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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자 님의 서재입니다.

스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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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자
작품등록일 :
2019.07.17 01:42
최근연재일 :
2019.11.1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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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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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1
글자수 :
357,029

작성
19.09.03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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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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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야만의 거래 5

DUMMY

크로노스는 낙엽 밟는 소리조차 내지 않도록 조심조심 숲을 걸어갔다.

혹시라도 카이로스가 쫓아와선 곤란할 만한 곳에 가고 있기 때문이다.

카이로스는 아직 혼자 담을 넘을 수 없기 때문에 큰 걱정은 않는다.

하지만 크로노스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오려고 하니까 말썽을 일으켜 다른 사람들이 눈치챌 수도 있다.

만에 하나 우라노스가 이 사실을 알기라도 할 때 발생할 일들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날마다 이곳에 오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최대한 참고 또 참았다가 집안사람들의 관심이 멀어져 아무도 몰래 이곳에 올 기회를 잡았다는 확신이 있는 날만 골라서 왔다.

처음엔 오는 것만으로도 떨리고 무서웠는데 차츰 자신감도 생기고,

무엇보다 이곳에서 주는 쾌감, 정확하게는 해방감이 그를 자꾸 이곳에 오게 했다.

시작은 한 달에 한 번이었지만 지금은 일주일에 두 번은 올 정도로 빈도가 잦아졌다.


어느새 그 장소에 도착했다.

예전에는 아마도 군사시설이었을 콘크리트구조물이 지하에 파묻혀있었다.

높은지대에 위치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방공호 까지는 아니고 탄약고나 국지전술을 위한 참호로 쓰인 것 같다.

지하로 연결되는 계단을 내려가 철문 앞에 섰다.

철문에는 자물쇠가 걸려있었지만 문제없었다.

크로노스는 주머니에 감춰온 열쇠를 꺼내 자물쇠를 열었다.

철문이 열리면서 녹슨 경첩이 회전하는 소리가 끼익 하고 요란하게 났다.


아차 싶어서 주변을 돌아봤다.

벌써 흥분감에 철문을 천천히 열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다행히 새들이 날아가는 소리 말고 누군가 있다는 신호는 감지되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들킨 것 같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안심하기엔 일렀다.


더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움직여 구조물 안으로 들어갔다.

탄약통을 놓았을 것 같은 거치대 위에 놓인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문틈에서부터 비집고 들어오는 빛에 반사되어 번쩍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헌팅나이프(사냥을 위해 쓰이는 칼로 일반 칼보다 두ᄁᅠᆸ다. 사냥감의 가죽을 벗기거나 고기를 잘라내기위해 한쪽 날이 톱으로 구성된다.)였다.

그것은 빛을 반사하며 거치대에 올려진 물건들을 차례대로 비추기 시작했다.

톱이며 결박끈, 덫이 있었다.

그는 결박끈을 풀어서 톱과 덫을 묶어서 마치 원래 직업이 사냥꾼이었던 듯 능숙하게 어깨에 멨다.


준비를 마쳤으니 이제는 최종목적지로 간다.

목적지는 더 깊은 숲에 있었다.

그곳에 가는 동안 자신이 왜 이런 것에 몰두하게 됐는지 생각하지만 알 수 없었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았다.

이미 이렇게 변해버린 것을 원인을 안다고 해서 돌이킬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으니까.

생각이 꼬리를 무는 사이 어느새 도착해있었다.


그곳에는 덫에 걸린 사슴이 있었다.

며칠째 먹지도 마시지도 못해 헬쓱한 모습이었다.

덫에 걸린 다리의 상처는 벌어지고 부풀어있었다.

이미 체념한 듯이 사슴은 사람을 보고도 숨을 쉬며 갸르릉 거릴 뿐 다른 행동을 하진 않았다.

크로노스는 어깨에 멘 것들을 땅에 내려놓고 헌팅나이프를 꺼내들었다.


사슴은 칼을 든 크로노스가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몇 번씩 가냘픈 소리를 짧게 내뱉었다.

그것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소리인지, 고통없이 끝내라는 부탁인지 알 수 없었다.

우주마저 빨아들였을 것 같은 한없이 깊고 검은 눈동자만이 크로노스를 잠깐 멈칫하게 했다.


크로노스는 무릎을 꿇고 사슴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그 녀석은 여전히 가만히 있었다. 크로노스는 ‘스읍’하는 숨을 쉬며 사슴의 목에 나이프를 꽂았다.

죽이는 것은 아직도 적응되지 않았기에 벌떡 일어나 사슴에게 떨어졌다.

사슴은 바닥에 있는 피가 마를 때까지 죽지 않을 작정인것처럼 신음소리를 냈다.

크로노스는 그 소리를 듣기가 괴로워 쓰러져있는 사슴의 목에 칼을 다시 찔러넣었다.

사슴이 아무 움직임도 없게 되자 그제서야 덫을 풀어주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크로노스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숨을 쉬기가 힘들어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부디 저 불쌍한 영혼이 저세상에서는 나 같은 놈을 만나지 않길.


그곳에서의 삶은 영원한 평화와 안식만 있길.

진심을 담은 기도를 끝내자 가슴을 막았던 무언가를 치워버린 느낌이 들었다.

그 후련한 느낌 때문에 크로노스는 이 짓거리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근처에 새로운 덫을 설치할만한 장소를 둘러보았다.

주위엔 크로노스가 죽이고 버린 동물의 사체들이 여기저기 해체되어 널브러져 있었다.

적당한 장소에 덫을 설치하고 고라니가 죽은 장소로 돌아간다.

그 녀석도 톱으로 해체한 뒤 이곳저곳에 버려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다.


제자리로 돌아온 크로노스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었다.

집사 영감이 사슴의 사체를 보고 있었다.

그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크로노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집사는 크로노스가 가지고 있는 헌팅나이프와 덫, 그리고 톱과 결박끈을 둘러보았다.

그는 크로노스에게 어떤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망설이다가 물었다.


“언제부터 이런 거니?”


크로노스는 다시 가슴이 답답해져 질식할 것만 같았다.

영감의 질문이 사형선고처럼 다가와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크로노스는 집사의 시야에 사라졌다.


“크로노스! 돌아와! 잠깐 기다려봐!”


집사의 외침조차 닿지 않는 먼 곳까지 크로노스는 달려갔다.


「쿵쿵쿵!」


노크소리는 몇 번을 반복하더니 결국 거세게 두드리는 소리로 변했다.

그제서야 잠이 깬 크로노스는 꿈에서 흘렸던 눈물을 닦고 문을 열었다.

기숙사 사감이었다.


“새벽에 불쑥 찾아와서 미안한데 이것말고는 너한테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


“괜찮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사감은 잠깐 망설였다.


“사실은... 너 기숙사비가 많이 밀렸어.

나도 어떻게 해보려고 했는데 행정실에서 더는 안 된대.

당장 내일까지 돈을 내지 않으면 방 빼래”


“기숙사 장학생을 신청했는데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안 될까요?”


“기숙사 장학도 성적을 확인한 뒤에 선발되는거야.

이번 학기 끝나려면 아직도 멀었고 게다가 선정된다고 해도 우선 금액을 납부하고 나중에 환급해주는 방식이야.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해.”


“알겠습니다. 내일 납부할게요.”


사감은 크로노스의 말이 영 못마땅한지 눈치를 보며 가지 않고 버텼다.


“네 말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지금 줄 수는 없니?”


“지금 당장은 없는데 내일 마련할 수 있어요.”


“확실한거지?”


“네.”


몇 번이나 확인하고 돌아서는 사감을 노려보며 크로노스는 문을 닫았다.

우라노스가 살아있을 때 자신에게 이런 모욕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땐 마음 빼고 모든 것이 풍족한 시절이었다.

지금은 무엇이 남았나. 자유와 꿈? 그것마저 아키텍쳐스쿨에 반납해버렸다.

그에게 지금의 목표는 오로지 지옥같은 학자금과 생활비문제에서 탈출하는 것이었다.


사감에게 자신 있게 대답했지만 사실 도저히 기숙사비를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

가정에 뚜렷한 수입이 없는 데다 이주민족(한국, 중국, 일본에 뿌리를 둔 민족 외 다른 국가에서 이주한 정착민족)인 학생은 대출마저 쉽지 않았다.


결국 방법은 하나다. 자신이 죽인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

독립을 원했지만 환경은 그렇게 두지 않았다.

그가 살던 저택으로 돌아가기 위해 서울역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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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야만의 정의 2 +3 19.07.27 457 16 6쪽
12 야만의 정의 1 +4 19.07.26 524 17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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