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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의 세계입니다.

분홍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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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
작품등록일 :
2017.06.16 22:52
최근연재일 :
2019.04.02 12:16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11,421
추천수 :
31
글자수 :
220,138

작성
17.07.15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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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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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8쪽

22

DUMMY

서비스라도 되는 것일까. 마차리의 옷에 묻은 피와 찢긴 부분까지 손봐준 그녀는 아직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마차리의 손을 잡아끌더니 한낮의 더위를 피한 찻집에 앉아 시원하고 달콤한 것을 두 잔 주문했다.


“그건 그렇고 당신 누굽니까.”

“나?”


그런 큰일을 치르고도 찻집에 앉아 여유롭게 차나 홀짝이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여유를 부리는 여자는 조금 섭섭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네. 이 얼굴은 처음이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몇 번 문지르니 약간 갸름했던 얼굴은 통통해졌고 말끔했던 뺨엔 주근깨가 붙었다. 거기서 고개를 좌우로 흔드니 머리카락이 살랑살랑 흔들리며 검은 가루를 털어내고 잿빛으로 변했다.

목소리를 제외하면 마차리에게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알리샤 씨······이런 장난은 안하시기로 했잖아요······”

“왠지 얼굴을 들키면 귀찮아 질 것 같아서~”


성대 쪽을 만지작거리니 목소리도 변했다. 예전에도 장난삼아 모습을 변화시키곤 했었지만 이번엔 그 경우가 달랐다.


“그리고 난 번개 같은 건 못 다루는 어중이떠중이여야 하니까.”

“네?”

“그라시아 록셀한테 그렇게 소개했어.”


환전소에서 있었던 일을 차분하게 설명했지만 마차리는 전혀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지원만 있으면 도시고 뭐고 날려버릴 수 있는 분이······”

“이젠 안할 거야. 샤크티도 있는데 그렇게 할 이유가 없잖아?”


누가 뭔 짓을 하던 간에 직접적인 피해만 없다면 상관하지 않겠다는 모습에 마차리는 한참동안 “예, 뭐, 그러시겠죠.” 라는 태도를 유지했다.


“그럼 전 필리오림한테 보고하러 가겠습니다. 로투는 위험해요.”

“용의 술법을 쓰던데. 강해?”


적들을 감싸 어딘가로 이동시켰던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 같았다.


“과거 기록으론 혼자서 요새나 도시에 침투해서 공포와 혼란을 일으킨 다음 자멸하게 만드는 방법을 수도 없이 사용해온 책략가입니다. 이번엔 실패한 것 같지만요······”

“그래? 실패라고 하기엔 도망칠 순간을 잘 잡은 것 같던데?”

“경험이 많으니까 그렇겠죠. 일단 필리오림께 알려드리겠습니다.”


마차리가 자리를 떠나자 남은 알리샤는 여유롭게 차를 한 잔 더 마시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엔 혼자 남아 있던 샤크티가 곤히 자고 있었고 그 옆에서 우파나히가 무기와 갑옷을 손질하고 있었다.


“빨리 허가 받았네요.”

“아니.”


목엔 무기 소지 허가증이 걸려 있지 않았다. 억지로 떼를 써서 가져왔다고 하기에는 주변이 너무 조용했다.


“훔친 거예요?”

“아니.”

“그럼 뭐예요?”

“그라시아에게 보석을 줬다.”


환전소에서 불법적인 행위를 적발하던 모습과는 다른 면모에 알리샤는 “뇌물이 통하긴 하네요.” 라며 인간 세상에 대한 변하지 않는 믿음을 보였다.


“권리를 양도받았다.”

“어련하시겠어요~”


갑옷의 손질과 상태 확인이 끝나자 둥근 방패를 쥐어봤다. 가슴을 가릴 수 있을 정도로 큰 금속 방패의 안쪽엔 금속으로 된 것과 가죽으로 된 두 개의 손잡이가 있어 팔에 끼워 쓰는 것도 가능했다.


“좀 전에 한바탕하고 왔는데 꽤 강해요.”

“알았다.”


코트를 벗은 상태에서 갑옷을 입기 시작했다. 흉갑은 뒤집어쓰듯 입은 후 옆구리 쪽에 있는 벨트로 틈새를 조였다. 그 다음 팔과 다리에 각각 보호대를 착용한 후 흉갑과 마찬가지로 벨트를 이용해 조였다. 가만히 보고 있던 알리샤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툭툭 던지기 시작했다.


“살찐 거 아니에요?”

“아니.”

“예전보다 벨트 남는 부분이 짧아진 거 같은데······”

“아니.”


알리샤가 놀리거나 말거나 쇠가 달린 장갑과 금속 신발을 착용한 우파나히는 자루에서 꺼낸 큼직한 단검을 허리 뒤쪽에 달고 던지는 칼들이 달린 가죽 띠를 한쪽 어깨에서 옆구리까지 걸쳐 둘렀다. 둘 다 크게 위치를 잡은 다음 쓰기 편하게 조정했다.

허리 뒤쪽의 단검보다 작은 칼 두 자루는 각각 왼쪽 팔 안쪽과 오른쪽 다리에 달았다. 알리샤는 그런 것까지 하면 준비가 오래 걸린다며 툴툴거렸지만 우파나히는 신경 쓰지 않고 작은 칼의 조정을 마친 다음 그 위에 코트를 입었다.


“나 배고픈데.”

“사 먹어라.”

“애정이 식었네, 식었어~”


전신을 감싼 갑옷 위로 코트를 입은 그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쪄죽을 것 같은 답답함이 있었다. 하지만 어지간해서는 죽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함이 있었다.

갑옷이 잘 착용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조금씩 몸을 움직여 상태를 확인했다. 철컥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 샤크티가 그걸 유심히 지켜보다가 소파에 놓인 투구를 들었다.

투구는 ‘말하는 호랑이’라 불리는 짐승의 모습을 따온 것으로 큰 머리와 입이 머리를 감싸는 형태로 만들어 졌으며 날카로운 이빨은 과장되게 아래로 뻗어 있어 이마와 뺨을 보호하고 있었다. 샤크티는 그 긴 이빨에 푹 빠진 듯 손가락을 뻗어 이빨을 만지작거렸다.

방패를 왼쪽 팔에 끼워 든 우파나히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뻗어 투구를 받았다.


“아빠 일 나가?”

“그래.”


마지막으로 오른 손에 천에 감싸인 무기를 들고 집을 빠져나갔다.

아직 부서진 문은 고치지 않은 상태였지만 갑옷에 코트까지 두른 우파나히의 몸은 잔뜩 부풀어 오른 상태였기에 안 고치는 편이 더 지나다니기 좋아보였다.


적을 찾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디로 갈지 결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의 무장한 모습을 보고 웅성거리는 시민들과 그 특유의 당당함에 검문을 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 경찰들을 헤치고 곧장 필리오림 관사로 직행했다.

물론 팔라둔이 곱게 맞아줄 리는 없었다. 먼저 온 마차리가 전달한 로투에 대한 정보에 머리가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겨우 몇 시간 만에 허가증을 얻는 기적 같은 행동으로 법을 어길 듯, 말 듯 행동하는 우파나히까지 찾아왔으니 복잡할 수밖엔 없었다.


“일거리.”

“이딴 식으로 날 찾아오면 어쩌겠다는 건가. 감옥 가고 싶은 건 아니겠지?”

“시민들을 다 죽이고 싶나.”

“협박하는 거면 번지수를 잘 못 찾은 거 같은데! 여긴 내 관사고 난 필리오림이다!”

“적은 강하다.”

“난 저스의 법을 대변하는 존재다! 정의와 원칙이 없는 힘은 단순한 폭력에 불과하다는 걸 몇 번이나 이야기 했지 않나!”

“힘과 결단력이 없는 정의는 위선이다.”

“젠장, 알리샤가 네놈을 조금 똑똑하게 만든 것 같군······!”


그들과의 첫 만남에서, 팔라둔이 필리오림으로써 했던 첫 임무에서 알리샤가 했던 말을 우파나히는 그대로 반복하고 있었다.


“정의와 원칙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필요한 때에 부리고 필요하지 않을 때에 잘라낼 자들이 필요하다.”

“그게 너라는 건가?”

“난 용병이다. 고용해라.”


오만하게 보일 정도로 당당했다. 팔라둔은 잠시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내 강직한 답을 내놓았다.


“난 너와 전혀 관련 없는 사람이다.”


순간 빠르게 무어라 휘갈겨 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우파나히는 종이를 받아 읽은 뒤 다시 팔라둔에게 돌려줬다. 팔라둔은 촛불로 종이를 태워 없앴다.


“넌 지금 멋대로 행동하는 거야. 우리가 널 잡지 않는 이유는 피해를 최소화 하면서 적을 더 늘리고 싶지 않은 거고.”


돈이 든 주머니도 우파나히에게 넘겨졌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우파나히는 밖으로 나가 벽에 등을 기댄 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마차리를 걷어차 깨워 끌고 나갔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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