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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자 님의 서재입니다.

스캔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현대판타지

주공자
작품등록일 :
2019.07.17 01:42
최근연재일 :
2019.11.16 23:00
연재수 :
9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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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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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1
글자수 :
357,029

작성
19.09.10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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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결전의 날 1

DUMMY

5년 전. 입학식 당일 체육관.


그들에게 스쿨과 기숙사생활 규칙을 설명하는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는 내내 론리는 판도라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수많은 학생 중 유일하게 말을 걸어보고 싶은 존재였다.

사람과 이야기하기 싫어하는 론리의 성격이 로봇인 그에게 흥미를 가지게 한 것일지 모른다.


“그럼 이것으로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겠습니다.

기숙사배정이 있을 예정이니 입학생들은 게시된 명단을 보고 정해진 호수로 입실해주십시오.”


체육관에 있던 학생들이 그 말을 듣고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동시에 통과하기에는 그다지 넓지 않은 입구 때문에 인파가 몰렸고,

론리는 그들에게 밀려 판도라와 점점 멀어졌다.


론리는 넓은 1인실에 배정되었다.

기숙사는 거리와 상관없이 철저히 입학시험에 대한 성적순으로 좋은 방에 배정받는다.

그는 2등으로 입학시험에 합격했다.

1등은 판도라라는 소문이 입학식이 시작하기도 전에 파다했다.


론리는 자신의 방을 둘러보았다.

웬만한 가정집보다 좋은 시설이었다.

서재와 침실, 옷방이 있었고 샤워실과 화장실은 분리되어있었다.

거실은 온통 하얀 벽지에 사람 키 보다도 큰 어항에 열대어로 보이는 형형색색의 물고기가 있었다.


론리는 그 물고기들이 자신들이 갇혀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궁금했다.

지금은 몰라도 분명히 언젠가는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크고 넓어도 결국은 끝에 있는 유리에 부딪히는 날이 있을 테니까.


12구역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던 벌레똥과 하수구냄새가 떠올랐다.

두통과 함께 구역질이 나 잠시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

점심시간에 자신을 지켜보던 사막의 매.

직업탐색과정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낙화유수의 눈빛.

12구역에서 자신을 죽이려했던 수많은 기동대의 웨이브건.

그것들이 자신을 관통시키기 시작했다.


직업탐색과정을 거치고 나서 이런 두통이 때때로 올라왔다.

가끔은 자신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던 이들에 대한 살의도 꿈틀댔다.

물론 아무에게도 말하진 않았다.


창문을 열어도 해소되지 않는 답답함을 털어내기 위해 옥상에 올라갔다.

12구역의 일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지도 못했는데 이 넓고도 많은 건물들 속에 어떤 숙제들을 해결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때였다. 거짓말처럼 판도라가 기숙사를 나서는 모습을 목격했다.

론리는 서둘러 그를 만나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내려가 버튼을 눌렀다.

1층에서부터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간 놓칠 것 같아 계단으로 뛰어갔다.

기숙사 입구를 나서자 판도라가 일찍이 학교 정문을 통과하는 모습이 보였다.


허겁지겁 뛰어가 부르면 돌아볼 것 같은 거리까지 판도라에게 다가갔지만,

막상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말없이 뒤를 밟기 시작했다.


판도라는 지하철을 타고 학교 근처의 번화가에 들어갔다.

영양실조로 사망한 시체가 길에 널브러지는 시대였지만 번화가는 사람이 많았다.

한눈파는 순간 판도라를 놓칠 정도로.

거리의 분위기는 지금의 일본 긴자 거리와 비슷했다.

다만 푸른눈과 금발, 또는 검은 피부의 외국인들이 동양인만큼 많았다.


론리는 판도라가 왜 이곳에 왔는지 궁금해졌다.

판도라는 허리와 허벅지가 붙는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입고 머리는 과거의 일본인 처럼 쪽진 머리를 하고 있었다.


‘로봇이 유흥을 즐길 리는 없을 거고.’


건물과 건물 사이에 난 길을 따라가다보면 신기하게도 모든 곳이 연결되어 있었다.

막다른 길인 것만 같을 때 다른 방향을 보면 좁은 길이 숨어 있고,

그곳을 가다보면 다시 넓은 길이 연결되는 것이다.

어떤 주점에 도착하고서야 론리는 걸음을 멈췄다.

판도라가 들어간 곳이다.

론리는 입구 앞에서 머뭇거리며 돌아갈까 하다가 여기까지 온 것이 아까워 들어가 보기로 했다.


‘도원’이라고 적힌 그 주점은 웨스턴바와 형태가 비슷했다.

중간중간 룸이나 테이블도 있었지만 주된 공간은 주방과 일체가 된 긴 바였다.

다만 바와 진열대 말고는 목조로 이루어진 동양풍의 인테리어가 되어있어 완전한 서구식은 아니었다.


론리는 그곳에서 유니폼 쟈켓과 나비넥타이를 매고 바에서 일하는 판도라와 눈이 마주쳤다.

론리는 그가 점원으로 일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해 무작정 들어가다가 들켜버린 것이다.

판도라가 론리에게 말했다.


“아직 영업시간이 10분정도 남긴 했는데. 들어오셔도 돼요.”


다행이다. 판도라는 이곳에서 같은 학교 학생이 자신을 따라왔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 틀림없다.

론리는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음... 그러니까 저는 잘못 들어온 것 같아요. 수고하세요.”


하지만 론리의 등을 붙잡는 판도라의 말은 그의 안도감을 완전히 박살냈다.


“론리 져스틴. 아키텍쳐 스쿨의 동창. 맞지?”


그 상황에서 론리는 발뺌할 수가 없었다.

안녕이라고 말하는 론리에게 판도라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뭐 줄까? 이건 내가 동창한테 주는 선물이야.”


“사실 난 술을 안 마셔.”


판도라는 그의 말에 털털하게 웃으며 무언가를 바에 내놨다.


“여긴 무알콜 칵테일도 있어.”


결국 판도라에게 붙잡힌 론리는 입구로 나가려던 것을 포기하고 바에 앉았다.


“술도 안 마시는 친구가 여긴 무슨 일이야?”


론리는 판도라의 정면 공격에 완전히 무너졌다.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한 질문에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솔직한 생각이 튀어나온 것이다.


“널 만나고 싶었어.”


그 말에 판도라는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진심으로 즐겁다는 듯이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론리는 그런 판도라를 보고 조금은 안심했다.

영화나 SF소설에서 보는 것처럼 아무런 표정없이 ‘보고싶다는 의미가 뭔지 모르겠다’ 라거나 ‘어째서 보고싶었습니까’라는 기계와같은 반응이 나왔다면 굉장히 무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로봇이 어째서 주점에서 일하는지 궁금했다.


“어째서 일을 하는 거야?”


그러자 판도라는 얼굴에 웃음을 머금은 채 쟈켓을 벗고 블라우스를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론리는 화들짝 놀랐다.


“뭐 하는거야?”


브래지어가 살짝 나올 무렵 판도라는 뒤를 돌아 블라우스를 반 정도 헤쳐서 등을 보여줬다.

그곳에는 배터리의 잔량을 나타내는 LED등이 아주 미세하게, 자세히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판도라는 다시 옷을 추슬러 입고 론리를 바라봤다.


“일단 전액은 아니지만 나도 등록금을 내고 있고.

보시다시피 내 배터리를 충전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정비를 해.

내 배 속에 있는 소형 우라늄이라거나 심장에 위치한 전력저장용배터리라거나 그걸 받아서 분배하는 변압기들.

군데군데 수많은 부품을 교체하거나 수리해야 해.

그거 꽤 비싸.”


“주인 없이 사는 디벨로이드란 사람처럼 고달프구나.”


론리의 말에 판도라는 무언가 대꾸하려다 말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정도 느끼는 걸로 알고 있는데. 힘들다는 느낌도 들어?”


“느끼긴 하는데 사람하곤 개념이 달라.

적어도 육체적으로는 힘들다는 걸 느끼지 않으니까.

불안함이나 두려움정도를 느끼지.

그나마 디벨로이드의 알고리즘 속에 거의 확정적인 계획에 따라서 액팅하니까 그런 감정도 거의 없어.

결론적으론 거의 느끼지 않네.

힘들다기보단 굳이 따지자면 주인이 있는 디벨로이드들은 주로 슬픔을 느껴.”


“어떤 슬픔?”


“주인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슬픔.”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론리는 자신의 질문이 문제였는지 헤아렸다.

판도라는 자신의 말에 론리가 난처해하는 것 같아 말을 이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 정도는 느껴.”


“로봇도 죽음에서는 자유롭지 않구나.”


“사람이 사람을 닮게 만든 거니까.”


“앞으로 여기 자주 와도 돼? 너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


론리의 말에 판도라는 입꼬리를 올리며 윙크를 했다.


“로봇한테 이런 말을 할 정도면 여자들한테는 얼마나 많이 해?”


“아니야. 이런 말 한 적 없어. 애초에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얼굴이 빨개지며 급하게 변명하는 론리를 보고 판도라는 또다시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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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야만의 정의 2 +3 19.07.27 457 16 6쪽
12 야만의 정의 1 +4 19.07.26 525 17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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