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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달에 울려퍼지는 소나타

그로스(growth)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적월소나타
작품등록일 :
2024.01.05 16:04
최근연재일 :
2024.04.08 19:00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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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0
글자수 :
181,998

작성
24.03.0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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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4. 용서할 수 없는 것 (4)

DUMMY

"잠이 잘 안오네."

그날 밤, 어느 한 여관에서 나는 침대에 누워서 뜬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 노스피아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라니!

다시 에세리아가 있는 곳으로 돌아갈 생각에 마음이 설레서 잠이 오지 않는 걸까? 아니,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자꾸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 가엾은 소녀를 두고 간 일. 지금쯤 그 애는 어떻게 되었을까? 혹시 길거리를 떠돌다가 누군가 나쁜 이들에게 다시 붙잡히지는 않았을까?

지금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니 단순히 글라시아의 말만 듣고 소녀를 버린 것이 후회가 되었다. 그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당장 그 어린 소녀에게는 몸을 기댈 어떠한 곳도 없다는 것을.

'다시 그곳에 가봐야겠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서 여행자 코트만을 걸치고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어 복도를 살폈다. 내가 있는 곳 바로 옆방에 글라시아가 잠자고 있었기 때문에 자그마한 발걸음 소리에도 그녀가 깰 수도 있을 거다.

만약 잠자는 글라시아를 깨우는 날에는 어떻게 될 지 대충 짐작이 갔던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다행히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귀와 눈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복도를 한걸음씩 걸어 무사히 통과한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계단을 살금살금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미 새벽이라 여관의 1층에는 손님이라고는 아무도 없었고 늙은 노파 주인만이 테이블에 앉아 가만히 전단지를 살펴보고 있었다.

문 밖으로 나가려는데 뒤에서 웬 말소리가 나의 발걸음을 사로잡았다.

"손님, 지금 이 시간에 어딜 가시우?"

"네... 그냥 볼 일이 있어서."

행여라도 내 목소리에 깰까봐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짧게 대답한 나는 천천히 출입문을 열었다.

주인이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는 것이 보였지만 별로 개의치는 않았다. 어차피 곧 돌아올 것이고 아직 밤은 깊었으니까.

'설마 내일이면 갈텐데 또 추적마법같은 이상한 장치를 붙여놓지는 않았겠지?'

저녁을 먹고 난 직후 그 남자가 나에게 찾아와서 말한 적이 있었다. 추적마법이 아니었으면 넌 벌써 죽은 목숨이 되었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그 남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세인 씨... 그녀는 일부러 당신에게 차갑게 굴었습니다. 일종의 빚을 진 셈이죠. 글라시아님이 모르는 척을 안했으면 당신은 죽고나서도 리셋을 하지 않고는 베기지 못했을테니까요."

"모르는 척...? 그게 무슨 말이죠?"

오늘 낮에 그 남자와 대립하고 있을 때 유난히 쌀쌀맞게 대하는 글라시아의 태도를 떠올리고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정말 몰라서 묻는건가요? 그 남자가 바로크 도적단의 수장이라는 것쯤은 들어서 알겠죠. 그러니까 만약에 그 때 당신과 글라시아님이 아는 사이라고 보인다면 그 남자가 어떻게 할까요? 그 날로 당신은 바로크 도적단의 표적이 되겠지요."

"......!"

설마 글라시아가 그렇게 행동한게 나를 배려하기 위함이었을 줄이야. 차갑고 냉담한 그녀에게서 전혀 생각치도 못했던 것이었다.

"저기...."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옆에서 부르는 여린 목소리가 들리자 깜짝 놀란 내가 고개를 홱 돌렸다. 눈 앞에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작은 두 인물이 보였다.

새벽에 전신을 감추고서 돌아다니는 것이 여간 수상해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전혀 그들이 위험해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까전에 들린 목소리는 왠지 친숙하다고나할까.

"너... 설마... 그때 그 아이니?"

"네...."

혹시나 싶어 물어본 질문에 망토 안의 목소리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올 수 있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지만 나는 그들을 살며시 안으로 떠밀었다.

"자자, 추울텐데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여전히 여관 1층은 조용했다. 슬리피 자이언트라는 여관 이름 답게 잠잠하고 고요했지만 어딘가 따뜻하고 묵직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다만, 아까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갑작스럽게 방문한 낯선 손님들 때문에 주인장이 눈을 한껏 크게 뜬 채 그 인물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망토를 벗은 두 인물 중 하나는 예상대로 내가 낮에 광장에서 봤던 그 소녀가 틀림없었다. 그 옆에 있던 소년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인물이었다.

내가 의심스러운 눈길로 소년을 쳐다보자 그것을 눈치챘는지 소녀가 소개해주었다.

"아... 제 옆에 있는 애는 제 오빠에요. 이름은 제이라고 하고요."

"안... 안녕하세요."

'정말로 얘가 저 소녀의 오빠 맞아?'

겁이 났는지 부들부들 떨며 인사를 하고는 불안하게 바라보는 듯한 소년의 모습에 나는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 오빠. 저 분은 우리를 구해주신 분이니까."

오히려 자기 오빠를 위해 안심시켜주는 소녀의 모습을 보고는 반대로 저 소녀가 사실은 누나가 아닐까라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손님, 뭐 음식이라도 내줄까?"

잠시 대화가 멈추는 듯싶자 가볍게 꺼낸 주인장의 말에 소녀가 고개를 저으며 정중히 사양했다.

"아뇨, 괜찮아요. 저희는...."

꼬르륵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년의 뱃속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리자 소녀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서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소년도 부끄러웠는지 어쩔 줄 모르고 땅바닥을 쳐다보며 가만히 있으니 안되겠다 싶은 내가 주문을 했다.

"닭고기스프 두개만 주세요."

"그려, 금방 만들어 줄께."

굽은 허리로 부엌에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 주인장의 모습을 잠시 보다가 나는 다시 소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해서 노예가 됐니?"

"......."

아차! 너무 직접 대놓고 물은 것 같아서 후회한 내가 다시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아니, 정 말하기 불편하다면 말해주지 않아도 돼."

"아뇨, 괜찮아요. 어차피 신세를 질텐데 어떤 비밀도 숨기면 안 되겠죠."

'어? 잠깐만...!'

정말로 두 아이를 센트럴시티에 데리고 갈 생각은 없었는데. 이젠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나쁜 놈이 될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저 아이가 보기보다 제법 영악한 면도 있는 것 같았다.

'에세리아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하지?'

난처한 입장에 놓여서 앞으로 일어날 일에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소녀가 말하기 시작했다.

"몇 년 전 어느 날이었어요...."

"어?"

갑자기 내 눈 앞에 어떤 화면이 나타났다. 마치 소녀의 대화를 화면으로 직접 보여주려는 것처럼 주변 여관 건물의 풍경은 사라지고 어떤 낡은 집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시네마틱 대화 시스템인가...?'

뉴스에서 한번 그로스 특집 코너에서 그 설명에 대해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좀 더 이해를 도와주기 위해 과거에 있었던 중요한 일들을 영상을 통해 유저에게 보여주는 그런 시스템이라나 뭐라나.

어쨌든 나는 눈에 펼쳐진 그 영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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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6. 순백의 악마 (3) 24.04.05 4 0 16쪽
38 6. 순백의 악마 (2) 24.04.03 5 0 8쪽
37 6. 순백의 악마 (1) 24.04.01 6 0 14쪽
36 5. 비오는 날의 추억 (7) 24.03.29 5 0 9쪽
35 5. 비오는 날의 추억 (6) 24.03.27 5 0 11쪽
34 5. 비오는 날의 추억 (5) 24.03.25 6 0 9쪽
33 5. 비오는 날의 추억 (4) 24.03.22 6 0 11쪽
32 5. 비오는 날의 추억 (3) 24.03.20 6 0 10쪽
31 5. 비오는 날의 추억 (2) 24.03.15 6 0 15쪽
30 5. 비오는 날의 추억 (1) +1 24.03.13 7 0 15쪽
29 4. 용서할 수 없는 것 (6) 24.03.11 6 0 9쪽
28 4. 용서할 수 없는 것 (5) 24.03.08 8 0 9쪽
» 4. 용서할 수 없는 것 (4) 24.03.06 7 0 7쪽
26 4. 용서할 수 없는 것 (3) 24.03.04 7 0 16쪽
25 4. 용서할 수 없는 것 (2) 24.03.03 5 0 8쪽
24 4. 용서할 수 없는 것 (1) 24.02.26 6 0 8쪽
23 3. 차가운 만남 (9) 24.02.23 4 0 12쪽
22 3. 차가운 만남 (8) 24.02.21 5 0 9쪽
21 3. 차가운 만남 (7) 24.02.19 5 0 12쪽
20 3. 차가운 만남 (6) 24.02.16 6 0 8쪽
19 3. 차가운 만남 (5) 24.02.14 5 0 7쪽
18 3. 차가운 만남 (4) 24.02.12 6 0 10쪽
17 3. 차가운 만남 (3) 24.02.09 6 0 8쪽
16 3. 차가운 만남 (2) 24.02.07 6 0 7쪽
15 3. 차가운 만남 (1) 24.02.05 6 0 7쪽
14 2. 노스피아 원정대 (6) 24.02.02 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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