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주공자 님의 서재입니다.

스캔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현대판타지

주공자
작품등록일 :
2019.07.17 01:42
최근연재일 :
2019.11.16 23:00
연재수 :
97 회
조회수 :
26,908
추천수 :
901
글자수 :
357,029

작성
19.09.02 00:23
조회
96
추천
5
글자
8쪽

야만의 거래 3

DUMMY

론리와 다른 친구들이 입학한 지 5년이 지났다.


크로노스의 눈은 붉게 충혈되었다.

거의 매일 아침부터 수업을 듣고 밤 늦게까지 아르바이트를 한 뒤,

새벽에 개인과제를 해야했다.

잘 시간도 놀 시간도 없는 크로노스의 눈은 총명하게 빛난 적이 없었다.

하루하루를 무사히 버티는 데 급급했으니 미래에 대한 설계나 꿈 따위는 가져본 적 없었다.

종종 자신이 죽였던 아버지와 자신 대신 죽어줬던 영감이 생각날 뿐이다.

그래도 이제 마지막 학기가 남았다.

이 학기만 버티면 그렇게 길고도 지옥 같았던 학교생활은 끝이 난다.


수업을 마치고 아르바이트를 하러가던 크로노스는 발걸음을 멈췄다.

옥저가 그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옥저는 크로노스를 쫓아 꽤 먼 거리를 달려오느라 차오르는 숨을 한참 동안 고르고 말했다.


“너 통신역학 1조 크로노스 맞지?”


크로노스는 옥저에게 본인이 맞다고 대꾸하는 대신 가방에서 500은화(현재 2만원 상당의 화폐)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넨다.

당연하다는 듯이 내미는 은화를 쳐다보며 옥저가 기분 나쁘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면책금.”


“내가 언제 너한테 돈 달라고 했어?”


아키텍쳐 스쿨은 다른 학교와 다르게 특수한 문화가 있는데 면책금이 그것이었다.

스쿨의 학생들은 수업을 소화하는 것보다 그렇게 많은 수업들에서 쏟아지는 과제를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는데,

특히 개인과제보다도 조별과제가 그랬다.

조원 여럿이 협동해야만 달성할 수 있는 임무다보니 시간을 많이 할애 해야했다.


학교가 만들어진 초창기에는 그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무단으로 조원들과 연락을 두절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언제부턴가 그들의 사정을 이해해주는 대신 나머지 조원들에게 자신의 미참여분만큼의 돈을 지불해주는 제도가 생겼다.


그것은 살인적으로 비싼 등록금제도와 관련이 있었다.

부모가 부자인 경우가 아니면 등록금을 내기위해선 크로노스처럼 아르바이트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조별과제를 이탈하는 학생들이 심각할 정도로 많아지자 그들을 강력하게 제재해서 퇴학시켜야 한다는 주장과,

조별과제를 없애서 현실적인 교육과정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

그리고 면책금을 걷어서 남아있는 조원에게 이익을 주고 이탈하는 조원을 구제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결국 세 번째 안이 채택됐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이탈하는 자들도 어떻게 해서든 그 조별과제에 대한 공헌이 인정되어 학점을 무사히 받을 수 있으니 찬성할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학생이 학교를 다니기 위해 다른 학생들에게 돈을 더 내야 한다니.

웃기고 슬픈 일이었지만 열심히 조별활동을 하는 다른 조원들에게는 그나마 억울함을 덜어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자연스러운 문화 속에 옥저가 크로노스에게 따지듯 말하자 피곤한 듯 한숨을 쉬었다.


“일하러 간다. 바쁘니까 비켜.”


“내가 뭐 때문에 기분이 나쁜 건지 모르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돈을 내민 게 무례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어차피 조별활동에 참여하라는 얘길 할거였잖아.”


“얼굴이나 보고 가라고 얘기할 거였어! 너 우리 조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지?”


“알아.”


“거짓말.”


“다 안다고.”


“따로 모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알아.”


“론리 져스틴. 사막의 매. 옥저. 판도라.”


크로노스가 모든 이름을 나열하자 옥저는 잠깐 당황했지만 다시 원래 하려던 얘기를 꺼냈다.


“세상엔 돈으로 해결 안 되는 일도 있어.

네가 돈을 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같이 조별활동을 하면서 학습을 하는 게 중요하지.”


“나한테는 돈이 중요해.

돈이 있어야 학교도 다니고 밥도 먹을 수 있어. 그러니까 비켜.”


“너는 억울하지도 않아?”


“무슨 소리야?”


“학교의 성적이 가구의 소득수준과 비례하는 거.

그렇게 받은 성적이 우리들의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해?

잠재력과 능력에 맞는 학업과 진로를 정해주려고 직업탐색검사를 하는데,

결국 부모의 재산에 따라 지위가 대물림 되는 꼴이잖아.”


“그래서 어쩌자는 거야. 네가 무슨 소리를 지껄여도 나는 지금 일 하러 갈 거야.”


크로노스는 통신역학의 조별모임 과제에 대해 얘기하다가,

갑자기 학교의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하는 옥저의 태도가 수상하기만 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다가는 도에 대해 아냐고 물으며,

이상한 수법으로 돈을 뜯어가는 사이비종교단체에게 당하듯이 시간을 뺏길 것 같았다.


옥저도 강경하게 부인하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크로노스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 더는 얘기하지 않았다.


론리는 터벅터벅 걸어오는 옥저에게 어떻게 됐는지 손짓으로 물었고,

옥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크로노스를 데려오지 못했다는 것을 안 조원들은 아무 말 하지 못하고 말없이 서로를 쳐다볼 뿐이었다.


조원은 조원이고 과제는 과제였다.

교수는 어려운 난이도의 레포트를 요구했고,

그것에 대해 교수 앞에서 발표까지 한다.

모두가 테이블에 앉아 머리를 맞대고 늦은 밤까지 목차를 수정하고 책을 뒤지고 결론에 대해 토의했다.


“목소리를 광자신호로 변환하고,

변환한 신호코드를 상대 교신기만 해석할 수 있는 암호로 재배열해.


그렇게 해서 아무도 관측할 수 없는 진공관에 보내고,

광자는 정보를 유일하게 관측할 수 있는 교신상대의 통신기로 도약 하는거야.

전자나 광자가 관측하는 곳으로 순간이동을 하는 건데 제조업체는 이걸 점프라고 불러.”


사막의 매가 하는 말을 옥저가 고개를 끄덕이며 타이핑했다.

모두가 매의 지식에 감탄하고 있었는데 오직 론리만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도약은 연결된 공간 안에서만 할 수 있어.

그런데 교신기 안에 있는 진공관에 보내버리면 이미 차단된 공간에 갇힌 거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 정보가 멀리 떨어진 상대 교신기에 도착할 수 있는 거지?”


매를 포함해서 모두가 론리의 적대적인 질문에 당황했다.

옥저는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급하게 론리의 질문에 맞장구쳤다.


“맞아. 하이젠베르크(전자의 불연속적인 움직임을 공식으로 정립한 양자물리학자)의 계산도 연결된 공간에서 한거잖아.”


옥저의 말에 한술 더 떠 판도라가 말했다.


“진공관을 빠져나가는 순간 어떤 것으로부터든 관측이 되니까,

바로 상대에게 점프하기도 힘들어요.”


판도라의 말에 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공관이 폐쇄된 곳이라는 건 3차원을 기준으로 얘기했을 때나 그렇지.

정보가 지나가는 통로가 무엇이냐에 따라 그곳은 폐쇄된 곳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해.”


조원들 모두 매의 이해하지 못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진공관에서 4차원 5차원같은 곳으로 광자가 점프한다는 얘기야?”


론리의 질문에 매는 대답 대신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광자를 받아들이는 진공관에는 사실 송출구가 있어.

귀 안으로 들어가는 긴 원통모양을 사람들은 단순히 고정장치라고 알고 있지만 바로 거기야.”


“송출구가 있단 말은 진공관에서 도약을 하는 게 아니란 뜻이잖아.”


“도약은 해. 뇌파와 상호작용하면서.

다시 말하면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서 점프하는거야.

우리가 교신하겠다고 생각하는 상대한테.”


“너 지금 우리 마음속 세계가 현실세계랑 연결돼 있단 말하고 있는 거야.”


매는 론리의 비아냥에 더는 대답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차마 팍스 본사에 침투해 통신기기의 제조기술을 빼돌리는 간첩활동을 한 적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으니까.

침묵의 요정이 찾아왔고 옥저는 헛소리를 시작하는 매와 계속해서 화 내는 론리를 수습해야만 했다.


“잠깐 쉬고 하자. 공기가 탁해졌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스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0 폭풍전야 5 19.09.10 54 5 3쪽
39 폭풍전야 4 19.09.09 70 5 8쪽
38 폭풍전야 3 +1 19.09.09 64 4 7쪽
37 폭풍전야 2 19.09.08 70 4 8쪽
36 폭풍전야 1 19.09.06 79 4 8쪽
35 야만의 거래 8 19.09.05 80 7 4쪽
34 야만의 거래 7 19.09.04 86 5 10쪽
33 야만의 거래 6 19.09.04 129 5 4쪽
32 야만의 거래 5 19.09.03 88 6 8쪽
31 야만의 거래 4 19.09.02 90 6 8쪽
» 야만의 거래 3 19.09.02 97 5 8쪽
29 야만의 거래 2 19.09.01 112 6 8쪽
28 야만의 거래 1 19.08.31 131 4 9쪽
27 아키텍쳐 스쿨 3 19.08.30 161 9 8쪽
26 아키텍쳐 스쿨 2 +3 19.08.29 188 6 9쪽
25 아키텍쳐 스쿨 1 +2 19.08.28 232 8 7쪽
24 12구역의 박해 5 +4 19.08.27 249 10 11쪽
23 12구역의 박해 4 +5 19.08.26 259 12 8쪽
22 12구역의 박해 3 +2 19.08.26 273 9 9쪽
21 12구역의 박해 2 +1 19.08.23 260 9 9쪽
20 12구역의 박해 1 +2 19.08.23 291 12 7쪽
19 세상 속으로 4 +1 19.07.28 293 11 7쪽
18 세상 속으로 3 +3 19.07.28 311 11 6쪽
17 세상 속으로 2 +5 19.07.28 342 15 8쪽
16 세상 속으로 1 +4 19.07.28 421 14 6쪽
15 야만의 정의 4 +4 19.07.28 392 14 7쪽
14 야만의 정의 3 +1 19.07.27 431 13 11쪽
13 야만의 정의 2 +3 19.07.27 457 16 6쪽
12 야만의 정의 1 +4 19.07.26 524 17 7쪽
11 잠입 2 +6 19.07.24 591 20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