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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자 님의 서재입니다.

스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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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자
작품등록일 :
2019.07.17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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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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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09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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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폭풍전야 4

DUMMY

학생들이 아키텍쳐 스쿨에서 두려워하는 수업을 꼽으라면 세 가지 수업이 공통적이다.

깐깐함으로 유명한 김막생 교수의 행정학.

어렵기로 유명한 솔베이 교수의 융합물리학.

다음은 힘들기로 유명한 묵적 교수의 격투무도학이었다.


체육관에서 하얀 도복으로 갈아입은 학생들은 벌써 한숨을 푹 쉬고 있었다.

태어나서 몸쓰는 일이라곤 한 번도 하지 않은 학생도 많을뿐더러,

기껏해야 축구나 웨이트트레이닝 정도만 했던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이들에게 격투기를 배우라니 걱정과 불만이 뒤섞였다.


“우리가 군인을 할 것도 아니고, 싸우는 직업을 할 것도 아닌데 이 수업을 왜 하는 건지 모르겠어.”


“여러분들은 싸우는 일을 하지 않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자리에 앉게 될 겁니다. 그럴 때 이렇게.”


묵적 교수는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르게 불만을 표출했던 학생의 팔을 꺾은 채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그 움직임이 너무 부드러웠기에 넘어진 학생은 전혀 다치지 않았지만,

그 힘은 대항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고 예측하기 힘들었다.

묵적 교수는 자연스럽게 하던 말을 이어갔다.


“이렇게 불순한 목적을 가진 이들이 공명정대한 판단을 해야하는 여러분들을 습격하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한 의사결정을 하라고 압박하면 어떻게 될까요.

권력자의 잘못된 의사결정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가져오게 될지는 김막생 교수님께서 저보다 더 잘 알려주셨을테고.”


묵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넘어졌던 학생에게 일어나서 자신에게 덤벼보라는 손짓을 했다.

그도 기습으로 넘어진 것에 대해 약이 바짝 올라 벌떡 일어났다.


묵적교수는 여자처럼 곱고 긴 머리에 날카로운 턱,

유약한 눈빛을 하고 있어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힘으로 밀어붙이면 어떻게든 승산이 있을 거라 계산한 학생은 그에게 가까이 붙기위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묵적은 그 학생이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꿈쩍도 않더니 그의 주먹질에 맞춰 어깨를 슬쩍 뒤로 빼며 그의 팔을 바깥으로 쳐냈다.

학생의 가드는 완전히 풀려버려 묵적이 길게 앞으로 뻗는 발차기를 그대로 맞았다.

마찬가지로 모든 움직임들은 신속했지만 상대의 몸에 닿는 순간 속도를 줄였기에 학생이 다친 곳은 없었다.


학생은 공격을 맞아 뒤로 넘어질 뻔했지만 그러지 않고 어딘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었다.

묵적의 손이 학생의 팔을 잡아끌며 동시에 무릎으로 등을 받치고 있었던 것이다.

사막의 매는 묵적 교수를 수상하게 바라보았다.

아무리 격투무도학이라고 하지만 아키텍쳐 스쿨에 저 정도의 고수가 있다는 것은 수상했다.


‘무형의 경지다.’


무형의 경지란 사막의 매가 무도의 경지를 평가하는 단계 중 하나로 최고를 뜻한다.


첫 번째 경지는 검형.

공격이 날카로워 상대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경지로 여기서부터 무도를 잘 한다는 축에 들 수있다.

두 번째는 금형. 몸이 단단하다는 뜻으로 공격이 잘 들지 않는 상대를 뜻하며 검형과 비슷한 수준이다.


여기에서 더 나가면 고수의 반열에 드는데 유수의 경지가 있다.

그의 움직임이 물처럼 부드럽다는 뜻으로 상대의 공격과 방어의 양상을 보고 대응해서 처신하는 유형이다.

그것보다 더 자유로운 운신이 가능해져 무게중심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유형을 풍운의 경지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더 나아가 상대의 몸에 손끝하나 건드릴 수 없어 그와 싸움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경지.

그것이 무형의 경지로 최고 수준에 이른 것이다.


묵적은 다시 말을 이었다.


“직접 싸우는 직업을 택하진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싸우는 자들의 전투를 지휘하고 그 시간을 계산해서 작전을 짜는 위치에는 얼마든지 오를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 기본기가 필요합니다.”


이미 묵적의 실력에 학생들의 입은 떡 벌어진채 그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묵적은 방금의 과격한 활동들이 없던 일인 것처럼 숨을 거칠게 몰아쉬지도,

자신의 활약에 으쓱하지도 않은 채 학생들에게 인사했다.

교수가 인사를 하니 학생들도 인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은 제 수업에 집중시키기 위해 극단적인 예를 들었습니다만.

이 시대의 유명한 역사학자 I.H.Kal은 이런 말을 했죠.

약한 자들은 주로 이기적인 선택을 하고 강한 자들은 호혜적인 선택을 한다.

누군가가 나를 해치려 할 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은 올바른 판단의 기초가 될 겁니다.

약한자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세상의 원칙을 자의대로 해석하거나,

불공정한 거래를 하게 될 테니까요.”


아무도 묵적의 말에 토를 달지 못한 채 그의 지도대로 수련을 시작했다.

한참 동안 주먹과 발차기의 기초동작을 반복하던 묵적이 박수로 수업이 끝났다는 것을 알렸다.

그리고 그는 두 줄로 학생들을 세워 서로를 마주보게 했다.


론리는 그때 처음으로 이카루스와 마주봤는데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카루스가 자신을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유없이 자신을 미워하는 이카루스의 태도를.

그리고 자신을 미워하는 이카루스를 무시할 수만은 없는 스스로의 마음을.


사실 론리는 블루 네임카드를 가지고 아키텍쳐 스쿨에 온 이카루스가,

레드 네임카드를 가지고도 직업탐색검사에서 도망쳤던 자신과 비슷한 운명은 아닐까.

라는 호기심과 동질감이 있었다.


그러나 론리는 그걸 인정하기 싫었다.

NC시스템에 불만과 의문을 제기했다간 또 언제 쫓기는 신세가 될지 모르니까.

괜히 뜨끔한 론리는 사막의 매를 쳐다봤다.


사막의 매는 크로노스와 마주보고 있었다.

크로노스는 학습에 대한 능력도 뛰어났고,

방금 수련하는 모습을 매가 지켜보건데 움직임에 대한 기량도 좋은 친구였다.

매는 자퇴서를 냈다가 철회하고 학생회에 들어간 크로노스의 처지가 안쓰러웠다.

그는 크로노스가 학교생활을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사막의 매는 인구대이동 당시 붕괴한 미국 사회에서 죽을 뻔했고,

어렵게 챔핀코에 들어왔기에 학교에서 근근히 버텨가고있는 크로노스의 처지에 공감했다.

비록 임무를 받아 학교에 왔지만 그것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크로노스의 손을 잡고 함께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싶었다.


옥저는 판도라와 마주봤다.

판도라는 그에게 반갑다는 듯이 손을 올렸지만,

옥저는 그를 노려보기만 했다.

로봇 주제에 론리와 언제나 붙어 다니는 것이 꼴 보기 싫었다.


모든 학생들이 짝을 이루자 묵적이 입을 열었다.


“무도의 기본은 중력으로 말미암은 나의 힘을 상대에게 손실없이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균형잡는 법을, 회전하는 움직임을 연습하기도 하고, 주먹과 발을 내뻗거나 몸을 비틀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자세를 무리없이 소화하기 위해 근육을 키우거나 찢지요.


이 과정의 최종 목표는 결국 하나.

자신의 무게를 의지대로 잘 다루는 것입니다.


다음시간부터는 지금 마주보고 있는 상대와 짝이 되어 지속적으로 겨루기를 할 겁니다.

어떤 기술과 수법을 적용해도 좋습니다.

이기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그 과정에서 자신의 힘을 얼마나 잘 다루는지 지켜본 뒤 점수를 매길 겁니다.”


그 말을 듣고 학생들은 마주본 이들과 서로 잘 부탁한다며 악수를 시작했다.

론리도 이카루스에게 악수를 청했는데 그는 론리를 독하게 쏘아보며 손을 쳐냈다.


“우리 언제 봤다고 악수하니?”


론리는 그의 이유없는 적대성에 화가났지만 이상하게 그가 신경쓰였다.

블루 네임카드를 가진 그를 볼 때마다 12구역의 탄압받던 거주민들이 떠올라 괴로웠다.


사막의 매는 크로노스와 악수하며 그에게 넌지시 이야기했다.


“높은 점수를 받고 싶으면 6시 이후에 체육관으로 와.

나는 항상 여기서 수련하고 있으니까.”


옥저는 판도라의 손을 잡지 않고 말했다.


“넌 로봇이야. 그냥 내 연습상대에 불과하다고. 적당히 하지 않을 거야.”


“네가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좋은 상대가 될게.”


“기대하지 마. 어떻게 하든 내가 로봇을 좋아하게 될 일은 없을 거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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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야만의 정의 3 +1 19.07.27 430 13 11쪽
13 야만의 정의 2 +3 19.07.27 457 16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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