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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의 세계입니다.

분홍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암현
작품등록일 :
2017.06.16 22:52
최근연재일 :
2019.04.02 12:16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11,390
추천수 :
31
글자수 :
220,138

작성
17.07.16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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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8쪽

26

DUMMY

남자의 머리가 찌부러지는 순간 인형술사는 분홍신 회수를 멈추고 도주했다. 우파나히가 던지는 칼을 하나 날렸지만 인형술사의 몸엔 맞지 않은 것 같았다. 인형술사가 다루는 인형은 그를 매단 채 수십 개의 팔로 건물을 타고 올라 어디론가 사라졌고 우파나히는 갑옷의 무게 때문에 추격하지 못했다. 남은 분홍신 역시 인형술사와 마찬가지로 도망쳤다.

마차리가 이를 바득바득 갈며 쫒았지만 추적에는 실패, 남은 것이라곤 다리가 잘리거나 으깨졌음에도 살아남은 몇몇의 사람들과 움직임을 멈춘 분홍신 몇 켤레뿐. 뒷정리를 하는 것만으로도 큰일이었다.


“조용하다.”

“술사들이 포함돼 있었으니 어딘가에서 여길 차단하고 있었겠죠.”


자기 피가 아니라곤 하지만 피투성이가 돼서는 중얼거리는 꼴이 말이 아니었다. 결국 한 대 얻어맞은 다음 근처를 순찰 중이던 경찰들을 불러와 뒷정리를 시켰고 우파나히는 그러거나 말거나 순찰을 재개했다.


“배 안고픕니까.”

“그래.”

“전 배고픈데요.”


더 듣기도 싫었던 것인지 뿔 나팔에서 쉰내 나는 빵과 고약한 냄새가 나는 치즈 한 덩어리를 사 마차리의 입에 쑤셔 넣었다.

형편없는 메뉴였지만 어느 정도 영양보충은 되었던 것인지 배고프다고 징징대는 일은 없었다.


“좀 쉬죠. 안 피곤해요?”

“그래.”

“뭐······그렇다고 해둘게요.”

“알았다.”

“그나저나 도망친 놈들이 좀 걱정이네요. 인형술사는 모르겠지만 분홍신 같은 경우엔 학습을 해버리니까 귀찮아요. 그 정도 수준인 놈들이 다섯······아니 열 명 쯤 됐으면 지금쯤 다진 고기가 됐을걸요.”

“상관없다.”

“예······예······알겠습니다······전 좀 자다가 올게요. 옷도 좀 갈아입고 싶고요.”


몇 대 얻어맞은 뒤 옷을 갈아입는 것을 허락 받았다.

철문을 지나 마당에서 옷을 벗은 마차리는 마당에 있는 작은 수도에서 물을 길어 피와 땀으로 절어 있는 머리카락과 몸을 씻었다. 물은 차가웠지만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은 것들을 씻어주었으니 불평할 것이 아니었다.


“감기 걸리겠네······”


통통 뛰며 몸에 묻은 물을 대충 털어낸 뒤 피 묻은 옷을 마당 구석에 대충 던져 놓았다. 세탁은 당연히 자기가 해야 할 일이었지만 피와 땀에 절어 있는 옷을 집안에 들이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이어 고치는 사람이 없어 고쳐지지도 않는 문을 통과해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간 마차리는 자기 방으로 삼은 일층의 작은 방에 들어가 촛불을 몇 개 켠 뒤 남아 있는 물기를 닦았다. 침대 앞에 있는 거울에 몸을 비춰보며 덧난 데가 없나 확인했지만 로투와 싸우면서 입은 상처들은 자국이 조금 남아 있을 뿐 신체기능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회복되어 있었다.


“이래서야 원······”


상처는 숙련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배우긴 했지만 최근 상처를 입는 일이 많았다.

종의 특성 덕분에 상처 자국이 깊게 나는 일은 크게 없었지만 아픈 것은 똑같은 것이니 방심 할 순 없는 일이었다.

가방에서 마구 쑤셔 넣은 탓에 잔뜩 구겨진 옷을 꺼내 갈아입었다. 조금 오래된 옷 냄새가 났지만 코에 익숙해지면 참을 만했다.

샤크티와 알리샤는 위층에서 자고 있는 것인지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어느새 집에 들어온 우파나히가 갑옷을 벗고 있었다. 갑옷을 입을 정도로 강한 적이라고 인식하지 않은 것 같았다.

문제는 자고 있는 사람에 대한 배려라곤 없어 벗은 갑옷을 바닥에 놓은 자루에 던져 넣었고 쿵쿵 거리는 통에 잠에서 깬 알리샤가 내려와 화를 냈다.

우파나히는 아무렇지 않게 주방으로 들어갔다.


“애도 있는데 왜!”

“차, 참으세요······저러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저런 미련 곰탱이랑 무슨 생각으로 결혼을 한 건지 모르겠네!”


대꾸도 없는 무심한 사람에게 눈곱이 잔뜩 낀 눈으로 중얼중얼 거리더니 다 포기하고 올라가려다 잠에서 깬 샤크티가 내려오자 데리고 주방으로 가는 모습이 마차리의 눈에 보였다. 분명 우파나히에게 한 번 더 뭐라 하려는 것 같았지만 두 사람은 우파나히가 타고 있던 코코아를 사이좋게 한잔씩 먹고 올라가 잠들었다.


“알리샤씨 다루는 게 능숙하시네요.”

“시끄럽다.”


분홍신들의 도끼에도 찢어진 자국 하나 없는 코트를 입은 다음 방패와 철퇴만 챙겨 밖으로 나가 하던 일을 계속했다.

순찰이라는 것은 지겹고 따분한 일이었다. 특히 밤의 순찰은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다. 시야의 확보가 잘 되지 않아 보지 못하는 곳도 많은데다가 등불 따위를 들고 다니면 “화살 한 대 쏴 주시죠.” 라고 광고하는 꼴인지라 언제 습격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우파나히의 경로는 달랐다. 골목이고 뭐고 그냥 지나쳐선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가고 있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봤다간 얻어맞을 것 같았을까. 마차리는 씰룩거리는 입술을 꾹 다문 채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하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멀리서 붉은 기운 불빛이 보였다.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가벼운 바람을 타고 온 분 냄새가 마차리의 코를 간질였다.

맡아본 적 있는 냄새. 가슴이 두근거리게 하는 냄새가 나는 구역에 들어가기 전 입구를 지키고 있던 무장한 병사들이 증명도 없이 무기를 들고 있는 우파나히를 보고 창을 겨누었다. 살인 사건 때문인지 대꾸도 없는 우파나히의 반응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격해졌고 이때 수다 떨기 좋아하고 말재주가 좋은 마차리가 팔라둔의 이름을 팔아 창을 거두게 했다.

발이 빠른 병사 하나가 필리오림 관사까지 달려가서 겨우 “죽기 싫으면 건드리지 마라.” 라는 답변을 받아왔고 마차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며 우파나히와 함께 유곽에 발을 들였다.


자극적인 향수와 분 냄새가 사방에 퍼져 있었다. 가슴골을 드러내는 짧은 홑옷만 입은 여자들이 잔뜩 늘어서선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었고 잔뜩 술에 취한 목소리가 기분 좋게 울려 퍼지는 것도 종종 있었다.남자로썬 거부하기 힘든 곳이었지만 마차리에겐 조금 이상한 일이었다.


“혹시······”

“아니.”


차마 “욕구 불만이셨습니까······?” 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우파나히도 부정하고 있었고 혹 그런 말을 했다간 주먹이 아니라 철퇴로 얻어맞을 일이었다.

유곽 골목에서 우파나히는 자신이 던졌던 칼을 회수했다. 몰래 담배를 피우고 있던 여자가 치마를 들치려는 줄 알고 놀라 비명을 질렀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선 가만히 그들을 주시하며 손님인지 아닌지를 파악하려 했다.


“추적 술법입니까?”

“그래.”


묘한 문양이 새겨진 칼은 우파나히의 주머니 속에 들어갔다. 인형 술사가 지붕을 타고 도주하던 중에 떨어트린 모양이었다. 추적은 거기서 끝이었다. 성과는 없었고 성가신 일만 더 생겼다.

칼을 회수한 우파나히는 유곽 골목을 빠져나가려 했지만 아직 돈벌이를 하지 못한 여자 몇몇이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잠깐 몸 좀 풀다가세요. 네?”


그 중 한 명이 서글서글한 눈으로 바라보며 풍만한 모양으로 감싸 올린 가슴을 팔에 붙였지만 우파나히의 반응은 전혀 관심 없다는 것으로 가볍게 뿌리쳤다.

따라오지 않는, 아니 따라오지 못한 마차리는 이미 서너 명에게 잡혀 윗옷까지 벗겨진 상태로 그런 상태로 계속 있다간 어느 가게로 끌려갈지 모를 판이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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