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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자 님의 서재입니다.

스캔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현대판타지

주공자
작품등록일 :
2019.07.17 01:42
최근연재일 :
2019.11.16 23:00
연재수 :
9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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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11
추천수 :
901
글자수 :
357,029

작성
19.08.26 04:05
조회
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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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9쪽

12구역의 박해 3

DUMMY

계단을 밟으며 뚜벅거리는 소리를 듣고 론리는 고민했다.

먼저 조준한 상태에서 올라오는 상대를 맞추기는 쉬웠지만 아래에 몇 명이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소리로만봐서는 많은 규모는 아닐 거라짐작할 뿐이었다.

차라리 이 틈을 타서 도망을 치는 게 유리할지,

없는 척 숨어버리는 게 나을지 감이 서지 않았다.


‘인질로 삼으면 포위망을 뚫는 데 도움이 될 거야.’


론리는 그들을 생포할 생각으로 먼저 3층으로 내려가 방 하나에 숨어들었다.

건물에 들어온 자들이 론리를 수색하기위해 온 것이라면 옥상으로 곧장 갈 것이다.

그곳에서 총을 쏘던 론리를 봤을 테니까.

그리고 론리의 예상대로 뚜벅거리는 소리는 3층을 지나 그대로 옥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론리는 조심조심 문을 열어 그들의 뒤를 밟았다.


그들이 혹시라도 올라오는 소리를 먼저 듣는다면 선수를 칠 것이다.

론리는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었는데,

그러면서도 그들이 옥상수색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마주칠 정도로 늦지는 않기 위해,

종아리에 무리가 갈정도로 서둘렀다.


‘저기있다.’


론리가 가늠쇠와 가늠자를 눈에 일치시킨 뒤 표적을 조준했다.


“손 들어. 움직이면 쏜다!”


론리의 말에 뒤를 잡힌 두 사람은 재빨리 손을 들며 소리쳤다.


“우리는 진압대가 아니에요!”


‘여자 목소리?’


자세히 보니 그들은 여자들이었다.

그리고 진압대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론리는 계단을 올라오는 존재에 대해 조준하던 소총을 거두었다.

예상대로 그들은 기동대가 아니었다.

카이로스와 연화는 론리를 보고 웨이브건을 거두었다.


모두 약속했다는 듯이 안도의 숨을 쉬었다.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오는 수백명의 병력들 속에 함께 그들과 대항할 동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안도를 받을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얼싸안고라도 싶었다.


“아까 봤어요. 웨이브건을 갖고 있던 포로들.”


“저도 봤어요. 기동대랑 혼자 전쟁하시던 분.”


“이제 셋이 되겠네요.”


셋은 서로의 자세한 사정을 묻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1층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입구에서부터 포위해오는 병력을 막아야 최대한 시간을 끌수 있을 테니까.


“여기 살지 않는 것 같은데 어디서 오셨죠?”


카이로스가 론리에게 물었다.


“서울에서요.”


론리의 말에 카이로스는 기뻐했다.


“나는 서울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원래 오늘 갈 계획이었지만.”


“당신이야말로 12구역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어쩌다 여기 있는 거에요?”


“내 이웃들이 핍박받고 있는데 모른 척 지나갈 수 없으니까요.”


“그러다 본인이 죽게 생겼네요.”


“아무렴 어때요. 전 17년 동안 살아있었던 적이 없었어요.

이웃의 죽음을 못 본 척하고 지나갔다면 남아있는 생도 죽은거나 마찬가지겠죠.”


카이로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론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웃을 살리지 않으면 나의 생명은 의미가 없다는 거에요?”


론리의 말에 카이로스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자신을 사랑해주고 지켜봐줄 사람이 없으면 당신의 행동과 감정과 사유,

그리고 지성이 무슨 쓸모가 있나요?

당신도 그걸 알고 있으니까 서울에서부터 여기로 와서 싸우고 있는 거 아닌가요?”


카이로스의 말을 들은 론리는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쫓기듯 찾아온 곳에 떠밀려 싸웠을 뿐이니까.

그런데 자신의 눈앞에 있는 가녀린 소녀는 어디에선가 저당잡힌 자신의 생명을 되찾기 위해 자발적으로 투쟁하고 있었다.

신념에 찬 투사의 눈을 마주하지 못해 눈을 슬그머니 돌리며 말을 돌렸다.


“서울은 뭐하러 가나요?”


“공부를 하러가요.”


“별로 배울만한 게 없는 곳인데.”


“어디든 배우고자 하는 곳에 길이 있지요. 당신은 어디로 향하는 중인데요?”


“나는...”


론리는 카이로스의 질문에 한참을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는 아직까지 스스로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질문은 론리에게 효과가 있었다.

다가오는 적들에 대한 두려움을 가렸으니까.


“저놈들 거의 다 왔어요!”


연화의 외침에 셋은 대화를 끊고 약속한 듯이 입구에 사격을 퍼부었다.


※ ※ ※


우라노스가 크로노스의 방에 들어오는 일은 좀처럼 없었기 때문에 크로노스는 긴장했다.

12구역의 일로 바쁠 텐데 용무 없이 일부러 아들의 방을 찾을 정도로 우라노스가 한가한 행보를 보인 적은 없었다.


“시험준비는 잘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들렀다.”


우라노스가 말하는 시험이란 아키텍쳐스쿨 입학시험을 가리킨다.

아키텍쳐스쿨은 단순히 레드네임카드를 부여받았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키텍쳐스쿨이 부여하는 시험을 통과해야하고,

그 안에서도 일정한 순위권과 학점을 유지해야 무사히 졸업할 수 있는 학교였다.


만약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한 번의 재시험을 2년 이내에 치를 수 있고,

그것조차 통과하지 못한다면 그레이나 바이올렛 스쿨에 입학한다.


“프리테스트는 계속 통과하고 있어요. 양자물리학이 다른 성적에 비해 약간 보완이 필요하지만 불안한 정도는 아닙니다.”


우라노스는 만족한 미소를 띄며 크로노스를 양팔 벌려 안았다.


“아들아. 너는 나의 미래이자 전부다.

하루도 빠짐없이 너의 행복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모든 정성을 기울이고 있어.

모든 게 완벽한 이 생활에 하나 불안한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카이로스야.”


크로노스는 카이로스의 이름을 듣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필 이런 타이밍에 굳이 카이로스의 이름을 입에 담는 이유가 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집을 나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건가?

그 사실은 이미 알고 있는데 크로노스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떠보려는건가?


우라노스는 웃음인지 비웃음인지 모를 묘한 표정을 지으며 크로노스를 안았던 팔을 풀고 말을 이었다.


“자기가 싫어하는 아비에게는 아니더라도 너한테는 말 할 것 아니냐?

아직도 아키텍쳐스쿨에 가기 싫다더냐?”


“아키텍쳐스쿨 입학시험을 같이 준비하고 있어요.”


크로노스는 긴장한 표정을 짓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했지만,

몸이 뻣뻣하게 경직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짐짓 안심됐다.

우라노스가 그 말을 듣고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아비가 너무한다고 생각하는 걸 안다.

나중에 너희들도 부모가 되어보면 이해할 날이 오겠지.”


“너무한다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너는 그럴지 몰라도 카이로스가 하는 행동들을 봐라.

이게 결국 다 자기의 행복을 찾는 일인 줄 모르지 않냐.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들이 잘못된 길을 선택하는 걸 놔두겠어.

출세하지 못한 여자들은 굶어 죽거나 몸을 파는 길밖에 없어.”


“저나 카이로스 모두 아직은 어리잖아요.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고 충동적일 때니까 잠깐의 반항이라고 생각해주세요.”


“1년도 차이가 나질 않는데 너는 언제나 생각이 성숙했지.

카이로스를 잘 이끌어가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말이다.”


갑자기 우라노스의 입에서 나오는 차가운 목소리가 크로노스의 가슴에 꽂혔다.

아버지는 이미 카이로스가 집을 나갔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제아무리 똑똑한 크로노스도 두려움이 몸을 지배하자 머리와 감정이 따로 놀기 시작했다.


‘아닐거야. 그걸 아셨다면 이렇게 나에게 다정한 척 연기하지도 못하실 분이다.’


“카이로스가 방에 없던데 어딜 간 게냐?”


“이 시간에 가끔 마음이 답답해서 정원을 산책하곤 합니다.”


“산책! 그거 참 좋지. 너도 가끔은 걸어라.

걷는 것은 생각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네 저도 앞으로 카이로스랑 함께 산책하겠습니다.”


‘역시 아직 눈치챈 건 아니구나.’


안도하는 크로노스를 뒤에 두고 방을 나가려던 우라노스가 문을 열지 않고 멈춰섰다.


“산책을 할 때 방을 모조리 비우는 사람도 있던가?”


크로노스는 고개를 숙인 채 놀라서 커진 눈만 꿈뻑거릴 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우라노스는 그 모습을 보고 크로노스가 카이로스의 가출에 협력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실망이구나.”


문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에 크로노스는 최면이 깬 듯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닫힌 문을 통해 우라노스가 집사를 부르는 목소리가 바깥에서부터 전달됐다.

이대로 우라노스가 집사에게 카이로스를 잡아오라고 지시한다면 그의 꿈은 영영 좌절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라노스의 광기와 분노가 폭발한 상태에서 붙잡힌 카이로스를 마주한다면 그는 친히 자신의 딸, 아니 주워온 자식을 죽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애초에 그런 딸은 존재했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아무 일 없이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그의 모든 관심을 크로노스에게 쏟겠지.


크로노스는 끔찍한 생각을 떨쳐버리려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하지만 생각을 버린다고 해서 미래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더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 서랍에 숨겨두었던 나이프를 꺼냈다.

방문을 열었지만 다른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의 인원은 12구역에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열 걸음 떨어진 거리에 집사를 찾는 우라노스의 뒷모습이 보였다.

크로노스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칠흑의 복도에 뛰어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99 벌꿀돼지
    작성일
    19.08.27 00:23
    No. 1

    흠 네임카드 색깔은 아무래도 지배자들이 마구 입맛대로 바꾸는것 같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 MoiraS
    작성일
    19.08.28 13:52
    No. 2

    군인출신이라 그런건지.. 우리의 후손들도 결국 다시 돌고 돌아 과거의 기성세대처럼 변할련지...우라노스도 참 깝깝한 양반이구먼 허허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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