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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달에 울려퍼지는 소나타

그로스(growth)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적월소나타
작품등록일 :
2024.01.05 16:04
최근연재일 :
2024.04.08 19:00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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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0
글자수 :
181,998

작성
24.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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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3. 차가운 만남 (6)

DUMMY

낡은 검이 투박한 소리와 함께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지면의 얼음에 꽂혔다.

"레벨 10 치고는 제법이지만... 멀었어."

순식간에 무기를 잃어버린 나는 거친 숨소리를 내면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벌써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나의 감각에 따른다면 적어도 수 개월은 지난 듯싶었다.

그 정도로 매 순간 순간마다 극한에 가까운 체력을 소모하였고 절대 방심할 수 없는 글라시아의 거친 공격이 사정없이 이어졌다.

나는 꺼질 듯한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만약 지금 정신을 잃는다면 수십 번을 넘게 쓰러진 지난 노력이 무의미가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정면에는 끊임없는 대련에도 불구하고 전혀 숨소리 하나 거칠어지지 않은 소녀가 푸른 머릿결을 늘어뜨린 채 빈 검집을 들고 서 있었다.

도저히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체력과 지구력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아무리 고레벨의 유저라 할 지라도 체력과 지구력 스텟에는 한계가 있는 법. 더군다나 말로 표현하기 힘들 지경의 엄청난 스피드를 밥 먹듯이 사용하고도 전혀 지치지 않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에 가까웠다.

레벨으로 인한 상승에 비해 실제로 전투와 같은 활동에서 상승하는 수치가 굉장히 미미하다고 들은 것을 고려해 본다면. 도대체 체력과 지구력의 수치가 얼마에 도달했을 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또, 그 정도의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얼마나 수많은 노력을 했을지도.

그래, 겨우 이정도 따위로 쓰러져서는 안되잖아! 나의 몸이 분발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남은 힘까지 끌어모아서 간신히 지면을 박차고 일어섰다.

"끄아아아!"

무기도 없이, 맨 손으로 무작정 투지를 불태워서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반드시 이 손으로 때려눕히고 말겠다는 생각으로 주먹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미소녀의 아름답지만 창백한 얼굴에 닿는 희미한 감촉이 막 느껴지려고 할 찰나에, 잔상을 남긴 것처럼 보일 정도로 순식간에 고개를 숙여 공격을 피했다.

"크흑!"

그와 동시에 사정을 봐주지 않는 기습적인 펀치가 내 오른쪽 옆구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미처 방어를 할 틈도 없이 날아온 공격에 나는 무력하게 중심을 잃고 땅에 드러눕고 말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되겠어. 그것들을 상대하는데...."

소녀의 바다와 같은 푸른 머릿결이 바람에 나부껴 조금씩 출렁였다. 쓰러진 채로 시선을 들어 바라본 채, 그녀의 의미심장한 말에 그게 무엇인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데.

그 소녀의 입가에서 무언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새어나오더니 조금 떨어진 허공에서 붉은 섬광이 일어났다.

놀라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니 뜨거운 열기와 함께 잠시 동안 강렬한 빛에 시야를 빼앗기고 말았다. 빛이 잠잠해지고 나서 눈이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는 내가 마주보는 곳에 처음 보는 신비한 생명체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다.

마치 형태는 인간처럼 생겼지만 인간보다 꽤 작았을뿐더러 온 몸이 불로 활활 타오르고 있는 모습. 정령인가? 언뜻 나래 누나가 말해준 것 같은 기억이 난다.

그것의 붉은 눈동자가 나를 꿰뚫어보듯 응시하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깨달은 내가 식은 땀을 흘리며 물었다.

"저기... 혹시 이거랑 상대하라는... 건가요?"

"응, 싸워. 약하니까 충분히 이길 수 있을거야."

나는 냉담한 소녀의 말에 반쯤 불신하는 심정으로 붉은 생명체를 바라보았다. 저 여자애가 말하는 약하다는 수준이 나에게는 얼마나 강한 수준으로 다가올 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의 주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 저 괴물은 레벨뿐만 아니라 모든 능력치조차 나의 것을 가볍게 뛰어넘을 것처럼 보였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키고 나서 그것이 어떻게 나올지 주시했다. 시간이 좀 지났지만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붉은 괴물.

내가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어떠한 거동도 보이지 않겠다는 걸까? 그렇게 판단이 선 나는 조심스럽게 움직여 바닥에 꽂혀있던 낡은 검을 빼들고 빠른속도로 접근했다.

그 괴물이 반응도 하기 전에 일격을 가할 심산으로 최단거리로 질주하여 검을 횡으로 휘둘렀지만.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불로 활활 타오르는 괴물은 뒤로 움직이며 교묘하게 피해버렸다. 역시 간단하게 해치우기는 어려울 것 같네.

나는 더욱 쓰러뜨리겠다는 의지를 불태워 무작정 부딪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검을 두 손으로 잡고 이번엔 횡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이상하게도 미처 반응을 못했는지 아니면 반응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건지, 뻘건 두 눈은 여전히 내가 있었던 정면의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그래도 개의치 않고 나는 녀석이 움직이지 않는 틈을 타서 검을 수직으로 내리쳤다.

"......!"

순간적으로 몸을 오른쪽으로 움직여 정확하게 피해버렸다. 이번에도 보라는 듯이 피하는 붉은 괴물에게 나는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의해 저절로 피하도록 만들어진 듯한 느낌이랄까. 도대체 무엇때문에 그것을 반응하게 만드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쓸데없이 감정이 너무 많아....'

그 때 내 머리 속에서 얼마전에 말했던 그녀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감정... 바로 그거야! 어쩌면 내가 갖고 있는 감정의 변화에 의해 저것이 움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검을 내리칠 때는 녀석을 죽인다는 생각으로 가득하였으니 그 살기를 읽을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 가정을 세운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차분히 괴물을 바라보며 천천히 접근했다. 어? 신기하게도 괴물이 갑작스럽게 동요를 보였다. 감정을 찾고 있는 걸까?

방금 전까지도 굳이 공격이 다가올 때까지 움직일 필요도 없다는 듯 미동을 보이지 않았던 괴물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경계하기 시작했다.

불처럼 시뻘건 두 눈이 잠깐 나와 마주쳤는데도 불구하고 금세 다른 곳을 향했다.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저 두개의 눈으로는 아무래도 나를 발견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지금이 기회라고 판단한 나는 신속하게 달려가 정면에서 검으로 공격을 시도했다. 검이 사선을 따라 내려치기 직전까지도 그 괴물의 시선은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어......?"

괴물의 몸이 닿는 감촉이 느껴지는 찰나에 절묘하게 몸을 간신히 움직여 회피해버렸다.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당황하고 있으려니 금방 그 이유를 스스로 알아채고 말았다.

아직도 감정의 잔재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것이 가까이 가야 느낄 정도로 그 크기가 약해졌을 뿐.

생각해보면 우습기 그지없는 일이다. 괴물이 버젓이 있는데 애초에 베고 싶은 마음을 없애고 공격하라니...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나는 부들부들 떨면서 검을 꽉 쥐었다. 에잇, 이판사판으로 미처 반응을 하지 못하게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거다!

무작정 공격하다보면 언젠가는 검이 닿을 거라는 생각으로, 거의 자포자기에 가까운 심정으로 다시 멀어져 있는 괴물을 향해 돌격했다.

어느 샌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또한 자신이 돌아가야 할 원정대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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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4. 용서할 수 없는 것 (4) 24.03.06 6 0 7쪽
26 4. 용서할 수 없는 것 (3) 24.03.04 7 0 16쪽
25 4. 용서할 수 없는 것 (2) 24.03.03 5 0 8쪽
24 4. 용서할 수 없는 것 (1) 24.02.26 6 0 8쪽
23 3. 차가운 만남 (9) 24.02.23 4 0 12쪽
22 3. 차가운 만남 (8) 24.02.21 5 0 9쪽
21 3. 차가운 만남 (7) 24.02.19 5 0 12쪽
» 3. 차가운 만남 (6) 24.02.16 6 0 8쪽
19 3. 차가운 만남 (5) 24.02.14 5 0 7쪽
18 3. 차가운 만남 (4) 24.02.12 6 0 10쪽
17 3. 차가운 만남 (3) 24.02.09 6 0 8쪽
16 3. 차가운 만남 (2) 24.02.07 6 0 7쪽
15 3. 차가운 만남 (1) 24.02.05 6 0 7쪽
14 2. 노스피아 원정대 (6) 24.02.02 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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