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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의 세계입니다.

분홍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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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
작품등록일 :
2017.06.16 22:52
최근연재일 :
2019.04.02 12:16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11,423
추천수 :
31
글자수 :
220,138

작성
17.07.12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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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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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쪽

19

DUMMY

배운 것이 있었고 여행자라고 불릴 만큼 실력도 갖췄지만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칼놀림이었다. 한손으로 단단히 잡는가 하면 두 손가락으로 가볍게 잡기도 했고 휘두르는 가 싶을 땐 주먹이 날아와 목젖을 후려갈겼다. 다리를 걷어차려 하면 지팡이로 쓰는 칼로 막았고 허공에 뜬 단검이 정수리에 박히기 전에 잡아내 칼자루로 때리기도 했다. 양손과 양 발을 다 써서 단검을 다루는 모습은 어린아이를 상대로 장난치는 듯 했고 모두가 숨죽이고 구경할 수밖엔 없었다.

그런 놀이의 승부가 나기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어느새 벽까지 밀린 어린 여행자의 목옆에 단검이 두 개 박혔고 이어 옆구리 옆에 두 개, 가랑이 사이에 하나가 박혔다.


“다섯 번 죽었네. 자네 이름은 남지 않을 걸세.”


어린 여행자는 침묵하는 것으로 패배를 시인했다. 늙은 여행자는 한숨을 길게 내쉰 뒤 단검들을 회수했고 기침을 한 번 토해낸 뒤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내 이름이 궁금하다면 알려주지.”


몸은 늙었지만 기술적인 부분에선 흠잡을 데가 없다. 춤추듯 단검을 다루는 자는 드물다. 그리고 그런 자의 이름을 듣는 것은 강한 자를 좋아하는 샤엘라들에게 있어 즐거운 일이었다.


“로투 하르다.”


대부분 처음 듣는 이름이라는 반응이었다. 뛰어난 기술을 자랑해놓고 알지도 못하는 이름을 내놓으니 샤엘라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하기만 했다.

하지만 마차리는 그 이름을 들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고 있었다. 그건 스물 두 명의 샤엘라 중 오직 마차리만이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음······뭐······모르는 게 당연한가······”


로투는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고 해서 많이 알아 줄 것이라곤 기대하진 않은 것 같았지만 너무 몰라주니 조금 섭섭한 모양이었다.


“로나리나 님의 마지막 제자라고 하면 알기 쉽겠군.”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패배한 어린 샤엘라는 머리를 감싸 쥐고 어쩔 줄을 몰라 했고 마나폴로를 비롯한 쾌활한 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일부는 영웅의 제자라며 그를 추켜세웠지만 로투는 즐거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팔라둔은 믿기지 않는단 목소리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툭 던졌다.


“그럼 몇 살이라는 건가.”

“꽤 먹었습니다. 로나리나 님이 일곱 영웅이라 불린 다음에 제자로 들어갔으니까요.”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저도 늙었기에 실력을 다 발휘 할 순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예의를 차리듯 머리를 조아리는 늙은 여행자 로투는 적어도 이백 살은 넘은 상태였다. 팔라둔 역시 샤엘라가 장수하는 종족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터무니없이 나이가 많다고 느끼고 있었다.

어디에서 전승되는 오래 살게 해준다는 비약이라도 먹은 건지, 아니면 특수한 술법으로 나이를 천천히 먹고 있는 건진 알 수 없었지만 그 시간동안 생존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강함을 증명하고 있는 역사의 증인이 팔라둔의 눈앞에 존재하고 있었다.


“다들 추켜세우지 말게. 심장에 안 좋아.”

“에이~로나리나 님이라 하면 일곱 영웅 중 가장 아름다운 분! 진짜 였나 궁금합니다!”

“아름답다라······그냥 괴팍하셨지······”


옛 기억을 더듬으며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는 젊은 여행자들을 만족시켰다. 그렇게 영웅담을 좋아하는 샤엘라들에게 있어 하나의 기둥이 세워졌다.

그 사이에 끼여 있던 마차리는 어느 대화에도 참여하지 않고 가만히 고개를 숙인 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떨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관심을 가진 로투가 천천히 다가왔다.


“어디 안 좋은가?”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로투.”“필리오림이 우릴 지원하는 상태니 무료로 진료 받을 수 있을 게야. 무리하진 말게. 아직 젊으니.”

“네, 네······”


로투가 과거에 세운 모든 공적은 지금의 환호성에 묻힐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마차리는 알고 있었다.

그 뒤의 회의는 팔라둔과 로투의 주도하에 막힘없이 잘 흘러갔다. 조를 짜고 그 조의 조장을 세운 다음 해야 할 일을 부여하고 몇 가지 상황을 예로 들어 적용했을 때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 가에 대해 전술을 짜냈다. 팔라둔의 도시에 대한 지식과 로투의 전술에 대한 지식, 다른 샤엘라들의 경험을 집약하니 쓸 만한 방안이 몇 가지 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쉴 새 없이 떠들고 나니 해가 저물었고 팔라둔은 샤엘라들을 해산시키는 것으로 그날 할 일들을 끝냈다. 몇몇의 샤엘라들이 모여 술집이나 여관으로 향했지만 로투만이 홀로 걸었다.


“그렇게 따라 올 거면 옆으로 오게.”

“네!”


자신의 뒤를 밟고 있는 마차리를 감지한 로투가가 잠시 멈춰 서서 그를 옆으로 불렀다. 그리곤 지팡이 대신으로 쓰던 칼을 손에서 떼고 양손으로 마차리의 얼굴을 붙잡았다.


“순하게 생겼는데······한심하군······”

“네?!”

“자네가 한심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네.”


마차리에게서 누군가의 그림자를 보고 있는 듯 했다.


“그거 ‘피의 강’이지?”


지팡이로 마차리의 허리에 달린 칼을 툭툭 두드렸다. 이때 마차리의 표정은 볼 만했다.


“엇!? 어떻게?!”

“알다마다. 이 나이까지 살다보면 알게 되는 일이 많아. 기억력이 좀 떨어진다는 게 문제지만······자네 이름이 뭐였나?”

“마차리입니다.”

“그래, 그런 이름이었지······근데 왜 날 따라온 건가.”

“영웅이시니까요.”

“영웅의 제자지. 그러니까 자네 말곤 아무도 날 안 따라 오는 거야.”

“그런가요?”


멋쩍은 듯 헤헤 거리며 웃는 모습이 영웅을 동경하는 어린 아이 같았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가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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