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암현의 세계입니다.

분홍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암현
작품등록일 :
2017.06.16 22:52
최근연재일 :
2019.04.02 12:16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11,402
추천수 :
31
글자수 :
220,138

작성
17.08.02 21:54
조회
113
추천
1
글자
8쪽

39

DUMMY

이튿날 샤엘라 여행자들이 모두 도시 밖으로 빠져나갔다는 소식이 팔라둔의 귀에 들어갔다. 마나폴로는 어쩔 수 없다고 했지만 팔라둔으로썬 안타까울 뿐이었다. 나흘째 되는 날엔 살인이 일어나지 않았다. 공포가 거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닷새째 되는 날 일가족이 참살 당했다. 그날 작은 충돌이 일어났지만 팔라둔은 반응하지 않았다. 여드레 째 되던 날 마차리가 광장과 공원에 종이를 붙였다.

에란 문자로 되어 있었기에 읽을 수 있는 자들은 극소수였기에 소동이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대신 이를 적들의 소행이라 생각한 시민들이 종이를 찢거나 불태우는 일이 일어나곤 했다.

물론 팔라둔은 침묵했다.

어떤 행동도 보이지 않으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하루하루 자신을 날카롭게 갈았다.

하지만 시간은 동등하다. 팔라둔과 동료들이 준비하는 만큼 적들도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팔라둔이나 시민들에겐 도움이 되지 않을 일이라는 것이었다.

아흐레째 되는 날부터 팔라둔의 관사 앞에서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개중에는 과격한 행동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열하루 째 되는 날까진 통제 할 수 있을 수준이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거지.”


열엿새 째 되는 날 관사로 불려온 알리샤가 들은 첫 마디엔 다스려지지 않은 감정이 실려 있었다. 알리샤는 팔라둔에게 기다리라고 말하며 사건 조작을 부탁했다.

도시가 황폐화되고 있었고 일부에선 조작하지 않은 진짜 강도 사건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스무째 날 되는 때 마나폴로가 보냈던 사람들이 모두 돌아와 정보를 넘겨주었다. 그보다 하루 전날엔 수도에서 직접 빠른 일처리를 원한다는 명령이 내려왔다.

팔라둔은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 아침 일찍 일을 계획했던 마차리를 불러 현재의 상황에 대해 물었지만 좋지 않았다.


“로투가 반응했나.”

“아뇨. 아직입니다. 그쪽에서도 꽤 조심하고 있겠죠.”

“이틀 더 주겠네. 실패한다면 책임을 물을 테니 각오하게.”

“예······”


마차리에게도 시간이 없었다. 시위하고 있는 성난 군중들을 피해 뒷문으로 빠져나가 집으로 돌아갔다. 깔끔하게 수리한 문과 유리로 바꾼 창문들, 손질된 마당이 반갑게 맞이해줬지만 마음이 불편한 탓인지 그냥 멍하니 앉아 있게 되었다.


“밥만 축내지 말고 밖에 나가서 뭐라도 해.”

“제 식사량은 굉장히 적은 편인데요······”

“우파나히는 그래도 일은 하잖아.”

“예에에······”


알리샤의 등쌀에 못 이겨 밖으로 나왔지만 수중에 돈은 별로 없었고 배는 많이 고팠다. 결국 뿔 나팔에 들어가서 맛도 없는 것들을 주문해 먹을 수밖엔 없는 일.

왠지 그렇게 되면 사람으로서 자신의 혓바닥을 배신하는 것 같았기에 노점에서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감자튀김을 사서 공원에 앉았다. 의자에 앉기 전 손바닥에서 나온 긴 채찍을 휘두르는 모습을 한 동상에 존경을 담아 인사하는 그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곧 잊혀졌다.


“배고프네······”


몇 개 되지도 않는 것을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고 있으니 공놀이를 하고 있던 아이들 몇 명이 그 모습을 한 번씩 멍하니 바라보며 군침을 흘리고 있었지만 지금 먹고 있는 것은 아침식사였기에 줄 순 없었다. 주머니를 뒤지니 사탕 사먹을 정도의 돈은 들어 있었다. 손짓으로 아이 한 명을 불러 동전 몇 닢 쥐어주니 좋아라 하며 꾸뻑 인사를 하기에 마차리는 기분 좋게 인사를 받아주고 아침 식사를 계속했다.


“아이들은 귀엽지 않나.”


빵 사이에 구운 고기와 채소를 넣어 먹는 음식을 양손에 들고 와선 마차리의 옆 자리에 앉은 로투는 태연자약하게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마차리가 칼을 뽑아들려 했지만 그의 지팡이가 칼자루를 쥔 손을 눌렀다. 누르는 것만으로 칼을 뽑을 수 없는 자세였지만 그의 힘도 무시할 순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들이 있잖나. 싸울 의사도 없으니 걱정 말고.”


그러고는 한손에 들린 것을 마차리에게 내밀었다. 얼떨결에 받긴 했지만 도저히 먹을 엄두는 나지 않는 것인지 감자튀김만 깨작깨작 우물거리며 바라만 보았다.


“걱정 말게. 독은 없으니.”


한입 크게 베어 물더니 말없이 꼭꼭 씹어 먹었다.


“선전포고라도 하려는 겁니까.”

“글은 잘 봤네.”

“그래서 어쩌려고요.”


칼자루에서 손을 떼자 지팡이를 거둬갔다.


“사람 없을 때 하지. 유품을 회수하는 것은 내 임무야.”

“싸우는 것도 좋아하고요.”

“흐흐흐······그렇지. 그래. 우린 어쩔 수 없는 싸움꾼들이야. 거창한 대의명분 없이 싸우고 싶을 때 싸우고 싶어 하지.”

“만약 내가 당신을 고향을 돌려보내게 되면 용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죽여도 문제고 죽이지 않아도 문제다. 피해가 확대되기 전 폭주하는 용을 제압할 자신이 없었다.


“하샤에 봉인 될 걸세. 그렇게 조치해놨어.”

“알겠습니다. 믿죠. 모레 새벽에 여기서 봅시다. 그때까지 살인을 저지르면 유품은 파괴하거나 숨길 겁니다.”

“오, 협박인가?”

“당신을 상대로 협박할 정도로 배짱이 흘러넘치는 사람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좋네. 유품만 회수할 수 있다면 상관없어.”

“알겠······”


마차리의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났다. 심각한 이야기를 하거나 말거나 몸은 솔직했고 로투는 크게 웃으며 배를 꾹 누르는 마차리의 등을 토닥였다.


“하하하! 배가 고프면 아무것도 할 수 없지! 독은 없으니 걱정 말게! 먹어도 돼!”


미심쩍었기에 먹진 않았지만 로투의 호의만큼은 진심인 것 같았다. 마차리가 남은 감자튀김을 천천히 씹어 먹는 사이 로투는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다 먹어치웠고 부족한 것인지 마차리에게 줬던 것까지 돌려받아 먹기 시작했다.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좋은 게지!”


정말로 독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두 개나 먹고도 모자란 표정. 하지만 마차리에게도 나눠줄 음식은 없었다.


“다 드셨으면 일어나시죠.”

“먼저 일어나게. 나이가 들면 다리부터 말썽이란 말이지.”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마차리가 그를 경계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투는 손까지 흔들어주며 그를 배웅했고 마차리는 이 어이없는 상황에 쓴 웃음을 지으며 빙빙 돌아 팔라둔의 관사로 향했다.


로투는 그곳에 한참동안 앉아 있었다. 공원에서 노는 아이들과 분수대 위에 세워진 동상을 번갈아보며 짧은 휴식을 즐겼다.

해가 저물어 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곳에 앉아 있었다. 사복을 입고서 그를 감시하는 병사들이 있었지만 이미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는 로투는 그들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게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해가 저물고 어둠이 내리자 병사들의 감시도 살짝 누그러져 갔다. 공원엔 달과 별빛만이 감돌았고 그 어둠을 틈탄 손님이 로투를 찾아왔다.


“주인님께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십니다.”

“눈이 많네.”

“알고 있습니다.”


젊은 여자의 목소리, 얼굴엔 가면이, 발엔 분홍신이 신겨져 있다. 제대로 된 대화라는 것을 할 줄 아는 분홍신이라는 건 로투도 본 적 없었기에 천천히 시간을 들여 관찰하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감시하는 눈이 있으니 자리를 옮길 수밖엔 없었다.

지팡이를 살짝 들어 바닥을 한 번 두드리자 로투의 발치에 있던 그림자가 두 사람을 감싸 먹어치우며 어디론가 이동시켰다. 감시하던 병사들도 무리하게 쫓지 않았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분홍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39 17.08.02 114 1 8쪽
38 38 17.08.01 135 1 6쪽
37 37 +2 17.07.29 180 1 8쪽
36 36 17.07.28 117 0 8쪽
35 35 17.07.27 110 0 6쪽
34 34 17.07.26 298 0 6쪽
33 33 +2 17.07.25 155 0 7쪽
32 32 17.07.24 101 0 8쪽
31 31 17.07.23 215 0 7쪽
30 30 17.07.22 120 0 7쪽
29 29 17.07.22 912 0 7쪽
28 28 17.07.20 86 0 7쪽
27 27 17.07.17 352 0 6쪽
26 26 17.07.16 121 0 8쪽
25 25 17.07.16 120 0 8쪽
24 24 17.07.15 109 0 7쪽
23 23 17.07.15 127 0 7쪽
22 22 17.07.15 112 0 8쪽
21 21 +2 17.07.13 238 1 7쪽
20 20 17.07.13 167 0 8쪽
19 19 17.07.12 148 0 6쪽
18 18 17.07.12 745 0 8쪽
17 17 17.07.11 105 0 7쪽
16 16 17.07.11 162 0 7쪽
15 15 17.07.10 135 0 7쪽
14 14 17.07.09 192 0 6쪽
13 13 17.07.08 126 0 7쪽
12 12 17.07.07 167 1 10쪽
11 11 17.07.06 138 1 6쪽
10 10 17.07.04 152 1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