린 채 한동안 서 있었다. 세상에 지금 시기가 어느 때인데 사람을 사고 팔다니!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너무하잖아!

순간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런 사고 파는 짓을 하고 있는 사람도, 그리고 말없이 이런 행위에 동조하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다 용납할 수가 없었다.

"저기 제일 왼쪽에 손 드신 분부터 가격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2제라 20레니!"

"2제라 40레니!"

"2제라 55레니!"

경매 가격이 점점 올라갈수록 내 안의 뭔가가 점점 들끓어올라 터질 것만 같이 괴로웠다. 오히려 가격이 높아지자 손을 들지 않고 망설이던 몇몇 이들까지도 경쟁에 참여하면서 경매에 불이 붙었다.

그러다 한동안 끝을 모르고 달리던 가격은 한 인물의 부름에 의해 종결이 나고 말았다.

"10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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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5. 비오는 날의 추억 (2) 24.03.15 6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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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4. 용서할 수 없는 것 (6) 24.03.11 7 0 9쪽
28 4. 용서할 수 없는 것 (5) 24.03.08 9 0 9쪽
27 4. 용서할 수 없는 것 (4) 24.03.06 7 0 7쪽
26 4. 용서할 수 없는 것 (3) 24.03.04 7 0 16쪽
» 4. 용서할 수 없는 것 (2) 24.03.03 6 0 8쪽
24 4. 용서할 수 없는 것 (1) 24.02.26 6 0 8쪽
23 3. 차가운 만남 (9) 24.02.23 5 0 12쪽
22 3. 차가운 만남 (8) 24.02.21 6 0 9쪽
21 3. 차가운 만남 (7) 24.02.19 6 0 12쪽
20 3. 차가운 만남 (6) 24.02.16 6 0 8쪽
19 3. 차가운 만남 (5) 24.02.14 6 0 7쪽
18 3. 차가운 만남 (4) 24.02.12 7 0 10쪽
17 3. 차가운 만남 (3) 24.02.09 7 0 8쪽
16 3. 차가운 만남 (2) 24.02.07 7 0 7쪽
15 3. 차가운 만남 (1) 24.02.05 6 0 7쪽
14 2. 노스피아 원정대 (6) 24.02.02 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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