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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의 세계입니다.

분홍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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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
작품등록일 :
2017.06.16 22:52
최근연재일 :
2019.04.02 12:16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11,395
추천수 :
31
글자수 :
220,138

작성
17.07.06 11:54
조회
137
추천
1
글자
6쪽

11

DUMMY

불만과 짜증으로 덧칠된 알리샤의 심기를 더 건드릴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물건 사는 일이라면 도와드릴게요.”


호기롭게 말하는 랑케의 초롱초롱한 눈을 잠시 바라보던 우파나히는 짧게 거절했다.


“필요 없다.”

“랑케라고 부르시면 되요.”

“일이 있을 텐데.”

“재미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걸요~”

“임무에 충실해라.”

“무뚝뚝한 분이시네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한 것인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아직 잠이 덜 깬 운송업자한테서 수레를 빌린 다음 천천히 끌었다. 어느 순간부터 조금 무거워졌지만 내리라곤 하지 않았다.


“수레를 타보는 건 오랜만이에요~”


답하지 않았다.


“아침공기도 좋고요~식사는 즐겁게 하셨나요?”


답하지 않았다.

문이 열린 담배 가게에서 수레를 멈추고 궐련 두 상자와 담뱃잎 몇 자루, 담뱃대 몇 개를 사서 수레에 실었다. 흥정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남자 분들은 이런 게 좋은 건가요? 큰 주인님께서도 피시던데······”


허락도 맡지 않고 궐련상자를 열더니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 빨아들이는 흉내를 냈다. 우파나히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랑케에게 있어 그는 재미없는 사람일 뿐.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즐거운 대화를 위하여 수레에서 살짝 뛰듯 내린 그녀는 그의 옆에 나란히 섰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응답은 없었다. 대신 가구가게에서 서랍장과 옷장, 침대 등의 가구들을 사서 수레에 실을 뿐이었다. 가게 주인이 집까지 배달해주겠다고 했지만 짧게 거절하곤 혼자 힘으로 그 모든 짐을 날라 실었다.

그 사이 랑케가 노점에서 사온 것을 양손에 들고 있다가 그중 하나를 우파나히 앞에 쭉 내밀었다.


“힘세시네요~!”


랑케가 내민 것은 노점에서 팔긴 하지만 아침 손님을 노린 간단한 식사로 뿔 나팔에서 먹은 것보다는 훨씬 맛이 좋은 형태의 식사였다.

으깬 감자에 버터와 마요네즈, 양파, 소금을 섞은 다음 잘 버무려 막대 같이 만든 다음 전분을 묻혀 기름에 튀긴다. 그리고 그걸 거친 종이에 싸서 손님한테 건네고 돈을 받는다. 단지 그뿐일 요리였다.


“빨리 받아요~! 식으면 맛없어요!”


참새 같이 군다. 우파나히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름 모를 음식을 받아들고 한 입에 쑤셔 넣은 다음 남은 종이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안······뜨거우세요?”

“괜찮다.”


다시 수레를 끌었다. 수레에 실은 짐이 많았기에 랑케는 그의 옆에 서서 걸었다. 그 작은 입으로 호호 불어 먹는 모습이 누군가와 닮았지만 우파나히는 신경 쓰지 않았다.


“맛있죠? 소시지를 넣은 게 더 맛있긴 한데 좀 비싸서요~”


랑케 혼자서 조잘대는 동안 다음 가게에 도착해 수레가 멈췄다. 가게에서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식재료와 물통과 그릇 등의 주방용품 등을 산 뒤 수레에 실었다. 옷가지 같은 것도 사긴 했지만 자신의 것뿐이었고 알리샤나 샤크티의 것은 없었다.

대충 한 바퀴 돌고 난 뒤 집으로 가 짐을 내렸다. 대충 거실에 던져 놓고 아래위로 오르내리며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여기가 자택이신가요?”


랑케가 무슨 말을 하던 간에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우파나히는 정리되지 않은 마당과 부서진 문을 가만히 보더니 수레를 다시 끌어 문으로 쓸 나무판자와 공구를 샀고 마당을 정리할 작은 낫을 추가했다.


“얻어먹을 건 얻어먹고 아무런 대답도 안 해주시고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주변을 살핀 뒤 가지고 다니는 궐련상자에서 하나 꺼내 불을 붙였다. “그럼 성함부터 시작할까요?”라는 랑케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 보다가 짧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으로 대답을 끝냈다.


“담배라는 건 맛있나요? 연기를 들이마셨다가 다시 내뱉는 거잖아요. 식사를 하는 것처럼 배가 차는 것도 아니고요.”


다시 한 번 상자를 꺼내 궐련 하나를 꺼내 랑케의 입에 물려주고 불을 붙여줬다.


“불을 빨아들이듯이 호흡해라.”


랑케가 우파나히에게서 느낀 최초의 친절이었다.


“깊게 들이마시지 마라. 입안에서 굴린 다음 다시 뱉어라.”


우파나히가 시킨 대로 연기를 조금 빨아들인 다음 입안에 머금었다. 굴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기에 그냥 머금고 있다 뺨 안 쪽이 조금 따가워질 쯤 다시 내뱉었다.


“으······무슨 맛인지 모르겠어요!”

“그런 거다.”


그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지금의 랑케로썬 이해할 순 없었다. 랑케가 연기를 빨았다가 내뱉는 것을 두어 번 반복하는 동안 우파나히는 한 대를 다 태웠고 수레가 다시 움직였다. 랑케는 남은 것의 불을 끈 뒤 주머니 속에 넣었다.


“우파나히 씨는 여기 오기 전에 뭘 하셨나요?”


대답은 없었다.


“덩치가 크시니 군인이셨나요? 아니면 사냥꾼? 의외로 옷이나 음식 같은 걸 만드시는 분이었을 지도 모르겠네요~”


큰 손으로 실과 바늘을 들고 좁은 작업실에 다소곳하게 앉아 천을 이어 옷을 만드는 상상을 하니 꽤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앞치마를 두른 상상보단 못했지만 꽤 재미있는 상상이었다.


“살인.”

“네?”

“사람을 죽였다.”

“그건······범죄자였다는 말씀이신가요······?”


랑케의 참새 같은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초롱초롱하던 눈망울에 두려움이 번져갔다. 그녀의 공포를 감지한 우파나히가 오해를 사지 않도록 말을 이어나갔다.


“용병이었다. 전쟁에 참전했다. 사람도 죽이고 시난도 죽였다.”


과거를 이야기하면서도 어떤 감정도 섞지 않았다.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었지만 후회할 일도 아닌, 그냥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잠드는. 그냥 하루를 살아갔던 일이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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