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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의 세계입니다.

분홍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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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
작품등록일 :
2017.06.16 22:52
최근연재일 :
2019.04.02 12:16
연재수 :
6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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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93
추천수 :
31
글자수 :
220,138

작성
17.07.08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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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13

DUMMY

“이번 경우가 이상한 거라고요?”


랑케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태도였다. 알리샤 역시 설명하는 것은 귀찮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그녀에게 친절을 베풀기로 생각하고 행동했다.


“술에 취하거나 싸움 중에 우발적으로 죽인 게 아니에요. 돈이나 원한 관계도 아닐 거고요. 그 형태를 봤을 때 사람이 그런 식으로 사람을 죽일 순 없는 거예요. 특정 시난에 의한 계획적인 살인이겠죠. 주기적으로 시난들을 토벌하는 평화로운 나라에서, 높은 성벽이 둘러쳐진 도시에서, 수천의 병력이 감시하는 눈을 뚫고 들어와서 목격자도 없이 살인을 했다? 누군가가 몰래 들여와서 자신의 계획에 썼다고 밖엔 할 수 없어요.”

“도시 내부에 적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제 생각에는 그래요.”


랑케는 수긍하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국가의 평화에 일조한다는 자긍심이 있었다. 안전하다는 보장이 있었다. 성벽 안쪽에 있는 이상 그런 식으로 죽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알리샤는 그걸 전부 부정하고 있었다. 십 수 년 동안 쌓아온 국가에 대한 신뢰를 무너트리려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생각나는 시난이 있나요?”

“없어요. 할 수 있는 시난은 알고 있지만 이런 무의미한 짓을 할 정도로 수준이 낮진 않거든요.”

“수준이요? 전부 짐승 같은 것들이 아닌가요? 사람들을 잡아먹고 자기 욕망만 위해서 날뛰는······”

“그건 잘못된 인식이에요.”


어느새 식사를 마친 우파나히가 차를 끓여 알리샤와 랑케의 앞에 놓고 있었다.


“어원은 리안들의 말로 죄 많은 것들, 혹은 죄 짓는 것들에서 오긴 했지만 유사렛타인 조약이 성립되고 난 뒤엔 국가적인 차원에서 인간의 생명과 체제에 해가 되는 것들을 통칭해서 시난으로 부르고 있어요. 지겨운 아타라테아 종은 사람으로 구분되는 리안들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거 알고 있어요?”

“아뇨······그런 건 못 배웠어요······”

“그럼 지금 배워요. 영원의 여행자에 대해 알고 있나요?”

“네, 그라시아 님이 이야기 해주셨어요!”


랑케의 지금 모습은 자기 전 부모님에게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아이의 모습과 같았다. 알리샤도 꽤 즐거워하고 있었기에 우파나히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현재의 기준으로 영원의 여행자도 시난으로 분류되고 있어요.”

“네?! 어째서요! 영웅이잖아요! 모든 땅을 구원했던 영웅이잖아요!”

“체제에 반하는 행동을 많이 하거든요. 유사렛타인 조약으로 엮인 나라들의 다수결로 시난으로 분류되었어요. 물론 이 나라는 반대 했고요. 그렇다곤 해도 어지간한 전력으로는 죽일 수도 없으니 철저히 감시만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요.”

“그걸 믿으라고요?”

“성벽 안에서 들리는 이야기라는 건 한계가 있잖아요? 세계를 넓고 이야기는 많아요. 여행을 추천하고 싶네요. 소리새 씨.”

“네? 제 이름은 랑케인데요······?”

“이름 같은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역할은 소리새잖아요?”


이야기 듣기 좋아하는 새. 그라시아의 하녀이자 알리샤에게 소리새라 불리는 랑케는 이제껏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거리의 사소한 이야기까지 수집해 그라시아의 귀를 즐겁게 한다. 랑케에게 있어 별 것 아닌 것 같은 내용이라도 그라시아의 귀에 들어가면 판단의 근거가 된다.

알리샤는 랑케의 존재를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시장에서 동물 잠옷을 팔긴 하지만 소리새 같은 잠옷은 없어요······”

“동물 잠옷······이요?”

“네, 요즘 유행하고 있어요. 손이 많이 가니까 비싸긴 하지만 귀여워요.”


알리샤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랑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헤헤거리며 웃었다.


“뭐, 그런 거야 나중에 사면되고······”

“근데 왜 영웅을 하대하는 거죠······? 그라시아 님이 이야기하는 영원의 여행자는 세계를 부수는 악당들을 물리치는 영웅이었는데요······”


화제를 돌리기 위한 핑계일지도 모를 질문이었다.

하지만 영원의 여행자를 존경한다는 감정만큼은 진짜로 보였다. 애써 화제를 돌려보려는 랑케의 노력에 답해주듯 알리샤가 설명을 이어갔다.


“종이 다르거든요. 이기적이고 기회주의 적이며 배려심 없는 자들이 국가를 운영할 권력을 가지면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거예요. 영원의 여행자가 모든 부조리함을 낳는 악당들을 쓰러트리고 세계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온다고 해도 자신들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영원히 시난으로 분류할 자들이에요.”


어떤 면에서는 사상적으로 위험한 발언이었지만 거주하고 있는 나라를 옹호하는 입장이었으니 랑케가 신고할 일은 없어보였다.


“영웅이라는 건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사랑과 함께하지 않으면 악당같이 보일 뿐이니까요.”

“힘의 방향이라는 거랑 비슷한 건가요?”

“그럴지도 모르죠. 혹시 베르체토가 쓴 ‘지도자’라는 책을 읽어봤나요?”

“아뇨, 글자는 아직 잘 못 읽어서요.”

“배울게 많아요. 주된 건 국가의 흥망성쇠에서 지도자들의 능력이 얼마나 중요했는가. 라는 내용이지만요.”

“그런 게 재미있나요?”

“배울게 많다고 했어요. 재미는 없어요.”

“그럼 안 읽을래요. 어차피 읽을 수 있는 글자보단 못 읽는 글자가 더 많기도 하고요······”


헤헤 거리며 다시 한 번 웃었다. 연기라면 어색했고 진심이라면 반응이 과했다. 어찌되었던 간에 알리샤에겐 별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그라시아 님께 우리는 사고 칠 생각이 없고 조용히 살고 싶으니 간섭하지 말라고 전해주시겠어요?”

“네?”

“식사도 얻어먹었으니 이 정도는 전해주세요. 팔라둔 필리오림도 우리 신분을 확인해 줄 테니까 놀러오는 것 외의 행동은 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라고요.”

“좀 실례되는 행동 같은데요······”


우파나히의 손놀림이 알리샤 앞에 놓인 빈 찻잔을 채웠다.


“보석을 매입해 준 건 고맙지만 실적을 올리는데 집착하면 크게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도요.”


차를 한모금 마시면서 궁리하더니 “그냥 편지를 쓸까······” 라고 중얼거렸다. 우파나히는 “하지마라.” 라고 할 뿐 더 간섭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간섭하는 거 좋아하지 않는 걸요.”

“참아라.”

“으······샤크티도 있고 그러니까······”

“참아라.”


잠시 칭얼거리긴 했지만 그걸 받아주진 않았다. 대신 랑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돌아가라.”

“네?! 네······알겠습니다······”


머리에 들어온 것이 많았기에 좀 복잡해진 것일까. 랑케는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례가 많았어요.”


공손히 인사. 그리고 아직 고쳐지지 않은 문을 나가 모습을 감췄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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