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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자 님의 서재입니다.

스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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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자
작품등록일 :
2019.07.17 01:42
최근연재일 :
2019.11.1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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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57,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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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1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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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결전의 날 3

DUMMY

“아키텍쳐스쿨에 다니는 이카루스가 고원의 블루네임카드 출신이라는 거지?”


“그렇습니다. 고원 자치위원장에게도 직접 명단을 확인했습니다.

지금 아키텍쳐스쿨에 학생회를 조직하는 움직임이 있는데,

그 활동을 와해시키려는 설리반의 정보원을 하고 있더군요.”


유정무의 물음에 낙화유수가 대답했다.


“여우같은 할망구 속내를 감추고 있었군.

블루 네임카드를 아키텍쳐스쿨에서 졸업시키면 사람들은 NC시스템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할거야.

그것만으로도 상징적인 사건이 되는 거지.”


“설리반 총장을 체포할까요?”


“아니. 아키텍쳐스쿨은 다른 스쿨과는 달라.

이를테면 개국공신들이 만든 특수기관같은 거라 그들을 보호하는 법이 많거든.

운영은 특히 베일에 감춰져 있어.

학생 명단조차 총장만 관리하거든.

설리반이 시치미 떼면 그걸로 그만이야. 아무런 증거가 없어.”


“이카루스를 체포해도 증거가 없는 건 마찬가지겠군요.”


“그래. 하지만 이카루스를 이대로 두면 커다란 문제가 생길 거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 거라 믿네.”


유정무는 낙화유수의 눈을 바라보며 어깨를 툭툭 건드리고는 차에 탑승해 한강을 빠져나갔다.

낙화유수는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고민에 빠진 표정으로 한강을 오래,

아주 오랫동안 쳐다보고는 차에 올랐다.


※ ※ ※


“오랜만이군.”


기숙사로 가던 중 뒤에서 들리던 낙화유수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론리는 얼어붙었다.

이때를 대비해서 수많은 연습을 했는데도 학습된 공포가 론리를 지배했다.

하지만 론리는 이제 평범한 학생이 아니었다.

직업탐색검사에서 얻은 깨달음의 능력은 죽음의 공포마저 거의 극복할 수 있게 해줬다.

다만 그와 비례하여 살의가 점점 강해지긴 했지만.

론리는 손에 힘을 주어 떨림을 멈춘 뒤를 돌아봤다.


“그날 끝내지 못한 것들을 마무리하러 온 건가요?”


낙화유수는 썬글라스를 낀 채로 아무런 표정변화 없이 고개를 저었다.


“학교는 다닐만 한가?”


“그럭저럭이요. 그게 아니라면 무슨 일로 절 찾아온 거죠?”


“천하의 론리가 학교를 그럭저럭 다닐 정도라면 보통 사람에게는 다니기 버거운 학교겠군.

특히 블루 네임카드를 받은 학생이라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카루스를 체포하려고 온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에게 자신의 속을 들켰다가는 상황이 악화될 것이다.

자신이 이카루스를 안다는 것만으로 어떤 트집이든 잡아 위치를 알아내려 할 것이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계속 돌려말했다간 끝까지 시치미를 떼겠군.

이카루스에 대해 얘기하는 거다.

그는 이 학교에 다녀선 안 돼.

그 친구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게.”


“왜요? 죽이시려고요? 그때 저에게 했던 것처럼.”


“애송이 까불지 마라. 난 지금도 얼마든지 너를 죽일 수 있다.”


“이카루스는 엄연히 아키텍쳐스쿨의 학생이에요.

교육특별법에 따라서 학교 안의 학생에게는 누구도 간섭할 수 없고요.

당장 나가지 않으면 가드와 치안관을 부르겠어요.”


론리의 말에 낙화유수가 코웃음 쳤다.


“방위정보국장인 나를 치안관이 체포할 수 있을 것 같나?”


“전처럼 나를 상대하기 쉬울 거라고 생각하나요?

아참. 예전에도 지셨죠. 저한테.”


론리의 도발에 낙화유수가 꿈틀했다.

그의 표정에 변화가 있다는 것은 심하게 화가 났다는 뜻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언제든지 너를 죽일 수 있어 반역자 후보생아.

나는 오늘 너에게 경고를 하러 온 거다.

나에게 이카루스의 동선과 기숙사 위치를 알려주지 않는다면 너도 죽이겠다고.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하지 않으면 앞으로 네가 어떤 삶을 살지는 나도 장담할 수 없다.”


“그딴 협박 나한텐 안통해요.

5년의 시간 동안 나는 많은 걸 경험하고 느꼈으니까.

잡아가려면 해보세요.

난 당신을 죽이고 또 도망갈 거에요.

요원들이 쫓아오지 못하는 곳까지.”


낙화유수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웨이브건을 뽑아들었다.

그곳을 지나가던 학생들이 하나둘씩 쳐다보기 시작하고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며 전화로 치안관을 부르기 시작했지만,

낙화유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카루스의 동선과 거주위치를 말해.

친구나 자존심같은 것에 네 목숨 걸지 말란 말이다.”


“아니요. 이카루스는 또 다른 저에요.

저를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셋을 세기 전에 말하는 게 좋을 거다. 하나.”


낙화유수가 웨이브건의 방아쇠에 손을 올렸다.

론리는 처음마주쳤을 때보다 오히려 떨림이 줄었다.

확신한 것이다. 챔핀코 요원들의 활동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은 그를 죽일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된다는 것을.

그는 낙화유수를 향해 똑바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낙화유수는 당황했다.


“둘. 더 다가오면 카운트와 상관없이 쏠거다.”


론리는 낙화유수가 쏠 경우 파동의 반경을 예측해 반격할 셈이었다.

그런데 그의 예상과 달리 낙화유수는 피식 웃으며 웨이브건을 다시 주머니에 찬 홀스터에 집어넣었다.

그는 애초에 론리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그를 죽이면 방위정보국 요원 전부가 공동묘지에 묻힐 거라는 맥 져스틴의 경고를 진심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정도 허세만으로도 평범한 사람들은 알아서 권력에 떨면서 권력자 앞에서 긴다.

낙화유수는 론리 져스틴이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잠시 간과하고 있었다.


낙화유수는 론리에게 가까이 다가와 썬글라스를 벗고 눈을 마주치며 얘기했다.


“네가 챔핀코에서 어떤 인물로 성장할지 기대되는군.

기다리겠다. 너를 반역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날을.”


※ ※ ※


결전의 날 하루 전.

옥저와 이카루스, 그리고 크로노스는 다양하고 많은 선전물을 학교에 게시하기 시작했다.

내일 교내에서 모여 광화문까지 행진을 통해 다른 학교와 합류할 것이며,

그곳에서 다시 챔핀코 연합사령부까지 시위행진을 할 것이다.


그들의 목표는 학교의 만행을 학교에 항의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설리반 총장이 자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정부에 고발하고 언론에 이슈를 만들어 이 일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설리반을 제대로 된 협상테이블에 끌어들이려면 이 정도 타격은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계획은 옥저가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카이로스가 생각한 아이디어였고, 학교들의 연합을 만들어 낸 것도 그였다.


크로노스가 카이로스와 마주쳤던 그날 밤은 달이 손톱만하여 거리가 어두웠다.

하지만 크로노스는 잘됐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마주친 그의 누이가 자신의 초라한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없게 되어서.


“아버지 소식은 들었니?”


크로노스는 무거운 얘기를 더 미뤄둘 수 없어 먼저 꺼내는 편을 택했다.

카이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크로노스는 한숨을 크게 쉬고 사실을 고백했다.


“영감이 죽인 거 아니야.”


카이로스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오빠가 나 때문에 업보를 진 거 같아서 미안해. 너무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오빠를 보호하기 위해 언제나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는 카이로스의 모습이 크로노스는 좋았다.

잠깐밖에 볼 수 없겠지만 크로노스는 너무 기뻐서 심장이 말을 달리는 것처럼 뛰었다.

카이로스가 살아있고 무사히 그가 원하는 화이트 스쿨에 입학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게다가 화이트 스쿨도 레드 네임카드를 받은 이가 입학하면,

장학금을 준다고 하니 그의 생활에 대해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남 걱정할 때는 아니지만.


“철학 공부는 잘되니?”


카이로스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삶으로부터 초연해져 자신을 무한에 맡기면 인간은 정상적인 테두리를 벗어나 성장한다.

무한을 바라보면 세상에서 혼자가 된다.”


느닷없는 그의 독백에 크로노스는 당황했다.

카이로스는 크로노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걸어가자 자신의 말을 들었는지 확인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에밀 시오랑의 말이야.

나는 여기서 풀지 못한 숙제가 두 가지 있어.

나는 삶에서 어떻게 초연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무한을 바라보면 혼자가 된다고 하는데 혼자를 어떻게 견딜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어.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나의 영역 바깥에 있는 것들을 알아가는 일이라 내 삶이 점점 명확해질 줄 알았어.

하지만 모르는 것들을 알아갈수록 내가 모르는 것들이 더 많아져.

갈림길 속을 들어가면 더 많은 갈림길이나오는 기분이야.

뭐 그래. 오빠는 어때? 인문, 외교, 정치, 과학 모든 방면을 배우잖아.

학습량도 우리보다 훨씬 많고.”


(에밀 시오랑 - 루마니아의 허무주의 철학자. 이 세상을 절대적이고 정언적인 가치가 없다고 규정하며, 그런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관조를 잘 풀어낸 저서로 유명하다.)


카이로스의 물음에 크로노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꾸미지 않고 대답했다.


“죽을 지경이야.”


“와!”


카이로스가 감탄을 하자 크로노스가 놀라서 물었다.


“왜 그래?”


“오빠 예전엔 이렇게 솔직한 마음 표현한 적 한 번도 없잖아.

항상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려고 했지.

아버지에게나 나한테나.

그런 거 보면 오빠 잘살고 있나 봐.

게다가 학생회를 만드는 데 동참하다니. 정말 제대로 사는 게 분명해.”


크로노스는 카이로스의 농담과 진담이 섞인 말을 듣고 걸음을 멈췄다.

설리반과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마음이 심히 불편해진 거다.


‘사실 나는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아니야.’


크로노스는 입에 담지 못한 말을 목에서만 되새기며 어물거렸다.

카이로스는 두세 걸음을 앞서가다 크로노스가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뒤를 돌았다. 크로노스가 카이로스에게 물었다.


“나 정말 제대로 사는 거 맞겠지? 네 앞에서 초라해지면 안 되는데.”


카이로스는 크로노스의 말에 미소지으며 다가왔다. 이제껏 그렇게 가까워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 크로노스의 목을 감싸안으며 입을 맞췄다. 크로노스도 카이로스의 목을 함께 감쌌다. 이 꿈에서 깨지 않기 위해.


한참 뒤에 입을 뗀 카이로스가 크로노스에게 말했다.


“세상 속으로 온걸 환영해.”


크로노스가 카이로스와 만나기 하루 전날.

대자보를 붙이는 데 혈안이 되어 주변을 잘 둘러보지 못하고 있던 크로노스에게,

멀리서 동료들이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다.


크로노스 뒤에 ‘그림자’가 다가왔다.

동료들은 그를 보고 이미 멀리 도망치며 크로노스를 부르고 있었다.

크로노스도 그를 보자마자 기겁하며 도망가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이미 그림자에게 잡힌 팔목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총장님께서 부르신다.”


크로노스는 영문모를 표정으로 동료 학생들의 눈치를 보다가 결국 그림자를 따라가기로 했다.

스쿨 본부의 기나긴 복도를 지나면서 무슨 일로 자신을 부르냐는 크로노스의 질문에 그림자는 언제나처럼 침묵했다.


총장실에서 호된 문책이라도 당할 줄 알았던 크로노스는 여유롭게 차를 내어주는 설리반의 모습에 어리둥절했다.


“학생회 준비는 잘 되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설리반은 그런 크로노스가 귀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말하면 안 되고말고.

내일이 결전의 날인데 중요한 정보를 누설하면 안 되지.

너는 그런 아이가 아니니까. 충직하고 의리가 있지.”


크로노스는 놀라서 그 자리에 벌떡 일어났다.

옥저가 그랬던 것처럼. 당장 이 일을 옥저에게 알려야만 했다.


“갈 땐 가더라도 말은 듣고 가는 게 너에게 아주 유리할 거다.

너는 이제 어른이야 크로노스.”


“할 말이 있다면 우리 측 대표인 옥저에게 얘기하십시오.”


크로노스가 방을 나가려 하자 그림자가 문을 막아섰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설리반은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크로노스에게 다가갔다.


“나의 협상 대상은 학생회가 아니니까 너에게 얘기하는 거야.

학생회준비는 말 못 한다니 그럼 이 얘기를 해보자. 학교는 잘 다니고 있니?”


설리반의 말에 크로노스의 동공이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기 시작했다.

저택의 텅 빈 금고를 열었을 때가 떠오르며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왔다.

잘 다니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입 밖에 내고 싶었지만,

마음과 달리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설리반은 갑자기 만면에 인자한 미소를 띄었다.

그것이 크로노스에 대한 순수한 호의인지,

아니면 승리를 확신하는 여유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내가 너를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제 다시 자리에 앉을 마음이 생겼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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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야만의 거래 3 19.09.02 98 5 8쪽
29 야만의 거래 2 19.09.01 114 6 8쪽
28 야만의 거래 1 19.08.31 132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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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아키텍쳐 스쿨 2 +3 19.08.29 195 6 9쪽
25 아키텍쳐 스쿨 1 +2 19.08.28 236 8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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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12구역의 박해 4 +5 19.08.26 260 1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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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야만의 정의 2 +3 19.07.27 458 16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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