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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자 님의 서재입니다.

스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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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자
작품등록일 :
2019.07.17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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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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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57,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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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29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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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아키텍쳐 스쿨 2

DUMMY

“이유가 뭔가?”


김 교수가 흥미 있다는 표정으로 론리에게 물었다.


“시간을 사용하는 의도와 능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더 자세히 예를 들어?”


론리와 김 교수는 서로 상대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체없이 물었다.


“누군가는 이 스쿨을 다 도는데 1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2시간이 걸립니다.

같은 행위를 하는 데 그 속도가 다르다면 당연히 둘의 시간의 가치는 다른 것입니다.

또 누군가가 60년이라는 기간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도,

어떤 이는 전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하고,

어떤 이는 사회 구성원들을 위해 시스템을 개혁하며,

어떤 이는 혼자 먹고 살기 급급하고,

어떤 이는 사람을 죽입니다.

그렇다면 같은 시간 내에 각각의 사람의 삶이 인류에 공헌하는 바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니,

시간의 가치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론리가 대답하자 김 교수는 오랜만에 미소를 지으며 반문했다.


“좋아. 자네 말이 옳다고 친다면,

그것은 결국 인간의 가치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는 논리도 성립될 텐데 어떻게 할 텐가?”


강의장에 있던 학생들 모두 김 교수가 론리의 정곡을 찔렀다고 생각해 론리를 쳐다봤다.

그가 어떤 대답을 할지 모두 궁금해 했다.


“저는 여태까지 교수님 강의를 무수히 들었지만, 이해를 못 한 적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지요.

그런데 지금만큼은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론리의 말에 김 교수는 당황했고 강의장은 술렁였다.

이것은 엄하다고 소문난 김 교수 뿐만이 아니라 아키텍쳐 스쿨 내에 있는 어떤 교수들에게도 보일 수 없는 태도와 말이었다.

하지만 론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인간의 가치가 다르다는 논리가 도대체 어디서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까?”


론리의 말은 그의 표정보다 서늘했다.

12구역의 박해를 겪은 뒤로 론리의 마음은 세상에 대한 증오로 차갑게 식어버린 걸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사막의 매를 흘끔 쳐다봤다.

사막의 매가 본인을 쳐다보고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챌 수 없게 눈의 시야각을 최대한 이용해서 고개를 덜 돌렸다.

그나마도 금방 시선을 김 교수에게 고정했기 때문에 걸릴 염려는 없을 것이다.

론리의 예상대로 사막의 매는 론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잠시 딴 길로 새어 사막의 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론리는 사막의 매를 처음부터 이상하게 여겼다.

그냥 봐도 또래보다 나이가 5살 이상은 많아 보였다.

더 이상한 것은 그를 교수들도, 학생들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적어도 실제 나이를 궁금해하거나 어떤 사연으로 아키텍쳐 스쿨에 입학하게 됐는지 물어보는 사람이 있어야 정상이었다.


그리고 사막의 매는 언제나 론리의 주변에 있었다.

심지어 가끔은 멀리 떨어져서 몰래 보는 것도 아니고 대놓고 주시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 무서운 것은 그 순간은 주위의 누구도 매가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최면인가? 초능력이라도 쓰는건가?’


사막의 매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론리에게 접근하기 위해 온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론리는 매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최면을 걸었다고 생각했다.


처음 최면이 걸린 상황은 아키텍쳐 스쿨에 첫 등교하던 점심시간이었다.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 예측되는 능력 때문에,

머리가 아팠던 론리는 혼자 4인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그때 사막의 매가 아무렇지 않게 론리의 대각선에 식판을 놓고 앉아선 지그시 론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미 그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한 론리는 귀찮은 상황에 휘말리기 싫어 모른 척 밥을 먹고 있었다.

그가 이상한 능력을 쓴다는 것을 확실히 감지한 것은 옥저 덕분이었다.

옥저는 론리를 보고 반갑다는 듯 론리의 맞은편,

그러니까 매의 옆에 털썩 앉아선 반가운 듯 말을 걸고 함께 밥을 먹었다.

그리고 밥을 먹는 내내 옥저는 매에게는 말 한마디 걸지 않았다.

마치 그가 그 자리에 없다는 듯이 말이다.


론리는 그때부터 긴장했다.

매는 론리가 그의 수법에 걸리지 않았다는 상황을 모르는 것 같았다.

론리도 그의 마술이 어째서 자신에게만 걸리지 않았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매에게 그 상황을 들켰다간 큰일날 것 같아서 최대한 매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연기할 수 밖에 없었다.

매는 그 상황이 익숙한 듯 론리를 바라보다가 밥을 몇 숟갈 뜨고는 식판을 들고 먼저 일어나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론리는 식은 땀을 닦으며 그가 낙화유수와 비슷한 부류의 정부요원이며,

자신을 감시하거나 암살하러 온 자라고 확신했다.


그런 론리에게 김막생 교수의 질문은 기회였다.

사막의 매가 론리에 대한 감시를 거두고,

정부에 자신을 지켜줄 보고서를 쓰게 만드는 것.

그래서 론리는 일부러 정부가 고수하는 엘리트체제와 직업탐색검사 시스템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론리의 말에 많은 학생들이 왼팔을 들었다.

김 교수의 강의 중 많은 학생들이 왼팔을 든다는 것은 그의 의견에 반대한다는 것이며,

반박의 논리에 대해 교수가 지목할 경우 발표할 준비가 됐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김 교수는 학생들에게 발표시키지 않고 직접 질문했다.

교수의 개입 없이 학생들간 토론을 최대한 존중하는 김 교수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홀로코스트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가치가 다르다는 논리를 인정하는 데서 나온 것이 아닌가?

과거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학살하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처럼 말일세.”


론리는 표정과 목소리톤에 변화없이 김 교수의 질문에 답변했다.


“차별이 발생하는 이유는 인간의 가치가 다르다는 논리 때문이 아니라,

아니고 열등한 인간들을 통제하고 탄압해도 좋다는 전제의식이 원인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다를지언정 행복과 고통을 느끼는 정도는 같으니까요.

그러므로 만약 높은 가치를 지닌 인간들이 있다면,

그들은 하등한 가치를 지닌 인간들의 고통을 줄이고 행복을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론리의 말에 김 교수가 다시 반박했다.


“인간이 인간을 탄압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알겠지만,

어째서 잘난 사람들이 못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말인가?”


론리는 그 말에 잠깐 뜸을 들였다. 12구역에서 탄압받던 거주민들이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그들이 불행해져 사회에 불만을 가지면 우리의 생존과 행복도 위험해지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숙연해졌다. 그들은 슬금슬금 들고있던 왼 팔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2250년의 시민혁명당시를 겪지 못한 세대지만,

당시의 비극이 얼마나 슬프고 거대한 사건이었는지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김 교수는 알듯말듯 한 미소를 지으며 안경을 고쳐 쓰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말에 일리가 있어.

우리는 왜 시민들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가.


신이 그렇게 정했으니까?

아마르의 공간 비대칭 이론으로 신이 없다는 주장이 현재로선 훨씬 타당하지.


그게 윤리니까?

윤리는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한 건가? 바로 우리가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정한거지.


그래서 시민들을 위해 시간을 사용해야 하는 위대한 동지들이...”


김 교수는 잠깐 이야기를 멈추고 옥저를 바라봤다.

옥저는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숙여 모자챙으로 눈을 가렸다.


“그대들이 20분을 지체하면 챔핀코 시민연합 내에 있는 수십억의 시민들은 어떤 피해를 감수하게 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요.

그리고 피폐해진 삶을 겪게 될 그들이 향하는 분노가 어디일까 예상하는것도 무섭고요.

일단 수업은 들어왔으니 가서 앉게.”


옥저는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강의실 안에 파묻혔다.

그녀의 행동을 비웃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누구나 김막생 교수 앞에서는 망신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옥저가 들어가는 것을 잠깐 지켜보던 김 교수는 다시 강의를 시작하기 위해 LED화면에 눈을 돌렸다.


그때였다. 수업시간이 시작한지 30분이나 경과한 그때 문이 ‘덜컥’하고 열렸다.

강의실에 앉은 모든 이들이 지금 들어오는 학생의 안위를 걱정했지만,

문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태연하게 열려서는 닫힐 줄을 모른다.


그는 젊은 학생들은 입지 않을 법할 빵모자를 쓰고 해진 운동화와 물빠진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누가 봐도 지하단지에 사는 디벨로이드 정비사처럼 보였다.


김 교수는 무려 두 명이나 연속으로 지각을 한 사태에 대해 오히려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황당한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자네는 이름이 뭔가?”


“내래...이카루스라고 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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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59 fnlshsk
    작성일
    19.08.29 15:00
    No. 1

    북한말쓰는 서양인이라니 상상만으로 충공깽 당해버렸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89 도레미0
    작성일
    19.08.29 17:00
    No. 2

    ㅋㅋㅋㅋ근데 저 논리 얼핏 들으면 되게 일리가 있는데 반박할 수 없네요 인간은 왜 평등한거죠? 인간이 평등하지 않아야 한다는건 아닌데 인간이 왜 평등한건지 모르겠어요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81 우룡(牛龍)
    작성일
    19.08.29 22:32
    No. 3

    종교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절대자인 신의 아래의 모든 인간은 어린 양에 불과하니 속세의 잣대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되기 때문이죠. 사실 종교는 말을 갔다 붙이기 따름이니 넘긴다치면, 평등하다 가정해야 그나마 이상적인 사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현 사회를 계급없는 사회라 부르지만 실제로 계급이 없다고는 못하는데, 실제 계급이 있다면 얼마나 심하겠어요?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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