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XXX - 53화 올해 추석이 언젠지 알아요? (1) -
- 53화 올해 추석이 언젠지 알아요?
팔뚝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상황에서도 민준은 후드티의 끈을 뽑아 팔뚝을 묶고는 콩을 한 짐 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병원은 커녕 약국도 없는 곳에서 다쳐 피가 나는 것도 두려운 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곳에 온 뒤 처음으로 발견한 고기와 생선 외의 것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탈싹. 쿵.
민준은 문을 들어 올리고 집에 들어가 콩이 잔뜩 들은 대바구니와 고양이과로 보이는 자신을 습격했다가 도리어 단백질 공급원으로 전락한 짐승을 던져 놓고는 물가로 향했다.
찰팍, 찰팍.
팔을 물에 담그고 거뭇하게 말라 굳어버린 피를 닦아냈다.
조금씩 마른 피가 씻겨 나가자 그 밑에 감춰져 있던 상처가 드러났다.
왼팔뚝 안쪽에 길게 그어진 네 개의 상처. 그것은 그를 습격했던 짐승의 발톱 자국이었다. 아마 첫공격때 민준을 덥치면서 앞발로 민준을 할퀸게 틀림 없었다. 만약 그때 반사적으로 두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리지 않았더라면 이 상처가 목에 나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랬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을수 없었겠지만 말이다.
민준은 쓰라린 상처를 물에 깨끗이 씻었다. 처음에는 상처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아무런 느낌도 없었는데 집까지 오는 동안 조금씩 신경이 쓰이더니 지금에 와서는 찌르르 하고 쓰리기 까지 했다. 이상한점은 어디선가 들었던 것처럼 화끈하다던지 그렇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마 지혈을 한다고 상처 위를 꽉 묶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말라붙은 피를 씻어낸 민준은 물 밖으로 팔을 들어 자세히 살폈다.
손목 아래에서부터 팔꿈치 안쪽까지 길게 이어진 발톱 자국. 그것은 마치 아이스크림 가게의 점원이 아이스크림을 떠낸 흔적과 비슷했다.
움푹 파인 살점.
그것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였다.
분명 민준 자신의 상처가 분명할진데 그는 마치 다른 누군가의 상처를 보는 것처럼 아프다는 것도 잊고 빠져들었다.
하얀 속살. 여인의 하얀 피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바로 민준의 상처에 대한 감상이었다.
마치 물에만 적시면 기름 찌든때도 모두 닦아 준다는 매직블럭을 보는 듯했다. 다만 다른점은 손으로 누를 때마다 거기서 물이 아니라 붉은 핏방울이 흘러 나온다는 점이었다.
정신없이 하얀 속살에서 베어나오는 핏방울을 쳐다보고 있던 민준은 움푹 파인 상처에 피가 가득차 팔뚝을 타고 땅에 떨어지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아!”
민준은 다시 피를 씻어 냈다.
지혈을 한다고 팔을 묶었지만 완벽하지 않았다. 마른 피를 닦아내자 수도꼭지에서 물이 새듯 조금씩 조금씩 새어 나왔다.
“쓰려….”
민준은 걱정스럽게 상처를 쳐다봤다.
그로선 이곳에 온뒤로 처음 생긴 상처였다.
그만큼 걱정도 되었다.
“여긴 소독약도 항생제도 없고 연고랑 밴드도 없는데 어떻게하지? 일단 피부터 멈추게 해야할텐데….”
민준이 걱정하는 사이 민준은 그보다 더 중요한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야생동물, 특히 육식하는 놈들은 손톱과 발톱에 병균이 잔뜩 있다고 한거 같은데! 설마 이대로 치료도 못하고 죽는 건가?”
피를 멈추게 하는 것보다 더 큰 걱정이 생겼다.
그동안 조심하고 또 조심해 왔는데 한번의 습격에 상처를 입게된 민준은 점점 초조해졌다.
마치 당장에라도 알수 없는 병원균이나 독에 감염되 죽어갈것만 같았다.
게다가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으니 또다시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등과 이마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죽는다니! 꽃다운 이십대중반에 결혼도 못해보고 이렇게 가족도 친구도 없는 곳에서 외로이 죽어간다니.
민준은 덕컥 겁이 났다. 점점 자신의 상상이 현실인것처럼 생각되었다.
“빠, 빨리 이걸 소독해야해!”
민준은 집으로 뛰었다.
민준은 손에 창을 들고 있었다.
갑자기 왠 창일까? 혹시 병에 걸려 고통스럽게 죽어갈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일반 돌창도 아니고 나이프로 만든 날카로운 창이다.
꿀꺽.
민준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이, 이걸 지저야 하는 건가….”
민준이 창끝을 보며 침을 삼켰다.
지진다? 아! 그러고 보니 나이프가 불에 달궈진게 보인다.
“영화 같은데선 다치면 불로 지지던데 람보에서도 그렇고…. 이럴때 소독되는 약초같은거라도 알아뒀으면 얼마나 좋아! 아이씨!”
민준이 발을 동동 굴렀다. 발톱에 당한 상처를 불로 지저 감염을 막으려고 하는것 같은데 아무래도 겁이 나는듯 했다.
“그래도 죽는 것보단 낫겠지? 관우 장군도 마취도 안한 상태에서 뼈를 긁어냈다잖아. 아니 그건 옛날 이야기고 장군이잖아! 난 평범한 일반 사람이고! 내가 어떻게 내 팔을 지저!”
자신의 피를 보자 패닉상태에 빠진 것일까?
“으으으, 존나 뜨겁겠다.”
민준이 불에 달궈저 열기를 발산하는 나이프를 들어 보며 침을 삼켰다.
“그래. 한번 죽지 두 번 죽냐. 깔끔하게 한방에 가는 거다. 좋아.”
마침내 결심한듯 민준이 나이프를 들어 천천히 상처에 가져다 댔다.
덜덜덜.
가까이 갈수록 손이 떨렸다.
치이익.
어느새 베어나온 핏물이 나이프 끝에 닿자 검게 눌어붙으며 타들어갔다.
“으허!”
민준은 아직 닿지도 않았건만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나이프를 내려 놨다.
“아, 안돼겠다. 영화에서도 입에 뭔가 물리던데 나도….”
아무리 봐도 두려움에 시간을 끌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런다고 상황이 나아질것은 아니었다.
금새 가방끈을 찾아 입에 문 민준의 두 눈가가 축축히 젖어 들었다.
“흐읍, 흐읍.”
입에 가방끈을 물고 있으려니 숨소리도 더 거세졌고 침이 흘렀다.
덜덜덜.
민준이 드디어 결심한듯 다시 나이프를 들어 상처에 가져다 댔다.
“끄으으, 으으읍 으으읍 으으으으으읍!”
한순간 이었다.
달궈진 나이프 끝을 상처에 가져다 댄 민준은 단번에 끝에서 끝까지 지지곤 연달아 네 개의 상처를 모두 지젔다.
용감하다고 해야할지 무식하다고 해야할지.
이를 악물고 눈이 뽑혀라 부릅뜬 민준은 나이프를 내던지고는 오른 손으로 왼손을 콱 잡았다.
꾸우욱.
그리고 더욱 세 개 움켜 쥐었다.
“끄으으응!”
절대 화장실 소리가 아니다. 민준이 고통을 참는 소리였다.
가방끈을 악다문 입에선 찝찌름한 맛이 났다. 이게 너무 이를 악물어 피맛이 난건지 아니면 한번도 빨지 않은 가방끈의 맛인지는 알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것을 생각할 정신도 민준에겐 없었다.
민준의 손톱이 팔을 파고들것 처럼 옥죄어 갔다. 이러단 이번엔 짐승의 손톱이 아니라 자신의 손톱에 상처가 날 판이었다.
하지만 땀을 비오듯 쏟는 민준에게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의 오른손으로 꽉 잡은 그의 왼팔이 하얗게 변했다.
이제는 불에 지진 상처 때문에 아픈지 오른손으로 잡아서 아픈지 구별하지 못할정도였다.
그렇게 한참을 웅크리 앉아 고통에 떨던 민준이 조심스럽게 오른손을 떼었다.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오른손엔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질 않았다.
“하아아아….”
마침내 민준이 깊은 숨을 토해냈다.
“나… 잘한거 맞지?”
글쎄…. 그 상처가 정말 불에 지질 정도로 위험한 상처였는지는 오직 의사만이 알것이다. 물론 그걸 말해줄 의사는 이곳에 없지만 말이다.
--------------------
안녕하세요 갈랑입니다.
민준이 자기 손으로 상처를 지지긴 했는데 화상으로 인한 2차감염이 걱정이네요.
그건 그렇고 먼저 완결낸 엘른 도전기 선작수가 다시 늘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아마 요즘 이글을 읽는 분들께서 선작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만 정말인가요?^^
Comment '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