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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의 세계입니다.

분홍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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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
작품등록일 :
2017.06.16 22:52
최근연재일 :
2019.04.02 12:16
연재수 :
6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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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01
추천수 :
31
글자수 :
220,138

작성
17.07.04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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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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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8쪽

10

DUMMY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식사는 그걸로 끝이었다. 더 먹을 생각도 없었고 더 마실 생각도 없었다. 값을 치른 다음 칼을 챙겨 뿔 나팔을 빠져나와 천천히 걸었다.

맛은 없었지만 적당히 취할 정도의 수준은 되었던 것인지 마차리의 얼굴이 조금 붉게 물들어 있었다.


“흠······좀 춥네······”


서류작업은 많았고 밥은 별로 맛이 없었다. 같이 나온 술도 술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정도의 물건이었지만 품안에 있는 칼을 생각하면 참을 수 있었다.

입맛이 변할 수는 있어도, 바뀐 잠자리에 적응할 순 있어도 포기할 수 없는 것. 마차리에게 있어 품안의 칼은 그런 존재였다.

새로 구한 집까지의 거리는 꽤 되었다.

그만큼 도시는 컸고 안에 사는 사람들도 많았다. 최초의 사람들이 남부와 중앙을 잇는 물류의 중심으로 만들 생각으로 도시를 계획해 세운 것이니 크게 성장한 것은 그 목적에 부합한다고 할 수도 있을 터였다. 거기다 성벽은 높고 몇 천이나 되는 군대가 상주하고 있으며 군비와 물자가 풍부하니 가증스러운 시난도 함부로 쳐들어오지 못한다. 평화롭다. 라는 것을 그대로 표현해주는 곳. 마차리는 밤거리를 순찰하는 이들에게 몇 번 검문 당하면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으며 집 근처로 향했지만 가게고 뭐고 문을 다 닫은 시간이니 뭘 사들고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내일 뭐라도 사줘야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들어갔지만 인기척이라고는 없는 빈 집만이 그를 반길 뿐이었다.


“아무도 없어요?”


신발장에 놓인 초와 성냥으로 불을 밝힌 다음 아래위로 왔다 갔다 하며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간신히 찾아낸 쪽지에는 흰 산양의 뿔 나팔이라는 곳에 있겠다는 글이 한 줄 적혀 있을 뿐이었다.

그 별 볼일 없는 음식과 끔찍한 술을 내놓는 곳에 하루 묵는 건가. 그런 것들로 아침식사를 할 그들이 약간 불쌍하기도 했지만 다시 가기에는 너무 늦은 밤이었다. 영업 방해를 할 생각도 없었고 각자의 선택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마차리는 그냥 대충 바닥에 누워 못 다한 잠을 청했다.


“맛없네요. 이거.”


아침부터 아주 솔직한 한마디가 바닥을 청소하던 점원의 마음에 쿡 박혔다.

아침이라고 내놓은 것은 묵은 빵을 잘라 버터를 입혀 구운 것에 치즈와 달걀 프라이를 얹은 것이었는데 애초에 품질이 떨어지는 것을 쓴데다가 오래되고 향도 다 날아간 상태라 입이 짧은 알리샤의 입맛에 맞을 리 없었다. 물론 점원도 자기 가게의 음식이 별 맛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화가 나는 것을 꾹 참은 채 바닥 청소에 열중했다.


“참아라.”


우파나히는 아무 불평 없이 먹었지만 양이 부족한 것인지 고기 요리를 추가했고 샤크티는 빵을 한 조각 먹어보더니 접시를 물린 채 먹지 않았다.


“이거 맛없어.”

“내 꺼랑 샤크티 꺼 까지 먹어요. 괜히 더 시키지 말고.”

“부족하다.”

“이왕 먹는 거 맛있는 걸로 먹으면 안 되요? 그나저나 그 린다인지 룬다인지 하는 여자 성격이 나쁘네요. 이런 곳이나 소개시켜주고.”

“잠자리는 나쁘지 않았다.”


이와 벼룩, 시트의 얼룩 따위가 없었다는 뜻이었다. 침대의 상태나 방음, 냄새 같은 것들은 포함되지 않는 기준이었기에 알리샤는 짜증을 냈지만 우파나히는 담담하게 추가 주문으로 나온 고기를 빵조각과 함께 뱃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 사이 문이 열리면서 다소곳하게 차려입은 하녀 한 명이 들어왔다.

풍성하고 빨간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그녀는 한 명만 먹고 있는 아침 식사 중인 세 사람에게 다가와 공손히 인사를 올린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그라시아 님의 명으로 왔습니다. 랑케라고 합니다.”


반갑다고 인사를 한 건 알리샤 뿐이었지만 랑케는 개의치 않고 보석 대금인 돈다발을 그들 앞에 꺼내놓았다. 우파나히는 돈의 수량을 확인한 다음 적절한 가격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라시아의 팔찌를 돌려주었다.


처음 이 나라에 종이돈이 나올 땐 말이 많았지만 편리함을 내세운 상태에서 위조할 수 없을 정도로 품질을 높이고 내구성을 키운 덕분에 안정적인 유통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 점에선 알리샤도 종이돈을 좋아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도 종이로 돈을 만들면 좋을 텐데 말이죠.”

“종이를 만들기 어려워하는 나라도 많으니까요.”


랑케는 예쁘진 않지만 밝은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왠지 모르게 푸근해지는 인상이었기에 알리샤는 호감을 가지고 몇 가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여기 음식 먹어봤어요?”

“아뇨, 어릴 때부터 록셀 가문에 봉사 해온지라 거리의 가게에서는 뭘 사 먹어본 적이 별로 없답니다.”

“부탁이니까 여기서는 뭘 먹지 마요.”


“최악이니까요.” 라는 말은 귓속말을 속삭이듯 했지만 이미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점원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아마 이사벨라 님의 동상 때문일 거예요. 주변에 철을 만지는 분들이 많으니······아마 술을 찾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술안주는 그렇게 맛이 없어도 될 거고요.”

“아무리 그래도 좀 심하다니까요. 이럴 거면 굶는 게 낫겠어요.”

“맛있는 요리라면 라임 님이나 무샤트 님의 동상 근처에 가면 될 거에요. 그라시아 님이 가끔 찾는 식당이 몇 군데 있거든요.”

“그라시아 님은 맛있는 걸 찾아 드시는 가 보네요.”

“일이 바쁘지 않을 때 가끔 가곤 하시죠. 덕분에 집에 계시는 요리사 분께서 곤란해 하시고요.”


대충 상상이 가는 모습이었는지 알리샤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여유가 있으면 맛있는 걸 찾아 즐기는 건 죄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을 곤란하게 하는 점에선 좀 아쉬운 분이네요.”

“그렇기야 하겠지만······아랫사람이랑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는 걸 좋아하시는 분이라 따라 갈 때면 얻어먹곤 해서 뭐라 할 수가 없네요~”


싱긋 웃는 모습에 장난으로라도 더 나쁜 말은 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입맛이라는 게 참 요사스러워요. 아무것도 없을 땐 상한 빵이나 반쯤 썩은 고기도 잘 먹었는데 조금 편해지니까 맛있는 것만 찾게 되네요.”

“저도 록셀 가문에 들어가기 전엔 아무 거라도 뱃속에 넣기만 하면 좋았는걸요. 샬엔 폐하께서 도시 정책을 수립하시기 전까지는 이렇게 도시가 번성하지도 않은데다가 시난들도 자주 쳐들어와서 죽는 사람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과거를 이야기하는 랑케의 얼굴에 조금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알리샤도 더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있으니 랑케가 다시 웃음을 띠었다.


“숙박비와 식비는 저희 쪽에서 계산할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들은 것인지 아닌 지 우파나히는 다른 종류의 고기 요리를 하나 더 시켰다. 알리샤가 테이블 밑으로 발을 휘둘러 정강이를 때렸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결국 한 접시 더 나온 것까지 랑케가 계산한 다음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리샤와 샤크티는 집에 가서 마차리가 왔는지 확인하겠다고 했고 우파나히는 살 것의 종류가 많았기에 랑케에게 목록을 보여준 뒤 그것들을 파는 가게가 어디 쯤 있는지 물었다.

아직 이른 시각이라 문을 연 가게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으면 오늘 밤도 뿔 나팔에서 묵어야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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