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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자 님의 서재입니다.

스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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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자
작품등록일 :
2019.07.17 01:42
최근연재일 :
2019.11.1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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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1
글자수 :
357,029

작성
19.07.28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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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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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야만의 정의 4

DUMMY

“어째서 당신같은 사람들이 이곳에...”


빅 브라더는 론리의 의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다른 말을 시작했다.


“한달 전 직업탐색과정을 마치고 탈주한 검사자가 있었다는 정보를 들었어.

특이한 건 걔가 받은 명찰이 레드였다고 하는데 그 이름이 아마...”


론리는 설마하는 긴장감 속에 침을 꿀꺽 삼켰다.

빅 브라더의 입에서 제발 다른 이름이 나오길 바랐다.

빅 브라더가 한참 그 이름을 고민하는 듯이 눈을 굴리다가,

론리를 쳐다보며 장난끼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론리 져스틴.”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에 숨어 살 작정으로 서울을 벗어난건데,

이렇게 쉽게 발각되다니.

이제 빅 브라더에게 자신의 생사여부가 결정된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자세히 알아낼 수 없겠다만,

헉슬리타워에서 도망쳤다는 것은 레드카드를 부여받은 자조차,

이 체제에 순응하지 못했다는 증거 아닌가?


너처럼 우수하진 않지만 이미 얼마든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있어.

아까 내 일이 옳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나? 내가 옳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히 대답해줄 수 있어.

지금 구축된 챔핀코 정부는 옳지 않다는 거지.”


“무슨 짓을 벌이시려는 거죠?”


빅 브라더는 말없이 권총 한 자루를 진열대에서 꺼내들어 론리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론리는 그것을 받지 않은 채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무섭나? 화약무기, 그러니까 챔핀코 뿐만 아니라 국제법에서 조차 엄중하게 금지하는 물건의 생산현장에 있다는 것이.

아니면 살상무기를 만지는 순간 평생 지울 수 없는 죄인이 될 것만 같아?”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손에 쥐고 싶진 않아요.”


“6차 제네바협약이라는 것이 있어.

전쟁을 제외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화약무기를 생산하거나,

사용하는 것을 불법으로 정한 국제협약이지.


그러니까 화약무기를 설령 국가라고 해도 함부로 생산하면 국제법상 불법에 해당하고,

더구나 개인이 생산하면 중범죄자로 다루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지.


이 협약은 세계시민혁명 직후에 체결됐는데 그 이유가 뭘까?

혁명으로 정권을 잡게 된 신흥 권력자들이 정의로워서 그랬을까?

그들 자신이 기존의 지도자들을 죽이고 권력을 찬탈한 도구가 바로 화약무기이기 때문이지.

똑같은 꼴을 당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


사람들은 가끔 착각해.

인류에 법과 치안이 생긴 이유가 정의와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혹자는 인간의 본능과 자연의 법칙에 의해 저절로 생겨난 제도라고 생각하기도 하지.

하지만 그랬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사람을 죽이지 말라, 약탈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는 것은,

모두 지배자들을 위해 만든 법이다.


그 법 덕분에 우리의 고혈을 아무리 쥐어짜도 정치인을 죽일 수 없고,

아무리 고된 노동을 강요해도 사장의 재산을 약탈할 수 없다.


사거리 400m의 정교한 저격이 가능한 고급 소총을 생산하는 데는 2금화도 들지 않아.


(금화 - 우리나라 돈으로 4만원 정도의 시세가 나가는 금화. 세계의 화폐시스템에 대한 신뢰도가 현저히 낮아지자 구리 동전에 금이나 은을 일정량 함유시켜 유통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통용가능하며 IMF가 이를 관리한다.)


그런데 웨이브건을 생산하는 비용은?

한 정에 10배 이상의 가격이 들어가지.

그것이 올리칸의 팍스사에서 생산되어 세금한푼 떼지도 않고 챔핀코에 들어온다.

거기에 부담하는 비용은 모조리 챔핀코 시민들의 몫이고.


국제 정세를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외부 압력에,

외교적으로나 무력적으로 대응도 못하는 것이 챔핀코 연합사령부의 현주소다.


시민혁명 당시 군을 배신하고 시민들의 편에 섰다는 핵심 군부세력들이 집권했기 때문에,

입법과 행정에 무능한 작태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결과지.


그놈들이 전부 지금의 위치에 있을 자격이 있을 리가 만무한데,

밸류 컴퍼니는 그들에게 협조해서 시민들을 분류하고 그들을 착취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있어.


이런 상황에서 내가 화약무기를 생산한다는 이유로 죄의 무게가 더해져야 하는 건가?”


론리의 머릿속은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

어렸을 적 부모님께 사랑받고 옥저와 뛰어놀며,

어린이날 놀이공원을 갔던 그런 세상은 모조리 부숴졌다.


다른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세상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사회의 규율이,

오히려 나의 생존을 옥죄는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선택하기 힘들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다른 사람을 죽여도 된다는 결정을 누가 내릴 수 있는 거죠?”


빅 브라더는 론리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을 받고 잠깐 갸우뚱했다.


“법과 치안이 오로지 지배자와 부자들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면,

어째서 사회보장보험과 의료보험이 존재하는 거죠?


통계적으로만 봐도 원시시대에는 모조리 죽었어야 할,

사회적 약자들이 훨씬 많이 생존하는 시대에요.


빅 브라더 당신의 말이 옳을지도 몰라요.

만약 모든 인간이 자신의 이익과 생존을 위해,

스스럼없이 타인을 죽일 수 있도록 설계된 거라면요.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분명히 선량하고 순수한 의미로 그리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만들어진 제도들이,

사회에 존재하고 있을 거라고 믿는단 말이에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면 모든 구성원들에게 알리고 설득해서,

사회에 마련된 장치대로 잘못을 바로잡고,

또 잘못을 저지른 이들을 처벌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빅 브라더는 론리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레드라 그런지 생각이 훌륭하구나.

모든 사람들이 너와 같은 수준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챔핀코가 이 지경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리고 지금은.”


빅 브라더가 론리에게 주려던 권총에 총알을 장전했다.

그리고는 론리를 겨누었다.

김진우가 놀라서 빅 브라더에게 소리를 질렀지만,

빅 브라더는 권총의 잠금장치를 풀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론리는 긴장하는 기색이 없었다.

빅 브라더는 그런 론리의 모습도 흥미로웠다.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레드의 능력인가?

아니면 자신과 반대되는 신념을 가진 이에게 협조하면서까지,

생을 구걸하고 싶지는 않다는 건가.’


하지만 론리의 태도에 흥미를 가진것과는 별개로,

빅 브라더는 방아쇠를 당겨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탕!」


10년 넘게 챔핀코에서 들리지 않았던 소리, 총성이 13구역 창고에 울려퍼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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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만의 정의 4 +4 19.07.28 392 14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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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야만의 정의 2 +3 19.07.27 457 16 6쪽
12 야만의 정의 1 +4 19.07.26 524 17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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