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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자 님의 서재입니다.

스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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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자
작품등록일 :
2019.07.17 01:42
최근연재일 :
2019.11.16 23:00
연재수 :
97 회
조회수 :
26,906
추천수 :
901
글자수 :
357,029

작성
19.09.06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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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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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8쪽

폭풍전야 1

DUMMY

수많은 학생이 교내에 있는 사색의 정원에 운집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피로와 가난에 찌들어 화라도 내지 않으면 서 있을 힘조차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분노의 대상을 찾아 교내를 배회하던 망령들은 그들 마음속에 있는 외침들을 대신 전하고 있는 옥저의 앞으로 모여들었다.


“우리의 권리를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아무도 찾아주지 않습니다.

저를 지지해주세요 여러분.

저는 이 자리에 권력을 잡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닙니다.

총장님께 질문을 하기 위해 나온 것입니다. 묻겠습니다. 스쿨은 누구의 것입니까!”


옥저가 한마디를 던질 때마다 그들은 함성과 박수로 화답했다.

아직 그 수가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당장이라도 학교를 점령할 듯이 기세가 등등했다.

그런 군중들 속에 이카루스가 조용히 파고들어 옥저를 지켜봤다.


이카루스는 크로노스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며칠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해 볼이 쏙 들어가 광대가 드러났고,

남들보다 좋지도 않은 머리로 진도를 따라잡아야 했기에 밤을 새우기가 일쑤라,

눈 밑에 어두운 기운이 드리웠다.

아무도 못생기고 성적 나쁜 이 난쟁이를 도와주지 않았다.


당장 생활비와 학비가 없어 퇴학의 위기가 찾아온 이카루스에게,

학생회 탄생의 소식이 반가울 법 하지만 그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학생회가 생긴다고 해서 당장의 생활비와 학비가 생기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어렵사리 들어온 이 학교에서 살아남는 것 뿐이었다.


그의 어깨에 손이 올라왔다.

뒤돌아보니 선글라스를 낀 대머리 덩치가 서있었다.

학교에서는 모두 그를 ‘그림자’라고 불렀다.

누구도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지만 언제나 총장실 근처에서 목격되기 때문이다.


“따라오게.”


그림자는 무슨 일이냐는 이카루스의 물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를 총장실로 안내하고는 조용히 사라졌다.

설리반은 창가에서 사색의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이카루스가 들어오자 자신의 자리를 지나쳐 응접테이블 쪽에 앉았다.

그리고 이카루스에게도 이리와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학교는 잘 다니고 있니?”


“간만임다. 건강히 다니고 있슴다.”


“고원쪽 사투리는 여전히 고치질 못했구나.”


“노력중임다.”


“내가 너를 왜 불렀는지 알겠니?”


“잘 모르겠슴다.”


“학생회를 만들고 있던데. 그곳에 들어갈거니?”


“생각없슴다.”


“그런데 왜 정원에 있었니?”


“사람이 모인 곳에 대중 먹을 것이 있기 마련임다.”


설리반은 이카루스의 말에 침묵하며 그를 지켜보았다.

그것이 이카루스의 말을 의심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말을 듣고 슬펐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학비가 많이 밀렸더구나.”


“그건...”


“밥 먹을 돈도 없는 거니?”


이카루스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설리반은 한숨을 쉬었다.


“여길 데려온 내가 많이 원망스러웠겠구나.”


“아님다. 어떻게 제가 총장님을 원망하겠슴까.”


이카루스는 원래 고원지역에서 블루네임카드를 부여받아 텅스텐 채굴 노역에 끌려갈 예정이었다.

고원지역은 한반도에 위치해있지만 홍콩과 같이 자치정부 시스템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어찌 된 일인지 블루네임카드를 받게 되고 교양학교도 가지 못한 채 텅스텐이나 무연탄, 희토류를 채굴하는 노역을 하게 된다.


그것은 중범죄자들이 처해지는 희토류채굴형과도 비슷한 정도의 고된 노동이었다.

때문에 블루 시민들을 광석채굴에 보내는 것은 시민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하지만 챔핀코 정부는 고원의 자치정부에 아무 간섭도 하지 않았다.

내정과 외교가 모두 불안한 시기에 고원 자치정부의 지지가 유정무에게 절실했기 때문이다.


이카루스는 블루 네임카드를 받아 무연탄을 채굴하러 가는 길에 설리반 총장이 찾아와 노역을 면제받았다.

그것은 그에게 기적처럼 내려온 동아줄이었고, 단 한줄기의 빛이었다.


“너에게 장학금을 줄 거야. 너는 걱정하지 말고 계속 학교를 다녀.”


“제게 이렇게까지 잘 해주시는 이유가 뭐임까?”


“너는 내게 특별한 아이야.

네가 이곳을 졸업하고 사회에 자리를 잡게 되면 그때 알게 될 거야. 그 이유를.”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감도 안옴다.”


설리반은 이카루스의 말을 듣고는 일어나서 다시 창가로 갔다. 학생들이 모여있던 정원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이카루스에게 말했다.


“작은 부탁이 하나 있어.”


※ ※ ※


사색의 정원에 모여있던 학생들이 흩어지고 난 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 고요를 뚫고 크로노스는 행정실로 향했다.

강의실 앞에서 크로노스를 본 옥저가 반가움에 손을 들어 인사했지만,

그는 마치 인사를 못 본 사람처럼 지나쳤다.


행정실 문을 열고 크로노스가 들어오자 조교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며칠 동안 수업에 나오지 않았기에 걱정도 됐고,

지금 얼굴을 비치는 그가 반갑기도 했지만 조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크로노스의 말을 기다렸다.

무슨 용무로 이곳에 왔는지 아는 사람처럼.


크로노스는 아무 말 하지 않은 채 자퇴희망서를 조교에게 건넸다.


“어디로 갈 셈이니?”


“그레이스쿨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곳에서 전액장학금을 준다고 해서요.”


“거기서 잘 해낼 거야. 너는 훌륭한 학생이니까. 언제 술이나 한잔하자.”


“저 방금 학교에 조의를 표한 거에요.

죽은 사람하곤 술 마시지 않아요.”


조교에게라도 분풀이하니 조금은 속이 시원했다.

행정실을 나가 마지막으로 강의실을 둘러보고 교정을 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기에서부터 모든 불행이 시작됐다.


어렸을 때부터 아키텍쳐 스쿨에 가기 위해 우라노스에게 받은 강요들.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이 포기했던 선택들.

또 그 부당함을 견디기 위해 희생시킨 수많은 동물이 생각나 몸서리쳐졌다.


아버지를 죽이고는 무엇인가가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꿈을 품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이곳을 무사히 졸업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권력을 가지게 된 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목표를 강요받았던 순간에 자신은 빛이 났었다.

노력하면 달성했고 기대에 부응했다.

구속에서 풀려나 선택에 자유가 생기고 그 선택들에 대한 책임이 따르자 혼란에 지배당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자꾸만 가져오지 못했던 금괴가 생각나 괴로웠다.


그렇다. 사실은 크로노스는 너무나 이 학교를 다니고 싶었다.

그레이스쿨이라니. 그는 그런 곳에 갈만한 범재가 아니다.

어떻게든 학교를 졸업해서 카이로스 앞에 당당한 모습으로 서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더는 방법이 없었고 그것을 빨리 인정해야 했다.

이루지 못할 꿈을 붙잡고 있다가는 당장 눈앞의 현실을 헤쳐나갈 수 없을 테니까.


크로노스가 조의를 표했던 학교 앞에 무릎을 꿇고 통곡하고 있을 때 그의 앞에 옥저가 나타났다.

뒤에는 옥저와 뜻을 함께 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다시 사색의 정원을 점령하고 있었다.

옥저는 크로노스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크로노스가 받아 보니 그것은 자신이 조교에게 제출했던 자퇴서였다.


“너무 쉽게 패배를 인정하지 마.

상대에게 너무 쉽게 죽어주지 마. 우리와 합류해. ”


크로노스는 자퇴서를 다시 접어 품 안에 넣고 일어섰다.

옥저가 크로노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크로노스는 옥저의 손을 바라보면서 숨을 골랐다.

그리고 옥저와 악수했다.


옥저의 옆에 있던 이카루스는 그런 크로노스를 유심히 쳐다봤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학교 본부의 옥상에서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사막의 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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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야만의 정의 3 +1 19.07.27 431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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