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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달에 울려퍼지는 소나타

그로스(growth)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적월소나타
작품등록일 :
2024.01.05 16:04
최근연재일 :
2024.04.08 19:00
연재수 :
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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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1,998

작성
24.02.2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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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 차가운 만남 (9)

DUMMY

'그래, 분명 할 수 있어! 반드시 수련을 헛되이 하지 않을 거야!'

글라시아와 이제껏 수련한 기억을 떠올리고는 마음을 굳게 먹고 뛰어나갔다. 드디어 조금은 향상된 내 실력을 시험해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댔다.

숲을 벗어나 들판에 걸음을 내딛자 그제서야 나의 기척을 눈치 챈 스노우레빗이 나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귀... 귀여워!'

똘망똘망한 눈이며 쫑긋대는 길쭉한 귀. 생각보다 몬스터 치고는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편이었다. 전체적으로 모습은 동물원에서 볼 법한 하얀 토끼와 닮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비정상적으로 기다란 팔과 다리, 그리고 약간 섬뜩한 느낌이 들게 만드는 기다란 발톱 정도.

과연 아무리 귀엽다고 해도 레벨 200의 몸값은 할만한 괴물처럼 보이긴 했다. 확실하게 말해서 저 발톱에 한번이라도 맞는다면 레벨 10에 불과한 내 몸은 종잇장처럼 찢겨나갈 게 분명했다.

"엇!"

미처 스노우레빗에 대한 겉모습이 관찰이 끝나기도 채 전에 먼저 빠른 속도로 나를 향해 달려왔다.

크리스탈 루인 던전 안에서 볼 수 있었던 거대한 괴물보다 덩치가 작은 만큼 확실히 움직임은 재빨랐다. 어느 정도 쌓인 미끄러운 눈밭을 기다란 다리와 앞발을 이용하여 마치 스프링으로 튕기듯이 펄쩍펄쩍 뛰면서 가공할만한 속도로 거리를 급격하게 좁혔다.

물론, 그렇다곤 해도 소녀에 비하면 조금 모자란 스피드였지만.

챙!

나는 그 애와 싸운 경험을 바탕으로 반사적으로 검을 비스듬히 들어 공격을 흘린 채 몸을 굴려 충격을 완화시켰다.

공격이 막힌 스노우레빗이 당황했는지 조금 주춤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 틈을 노려 나는 다시 반동으로 일어나 있는 힘껏 측면에서 검을 휘둘렀다.

기세 좋게 하얀 궤적을 그린 칼날이 토끼의 배에 닿았지만 놀랍게도 자그마한 상흔 하나도 주지 못한 채 튕겨져 나갔다.

"역시 레벨 200이구나... 급소를 노리지 않는다면 공격이 통하지 않겠어."

레벨에 의한 스탯의 차이나 방어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유효타를 날릴 수 있는 부위인 급소. 내가 그 소녀에게 배운 공략하기 쉬운 급소는 딱 두가지가 있었다.

첫번째는 예전에 내가 실수로 그녀를 베었던 무릎 뒤의 힘줄 쪽이고 두번째는 목덜미 옆쪽 중앙 부분. 물론 모든 몬스터마다 급소의 갯수나 위치가 제각기 다르긴 하지만 어지간하면 목이나 다리가 붙어있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말이다.

스노우 레빗의 경우 다리를 항상 움츠리고 폴짝폴짝 뛰기 때문에 다리 쪽의 급소를 노리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닐테니 결국 나로서는 그것의 목을 노릴 수밖에 없었다.

방금 공격의 반동으로 인해 중심을 잃은 나는 얼음 바닥을 이용하여 몸을 반쯤 주저앉은 상태로 미끄러져 거리를 벌렸다.

의외로 곧바로 따라올 줄 알았던 스노우 레빗은 생각보다 충격을 받았는지 잠시 멈칫하다가 두리번 거리더니 지금 막 나를 발견한 모양이다.

나와 토끼 사이의 거리를 감안해 볼 때 여유 시간은 많이 잡아야 몇 초 정도. 그 사이에 나는 순간적으로 머리를 굴려 생각해 보았다.

저렇게 무자비한 속도로 빠르게 이동하는 토끼의 목덜미 중앙 부분을 정확하게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저 토끼에게 목덜미를 정확히 가격하는데 성공하기 위해서는.

'저 토끼의 움직임을 봉쇄할 필요가 있겠구나.'

혹시 단단한 무언가가 있을까 싶어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나는 곧 힘이 빠지고 말았다. 그야말로 눈밭 천지. 이런 곳에서 단단한 돌 따위를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아무리 단단한 돌이라도 저 토끼의 발톱에 산산 조각이 나지 않을까? 다이아몬드의 원석인 금강석 같은 거라면 혹시 몰라도.

망연자실하여 바닥에 뒤로 손을 짚은 채 푹 누워버렸는데 뭔가 바닥의 뾰족한 것에 등이 쿡 찔려 반사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아얏...! 뭐야...?"

살펴볼 틈도 없이 재빨리 눈 속에 묻힌 무언가를 집어서 몸을 간신히 굴려 사나운 토끼의 돌진 공격을 회피했다. 토끼가 잠시 반동으로 쭉 미끄러지는 동안 힐끗 손에 쥔 것을 살펴봤더니.

"돌...?"

신기하게 생긴 하얗고 투명한 돌이었다. 얼음같이 차가우면서 딱딱한, 마치 물이 응고되어 얼음이 되려다 돌이 되어 버렸다고 생각될 정도로 맑았다.

'그러고 보니 나래 누나가 나한테 그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지....'

물론 자랑하는 식으로 장난스럽게 말한 거라서 자세히 귀담아듣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이 돌이 뭐라고 했더라....

그러나 나의 생각은 갑작스럽게 몸을 휩쓸고 지나간 날카로운 흉기에 의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스노우 레빗의 발톱이 내 가슴 부위에 대각선으로 기다란 상처를 내고 만 것이었다.

순간 아득한 고통이 몸 전체를 요란하게 헤집었다. 비명을 지르지도 못할 만큼 묵직한 고통이었다. 듣기로는 그로스의 페인 시스템이 대략 실제의 20% 정도가 평균 설정이라던데 이렇게나 아프다니!

시야가 흐려지면서 어렴풋하게 하얀 무언가가 내 눈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토끼가 내 움직임이 뜸한 것을 보고는 공격이 먹힌 거라고 방심했는지는 몰라도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보였다.

저벅저벅거리며 눈 밭을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멈췄다.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희끗한 형체가 바로 눈 앞에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끼륵 거리는 소리가 고요하게 한번 울려퍼졌다. 내 목숨을 끊는 마지막 일격을 가할 모양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눈을 부릅뜨고 어떻게든 정신을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다고 해서 시야가 돌아올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공격만큼은 피해야만 했으니까.

그 노력 덕분인지 미약하게 앞발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천천히 들어올리는가 싶더니 잠깐 동안 움직임이 멈췄다.

지금이야! 간신히 남아있는 힘을 쥐어짜서 자신의 몸을 돌렸다. 챙 하고 마치 금속처럼 날카로운 발톱이 지면에 꽂히는 소리가 간발의 차이로 들려왔다.

허억허억

고통에 허덕이고 있는 탓이라 더이상 움직일 힘이 남아 있지 않는 것 같았다. 이대로 죽는 걸까?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고작 몬스터 한 마리 때문에 내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되다니.

이제까지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보니 쓴 웃음이 저절로 지어졌다. 손을 대자로 뻗은 채 설원에 구름 한 점도 없이 텅 비어있는 하늘을 허탈하게 바라보았다.

1주일의 접속 제한 패널티. 도시 지역이 아닌 필드 지역에서 사망할 경우에는 이와 같은 치명적인 패널티가 부가된다고 한다.

이제 1주일 동안 뭐하지? 영화나 받아서 볼까? 아니면 수학 공부도 나쁘지 않겠지. 우습게 죽기도 전에 미리 죽은 뒤 걱정부터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니 뭔가 씁쓸했다.

나는 체념하듯 눈을 질끈 감았다.

'어라?'

시간이 지나도 로그아웃이 되지 않자 머리 속에서 의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토끼는 어떻게 된거지? 스노우 레빗 정도의 스피드와 파워였으면 진작에 내 목이 잘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상황이었다.

조심스럽게 흘끗 옆을 바라보자 안간힘을 쓰며 빠져나오려고 하는 스노우 레빗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바닥에 오른쪽 발톱이 껴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푸흡...'

자기 공격에 자기가 무덤을 파는 꼴이라니! 하도 우스워서 배를 움켜잡고 웃고 싶을 정도였지만 상황이 상황이기에 침착하게 돌을 집어들었다.

나는 가볍게 두어번 돌을 위로 튕겼다가 잡고는 토끼를 향해 던질 자세를 취했다. 이제는 이게 무슨 돌인지 알고 있었다.

프로즌 크리스탈이라고 하는, 북쪽 지역에만 있는 신비한 원석이었다. 철보다도 강한 강도를 자랑하고 무엇보다도 지천으로 흔하디 흔한 돌이었지만 제련 방법이 극히 까다로워서 버려졌다고 나래 누나에게서 들었던 기억이 났다.

발톱을 빼내느라 정신없는 토끼의 목을 겨냥하여 날카롭게 시선을 고정했다. 제법 많이 목표가 흔들리고 있지만 반드시 이것을 명중시켜야만 한다.

언제 저 토끼가 발톱을 빼서 달려들지 모르는데다가 함부러 접근해서 공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래, 할 수 있을 거야! 마음을 다 잡고서 기다리다가 토끼가 지쳤는지 움직임이 그친 틈을 노려 이때다 싶어 돌을 던졌다.

마치 궁수가 마지막 남은 화살을 쏘는 것처럼 절박한 심정으로 나의 눈길이 정면으로 향했다. 허공을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돌에 호흡이 멎은 듯 숨소리조차 새어나오지 않았다.

끼아아아앙

요란한 토끼의 비명 소리와 함께 돌이 퍽 하고 그것의 목덜미 부분에 일침을 가했다. 급소에 제대로 적중했는지 스노우 레빗이 비틀비틀하더니 이내 힘없이 앞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움직임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조심조심 다가갔다. 혹시나 기절한 척을 한 것일지도 몰라 검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제아무리 토끼가 갑자기 발을 뻗어도 닿지 않을만한 몇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툭툭 검으로 토끼의 등을 건드렸다.

'죽은 걸까...?'

옛날 이야기에서 토끼를 죽은 척을 잘한다는 말이 문득 떠올라 긴장감을 낯출 수가 없었다.

겁이 난 나는 완전히 토끼가 죽을 때까지 멀뚱하게 서서 기다렸다.

조금 기다리자 스노우 레빗이 있던 자리에 형상이 점점 사라지고 몇 가지 물건들이 덩그라니 놓였다. 처음으로 죽은 몬스터가 드랍되는 장면을 보는 순간이었다.

[레벨이 상승하셨습니다.]

이전에 비기너스 헌팅에서는 갑작스런 접속 종료로 들을 수 없었던 레벨 상승 메세지가 들려왔다. 역시 200레벨 몬스터를 해치워서 그런지 한 마리에 레벨이 오르는 모양이었다.

"어디보자, 드랍 아이템은...."

털가죽 몇 장과 발톱 두개, 그리고 어떤 종이 스크롤 하나. 어느정도 고레벨의 몬스터 답게 제법 상당한 가치의 아이템들이 나왔다.

스노우 레빗의 털가죽의 경우 새하얀 색감과 푹신푹신한 털 덕분에 고급 가죽 갑옷의 외형 제작으로 많이 애용되는 편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명품 잠옷이나 신발, 장갑 등 한마디로 값비싼 사치품에도 사용되는 편이니 팔리는 가격은 꽤 높다고 할 수 있었다.

발톱은 강철과 비견될 정도의 튼튼함과 엄청난 예리함 때문에 중급 무기로 줄곧 많이 제작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제작 고유 옵션으로 약간의 냉기 효과가 부과되는 만큼 특히 화염 속성의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던전에서 생각보다 스노우 레빗의 발톱으로 만든 무기를 쓰는 유저는 꽤 많았다.

"음... 적어도 2제라는 넘게 나오겠는데?"

한 번도 이걸 팔아본 적은 없지만 대충 센트럴 시티에서 이것들을 파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본 만큼 대충 머리 속에서 어느 정도 계산이 되긴 했다.

2 제라! 한 번도 만져 본 적이 없던 거금이 한번에 수중에 들어오게 되는 셈이었다.

"만세! ... 어어어......."

큰 돈을 얻은 생각에 너도 모르게 기쁨에 찬 비명을 지르다가 갑자기 머릿속이 새하얘지며 세상이 빙그르르 돌기 시작했다. 아니, 세상이 도는 게 아니라 내가 돌고 있는 것이 틀림없겠지만.

시야가 점점 흐려졌고 속이 매스껍고 어지러웠다. 걷기는커녕 중심을 잡고 서 있기도 힘들었다. 세계가 옆으로 철퍼덕 하고 넘어지는 듯, 내 자신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안 돼...! 이런 데서 기절하면...'

이대로 쓰러진다면 주변에 다른 스노우 레빗들한테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라는 생각이 들자 안간힘을 써서 정신을 부여잡으려고 했지만 점점 더 의식이 희미해져갔다.

'미안해요... 글라시아님... 저 때문에...'

나는 마음 속으로 되뇌이며 끝내 정신을 놓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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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6. 순백의 악마 (3) 24.04.05 4 0 16쪽
38 6. 순백의 악마 (2) 24.04.03 6 0 8쪽
37 6. 순백의 악마 (1) 24.04.01 6 0 14쪽
36 5. 비오는 날의 추억 (7) 24.03.29 6 0 9쪽
35 5. 비오는 날의 추억 (6) 24.03.27 5 0 11쪽
34 5. 비오는 날의 추억 (5) 24.03.25 6 0 9쪽
33 5. 비오는 날의 추억 (4) 24.03.22 6 0 11쪽
32 5. 비오는 날의 추억 (3) 24.03.20 6 0 10쪽
31 5. 비오는 날의 추억 (2) 24.03.15 6 0 15쪽
30 5. 비오는 날의 추억 (1) +1 24.03.13 7 0 15쪽
29 4. 용서할 수 없는 것 (6) 24.03.11 7 0 9쪽
28 4. 용서할 수 없는 것 (5) 24.03.08 8 0 9쪽
27 4. 용서할 수 없는 것 (4) 24.03.06 7 0 7쪽
26 4. 용서할 수 없는 것 (3) 24.03.04 7 0 16쪽
25 4. 용서할 수 없는 것 (2) 24.03.03 5 0 8쪽
24 4. 용서할 수 없는 것 (1) 24.02.26 6 0 8쪽
» 3. 차가운 만남 (9) 24.02.23 5 0 12쪽
22 3. 차가운 만남 (8) 24.02.21 6 0 9쪽
21 3. 차가운 만남 (7) 24.02.19 5 0 12쪽
20 3. 차가운 만남 (6) 24.02.16 6 0 8쪽
19 3. 차가운 만남 (5) 24.02.14 5 0 7쪽
18 3. 차가운 만남 (4) 24.02.12 7 0 10쪽
17 3. 차가운 만남 (3) 24.02.09 7 0 8쪽
16 3. 차가운 만남 (2) 24.02.07 6 0 7쪽
15 3. 차가운 만남 (1) 24.02.05 6 0 7쪽
14 2. 노스피아 원정대 (6) 24.02.02 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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