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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자 님의 서재입니다.

스캔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현대판타지

주공자
작품등록일 :
2019.07.17 01:42
최근연재일 :
2019.11.16 23:00
연재수 :
97 회
조회수 :
26,913
추천수 :
901
글자수 :
357,029

작성
19.07.28 12:07
조회
421
추천
14
글자
6쪽

세상 속으로 1

DUMMY

카이로스에게 밤은 언제나 고요했다.

마치 세상에서 아버지와 크로노스, 그리고 본인밖에 없는 것처럼.


그 어둠 속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상상하곤 했다.

저택을 둘러싼 숲 건너편에는 멸망한 인류사회가 절망과 폐허만 남겨놓아,

그곳으로 가면 방사능으로 오염된 물이라던가,

시체에서 나오는 변종바이러스때문에 죽음이 덮쳐올 것이라는 두려움 같은 것을.


하지만 오늘 밤은 많은 사람들이 어수선하게 돌아다니기도 하고,

다급하게 무언가를 이야기하며 떠들기도 하면서 텅텅 빈 곳을 채웠다.


그것은 숲 저 너머의 세상에 대한 카이로스의 불안함을 잠재워줄 수 있었다.

그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카이로스가 결심을 실행하기로 오늘 더 큰 용기를 줄 수 있었으니까.


카이로스는 배낭을 메고 모든 것이 사라진 자신의 방을 둘러본다.

엄마 대신 자신과 놀아주던 인형들은 모조리 버렸다.

인형이 배낭에서 공간을 차지하면,

살아가는데 필요한 다른 것들을 가져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란스러운 것이 카이로스에게 용기를 준 것 까지는 괜찮았는데,

그들의 눈을 피해 나가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었다.


저택의 뒷문으로 나가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비밀 담장을 향해 갔다.

그곳은 어렸을 적 오빠와 몰래 숲에 놀러갈 때 이용하던 길이었다.

그의 기억에 그 담은 다른 곳보다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그럼에도 어린 카이로스에게는 너무 높았고,

담 넘어는 더 낮은 지대였기에 뛰어내리기 위험했다.

그래서 언제나 오빠의 도움을 받아 그곳을 넘곤 했다.


카이로스의 눈 앞에 담장이 나타났을 때 조금은 허탈했다.

조금만 애써서 배를 걸치면 넘을 수 있을 만한 크기였기 때문이다.

15살이 된 이후엔 한 번도 와보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자신의 키를 훌쩍 넘는 높은 담장을 상상한 것이다.


“어떡할 작정이야?”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한 흑막 안에서 목소리가 들리자,

카이로스는 흠칫 놀라 뒤를 돌아봤다.

모습이 드러나기도 전에 그것이 크로노스의 목소리임을 알고,

스스로 놀란 가슴을 달랬다.

크로노스는 대답없는 카이로스에게 다가와 손목을 잡았다.


“이렇게 작은 변수 하나에도 가슴이 떨어진 것처럼 놀라는 네가,

도대체 여길 나가서 어쩌겠다는 거야?”


“나는 영의 수레바퀴에 입학할 거야.

그리고 내가 마음속에 담아둔 이야기들을 세상에 알리면서 살겠어.”


크로노스는 카이로스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사람의 의지는 물리력으로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카이로스의 손목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카이로스를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도 마찬가지로 컸다.


“어렸을 때 생각나?

넌 언제나 바깥세상에 대해 방사능과 세균,

그리고 바이러스로 오염된 곳이라고 예상하면서 무서워했지.”


“그건 옛날얘기야.”


“옛날 얘기가 아니야. 그건 사실이야.

물론 네가 상상한 죽음의 습격이 사실이라는 게 아니라.

절망과 폐허 말이야.


아버지의 재산과 지위에 기대지 않고서는 제대로 살 수 없는 세상이야.

영의 수레바퀴에 입학하고 졸업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생활비와 등록금이 드는지 아니?

보호자 없이 혼자 사는 여자가 당하는 범죄가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네가 유능하고 아름답게 큰 데에는 너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아버지의 도움이 있었으니까 가능한 일이야.

방식은 비뚫어졌지만 아버지는 너를 사랑하고 계셔.”


“나도 알아. 아버지가 나를 여기까지 자라게 해주신 것에 대해 늘 감사하고 있어.

그리고 밖이 얼마나 무서운 세상인지도 알아.

질병이 덮치는 것 만큼이나 무서운 사회. 사람이 사람을 재산으로 취급하는 세상.”


“그래. 오빠가 이제부터 너를 지켜줄게.

아버지가 더는 네 몸에 손대지 못하게.

그러니까 우리 언제나처럼 이대로 함께 살자.”


“오빠는 언제나 나에게 따뜻했지.”


카이로스는 크로노스의 손을 잡으며 미소지었다.

그리고 크로노스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그에게 가까이,

너무 가까워서 숨결이 서로 닿을 만큼 가까이 얼굴을 맞대어 속삭였다.


“오빠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어. 나도 오빠를 사랑해. 진심으로.”


크로노스는 카이로스의 말에 그가 이곳을 떠날 것이라고 직감했다.

평생 간직했던 슬픔을 더는 눌러 담지 못해 밖으로 쏟아졌다.

카이로스의 마음도 오빠의 슬픔에 공명했지만 그것이 그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사랑과 삶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카이로스는 삶을 선택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이라고 해도 나는 홀로 그곳에 서야 해. 아버지 없이.

그래야만 나는 인형으로가 아니라,

어른으로서 이 세상에서 생명을 부여받게 되는 거니까.”


‘안녕 오빠.

나는 먼저 황야에 가서 우물을 만들고 기다릴게.

언젠가 오빠도 우리를 가둔 이 성에서 나와 나를 찾아주길 바라.

가둬진 세상이 아니라 함께 사는 모든 사람,

아니 우주의 모든 존재가 우리를 의식하고 관찰하는 진짜 세계에서 사랑하고 싶으니까.’


카이로스가 달려가는 방향의 멀리에 나는 폭발음과 불빛이,

마치 그의 앞길이 순탄치 않음을 예언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크로노스는 그를 붙잡지 못했다.

그 결말이 비극이라고 해도 카이로스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그를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크로노스는 심상치 않은 빛이 12구역에서 나는 것임을 알아채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거주구역에서 일어난 폭발이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Lv.99 벌꿀돼지
    작성일
    19.08.26 23:33
    No. 1

    장애물이 많네 돈도 벌어야하고 nc도 위조해야하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 MoiraS
    작성일
    19.08.27 04:06
    No. 2

    딸이 장군감일세...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0 에크나트
    작성일
    19.08.27 22:54
    No. 3

    계속 보다보니 조연캐릭터에 비중과 공을 상당히 들이시는것같아요?
    이게 보통 작가가 의도한바는 비중있는 조연을 통해 글에 깊이나 흐름을 원활하게 하려고 하는데 독자가 읽을땐 보통 주인공이 안나오고 별 관심도 없는 조연이야기만 계속나온다고 마이너스로 작용할때가 많아서 약간 우려가 됩니다. 특히 주인공과 자연스럽게 어울려서 나오는 방식이 아니라 따로 그 조연들을 위해서 편수를 넣을때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1 주공자
    작성일
    19.08.27 22:57
    No. 4

    사실 주인공이 7명이라고 하는 게 맞는것같을정도로 주연과 조연의 비중이 비슷하긴 합니다.
    그리고 이게 나중에는 다 연결이 되고 전개에 필요한 것들이라서.
    서사를 소화하려니 여러가지 보완해야 할 부족한 점이 나오는군요.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인공에게 너무소홀해지지 않게 반영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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