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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의 세계입니다.

분홍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암현
작품등록일 :
2017.06.16 22:52
최근연재일 :
2019.04.02 12:16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11,496
추천수 :
31
글자수 :
220,138

작성
17.08.14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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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42

DUMMY

그렇게 기절한 마차리를 끌고 집으로 들어가 소파에 대충 던져 놓았다. 갑옷을 벗는 소리에 알리샤가 내려와 짜증을 냈지만 코코아 한잔을 타서 주니 화를 가라 앉혔다.

자리에 앉아 우파나히가 타준 코코아를 한 잔 다 마셨지만 다시 올라가진 않았다. 우파나히는 빈 잔에 코코아 한 잔을 더 따라줬지만 손대지 않았다.


“아직 쓸만해요?”

“죽는다.”

“그래요?”


고개를 좌우로 까딱까딱 움직이며 묘한 목 울림을 내더니 이내 멈췄다.


“분홍신은 몇이나 남았어요?”

“모른다.”

“그날 당신은 뭘 할 거죠?”


마차리가 로투를 상대하기로 한 날에 대한 이야기였다.


“계획은 없다.”

“그래요? 잘 됐네요.”


그러곤 자기 앞에 놓인 코코아를 천천히 마셨다. 그녀에게 있어 지금 상황은 정말 별것 없는 일상이라는 뜻이었기에 우파나히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하지만 팔라둔은 정신을 놓을 지경이었다.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수사에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화난 이들이 시위를 하는 동안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하는데 열을 올렸지만 여전히 성과는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록셀 가문을 방문했지만 돌아온 것은 적의뿐이었다.


“상당히 불쾌하군요.”


록셀 저택의 주인은 방에 장식된 갑옷을 만지며 적지 않은 반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랫동안 군에 종사한 수장의 눈빛은 매와 같이 날카로웠고 목소리엔 위엄이 가득했다. 서로에 대한 조건이 없이 몇 마디 나눈다면 호방한 성격이 드러날 터였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팔라둔은 겨우 그 정도로 물러날 순 없었다.


“단지 신중을 기하자는 것입니다.”

“제 딸을 비롯한 이 저택의 사람들은 모두 이 나라의 충실한 국민입니다. 아무리 필리오림의 일이라곤 해도 따르기 힘든 것은 있는 법입니다.”


과거 군인으로써 나라에 충성하던 인물이었다. 그의 무공은 지금의 왕인 샬엔도 인정한 바. 그렇기에 군을 움직일 권한이 주어진 것이었다.

그가 갑옷에서 손을 뗀 뒤 팔라둔과 얼굴을 마주했다.


“분홍신이 날뛰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분홍신부터 처리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습니까.”


메마르고 노쇠한 몸이었지만 그의 눈은 당장이라도 갑옷을 걸치고 검을 들고 나가 분홍신을 섬멸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분홍신만이 아닙니다.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는 무리들이 그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색출하는 것이 순서에 맞습니다.”

“제 다리가 보이십니까.”


당당히 서 있는 그의 손엔 굵은 지팡이가 쥐어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는 지팡이를 짚을 나이가 아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무기로 쓰려는 것도 아니고 외눈 안경처럼 멋을 부리는 용도도 아니었다. 그는 한 쪽 다리가 없었다.


“전 당신이 필리오림이기 이전부터 군을 이끌고 시난들과 전투를 치렀습니다. 그때 입은 부상으로 은퇴하긴 했지만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변함이 없습니다. 과거의 일이라곤 하나 샬엔 전하께서도 저의 충직함을 인정하신바가 있습니다.”

“예······그 부분에 대해선······”

“이게 국가에 헌신한 자에 대한 대우라면 불쾌하다고 말하는 것으론 부족합니다!”


지팡이가 구하기 힘든 나무와 석재로 만든 바닥을 때리며 큰 소리를 냈다. 이는 명예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한 마리 짐승의 포효와 같았다.

하지만 팔라둔에겐 그의 비위를 맞출 이유도, 시간도 없었다.


“그 국가를 지키고자 하는 일입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분홍신만 처리한다면 꼬리만 자를 뿐, 다시 이런 일들이 반복될 겁니다.”


수장은 팔라둔의 확고한 의지에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팔라둔이 말한 것이 진실이라면 그의 집만큼 숨기 좋은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록셀이라는 가문이 이루어낸 명예와 공적에 국가와 시민들이 가지는 신뢰는 강철과도 같다. 다르게 말하자면 어떤 악당이라도 좋아할 법한 그늘이었다. 록셀 가문에 있는 사람이라면, 혹 단순히 노동력을 제공하는 자들일지라도 그들의 이름 아래에서 일을 하고 있기에 믿을 수 있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 점은 록셀의 수장도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만약 죄를 지은 자가 록셀의 저택에 있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죄해주십시오. 하지만 억측과 입소문으로 록셀의 명예가 더럽혀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필리오림의 단검에 맹세하겠습니다.”

팔라둔이 단검 하나를 꺼내 보였다. 섬세한 장식이 들어간 한 뼘 크기의 단검은 수장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기엔 충분했다.

수장의 허락을 받아 그의 가족을 비롯한 하인들에 대한 사상검증에 들어갔다.

방법은 간단했다. 팔라둔이 그들을 한 명씩 불러 질문을 하고 질문의 대상자가 된 이들이 답변을 하는 형식이었다. 간단하지만 명료했다.

자칫 필리오림이 가지는 능력에 대해 모르는 이들이라면 멍청한 짓을 하고 있다고 비웃을 일이었다. 하지만 필리오림의 능력을 아는 이들이라면 멍청한 짓을 하고 있다고 비웃는 자들을 조롱할 일이었다.


“그대는 최근 일어난 사건과 그 주모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있는가.”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고귀한 시대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가.”

“······더 이상 그것에 대해 아는 것은 없습니다.”


병으로 인해 자리에서 거의 일어나지 못하는 그라시아의 어머니는 팔라둔이 직접 가야 했다. 그녀는 죽은 아버지와 오빠에 대한 기억으로 괴로워했지만 거짓을 말하고 있진 않았다.


“알겠다.”


팔라둔의 질문도 거기서 끝이었다.

다음은 그라시아였다.


“고귀한 시대라는 것에 대해선 전혀 모르겠어요. 아버님께선 그런 머리 나쁜 자들에 대해선 알려고 하지 말라고 하셨고요.”

“알겠소.”

“그건 그렇고 차는 어떠신가요? 특별히 주문해서 구한 건데요.”


마시지 않았다면 얼버무릴 수 있었지만 이미 반쯤 마신 상태였기에 팔라둔의 성격 상 무시할 순 없었다.


“향이 아주 좋군요.”


그라시아의 입술이 가볍게 올라가며 흰 이가 살짝 드러났다. 아름다운 얼굴만큼이나 매혹적인 미소였다.


“필리오림께서 기뻐해주시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가끔 차를 마시러 오시면 더 좋겠지만요.”

“사건을 종결시키면 그러도록 하겠소.”

“그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미소엔 팔라둔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섞여 있었지만 그는 가면 아래에서 쓸쓸한 웃음을 짓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에겐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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