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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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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
작품등록일 :
2017.06.16 22:52
최근연재일 :
2019.04.02 12:16
연재수 :
6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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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15
추천수 :
31
글자수 :
220,138

작성
17.07.25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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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33

DUMMY

“뭐······”


마나폴로는 혼란스러웠다. 일반적인 용병이라면 좀 더 많은 돈벌이를 위해 자신을 높여 소개하는 일이 많다. 완전한 풋내기가 아닌 이상 대개 그렇게 한다. 물론 위험도가 높아져서 죽을 일도 많지만 체격이나 힘 따위를 봐선 잘 죽지도 않아 보였으니 높여 소개해도 상관없을 정도는 되어 보였기에 오히려 이상하게 보였다. 그러기에 관찰했다. 그의 얼굴이나 체격, 무기, 겉으로 보이는 능력 따위를 관찰했다. 쌍둥이들이 목을 잡혔을 때 팔에 칼을 쑤셔 박았지만 코트는 상처 하나도 없다. 금속을 같이 엮은 것 같진 않았지만 방어 술법이 발동되는 기색도 없다.

결론은 용병치곤 이상하다.

이 이상한 관찰을 끊어낸 것은 팔라둔이었다.


“마나폴로, 그만하게.”

“예······뭐······탓푸죠 탓푸.”

“변명은 하지 말게.”

“예. 죄송합니다.”


팔라둔은 자리에서 일어나 난리친 것에 대한 비용을 점원에게 쥐어줬다. 점원은 받지 않으려 했지만 팔라둔의 계속되는 권유엔 이길 수 없어 억지로 받아들이곤 어정쩡한 미소로 답했다.

팔라둔은 가면에 가려 보이지 않는 웃음을 지으며 추가 주문한 것을 받아든 우파나히를 회유하려 했다.


“순찰을 계속 할 건데 같이 할 텐가?”

“아니.”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보단 즐거울 거라고 생각하는데.”

“죽는다.”

“그래?”


위협은 아니었다. 마나폴로나 다른 샤엘라들이 가만히 있는 것으로 보아 그건 당부나 걱정에 가까운 뜻으로 보였다.


“우파나히 씨는 기본적으로 뭉쳐서 몰려다니는 거 싫어하세요.”

뺨을 바닥에서 뗀 마차리가 자신의 등을 식탁으로 쓰고 있는 것엔 불만을 나타내지 않은 채 손바닥에 턱을 괴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디온에서 엄청 데였거든요.”

“디온?”

“그때 어······음······”


갑자기 뭔가 생각하더니 한참동안 고민한 다음 겨우 입을 열어 생각하던 것을 토해냈다.


“귀찮으니까 알리샤 씨라고 할게요. 알리샤 씨가 한건 크게 하고 공평하게 나눠서 흩어지자고 했을 때 고생을 어찌나 많이 했는지······”


우파나히의 손에 철퇴가 들렸다. 그걸 본 마차리가 도망가려 했지만 우악스러운 손으로 등을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자, 잠깐만요!”

“가만히.”

“뭐하는······!”


철퇴가 내리쳐졌다.

마나폴로가 말리려고 했지만 그보다 빠르게 내려쳐진 철퇴는 이상스럽게 길게 뻗은 마차리의 그림자를 내리쳤다.

쇠와 쇠가 만나는 소리가 울렸다. 바닥은 벽돌이다. 날 수 없는 소리. 그림자를 내리치던 철퇴가 멈춘 끝엔 짧게 자줏빛 칼날이 튀어나와 있었다.


“역시 난 늙었군······”


자줏빛 칼날에서 로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차리를 비롯한 샤엘라 여행자들은 공격 태세를 잡았지만 자줏빛 칼날은 철퇴를 밀지도 당기지도 않은 채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춰있었다.


“적.”

“내 그림자에!”

“로투!”


오직 우파나히만이 고요한 가운데 그림자가 철퇴를 쳐내고 움직였다. 마나폴로와 쌍둥이가 그림자를 쫒으려 했지만 그림자는 건물의 그림자 속으로 합쳐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젠장!”


모두들 몹시 흥분해있는 상태였지만 건물의 그림자 안으로 들어가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았다. 사방을 경계하는 가운데 평온하기만 한 우파나히는 음식을 깔끔히 비운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등잔 밑 그림자와 같은 용. 찾을 수 없다.”


우파나히의 한마디에 샤엘라 여행자들이 흥분하며 한곳으로 모였다. 이때만큼은 활잡이 여자도 지붕에서 내려와 합류할 수밖엔 없었다.


“용이라니! 그런 말은 없었잖아!”

“빌어먹을! 결혼도 못하고 죽고 싶진 않아!”

“그냥 하르인줄 알았는데 이건 수지에 안 맞는 일이야! 난 그만 두겠어!”


저마다 한 마디씩 소릴 지르는 판에 경호고 뭐고 죄다 엉망이 되고 있었다. 팔라둔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고 그들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활잡이 여자를 제외한 여행자들은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고 동족으로써 중재자의 역할을 해야 할 마나폴로도 침묵했다.


“힘을 모은다면 상대 할 수 있지 않나.”

“못합니다.”


딱 잘라 말한 것은 조용히 상황을 파악하던 마나폴로였다.


“우리의 힘으론 불가능합니다. 힘의 격차가 너무 큽니다.”

“자네도 안 되는 건가.”

“필리오림. 죄송하지만 전 용이 아닙니다.”


마나폴로의 몇 마디가 가지는 파급력은 컸다. 팔라둔은 그들을 다독여 일반 시민들이 없는 곳으로 이끌었고 그곳에서 순찰을 포기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때 역시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으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남은 것은 필리오림의 동행자를 자처하는 마나폴로와 우파나히, 우파나히 손에 끌려온 마차리, 활잡이 여자 정도였다.


“용이 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다른 샤엘라들도 일을 포기할 겁니다.”

“그 정도 차이인가?”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적이 가진 힘의 크기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만 무고한 희생을 막을 수 있었다.


“······예,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그래도 자네들은 남아 주었잖나. 내일 순찰을 다시 시작하지.”


이때 마차리가 손을 살짝 들었다.


“저기······저도 이 일은 안하고 싶은데요······”

“남아 놓곤 무슨!”

“전 발이 땅에 닿지도 않았어요! 제 다리로 남아 있는 게 아니라고요!”

“됐어! 이 이상 우리끼리 싸워 봤자 무슨 득이 되겠나!”


뒷덜미를 우파나히에게 잡힌 채 허공에 살짝 떠 있는 모습이 도축한 뒤 고리에 걸어놓은 고깃덩어리 같았다. 팔라둔이 내려놓아도 된다고 하자 우파나히가 마차리를 내려놓았다. 운 없게도 이번엔 활잡이 여자가 독 묻은 화살을 한 대 쥐고 그의 등에 꾹 눌러 도망가지 못하게 막았다. 마차리도 이번만큼은 참여하기 싫었던 것인지 억지로 몸을 비틀어가며 도망쳤다.

도망치는 마차리의 뒷모습을 보며 팔라둔은 탄식했다.


“그런가······그 정도로 강한가······?”

“상상 이상일겁니다. 마음만 먹으면 도시를 날려버릴 수도 있습니다.”

“알고 있는 사람 중 그를 제압할 사람은 없는가?”


적이 자신의 강함을 드러내자 아연질색하며 달아나버린 여행자들을 떠올리고 있는 팔라둔은 단 몇 십 분 만에 폭삭 늙어버린 것 같았다.


“모든 샤엘라를 전부 합쳐 봐도 백 명도 채 안될 대량 학살 병기입니다. 에란에 가서 법관들을 데려오지 않는 이상 로투를 구속하는 것은 어려울 겁니다.”

“목숨은 중요한 법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자신의 동행자가 절망하고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어떤 희망도 안겨줄 수 없었다.

마나폴로에겐 큰 좌절이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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