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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자 님의 서재입니다.

스캔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SF, 현대판타지

주공자
작품등록일 :
2019.07.17 01:42
최근연재일 :
2019.11.16 23:00
연재수 :
9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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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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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1
글자수 :
357,029

작성
19.09.1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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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결전의 날 2

DUMMY

“판도라?”


묵적 교수가 부르자 판도라가 손을 들어 대답했다.


“네 교수님.”


“내가 너에 대해 잠깐 잊고 있었는데 로봇이 사람과 대련하는 게 가능하니?”


“네. 대련, 또는 스파링이라는 명령이 애초에 인간을 해치는 것이 아니고,

또 상대의 기량을 향상시키기 위한 수련의 보조라는 개념이라고 DI엔진이 해석하고 있습니다.”


(DI엔진 : 디벨로이드가 행동(Acting)을 위해 코어에 입력하는 명령 엔진)


“그래 좋아. 그럼 지금부터 대련을 시작한다.”


모두 예전에 마주선 그대로 가드를 올려 준비자세를 취했다.

판도라와 마주본 옥저는 턱과 안면부에 가드를 집중시키고, 잽을 뻗을 준비를 했다.

복싱과 비슷한 자세였다.

반면 판도라는 약간 주저앉은 듯이 무게중심을 낮추고 몸통과 얼굴을 동시에 방어했다.


“네가 특별하다고 생각해? 사람이 만든 로봇일 뿐이야.”


옥저가 판도라를 향해 주먹을 내뻗기 시작했다.

판도라는 몸을 잔뜩 움츠리고 옥저의 공격을 받아주기만 했는데,

마치 일방적으로 옥저가 이기는 것처럼 보였다.


“론리 마음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더니 왜 갑자기 착한 척이야.

네 본색을 드러내. 공격하라고!”


판도라는 교묘히 로봇의 급소(디벨로이드와 사람의 급소는 조금 다르다)를 피하며 어깨나 다리로 방어했다.


“나는 론리 마음을 가지고 논 적 없어.”


“네가 사람인 척, 여자인 척하는 것만 봐도 충분히 마음을 가지고 노는 거야.”


판도라의 안면에 가드가 풀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옥저가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그 순간 옥저의 무게가 앞으로 쏠렸는데 판도라는 그 순간 가드를 모두 풀어 측면으로 스텝을 이동하더니 옥저의 다리를 손으로 감아 넘어뜨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연속으로 옥저의 몸통 위에 올라타 옥저의 안면을 가격하기 시작했다.


옥저가 발악하며 판도라를 쓰러뜨리려고 몸을 뒤척이는 순간이었다.

판도라는 옥저의 오른쪽 팔 하나를 잡고선 다리로 감아올라 상대의 목까지 집어넣었다.

암바였다. 옥저는 켁켁거리며 손으로 땅바닥을 두들겨 기권했다.

판도라는 옥저의 팔을 풀어주며 대답했다.


“론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다른 것들이 책임이 될 수는 없어.”


옥저가 꺾여진 팔과 어깨를 돌리며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판도라를 쏘아봤다.


“로봇이 마음을 논하다니 놀랍네. 너도 마음이라는 게 있어?”


한편 크로노스와 대련하던 중인 사막의 매는 감탄했다.

자신에게 잠깐 배웠을 뿐인데 그의 움직임이 매우 날렵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막의 매보다 키나 체급 면에서 우수했기에 사막의 매는 오히려 때때로 그를 상대하는 게 버거울 정도였다.

이 정도면 클래스 안에서 상위권에 들 정도였다.

공격과 수비가 유연하게 이루어졌고 자신을 위협할 만한 파워와 스피드도 받쳐줬다.

매는 일부러 정신공격은 쓰지 않고 크로노스와 적당히 합을 맞췄다.

자신도, 크로노스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겠다 싶은 시점까지.


‘수고했어. 네가 만약 나와 대련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이기고도 남았을 판이었다.’


매는 순간적으로 모든 힘을 다해 크로노스의 품에 파고들었다.

크로노스의 눈에 상대가 잠깐 사라졌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몸이 허공에서 뒤집어졌다.

매에게 엎어치기를 당한 것이다.


매가 그의 앞에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크로노스는 이마에 흐른 땀을 닦고 매의 손을 붙잡아 일어서며 말했다.


“고마워. 네 덕분이야.”


매는 기분이 이상했다.

고맙다는 말을 살면서 별로 들어본 적도 없을뿐더러 상황에 맞지 않았다.

진 사람이 자신과 싸운 이의 덕을 봤다고 말하다니.

하지만 그 말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말을 해준 크로노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흐아압!”


그때 누군가가 지르는 큰 소리에 모두가 대련을 중단하고 시선을 집중했다.

이카루스가 악을 쓰며 론리에게 덤비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매한가지다.

그는 처참하다는 말 조차 무색하게 간단히 론리에게 당해 쓰러졌다.

하지만 이카루스는 지친 기색 없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항상 이카루스에게 살갑게만 다가가던 론리도 어쩐 일인지 단호한 표정을 짓고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다.


상대에 대한 행동예측 능력에 더해 무도의 오의까지 깨달아버린 론리.

그는 묵적만큼이나 대단한 고수가 되어있었다.

그가 날마다 사막의 매와 낙화유수를 때려죽이는 상상을 하며 수련한 덕이다.

이것이 깨달음의 영역에 다가선 자의 놀라운 학습능력이었다.


‘유수? 아니. 무형의 경지다.’


사막의 매는 상대를 농락한다고 봐도 좋을 정도의 론리의 움직임을 알아챘다.

딱히 빠를 것 없는데도 공격이 적중하면서도,

상대의 공격은 모조리 피해버리는 론리의 수준을 보고 확신했다.

그는 유정무가 의심했던 대로 보통 사람이 아니며,

챔핀코를 둘러싼 거대한 위기나 음모의 핵심에 서게 될 자라고.


머리는 그를 제거해야 한다고 하지만 마음은 섣불리 움직여지지 않았다.

언제나 명석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론리의 성장과 그 결말이 궁금해졌다.

론리 뿐 아니라 크로노스와 이카루스도 말이다.

이 학교를 다니는 것 자체가 크나큰 벽처럼 느껴지는 그들이 무사히 론리와 함께 학교를 졸업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잠깐의 생각이었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이것저것 다 따지고 봐주면 챔핀코는 강해질 수 없어.

유정무의 요구를 들어주고 권력을 쥐어야 한다.’


매의 생각과 상관없이 론리는 쓰러져있는 이카루스에게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이제 고집 그만 부리고 포기해. 발악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


이카루스는 론리의 손을 쳐냈다.


“사람 깔보는 말투 하지 마라우.

태어날 때부터 다 갖춘 간나 주제에.

모지라게 살아간다고 평가질하고 무시하지 마란 말이야!”


이카루스가 벌떡 일어나 론리에게 주먹질을 했지만 허공을 가를 뿐이다.

이미 지친 이카루스는 앞으로 쓰러질 듯 위태롭게 전진했다.

주먹은 너무 느려서 옥저가 봐도 그것을 피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방향은 정확히 론리의 턱을 향했다.

론리는 고집부리는 이카루스의 말에 화가 치밀었다.

그는 이카루스의 주먹을 낚아채 거칠게 잡아당기다가 뒷발을 걸어 목을 쳐 넘어뜨렸다.


묵적이 론리에게 다가와 이카루스에게 접근하려던 것을 제지했다.


“충분해. 더 저항할 수 없는 상태야.”


그 틈에 이카루스가 다시 일어났다.

하지만 이번엔 론리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내래 잠깐 오르지 못할 나무를 꿈꿨나 보우.

풀어낼 수 없는 숙제들이 아직도 산더미인데 버티고 있었던 것 보면.

남아있는 동무들끼리 잘들 해보라요.”


그는 체육관을 빠져나갔다.

모두 그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당황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론리가 묵적을 바라보자 고개를 끄덕였다.

론리는 이카루스를 뒤따라 달렸다.


사회과학대학의 정문 앞 계단에서 울고 있는 이카루스를 따라잡는 것은 쉬웠다.

이카루스는 달리기도 느렸으니까.

또 론리의 달리기가 월등히 빨랐고.

론리는 느닷없이 이카루스의 멱살을 잡았다.


“네가 정한 선이 여기까지냐?”


“무슨 소리냐?”


“NC시스템에 보란 듯이 한 방 먹이려고 들어온거 아니었어?

네가 정한 한계가 여기까지냐고.

스스로 네가 하지 못할 일들이라는 걸 인정했으면서 도대체 왜 스쿨에 들어온거야.

아까 몇 번이고 일어나서 나한테 덤볐던 기백을 왜 스스로 변명하는 데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거냐고 너희들은!”


론리는 단순히 이카루스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다.

NC시스템에 순응하며 살아가다가 모든 것을 뺏긴 12구역 거주민들의 삶에 화를 낸 것이다.


“아무리 봐도 이해되지 않는 방정식을 공부하다가 밤새 코피 나본적 있소?

부모가 없어 학자금 벌다가 손님한티 뺨맞아본적도 없갔지.


무언가를 해내고 무언가를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가지지 못하고 해내지 못한 사람들을 언제나 비웃고 깔본다.

누구보다도 여기를 원했고 오고싶었디.

내래 기적같이 여기 오는 동아줄을 붙잡았거든.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못하는 내래 무엇을 해야 속이 풀리갔어!”


안타까움을 삼키는 론리의 마음이 쓰라렸다.

이카루스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고 함께 웃는 모습으로 졸업하고 싶었다.

부당한 NC시스템 속에 블루 네임카드를 받고도 엘리트 사회에 진출한 이카루스를 보고 싶었고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었다.


“방법이 틀렸어. 손을 뿌리치지 말고 잡으란 말이야.

너 할 수 있어. 사람에게 주어진 한계 같은 건 없다고 진심으로 믿으란 말이야.

못 가진 사람과 포기한 사람들 속에서 혼자 노력하지 마.

가진 사람과 해낸 사람들의 방법을 따라해.

내가 도와주겠다잖아.”


이카루스는 집요하게 자신의 마음을 물고늘어지는 론리에게 대꾸할 힘조차 남지 않았다.

그의 능력으로는 도망조차 갈 수 없다는 사실이 허탈해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렇게 까지 하우?

나처럼 키도 작고 못생기고 바보같은 아새끼 말고 멋진 친구들이 동무를 다 좋아하는데.”


“네가 너의 진짜 모습으로 세상을 살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서.”


“내래 진짜 해낼 수 있다고 보시오? 내래 더 훌륭해질 수 있습네까?”


“너는 누구보다 높이 나는 갈매기가 될 거야. 조나단처럼. 나는 네가 충분히 자격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걸 확신해.”


(조나단 : 소설 ‘갈매기의 꿈’의 주인공. 다른 갈매기들이 먹이를 찾아다니기 위해 날아다닐 때 높이 나는 것을 목적으로 비행을 연습하는 갈매기)


‘그래. 어차피 물러설 곳도 없어.’


이카루스는 눈물을 닦고 론리에게 악수를 청했다.

론리는 그가 악수를 청하는 손을 무시한 채 이카루스를 와락 안았다.


‘너는 절대로 내버려두지 않을거야. 12구역 사람들처럼 되지 않게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겠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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