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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자 님의 서재입니다.

스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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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자
작품등록일 :
2019.07.17 01:42
최근연재일 :
2019.11.16 23:00
연재수 :
9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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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00
추천수 :
901
글자수 :
357,029

작성
19.08.26 23:45
조회
258
추천
12
글자
8쪽

12구역의 박해 4

DUMMY

론리 일행은 입구가 뚫리자 계단으로 올라가 방어했다.

섬광탄과 최루탄이 들어오자 계단도 포기하고 2층으로 올라왔다.

연화와 카이로스는 웨이브건으로 계단을 오르는 자들을 저지했고,

론리는 계단 창문을 통해 입구로 들어오는 자들을 저격했다.

입구에서부터 계단까지 수십명의 시체가 쌓였다.

기동대는 저항하는 자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죽음을 선사하겠다는 각오를 한 것처럼 시체를 밟고 넘어왔다.


론리는 그들을 저지하지 못하고 3층으로 올라왔다.

론리에게는 총알 12발이 장전된 탄창 하나만 남았다.

여러 번 죽음을 넘긴 론리에게 예전과 다른 점은 이제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경험을 해서 무뎌진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조금 전 카이로스가 한 말이 론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기 때문이다.


「이웃을 살리지 못하는 삶은 의미가 없어.」


론리는 연화를 쳐다봤다. 시민기초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을법한 어린 아이였다.

연화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땀을 흘리며 론리를 마주봤다.

연화의 손에 들린 웨이브건을 보고 슬픔이 밀려왔지만,

눈물 흘릴만한 여유가 없었기에 그저 웃으며 연화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같이 있던 포로들은 어떻게 됐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동갑이라는 것을 안 론리가 카이로스에게 반말로 물었다.


“다들 뿔뿔히 흩어져서 도망갔어. 아마 잘 도망갔을거야. 모든 시선이 나랑 너한테 집중됐었거든.”


“그래. 그럼 됐어.”


뜻 모를 론리의 말에 카이로스가 질문할 겨를도 없이 론리가 2층에 있는 인원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협상할 의사가 있습니다! 타결되면 저항하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아래층에서도 사격을 중지했다.

짧지는 않은 침묵이 그들 사이에서의 고민을 대변해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협상의 대표자로 보이는 자가 나서서 론리에게 말했다.


“원하는 것을 말해봐라.”


“난 서울에서 챔핀코 보안요원을 폭행하고 도주한 론리 져스틴이에요.

정부의 중대 범죄자니까 체포하면 당신들 공도 상당할 거에요.

내가 자수할게요. 그러니까 여기 있는 둘은 풀어주세요.

이곳에 사는 평범한 거주민들일 뿐이에요.”


론리의 말에 카이로스와 연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래층은 고민하는 듯 대답에 뜸을 들였다.


론리가 카이로스에게 말했다.


“무섭지 않아? 내가 범죄자라는 걸 아니까.”


론리의 물음에 카이로스가 고개를 저었다.


“이제 고작 1시간 본 사이야.

너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데 뭘로 널 판단하겠어. 그리고 너라면.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의 말에 론리는 다시 부끄러워졌다.

온갖 선입견으로 사람들을 판단했던 자기의 지난날들이.


“진짜 아름다운 건 몸 속에 있는 건데. 얼굴만 봐서 미안해.”


론리의 말에 카이로스가 소녀처럼 꺄르르 웃었다.


“지금 나 꼬시는거야?”


그때 아래층에서 대답이 들렸다.


“그들은 기동대의 웨이브건을 탈취했고 그걸로 치안관을 죽였어. 그냥 놔줄 수 없다.”


역시 안되는 건가.

함께 싸우던 두 사람의 목숨조차 지키지 못하고 모두가 죽어버리는 상황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아직 하고싶은 일이 뭔지조차 알지못하는데 죽는 것이 너무 억울했다.


“잘 됐어. 네 목숨으로 우리가 살수는 없으니까. 끝까지 싸우자.”


카이로스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기위해 론리를 다독였지만 떨리는 목소리는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우라노스의 집에 갇혀사는 것보단 낫다고 위안했다.


하지만 론리는 카이로스의 말을 듣지 않고 다시 소리쳤다.


“너희들 육신의 안위만을 우선하는 정부의 개들 따위 몇 명이라도 더 죽이게 해준다면 나야 고맙지.

지금 협상하고 있는 너부터 쏴 줄테니까 들어와!”


아래층에서는 다시 침묵이 시작됐다.

하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서로 다른 의견이 부딪히는 것처럼 일렁임이 느껴졌다.

잠깐의 아우성이 있었다가 다시 잠잠해졌는데, 아까와는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론리 져스틴. 먼저 소총을 들고 자수하면 둘은 풀어주겠다.”


아래층에서 들리는 소리에 카이로스와 연화는 격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정작 협상이 타결되어 론리가 체포된다고 생각하니 무섭고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운명이 이끌어 12구역에서 만나 이날의 추억을 평생 공유하며 좋은 친구가, 어쩌면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소중한 만남이었다. 사실은 처음부터 그가 여기서 죽을 것이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예상을 했다고 해도 정든 또래가 제발로, 그것도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죽으러 가는 상황에서 이별의 인사는 쉽지 않았다.


“안돼. 가지마!”


론리는 카이로스의 만류를 듣지 않고 다시 소리쳤다.


“둘을 먼저 풀어줘라!”


그리고 카이로스에게 미소지으며 아래층의 인원들이 들을 수 없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나는 너 덕분에 잠깐이라도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으니까.”


그 말에 카이로스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너 가면 정말로 죽을거야. 저 놈들에게 자비심을 기대하면 안된단 말이야.”


카이로스는 울음이 터져나와 제대로 된 발음조차 하지 못했다.

눈물에 젖은 카이로스의 뺨을 론리가 손으로 닦아주었다.

그러자 론리의 손에 묻은 검은 탄약이 카이로스의 얼굴을 뒤덮었다.


론리도 물론 죽는 게 무서웠다. 그는 용기있는 사람도 아니고 특별한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신은 반드시 존재한다고.

론리가 카이로스를 만나서 그를 구하고, 또 죽는 일이 지금 내려진 신의 명령이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거기에 카이로스가 본인을 평생 기억해준다면 두려움을 조금은 더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신이 있다면 저 세상도 있을테니 먼저 가서 카이로스를 기다리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론리 져스틴?”


그때였다. 아래층에서 들리는 소리에 론리는 놀라운 무언가를 본 것처럼 격렬하게 몸을 벌떡 일으켰다.


“론리 져스틴. 거기 있니?”


론리는 소총을 버렸다.

론리의 이상한 반응에 놀란 카이로스와 연화가 론리를 가지 못하게 붙잡으려했지만 순식간에 계단을 내려가버렸다.

그들은 웨이브건을 들고 론리를 쫓아내려갔는데 그곳에는 기동대가 모조리 쓰러져있었다.


론리는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맥 져스틴. 론리의 아버지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 서 있었다.

그들은 모두 웨이브건과 웨이브스피어로 무장하고 있었고, 팀원들간에 무전할 수 있는 양자교신기를 끼고 있었다.


(양자교신기 - 양자도약의 원리를 이용해 무선으로 소통하는 미래 통신기술로 제조회사는 팍스 사가 유일하다.)


론리는 주저하지 않고 아버지에게 뛰어들어가 안겼다.

그동안 억눌러왔던 두려움과 그리움이 폭포수처럼 눈에서 쏟아졌다.

죽지 않아도 된다. 더군다나 부모님을 다시 보지 못한 채 죽지 않아도 된다.

아무리 억지 논리를 펼치더라도 자신의 죽음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이제 그것을 감추기 위해 성스러운 사명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었다.


맥 져스틴은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론리를 안아주며 물었다.


“잘 다녀왔니?”


맥의 질문에 론리가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면서 흐느끼는 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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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5

  • 작성자
    Personacon [탈퇴계정]
    작성일
    19.08.26 23:55
    No. 1

    이번 화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휴...뿌듯하네요. 14였던 선작이 이렇게까지 오르다니.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1 주공자
    작성일
    19.08.27 01:32
    No. 2

    이게 다 에르테님 덕입니다.
    정말 평생 은혜 못잊을것같아요. 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벌꿀돼지
    작성일
    19.08.27 00:27
    No. 3

    가출소년 껌뱉어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4 Unveil
    작성일
    19.08.27 01:28
    No. 4

    가슴이 두근두근해요 작가님 디스토피아 세계관에 파고드는 건강하고 치밀한 사유가 돋보입니다. 보통 치밀하면 건강하지 못하고 건강하면 얄팍하기 마련인데 그게 아니고 진국이네요. 멋진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찬성: 3 | 반대: 0

  • 작성자
    Lv.4 MoiraS
    작성일
    19.08.28 14:01
    No. 5

    아부지... 아부지... ㅠ.ㅠ
    동해번쩍 서해번쩍 아부지...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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